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82화 (182/260)

# 182

#182. 증명(5)

광풍이 불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생각지도 못했을 정도로 엄청난.

밥 데일런이 합류한 것까진……. 그래, 놀랐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설마하니 마가렛 헤라시오네까지 자신의 연주곡들을 올리겠다고 할 줄은 정말 몰랐다.

포크로 분류되긴 하지만, 록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음유시인과 전 세계 피아니스트들 위에 군림하는 피아노 여제의 합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척 컸다.

대중은 열광했다.

공짜로 들을 수 있어서?

아니,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가죽을 얻기 위해 사냥을 하면 필연적으로 딸려오는 고기 같은 거랄까.

“도준! 벌써 500만 불을 넘어섰어!”

우리 돈으로 55억도 넘는 돈이다.

그게 기부금 명목으로 쌓였단 거다.

음식은커녕 깨끗한 물 한 병이 없어서 병에 걸리고, 우리가 보기엔 별것도 아닌 병에 걸려도 약이 없어서 죽고 마는 곳. 그곳의 사람들을 구할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얘기다.

닷새 만에.

그럼 이 돈이 어디서 나왔는가…하면, 간단하다.

난 아직까지는 팬들에게 신곡을 공짜로 풀기로 한 상태였고, 뒤이어 합류한 아티스트들은 이번에 데뷔한 티메이슨을 제외하곤 전부 구곡들 뿐이다.

그 얘긴 곧 그 음원에 대한 비용을 S 전자에서 지급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S 전자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까워서?

그럴 리가.

우리 정 회장님이 그 정도로 통이 작진 않으시지.

- 할아버지께서 무척 좋아하셔. 내가 초등학교 때 교내 노래대회에서 금상 타왔을 때보다 더 좋아하시는 거 같아.

희주의 말에 따르면 정 회장님께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실 태세라고 하신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현재로선, 김도준 앱은 곧 N10이다.

그 증거로 김도준 앱이 돌풍을 일으킨 만큼 N10의 판매량은 수직상승 중이었다.

55억?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N10 판매량의 그래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셈.

뿐만 아니라 돈으로는 환산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얻고 있었다.

기부에 인색하지 않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그야말로 나라는 돌 하나를 던져서 실익과 이미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격이다.

거기다가…….

- 보이죠? 저도 이제 김도준 애퍼에요.

할리우드의 명배우로 명성이 자자한 와트 퍼슨이 SNS에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 응응. 난 원래부터 김도준 팬이니까. 당연히 N10 구입했죠.

캘리 역시 보란 듯이 SNS에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고.

- 촬영하다가 쉴 때마다 듣는 중. 론 챈들러 때문에 샀는데, 김도준 곡도 들어보니 좋더라.

- 티메이슨 완전 좋음. 간만에 대형 신인 나온 듯.

- 어릴 때부터 듣던 밥 노래를 이렇게 편하게 들으니 좋더군요.

- 저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팬이니까요. 밥! 이제 슬슬 신곡 낼 때도 되지 않았나요?

- 레이크헬 음악 너무 좋아!

사회 각계각층에서 하나둘 인증사진과 함께 글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그게 점차 확대되어 하나의 신드롬처럼 변해가는 중이었다.

마치 몇 해 전의 아이스 버킷처럼.

그러더니 이 현상은 결국 대중들에게까지 퍼져 나가며, 엄청난 속도로 N10이 팔려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기부금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는 중이었고.

- 도준아, 어떡하니? 엄마가 감당할 수준이 아닌 거 같아.

“에이, 왜 그러세요. 엄마는 하실 수 있으세요. 평소에도 곧잘 말씀하셨잖아요. 돈만 있다면 사람들 돕고 싶다고. 참네. TV에서 애들 영양실조로 우는 것만 봐도 눈물 글썽이시면서. 이 기회에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보세요. 뭣하면 샤오린에게 연락해서 좀 도와달라고 하시던가요.”

- 그, 그래야 할 거 같다. 나 혼자선 진짜……. 후우! 이젠 잠드는 것도 두렵다. 잠깐 눈감았다가 일어나보면 10억 단위로 돈이 늘어나 있으니…….

“전 어머닐 믿어요. 그러니까……. 화이팅!”

전화를 끊으며 웃고 말았다.

잘하실 수 있을 거다.

핏줄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형제들 중에서 외삼촌들보다도 우리 외할아버질 많이 닮은 사람이 바로 우리 어머니셨으니까.

그 피가 나한테로 이어진 거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초기인데다가, 너무 갑작스럽게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겁도 나시긴 할 테지만, 아마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실 게 뻔하다.

동남아시아고, 아랍 쪽이고, 아프리카가 좁다고 하시며 하루가 멀다고 비행기를 타고 계실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되면 우리 아버지 불쌍해서 어쩌지?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어렵지 싶은데.

흠, 그렇게 되면 아버지께서 일을 때려치우시려나?

느낌이 딱 그런데?

그 무엇보다 어머닐 최우선으로 하시는 분인데, 가만 지켜보실 것 같지가 않다.

“알아서들 하시겠지.”

그건 그렇고.

재밌네.

즐겁기도 하고.

재밌다고 느낀 건, 피치사에서 부랴부랴 앱스토어를 통해 김도준 앱과 비슷한 컨셉의 어플을 내놓았다는 점 때문이고.

즐겁다는 건,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기부금이 늘어났다는 것 때문이다. 경쟁사라곤 하지만, S 전자 입장에서나 경쟁사지 내 입장에선 전혀 아니거든.

난 어디까지나 내가 목적하는 바만 이루면 끝이니까.

노래를 들려주고, 그 노래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

그거면 된다.

일단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냥 행복하고, 아무런 고민이 없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망할!

그러니까 이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음악은 소리로 만들어내는 예술이 아니다.

제이미 핸드릭스가 남겨놓은 문장 하나가 날 괴롭히는 중이었다.

그래, 나도 바보가 아니니까 뭔가 숨겨진 뜻이 있다는 것쯤은 파악했다.

음악이 소리로 이루어진다는 걸 모른다면 애당초 가수가 되지 말아야겠지.

나보다 반세기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인데, 제이미 핸드릭스가 그것도 몰랐을까 봐.

그런데도 이런 말을 했다는 건…….

감정?

하……. 그건 아닐 거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제이미 핸드릭스가 고민했을 리가 없지.

봐라.

이후의 페이지가 없잖아.

이게 뭘 뜻하겠어.

여기서 그의 고민이 막혔다는 얘기다.

아마도…….

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그릇은 여기서 꽉 찬 거겠지.

그리고 깨질듯한 상태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고.

어쩌면 그전에 노인과도 한두 차례 만나지 않았을까?

혹은 나처럼 소리를 느낀……. 그가 남긴 문장을 보자면 이건 거의 확실한 거 같고.

내가 본 그 세계도 보았겠지?

그다음은?

어떻게 했을까?

아, 미치겠다.

속이 간질간질한 게 돌아버릴 지경이다.

좀 더 속 시원히 알고 싶은데…….

그 때문에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제이미 핸드릭스에 대해 알기 위해 신문기사들도 찾아 읽어보고, 심지어는 도서관에 가서 그에 대한 책들도 찾아보았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는 중이었다.

“이러다 지난번처럼 또 맥없이 쓰러지는 거 아냐?”

한숨을 푹 내쉬며 제이미 핸드릭스의 수첩을 노려보았다.

***

“어? 일어나셨어요?”

밤새 고민하다가 잠시 눈을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보니 저녁 무렵이었다.

많이도 잤네.

혀를 차면서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문을 열고 나오자, 리노가 해맑게 웃으며 날 맞는다.

거참, 신기한 놈이다.

어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타고나길 적응력이 빠른 건지 어느새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와 있다.

마치 처음부터 함께였던 것처럼.

“식사부터 하실래요? 아니면 씻고 나서 식사하실래요?”

이런 점도 놀랍다.

이게 열 살짜리 애가 할 말이냐고.

아무리 떠올려봐도 내가 쟤만 할 땐 저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고집 세고, 안하무인에 나밖에 몰랐던 시절이었달까.

그에 비하면 쟨 천사다, 천사.

아니 집사인가?

요즘 하는 걸로 봐선 거의 우리 집 집사나 마찬가지.

“빵? 안 넘어갈 거 같은데…….”

봐라. 나조차도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

“헤헤헤. 그러실 줄 알고, 제가 콩나물 국 준비했죠.”

“응? 콩나물?”

그건 또 어떻게 알고?

그게 뉴욕에서 팔기는 하나?

묘하단 눈빛으로 쳐다보니, 리노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초가 알려주던데요? 한국 사람들은 콩나물 좋아한다고. 그래서 인터넷 검색해 보하니까, 생각보다 키우기 쉽더라고요.”

“그 말은……. 직접 재배?”

“예. 근데, 좀 질기더라고요. 아무래도 키우는 과정에서 뭔가 실수한 거 같아요.”

놀랍다.

이 아이는 재능 덩어리인가?

난 리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예?”

“귀찮지 않냐고.”

“에이, 귀찮긴요. 제가 조금만 수고하면 다들 행복해지는데 뭐가 귀찮아요. 그리고 저 생각보다 집안일 좋아해요.”

잠시 말없이 리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씻을게.”

“그럼, 전 나오실 때까지 밥상 차려놓을게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욕실로 향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되바라진 구석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이 착실하고, 그런데도 자기 의견을 당차게 피력할 줄도 안다.

뿐만 아니라 내게 잔돈을 돌려주기 위해 배까지 타고 찾아왔을 만큼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도 질 줄 알지.

게다가 영리하면서도 재능도 출중하다.

흠, 노래나 한번 가르쳐볼까?

악기도 그렇게 잘 다루는데, 설마 음치박치는 아니겠지.

성량만 따라주면 대성하지 않을까?

그러다 싹수가 보인다 싶으면 천 년 노래방에 던져……. 아, 그러고 보니 그때 그걸 안 물어봤네. 어떻게 하면 노래방에 들어갈 수 있는지.

쯧,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리노가 차려놓은 밥상을 보곤 깜짝 놀랐다.

와, 누가 보면 우렁각시가 다녀간 줄 알겠네.

감탄하며 밥을 먹은 뒤, 리노에게 고맙다고 말하곤 또다시 방에 처박히려는데, 뒤에서 콜린이 다가와 묻는다.

“기분 어때?”

“응? 뭐가?”

내가 의아하단 눈빛으로 콜린을 바라보자, 그가 이상한 놈을 다 보겠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때였다.

“도준은 아직 못 봤을 걸요?”

제롬이 툭 끼어들었다.

못 봐? 뭘?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돌리자, 제롬이 풉하고 웃더니 휘파람을 불고 사라졌다.

큭, 저 자식이!

사람 잔뜩 궁금하게 해놓고서 그냥 가버리네.

난 다시금 콜린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뭔데?”

“글쎄. 뭘까?”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이곤 등을 돌리는 콜린.

울컥해서 인상을 팍 구기자, 저만치서 레이크헬이 낄낄거린다.

아놔, 이자식들이! 이젠 아주 날 장난감처럼…….

그때, 리노가 다가왔다.

그러곤 태블릿 PC를 내밀며 말했다.

“축하드려요.”

축하?

뭘?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막 받아들려던 때였다.

부르르르르.

핸드폰이 진동한다.

응? 마루 누나네?

근데, 기시감이 드는 건 왜지?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다.

받자마자, 곧바로 날아오는 음성. 어딘지 모르게 열기가 깃들어 있었다.

- 이제 일어난 거야?

“예. 지금 막 일어나서 씻고 밥 먹었는데요?”

- 그럼 아직 못 봤겠네!

아, 진짜! 다들 뭔데?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세상이 뒤집어지기라도 한 거야?

“뭔데 그래요?”

- 도준아.

큭! 저렇게 부르면 뭔가 사달이 일어나던데…….

난 바짝 긴장하면 대답했다.

“왜요.”

- 너 줄 세웠어.

“줄……세워요?”

되묻고 있을 때, 리노가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 태블릿 화면을 들어 보였다.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덕분에 마루 누나에게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화면 속에는 예상도 못 한 결과가 떠올라 있었으니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루 누나가 확실하게 말해준다.

눈앞의 일들이 환상이 아니란 걸 알려주려는 듯이.

- 빌보드 차트, 줄 세웠다고!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목요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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