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183. 그게 중요한가요? (1)
핸드폰 화면에 떠있는 차트 순위에 시선을 못 박은 채 서 있었다.
실제론 한국어로 부르고, 한국어 제목이었음에도 전부 영어로 번역되어 있는 곡명이었다.
1위 I ALREADY KNOW - DOJUN. K
2위 NEVER CHANGE - DOJUN. K
3위 SOMETHING OR NOTHING - THE FOUR
4위 ALL LIGHT - DOJUN. K
5위 DON'T TRY - DOJUN. K
6위 AND THE END - DOJUN. K
7위 KEEP YOU CLOSE TO ME - DOJUN. K
8위 I GOT THIS GIRL - DOJUN. K
지난주까지 1위였던 ‘SOMETHING OR NOTHING’이 3위로 내려앉은 채 중간에 끼어 있긴 했지만, 1위부터 8위까지가 이번에 내가 발표한 곡들이었다. 열 곡 중 일곱 곡이나 10위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나머지 세곡도 각각 11위, 12위, 14위에 올라 있다.
기가 차다.
이게 지금 말이 되나?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 줄을 세운 것도 아니고, 빌보드 차트에서 줄을 세워?
요사이 N10의 판매량도 그렇고, 김도준 앱의 다운로드 속도와 기부금이 쌓여가는 속도도 만만치 않더니만 기어이 이런 사고(?)를 치고 말았다.
- 흑! 도준아, 어엉……. 추, 축하해! 어어어어엉……!
수화기 너머에서 마루 누나가 축하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눈물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며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아이고, 우리 누나. 눈물 터졌네.
그 마음이 확 와 닿아서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따스해졌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우는 사람 앞에서…….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빌보드 차트에서 줄 세운 것보다 저렇게 울기까지 하면서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마루 누나의 마음이 기꺼워서였다.
“고마워요. 누나.”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
자고 일어나니까 스타?
그 정도가 아니었다.
미국 내 유명일간지를 비롯해 인터넷에 뜬 기사들 제목을 살펴보자면,
[미국을 위협하던 한국의 공습, 마침내 빌보드의 심장을 점령.]
[빌보드뿐만 아니라 영국까지 휩쓸기 시작한 김도준.]
[지금 전 세계는 김도준앓이 중?]
[김도준 만의 느낌이 배어 있는 곡들. 전통적인 록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도가 가득한 노래들이 아메리칸의 마음을 녹였다.]
[김도준, 그는 혁신의 아이콘.]
혁신의 아이콘이란다.
내가 잡스도 아니고…….
와,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저녁 내내 전화에 시달렸다.
여기저기서 걸려온 전화들.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형을 비롯해 아는 사람들은 모조리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당연히 외할아버지껜 내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 들었다.
깔끔하게 대꾸하시는 할아버지.
“그렇게 됐네요.”
- 미국놈들이라도 귀는 제대로 뚫린 모양이군.
헐! 저 발언……. 역차별인데.
하여간 거침없으시다니까.
- 그래서 좋으냐?
“좋죠.”
- 그럼, 며칠 더 기분 내다가 얼른 한국으로 오너라.
“예?”
- 광고 찍어야지.
이런 상황에서도 물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건 결코 잊지 않는 분이셨다.
“아, 진짜!”
- 회의 들어가야 해서, 끊으마.
내가 투덜거릴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전화를 끊으시는 외할아버지. 한데, 전화를 끊기 전 들려온 커다란 웃음소리에 나는 웃고 말았다.
참네, 좋으면 좋다고 말씀을 하시지.
다시 한 번 픽하고 웃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기뻐해 주시는 걸 보니, 나 역시도 기쁘다.
그렇긴 한데…….
겁도 난다.
이래도 되나? 싶어서.
‘SOMETHING OR NOTHING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었을 때도 감격스러웠었지만, 그래도 그땐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아무래도 원곡의 주인이 따로 있었던 데다가 나 혼자 부른 것도 아니었고.
한데, 봐라.
나와 크리스티나, 조안나, 에단과 함께 앨범을 내기 위해 임시로 등록한 ‘THE FOUR’의 노래들 즉 사운드 오브 뮤직의 커버곡들과 ‘더 시트’의 OST들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이번 주 1위부터 20위까지 대부분의 자리를 내가 차지한 꼴이 되어버렸다.
이를 두고 코리안 토네이도라고까지 부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한국에서의 반응?
말할 것도 없었다.
난리도 아니다.
- 주니 오빠! 드디어 해내셨네요!
- 나 눈물이 날 거 같아.
- 와, 지린다! 김도준이 사고를 치면 규모가 다르구나.
- 재벌집 막내아들이 끝내 미국을 접수하는구나!
- 그게 문제가 아니죠. 유럽 쪽도 곧 그의 손아귀에…….
- 세계정복도 시간문제인가?
- 킴또춘, 오지네!
네티즌 중에 대부분이 놀람을 감추지 못한 채, 세계정복 운운하고 있다.
뭐래? 내가 무슨 악당이야?
어이가 없었지만, 댓글 하나하나를 읽고 있는 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근데, 이제 어쩔래?”
옆에 다가온 콜린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응? 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디알로가 씨익 웃으며 창가로 다가간다.
그 순간 느낌이 왔다.
“스탑!”
하지만, 이미 늦었다.
디알로의 손에 의해 창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뿐만 아니라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쯧, 내일 아침에 디알로의 얼굴이 신문을 장식하겠구나.
아니, 한 시간 안에 인터넷에 떠돌겠지.
동시에 나와 레이크헬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도 또다시 떠들어대겠지.
또 무슨 말들을 해댈지.
한숨을 푹 내쉬고 있을 때였다.
“포기해.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야이씨!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래, 도준. 스타는 고독한 거야.”
“그래도 좋잖아? 밖에 모인 건 기자들만이 아니라니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준의 음악을 사랑해주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저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자유를 포기해줘.”
아우, 얄미워!
이 자식들 입술을 씰룩거리며 말하는 거 봐라.
내가 자기들이랑 처지가 비슷해진 걸 몹시 기뻐하는 눈치다.
그나저나 큰일은 큰일이네.
학교도 가야 하고, 소모임도 이어가야 하는데…….
이래서야 집 밖을 나가는 일도 쉽지 않겠다.
몇 시인가 싶어서 확인해보니 저녁 8시가 다 되어간다.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를 받는 사이 벌써 밤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밖에 모인 인파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와! 천명은 가뿐히 넘겠는데?”
“그래? 생각보다 적은데?”
“에이, 도준이 빌보드 쓸어버린 게 방금 전이라는 걸 감안하면 저 정도도 대단한 거지.”
“그렇긴 하네. 그럼 내일은 진짜 장난 아니겠는데?”
“크크큭. 우리 모두 이 건물에 갇힌 거지.”
“차라리 잘됐네. 이 기회에 파티나 하자! 어때?”
“오오! 좋지! 파티하자, 파티!”
유쾌한 건지, 정신 나간 건지.
저 자식들은 이런 상항에서도 어쩜 저렇게 쾌활 발랄할 수 있는지.
부정적인 마인드라곤 1그램도 찾아볼 수 없는 긍정적인 사고 시스템이 부럽기만 하다.
음, 근데 천명쯤 모여 있다고 했나?
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콜린을 불렀다.
“야, 콜린.”
“응?”
날 빤히 쳐다보며 눈을 치뜨는 그에게 물었다.
“지금 시각에 연주하면 미친놈 소리 들을까?”
한국이라면 틀림없다.
밤 9시에 기타를 치고, 드럼을 두드려? 돌 날아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테지.
하지만…….
“뭐 어때? 여기 연습실 방음 잘 되어 있잖아. 그러니까……. 응? 너 설마?”
씨익.
내가 웃어 보이자, 콜린을 비롯해 어느새 내 주위로 모여들어 있던 레이크헬 멤버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미친놈!”
“저 새낀 진짜 돌았다니까!”
“와! 우리랑 급이 다르네!”
“진짜 할 거냐?”
마지막에 베릴이 나한테 묻는데, 눈가에 광기 비슷한 게 스쳐 가는 게 보인다.
이 자식이나 저 자식들이나, 도찐개찐이다.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니 물었다.
“재밌을 거 같지 않아?”
내 질문에 모두의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표정이 떠올랐다.
***
뉴욕 한복판. 5층짜리 건물 위로 남자들 여럿이 끙끙거리며 악기들을 실어나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언뜻언뜻 보이자, 건물 앞에 모여 있던 기자들과 팬들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눈동자엔 기대감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악기를 옮기고 있는 이들이 세계적인 록커들인 레이크헬이었으니까.
뿐만 아니다.
스치듯 보였다가 사라지는 얼굴.
김도준이 분명하다.
이제는 더 이상 단순히 한국에서 줄리아드로 유학 온 동양인 청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김도준이 레이크헬이랑 함께 이 야심한 밤에 악기를 옮긴다?
그것도 5층 야외 테라스로?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1969년, 비틀즈가 갑자기 행했던 Roof Top Concert 즉 옥상공연.
녹음실에서 녹음하다가 갑자기 필 받아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벌인 전설적인 공연. 아니 헤프닝이랄까.
지금 찰리스 건물 앞에 모인 이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같았다.
“바, 방송국에 알려! 지금 김도준이랑 레이크헬이 뭔가를 하려는 거 같다고!”
“헬기 띄우라고 해!”
“미친! 지금 내가 말하잖아! 옥상 공연이라고! 옥상공연! 씨팔 몰라? 비틀즈! 비틀즈처럼…….”
기자들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면서 난리법석을 떨고 있을 때, 운집해 있던 팬들 역시 난리였다.
그들 역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이들에게 전화를 걸고,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렸으며 커뮤니티와 블로그에 소식을 알리느라 정신없었다.
그러는 사이, 찰리스 건물의 옥상 테라스가 갑자기 확 밝아졌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조명이 밝혀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 하늘에서 헬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이 터졌다.
옥상 테라스 난간 쪽으로 김도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진짜 너…….”
“와, 이걸 해보게 될 줄이야!”
“크크크, 저 또라이 새끼!”
뒤쪽에서 들려오는 레이크헬 멤버들의 말에 대꾸했다.
“나 이거 꼭 해보고 싶었거든.”
웃음이 왁하고 터진다.
그러곤 이어지는 말들.
“나도, 나도!”
“누군들 꿈꾸지 않았겠냐?”
“근데, 이러면 따라 하는 것밖에 안 되는데…….”
“뭐 어때? 재밌잖아!”
“하긴! 크큭. 하여간 저 자식이랑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다니까!”
또다시 이어지는 레이크헬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옥상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언제 왔는지 마루 누나와 리노가 나란히 서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고, 아저씨 역시 팔짱을 끼고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 팀장님은 언제나처럼 노트북과 핸드폰들과 씨름 중이었고.
그들에게 한차례 웃어준 후,
양옆과 앞뒤에 설치된 카메라.
그쪽에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잘 찍고 있죠?”
“그건 걱정 말고.”
저만치서 들려오는 고 팀장님의 음성을 들으며 매고 있던 기타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런 뒤, 디알로를 향해 고갯짓을 해 보였다.
“원, 투, 쓰리…….”
가볍게 센 숫자와 함께 디알로가 양손에 쥐고 있던 스틱이 탐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