# 184
#184. 그게 중요한가요? (2)
첫 곡은 ‘SOMETHING OR NOTHING’이었다.
에단 3인방과 불렀던 클래식 버전이 아닌 레이크헬 원곡.
세계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드러머답게 디알로의 연주는 엄청났다.
파워풀하면서도 리듬감이 최고다.
누가 들어도 어깨가 다 들썩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신명 나는 연주.
곧이어 끼어든 유진의 키보드 음.
거기에 제롬과 베릴이 각각 베이스와 기타 연주를 시작하자 현란하기 짝이 없는 사운드의 향연이 펼쳐졌다.
야밤?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 분명 민폐라면 민폐다.
한데, 그게 일정 수준을 넘기면 민폐가 아니라 오히려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건물 아래쪽에 모여 있는,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점차 불어나고 있는 인파. 그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는 게 보였다.
그런 그들이 혹여라도 다칠까 싶던 건가.
어디서 끌어왔는지, 아니면 뉴욕시 차원에서 지원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기자들이 움직인 건지는 몰라도 사방팔방에 조명들이 세워졌다.
거기에 경찰들도 출동해 도로를 통제하고 폴리스 라인을 치며 혹시라도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언뜻 보니 길 건너편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앰블런스들도 보였고.
이러니까 진짜 콘서트 하는 거 같네.
행사 요원들만 없다 뿐이지, 아니 경찰들과 소방관들 그리고 팬들이 자체적으로 행사 요원을 자청하고 있는 셈인가?
아무튼, 좋다.
계획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시도해서인지는 몰라도 어째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분된다.
그래서 그런가?
지이이이잉.
들고 있던 피크로 기타 현을 긁는 순간이었다.
어?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도준의 기타 음에 콜린은 가볍게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자신들이 만들었고, 그들을 스타덤에 올린 곡.
물론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히트곡을 냈고, 개중에는 ‘SOMETHING OR NOTHING’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낸 곡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SOMETHING OR NOTHING’은 그들, 레이크헬에게 있어서 의미가 남다른 곡이었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밴드들이 있고, 저마다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혹은 자신들의 노래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절치부심 노력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중에서 뜻한 바를 이루는 이들은 1%도 안 되니까.
그렇기 때문에 ‘SOMETHING OR NOTHING’는 레이크헬에겐 정말이지 뜻깊은 곡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날의 레이크헬이 있게 만들어준 1등 공신이랄까.
그런 곡을 도준은 첫 곡으로 선택해주었다.
아마도 그건 자신들에 대한 배려일 터다.
이를테면 오프닝?
콜린은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떠도는 동영상 한편.
그 동영상에 이끌려 찾은 한국.
홍대의 허름한 클럽에서 처음 보았던, 그때만 해도 앳된 티를 벗지 못하고 있던 도준이 이제 스타 중에서도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도준의 장난 아닌 장난에 어울려 오프닝을 자처하고 있으니…….
이래서 세상일이란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라고 하는 가보다.
그렇게 콜린이 속으로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놓고도 남을 만큼, 강렬하면서도 시원한 연주들. 마치 톡톡 튀는 탄산음료라도 되는 듯 호쾌하게 이어지는 키보드 연주가 파워풀한 드럼 소리와 함께 곡을 이끌어나가는 동안, 베이스가 간헐적으로 치고 들어오며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베릴과 도준이 미친 듯이 연주하는 기타소리가 옥상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전주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때, 콜린이 습관처럼 손을 쳐들었다.
그러자 건물 아래에서 또다시 함성이 터진다.
기자들이 터뜨린 플래시 불빛도 여기저기서 번쩍거린다.
하지만, 이미 콜린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마이크를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발 앞으로 나선 그는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금 허리를 펴는 순간, 앰프에서 엄청난 고음이 터졌다.
“Let's take-----”
콰광 쾅! 쾅! 타다다다다다 탕!
드럼 소리가 한층 더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그가 선언했다.
“----delight in!”
즐기자!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자고 선언한 그의 외침 속에서 마침내 노래가 시작되었다.
“It was nothing.”
- It was nothing.
The sun I woke up in the morning.
The sky that I awoke from sleep.
I just realized that I was alone.
Yeah, it's just nothing.
But I know.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침에 일어나 본 태양은.
잠에서 깨어 바라본 하늘도.
그저 혼자라는 사실만을 깨달았을 뿐.
그래, 그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야.
하지만, 난 알아.
“Actually, that's it……. (그거야말로 사실은…….)”
콜린의 폭발적인 노래가 건물을 뒤흔들고, 거리로 퍼져 나감과 동시에 아래쪽에 운집해 있던 팬들이 소리 질렀다.
“Something!”
“Something!”
“Something!”
씨익.
콜린은 웃음 지었다.
그와 동시에,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드럼이 폭발하며 공기를 뜨겁게 달군다.
둥 둥 둥! 둥둥 둥! 둥!
베이스가 묵직하게 건물을 두드렸고.
그런 와중에 현란한 키보드 음이 세상을 팔색으로 물들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베릴의 기타가 불을 뿜었다.
기이이이이이잉.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잠시지만, 그가 연주를 멈춘 것.
수십, 수백 번 연주해온 곡임에도 베릴이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까닭을 콜린은 알 수 있었다.
아니, 옥상에 있는 이들이라면 전부 깨달았다.
그럴 수밖에.
“……!”
똑같은 기타 연주임에도, 후두부를 강타하는 강렬한 사운드.
이미 몰입한 상태인지 기타를 치는데 몰두하고 있는 도준의 모습.
그의 손끝에서 비롯된 연주가…….
“마, 말도 안 돼!”
이 곡을 저렇게 친다고?
아니, 그건 그렇다 치자.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도준의 편곡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연주는……. 신들렸다고밖에는 표현하기 어려웠다.
엄청난 스피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모두의 연주 속으로 파고들었다.
두근 두근.
원래대로라면 저 정도로 기타 혼자 치달리면 곡은 망가진다.
당연한 이치.
함께 맞춰서 연주하기에 합주인 것이고, 그래서 밴드인 것이니까.
한데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곡은 한층 더 생기를 얻는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모두의 심장을 두들겨댔다.
그래서인지, 디알로의 스틱이 곡을 쪼개며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드럼을 두들겼다.
키보드도 마찬가지.
언제나 유진의 연주는 화려하고 경쾌했지만, 지금은 그 이상이었다.
그 역시도 신들린 듯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롬 역시도 입술을 깨물며 베이스에 매달렸다.
말 그대로 매달린 것이다.
압도적인 기세로 곡을 이끌어가기 시작한 도준의 연주를 따라가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베릴?
역시 최고수준의 기타리스트다웠다.
잠시 눈을 치뜨고 놀랍다는 듯 한차례 도준을 바라보았을 뿐, 그는 이내 담담한 눈빛이 되더니 기타를 강하게 움켜잡고 피크를 쥔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강렬한 사운드.
마치 막혀 있던 둑이 터진 듯 밀려들며, 가슴속으로 휘몰아치는 가운데 콜린 역시 반쯤은 넋이 나갔다.
그리고 그의 입이 다시 벌어지는 순간, 그가 여태껏 한 번도 내보지 않았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대를 광란으로 몰아넣는 신호탄이었다.
***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공연 아닌 공연 이어지는 동안 미국 전역은 들끓었다고 한다.
아니, 전 세계가 광분했다나.
하긴, 비틀즈가 옥상에 올라 깜짝 공연을 했을 당시와는 사정이 달랐으니까.
인터넷과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진 공연 실황(?)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공연의 대부분은 내 신곡들로 채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크헬은 잘 따라왔다.
나?
솔직히 말해서 정신이 없었다.
눈앞이 하얗게 물드는 순간 이미 나는 없었다.
정확히는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게 맞겠지.
나는 그때 나만의 세상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소리들의 향연이랄까.
마치 날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 새하얀 시공간을 가득 채운 음들과 미친 듯이 놀았을 뿐이다.
그게 다다.
그렇게 한참 만에 나는 기타를 내렸고, 마이크에서 손을 뗐다.
“훅훅훅!”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귓가로 들려왔다.
단내가 풀풀 나는 음성이었다.
“괘, 괜찮아? 도준?”
옆을 보니 콜린이었다.
참네, 누구한테 묻는 거냐?
안색이 하얗다 못해서 파랗구만.
뒤늦게 돌아보니, 다들 말이 아니다.
쓰러지지 않은 게 용하달까.
대체 얼마 동안이나 이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직도 흥분 상태에 있는 팬들, 그리고 기자들……. 하늘 위에 떠있는 헬기에서 우릴 비추고 있는 카메라에까지 손을 흔들어주고 돌아섰다.
멈칫.
언제 온 걸까.
테라스 한편에 샤오린과 빨강 머리 실비아가 보인다.
그리고…….
캘리?
아니, 저 여자는 여기 왜 온 거지?
의아해졌지만,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자, 마셔.”
누군가 내게 병을 내밀었고, 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엉겁결에 받아 마셨다.
“후아아아아!”
한큐에 병을 비워버린 뒤,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얼마나 차가운지 머리가 쭈뼛 서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 이거……. 맥주였네.
근데, 좋다.
이래서 마시는구나 싶었다.
“자, 이제 그만 들어가서…….”
디알로가 비틀거리는 날 부축하며 말하고 있었다.
“파티하자, 파티!”
하! 이 괴물 같은 놈이 뭐라는 거야?
어이가 없어져서 디알로를 쳐다보았지만…….
“오! 좋아요! 뒤풀이 가는 거에요!”
제롬이 소리치고 있었다.
저 자식은 갈수록 한국적인 사고방식에 가까워지고 있네.
기가 막혔지만, 그저 웃었다.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워서.
방금까지 들어가 있었던 새하얀 시공간…….
그런 건가?
확실히 이것만은 알겠다.
음악이 단지 소리의 집합체가 아니란 것만은.
난 못 이긴 척 놈들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건물 밖은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집안에선 또 한차례 광풍이 풀기 시작했다.
제롬 말대로 뒤풀이가 시작된 것이다.
***
“으으음.”
타는 듯한 갈증과 함께 눈을 떴다.
창문 사이로 햇살이 들이치고 있다.
그 바람에 간신히 뜬 눈임에도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한 손을 들어 차단막을 만들었다.
그제야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잠든 거지?
분명 어제…….
하아, 미친놈들.
두 시간이 넘게 연주를 하고도 그런 체력이 남아 있다니.
아니면 놀 체력은 따로 쟁여놓기라도 하는 걸까?
아무튼, 어젯밤에는 정말 미친 듯이 마시고 놀았던 거 같다.
특히 제롬…….
알고 보면 그놈이 가장 무서운 놈이다.
폭탄 중의 폭탄이랄까.
“파도를 타는 거에요. 봐요. 다 마신 후에는 이렇게 머리 위에서 잔을 탈탈 터는 거에요.”
직접 시범까지 보여주며 한국의 술 문화를 전파하던 제롬을 떠올리곤 픽 웃고 말았다.
어쨌든 어제는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은 리노를 제외하고 전부 술독에 빠져버린 날이었다.
레이크헬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마루 누나와 아저씨까지. 심지어는 고 팀장님까지 잔뜩 취해서 횡설수설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거기에 샤오린과 실비아까지 합세해 진짜 광란의 밤을 보냈으니까.
하긴, 축하할만한 상황이긴 하지.
내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줄을 세운 날인데.
제롬 말마따나 이럴 때 파티를 하지 않으면 언제 할까?
“끙!”
이럴 게 아니라, 우선 물 한잔 마시고 샤워부터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 한쪽에 손을 짚고 일어…….
물컹.
“……?”
뭐, 뭐지?
이 부드러우면서도 말캉말캉한 느낌의 감촉은?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쳤다.
“헉!”
캐, 캘리?
흠칫.
그 커다란 눈으로 날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는 캘리.
너무 놀라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떼는 순간, 그녀가 물어왔다.
“잘 잤어, 도준?”
그녀가 눈부신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