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181. 증명(4)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N10이 내 거도 아니고.
S 전자에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그런 일이 있으면 콜린에게 시킬 일이 아니라 브라이언이 직접……. 흠, 알만하군.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이미 지금쯤이면 S 전자와 아저씨하곤 얘기가 오가고 있겠군. 어쩌면 끝났을지도 모르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의향을 물어본 건 비즈니스 상의 합의가 끝나더라도 내가 싫다고 하면 전부 도루묵이 된다는 걸 브라이언이 알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단순히 회사에 소속된 가수가 아닐뿐더러 S 전자와도 계약관계만으로 묶인 사이가 아니란 판단에서겠지.
이야, 역시 브라이언이네.
미국인 특유의 합리적인 사고로는 여기까지 생각하기 어려웠을 텐데…….
뭐, 그렇다 치고.
그래서 묻고 싶은 게 뭐야?
김도준 앱에 자기네 회사 소속 아티스트 즉 싱어들의 신곡을 싣겠다?
생각해보니, 좀 얄밉긴 하다.
이번 일이 이슈가 되고, 대중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파장을 일으키는 것 같으니까 한발 걸치겠다는 얘기 아닌가.
그럼에도, 마냥 얄밉게만 느껴지지 않게 일 처리를 하는 게 또 우리 브라이언 특기지.
봐봐. 혹여 내 마음 상할까 봐 콜린까지 동원해 묻는 거.
그래도 레이크헬이면 어딜 가든 왕처럼 대접받는 아티스트인데. 그런 레이크헬의 리더를 메신저 삼아 내 의중을 묻고 있다.
게다가 김도준 앱에서 신곡을 먼저 발표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음원 수입의 상당 부분, 어쩌면 절반 이상을 포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란 걸 알면서도 이런다는 건 한마디로 그만큼 배포가 크거나 판단력이 빠르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뭐, 날 그만큼 믿는다는 말이기도 할 테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내게 직접 전화를 걸지 못하고 콜린에게 부탁할 때 브라이언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떠올리니까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아마 지금쯤 전전긍긍하고 있겠지.
혹여라도 내가 거절할까 봐.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물었다.
“공짜로?”
대뜸 날리는 물음에 콜린이 순간적으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어? 그, 그야……. 그러니까!”
콜린도 알고 있을 터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그러니 내가 던진 질문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테고.
하지만…….
“풉! 농담이야, 농담.”
이 문제만큼은 녀석이 끼어들 틈이 없다.
콜린은 결정권이 없으니까.
난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전화하지. 지금 브라이언 대기 중이지?”
“그걸 어떻…….”
“빤하지 뭐.”
콜린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 보일 때, 난 이미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예, 브라이언. 저예요.”
- 아! 도준.
내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자신이 계산한 것보다 빨리 연락이 와서 놀란 거겠지. 그것도 콜린이 아닌 내가 직접 전화를 걸어오리라곤 생각도 못했을 거고.
“뭘 또 그래요? 잔뜩 얼어선. 우리 사이에.”
- 그, 그치? 우리 사이에….
“그럼요. 우린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관계잖아요?”
- 그……렇지.
웃음을 꾹 참으며 물었다
“덕분에 냉정하게 말할 수 있으니, 편하네요. 그쵸?”
- ……말하게.
“뭘 말해요. 대답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
- 그럼?
살짝 떠있는 목소리.
그렇단 건 회사랑 S 전자하곤 얘기 다 끝났다는 거네.
내가 오케이한다는 전제하에 일을 진행하기로.
그럼 나도 매뉴얼대로 해야지.
브라이언은 모를 테지만, 이미 이런 상황은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
당연하잖아?
김도준 앱이 세상에 나오면 어떤 식으로든 반향이 있을 거고, 그로 인해 음원 시장의 패러다임이 조금이나마 바뀔 건 뻔한 일인데 이 정도도 예상 못 했을까 봐?
난 가차없이 말했다.
“알죠? 우리 앱에 신곡 올리면 땡전 한 푼 못 가져가는 거?”
- 알지.
“그럼 됐네요.”
- 오케이하는 거야?
“예. 오케이에요.”
- 흐흐흐. 고맙…….
“에이, 그런 말 하기엔 이르죠.”
픽하고 웃고 말았다.
눈이 동그래져서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서.
나는 티 내지 않으며 얘기했다.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까.
친한 사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일은 분명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원래 사람 관계가 틀어지는 건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마음이 상하며 벌어지기 마련. 그러니까, 처음부터 확실히 하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낫다.
“그쪽 아티스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이번에 발표했던 ‘더 시트’의 OST도 싣는 게 어때요? 아, 지난번에 미국 내에서 발표한 제 곡들도 싣고요. 저희도 이제까지 낸 제 노래들 전부 실을 예정이거든요. 뭣하면 레이크헬 것도 전부 싣던가.”
- 그래도 되겠나?
평소 협상에 관해서라면 전문가적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곤 하는 우리 브라이언, 오늘따라 구멍 많이 보이네.
내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어온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 그만큼 매력적이란 거겠지.
한편으로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예측하고 있다는 얘기일 테고.
“안될 건 없죠. 단…….”
- ……?
“그러기 위해선 앱을 업데이트 해야 하는 거 아시죠?”
- 아, 생각해보니……. 그렇겠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가?
살짝 실망하는 목소리다.
그럴 수밖에.
물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이왕이면 핫하게 달아올랐을 때, 자기네 신곡을 내고 싶을 텐데 내가 슬그머니 한발 물러나는 거 같으니 저러는 거겠지.
참다못한 웃음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웃을 때까지 브라이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장난이에요, 장난. 브라이언도 참. 설마 제가 진짜 브라이언을 남처럼 생각했겠어요? 브라이언이 날 남처럼 생각했으면 또 모를까.”
- 아냐! 그건 절대 아냐! 넌 이미 우리 회사에서도 중요한 사람이고, 개인적으로도 난 널 진심으로…….
“스탑! 거기까지만!”
닭살 돋는 말은 참지 못하는 나로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누구 곡이 되었든 얼마든지 실어도 돼요. 기부해주겠다는데, 우리야 좋죠.”
- 아깐 업데이트…….
“준비해뒀죠. 이미. 아, 근데 이건 아셔야 해요. 아무나 올릴 순 없어요. 아티스트에 대한 심사는 우리 쪽에서. 오케이?”
당연한 얘기다.
이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이렇게 대화를 끈 거고.
김도준 앱에 올라가는 노래들의 질을 위해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런 체계여야만 여전히 우리 쪽이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 테니까.
- 너……. 하아!
한숨을 내쉰 브라이언이 진지한 음성으로 날 부른다.
- 도준.
“예?”
- 아무래도 넌 싱어 집어치우고, 그냥 사업하는 게 낫지 싶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러면 넌 10년 안에 지금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거다.
쯧, 이젠 장난도 못 치겠네.
“저 그렇게까지 야망 없거든요. 앱은 내일 바로 업데이트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아, 항목 하나 더 늘려서 기존 곡도 올릴 수 있게 할 테니, 이미 발표된 곡들은 그쪽으로 올리면 될 거에요.”
- 오케이! 그럼 그렇게 알고 일 진행하지.
전화를 끊고 나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을 때였다.
“와! 장난 아님.”
“브라이언을 막 가지고 논다!”
“우리도 저런 걸 배워야 하는데…….”
“그러니까요. 도준은 천재가 분명해요!”
“진짜 괜찮겠냐?”
어느새 다가왔는지 레이크헬 멤버들이 한마디씩 하는 동안, 베릴이 진지한 얼굴로 묻고 있었다.
다른 말들은 다 흘려보내고, 베릴의 말에만 대답해 주었다.
“괜찮지 않을 건 또 뭐 있어? 다 잘되자고 벌이는 일인데. 안 그래도 그동안 돈에 미쳐서 온갖 횡포는 다 부리던 음원 사이트들 행태가 보기 싫었는데 잘됐지, 뭐.”
횡포라고 하니까, 언뜻 떠오르는 게…….
이러면 다른 음반 쪽 회사들이 가만있으려나?
뭐, 상관없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대차게 밀어붙일 수밖에.
이쪽으로선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셈이니까.
거기에 레이크헬을 비롯해 브라이언이 힘을 보태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지금쯤 아마도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을 거다.
S 전자에 먼저 접촉을 시도하고, 핑계 대듯 우리 회사 쪽으로 돌리면 아저씨가 받고, 그걸 내게 토스하는 형식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럴 시간조차 아깝다는 주의다.
“잠깐만.”
베릴과 레이크헬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아저씨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간단명료하게 내 의견을 말했다.
“아저씨, 아니다 싶은 것만 빼곤 그냥 다 받아요. 일일이 저한테 연락하지 않아도 되니까.”
- 그래도 되겠냐? 명색이 네 이름을 건 앱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
뭐긴 뭐겠어? 브랜드지.
하지만, 그게 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뭣하면 앱 이름을 바꾸던가요. 아, 이제 와서 그건 좀 힘 드려나? 여하튼, 전 신경 쓰지 않으니까 마음껏 진행하세요. 사업적인 부분은 저보다 아저씨가 더 잘 아시잖아요. 전 그냥 음악에만 집중할래요.”
- 자식. 알겠다. 무슨 말인지.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하마.
끊긴 핸드폰을 보며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래, 이 그림이지.
내가 원하던 그림이.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 여사님, 곧 비명을 지르시겠네.
행복한 비명을.
***
딱 내 예상대로였다.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내가 김도준 앱을 통해서 신곡을 내놓은 것만으로도 일각에선 혁신이라며 떠들어대는 마당에 단 이틀 만에 앱이 업데이트 되면서 다른 싱어들의 곡까지 올라오기 시작하자, 음원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이 시대에 유일하게 남은 록밴드라는 평을 듣는 레이크헬.
요즘 브라이언이 한창 밀고 있는 힙합 싱어 론 챈들러.
섹시한 이미지와 도발적인 언행으로 유명세를 치르곤 하는 네이키마이즈.
거기에 클럽을 전전하며 탄탄하게 쌓아올린 실력으로 한창 물이 올라 있는 신인 남성 듀오 티메이슨까지.
나름 핫하다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합류했으니까.
얘기를 마친지 겨우 하루 만에, 마치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이, 아니 원래 그럴 예정이었던 것처럼 신곡뿐만 아니라 예전에 냈던 음원까지 올리고 있으니, 대중들이 환호성을 터뜨리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아무튼, 공짜로 곡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런 식이면 이제 음원 사이트가 망하는 거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고.
어떤 의미로 보면 이건 그냥 자선 콘서트 같은 거니까.
신곡을 발표한다는 것 때문에 파장은 적지 않겠지만, 그래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선 음원 사이트를 외면할 수도 없는 게 음반사들이랑 가수들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와 확연히 구분되는 거지.
나?
지난번에 아저씨한테 한 얘기는 진심이었다.
돈은 벌만큼 벌었다.
이젠 어떤 식으로든 베풀 때도 되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S그룹의 정 회장님께 큰절이라도 올려야겠네.
저쪽에서도 자기네들 이익을 위해 움직인 거겠지만, 결과적으론 내게 기회를 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게다가…….
요즘처럼 신곡의 수명이 짧은 때에 사실상 아티스트들의 수입 중 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어차피 이미지로 먹고 들어가, 굿즈와 각종 행사 그리고 CF 등으로 음원 수입과는 비교도 안 되는 돈들을 벌고 있는데 무슨.
그렇기 때문에 유튜븐 같은 사이트에 팬들이 신곡을 올리는 것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거고, 그걸 넘어서서 아예 회사에서 공식 뮤직비디오를 풀어버리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아직까지 외국에선 뮤직비디오는 여전히 돈을 내고 시청하는 하나의 콘텐츠로 인식하고 있는 거 같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정도쯤 되면 음원 정도는 공짜로 좀 들려줘도 되잖아?
구곡이야 이미 팔릴 만큼 팔렸으니까, 이 기회에 사회에 기여도 좀 하고, 신곡의 경우엔 겨우 일주일 뒤면 앨범 형태로 음원 사이트에 올리면 되는데 뭐가 문제겠냐고.
세상에 핸드폰 사용자가 N10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자, 이 문제는 이렇게 처리한다고 치고…….
과연 브라이언의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로 시장의 반응은 심상치 않긴 하다.
[한국에서 불어온 바람이 미국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
[음반시장의 지각변동이 시작되나?]
[음원 유통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김도준 앱이 갖는 의미……. 자신의 이익을 취하면서도 공공의 이익까지 챙기는 영리함. 스마트한 시대에 스마트한 결정이 아닐지.]
김도준 앱이 출시 이틀 만에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좋은 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악의적인 글들도 많이 올라왔고, 곱지 않은 눈초리로 보는 이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대체로 대중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은 반기는 분위기였다.
이유는 단 하나.
김도준 앱이 지향하는 목표점이 바로 나눔. 즉 기부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밥? 어쩐 일이세요?”
갑자기 전화가 걸려와 받아보니, 밥 데일런이었다.
- 그런 일이 있으면 말을 하지 그랬나?
난데없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설마?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 여러 말 할 것 없고, 내 곡들도 전부 올릴 수 있게 해주게.
헐! 지금 나 무슨 얘길 들은 거지?
그러니까, 밥 데일런이 김도준 앱에 자신의 곡들을 풀겠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