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180. 증명(3)
캘리는 원래 사용하던 핸드폰이 있었다.
피치사의 에이폰X.
에이폰 초창기 모델부터 쭉 써오던 그녀였다.
그러길 벌써 10년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큰맘 먹고 핸드폰을 바꿨다.
이른바 아스트로폰으로 갈아탄 것이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도준 때문이었다.
그녀만 그런 건 아니었다.
팬심이 강한 팬들 중 그런 사람은 꽤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사실 이 때문에 말들도 많았다.
도준의 신곡을 핸드폰에 끼워팔기 식으로 넣었다는 시각이 많았고, 그로 인해 불만이 팽배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든 말든 캘리로서는 그저 도준의 신곡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따름이었다.
그녀의 매니저이기도 한 친구, 에일리가 아침부터 나가서 점심이 다 지나서야 간신히 N10을 사왔다.
“아슬아슬했어.”
“그렇게 많아?”
“말도 마. 줄이 얼마나 길었는데.”
“킴의 팬이 많긴 많나 보네.”
“그럴 만도 하잖아? 이젠 미국에서도 그의 팬이 많으니까. 아무튼, 우리야 살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만.”
에일리의 말대로였다.
인터넷에 보면 N10을 구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팬들도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동시 발매를 하다 보니, N10의 초기 물량이 한참 모자랐던 까닭이다.
어쨌든 구했으니 다행.
캘리는 얼른 포장을 풀고 핸드폰을 꺼냈다.
꽤 고급스러운 외형을 지닌 N10이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런 점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거 어떻게 켜는 거지?”
기계치에 가까운 그녀가 새로운 형태의 핸드폰을 다루는 건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만능이나 다름없는 친구가 있었다.
에일리가 한숨을 폭 내쉬며 그녀에게서 N10을 빼앗듯 가져가 파워 버튼을 눌러 전원을 켜주었다.
잠시 후 아스트로폰 특유의 음이 들리며 화면이 켜졌다.
그리고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앱들. 그중에서 단연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김도준’ 앱이었다.
흰색의 선으로 이루어진 아이콘. 하프 무늬의 아이콘을 누르자 앱이 구동됐다.
초기화면에 떠오른 문구, 해피 위드 김도준 즉 김도준과 행복을…쯤 되는 글을 보면서 캘리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얼마 가지 못했다.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너무 엄청나서.
옆에서 그녀와 함께 이번 기회에 구형폰을 버리고 새로 폰을 바꾼 에일리 역시 마찬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급기야 에일리가 한마디 했다.
“와우! 장난 아니네!”
에일리의 말대로였다.
앱의 구성은 간단하다면 간단했다.
문제는 그 내용에 있었다.
메뉴는 탭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왼쪽에서부터 차례대로 다운로드, 플레이리스트, 스케줄, 내역.
그게 다였다.
하지만, 하나하나 눌러본 결과 그 내용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형태의 앱들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신곡…….
다운로드를 눌러 들어가자, 곧바로 떠오르는 안내 문구.
- N10 구입자에게만 주어지는 특전.
10곡을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습니다. 이후부터는 한 곡당 비용이 청구됩니다.
해당 곡에 대해 지불된 비용은 전액 기부금으로 사용됩니다.
곡 구입자의 기부 내역과 재단 ONEZ의 활동 내용은 내역란에서 언제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앨범 출시 전까지 해당 곡들은 오로지 N10에서만 다운로드 및 청취할 수 있습니다.
단 넉 줄이었지만, 도준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 기부?”
“설마 이거……. 모든 수익을 기부하겠다는 건가?”
“에이 그럴 리…….”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하며 내역 버튼을 눌러본 그녀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거기에는 그새 수많은 이들이 다운로드를 받았는지, 내려받은 곡들에 대한 내역이 끝도 없이 떠올라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 얘긴 곧 무료로 주어진 10곡에 대해서도 기부가 진행 중이란 말이었다.
그 증거로 캘리가 조바심을 내다 못해 신곡 10곡 중 한 곡을 다운로드 하자…….
본 음원에 대한 권리는 김도준에게 있으며, 이 곡에 대한 비용은 S 전자에서 지불합니다. 또한 그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전액, 재단 ONEZ에 기부됩니다.
“뭐야, 이거? 킴이 돈 버는 걸 포기한 거야?”
“그, 그러게?”
“말도 안 돼!”
더욱 놀라운 점은 김도준 앱을 통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게 10곡이 다가 아니란 점이었다.
처음에만 10곡을 한꺼번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을 뿐, 스케줄을 확인해보니 그 뒤에도 일주일에 새로운 곡들을 한 곡에서 네 곡까지 순차적으로 다운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매주 다운 받을 수 있는 곡들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걸로 봐선 발표할 신곡들도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대충 봐도 앞으로 3개월간은 매주 새로운 곡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편파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7곡 이상이 발표되면 일주일 뒤 목요일 자정, 하나의 앨범으로 구성되어 음원 사이트 및 오프라인에서 발표될 예정입니다.
한마디로 N10의 소유자들에게 주어진 특전은 두 가지인 셈이었다.
N10를 갖지 않은 이들보다 일주일 이상 빨리 김도준의 신곡을 받아 들어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혹은 핸드폰 번호로 자동 기부된다는 점이었다.
더구나 그 내역이 투명하게 처리되다 보니 속이려야 속일 수도 없는 시스템이었다.
“하아! 이건 정말이지……. 진짜 킴다운 발상이네.”
에일리가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캘리가 흐뭇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킴이잖아.”
“그래, 킴이 킴다운 짓을 한 거지.”
그렇게 놀람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그녀들. 그녀들은 더 이상 놀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데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운로드 하자마자 플레이리스트로 옮겨간 신곡을 터치해 플레이시키는 순간이었다.
N10를 구입할 때,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었다며 함께 사도록 권유받았던 헤드폰. 그 헤드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찰나 그녀들은 이미 세상과 분리되어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도준이 신곡을 녹음할 때 취한 새로운 방식과 맞물려 허먼사에서 새로 발매한 헤드폰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저 도준의 신곡을 듣고자, 혹은 그저 필요에 의해 단순히 핸드폰을 바꾸었던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의 판매 방식과 기부 형태 그리고 신기술로 일궈낸 음악 세계에 도취되기 시작했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피치사 신사옥. 우주선을 닮은 이 캠퍼스의 한 회의실에선 지금 피치사의 임원들이 모여 회의 중이었다.
한데, 하나같이 얼굴이 어두웠다.
특히 CEO인 탐스 쿡의 낯빛은 어둡다 못 해서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이번엔 지난번처럼 별다른 신기술도 적용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소? 한데, 이게 뭐요? 김도준? 하아! 이건 신기술보다 더하지 않나?”
그의 지적에도 누구 하나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겨우 하루다.
경쟁사인 S 전자의 N10가 출시된 지.
하지만, 벌써부터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시장이 들썩이고 있었고, 그 증거로 피치사의 에이폰을 버리고 N10으로 갈아타는 이들이 속속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 증거로 N10의 단일 판매 수치는 이미 에이폰 X를 20% 넘긴 상태.
역대 에이폰 론칭 판매 최고치를 경신했던 에이폰 X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기존 에이폰의 사용자를 전부 빼앗길 판이었다.
다중 통화 기술과 그 밖의 획기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출시되었던 N9에 비해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기술을 탑재하지 않은 N10인 것을 감안하면, 그 원인이 김도준에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미치겠군, 진짜!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사태가 해결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방도를 찾으란 말이오! 방도를!”
“저, 대표님. 지금이라도 우리 역시 김도준 앱과 같은 형태의 앱을 출시하고…….”
콰앙!
탐스 쿡은 회의 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치곤 고함쳤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내가 당신 말을 듣고 N10보다 에이폰 X를 넉 달이나 먼저 출시했소! 그때 당신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나? 에이튠즈를 강화하면 음악 시장을 석권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냐 말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해? 그럼, 에이튠즈는? 그 막대한 비용을 들여 새로 구축한 시장은 버리자는 건가? 응?”
회의장 안에 있던 누구 하나 말을 하지 못했다.
탐스 쿡의 얘기 중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말이 백번 옳다고 한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지금 N10이 내놓은 김도준 앱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단 하루 만에 세상이 들썩일 정도로.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김도준 앱’은 철저히 무료라는 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 10곡만 무료고 이후부턴 유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전혀 유료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게 더욱더 무서운 점이었다.
기부라니…….
설마하니 김도준도 그렇고 S 전자도 그렇고 음원에 대한 수익 자체를 아예 포기해버릴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그럼에도, 이곳에 모인 이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기부는 어디까지나 ‘김도준 앱’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것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고, 그 이후에 일주일에서 이주일의 시간차를 두고 음원 사이트에 올라가는 앨범은 기부 대상이 아니란 게 기막힐 뿐이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 점에 대해선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고 있었다.
그저 김도준 앱을 통해 곡을 다운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서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N10을 사용하고, 또 그걸로 김도준의 신곡을 듣는다는 건 곧 기부를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 때문인지, 할리우드의 스타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자신들 또한 N10으로 핸드폰을 바꾸었다며 인증사진을 SNS에서 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이지 단순한 이슈를 넘어서 신드롬이 될 판이었다.
당연히 그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에이폰이 떠안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진짜 미치고 환장할 따름이었다.
“경고하겠소! 일주일! 그 안에 방도를 찾지 못하면 전부 옷 벗을 각오들 하시오! 김도준 앱을 대체하던, 아니면 그걸 넘어설 획기적인 방안을 구상하던! 무엇이든 좋으니, 지금의 이 판도를 뒤집을 방도를 찾아오란 말이오!”
***
N10이 출시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세상이 뒤집어졌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것은 인터넷이었다.
- 와! 놀라서 어떤 말도 할 수 없네요! 진짜 김도준……. 통이 커도 너무 큰 거 아님?
- 그러게요. 기부라니, 생각도 못했어요.
- 진짜 기부하면 뭐하냐? 투명하게 집행되지 않으면 말짱 꽝인 거 아닌가?
- 흐흐흐. 윗분, 김도준 앱 제대로 안 보신 모양. 거기 보면 내역에 다 나옴. 현재 기부액 100만 불 넘어섰고요. 그중 50만 불은 아프리카 쪽으로, 나머지 50만 불은 시리아 난민촌으로 집행됨. 아마 지금쯤 구호물품들 선적하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 내역란에 올라온 사진이랑, 서류가 그거였어요?
- 쩐다! 완전 실시간이네!
- 와! 행동력 하난 진짜 장난 아니네요!
- 아무래도 김도준이 제대로 마음먹은 듯.
- 몰라, 몰라. 난 그냥 좋을 뿐이야. 매주 김도준의 신곡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아서 미칠 것 같아.
- 그러니까요. 주니 오빠, 이러려고 그렇게 신곡 하나 내지 않고 제 속을 애태웠던 건가요?
- 흐흐흐. 다들 N10 얘기들만 하는데, 정작 김도준 신곡에 대해선 얘기하질 않네? 일단 한번 들어봐. 그럼 숨넘어갈 거다. 난 첫 곡 다운받아서 듣는데……. 씨발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 천박하긴! 씨발이 뭐냐? 씨발이. 난 플레이 버튼을 터치하는 순간, 똬! 좆도란 말이 절로 나오던데.
- ㅋㅋㅋ 장난 아니긴 하더라. 김도준 진짜 미친 거 같아. 어떻게 그런 노래를 부를 수가 있지? 근데, 그 곡들 전부 김도준이 작곡한 거라며? 작사가는 조…뭐시기가 했다고 하던데.
- 반쯤은 조마루가 했구요. 나머지 반은 김도준이 직접 했어요.
- 아! 네 번째 곡이랑 일곱 번째 곡은 레이크헬이 피처링했다고 돼 있던데. 알아요?
- 원래 걔들 친하잖아.
- 아무튼, 대박이에요!
- 이러다가 김도준, 빌보드 차트에서 줄세우기 하는 거 아냐?
- 글쎄요. 빌보드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라서 함부로 속단하긴 어려울 듯.
-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지금도 김도준의 노래가 1위하고 있잖아요?
- 그건, 혼자서 부른 게……. 음, 거의 혼자 불렀다고 해도 무방하겠구나.
그렇게 인터넷을 비롯해 SNS에서 ‘김도준 앱’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을 때, 정작 당사자인 도준은…….
“미치겠네!”
머리를 쥐어뜯으며 끙끙대고 있었다.
이유?
다름이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놓은 헤지고 낡은 수첩. 그 안에 적힌 한 줄의 문장 때문이었다.
음악은 소리로 만들어내는 예술이 아니다.
이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지.
도준은 미치고 환장할 것만 같았다.
써놓으려면 좀 자세히 써놓던가.
앞뒤 없이 달랑 이 문장 하나만 쓰여 있었다.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에.
그 뒤론 몇 번을 봐도 빈 페이지였다.
그렇게 도준이 끙끙거리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도준이 대답도 하기 전에 콜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내가 말했지! 노크하고 들어오라…….”
“도준!”
“……왜?”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여는 콜린은 보며 도준이 말끝을 흐리며 되물었다.
뭔가 심각한 얘기가 나올 것만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콜린이 엄청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브라이언한테 연락 왔는데…….”
“그런데……?”
“그…김도준 앱 말이야.”
“그게 왜?”
“우리 회사 쪽 아티스트들도 거기서 신곡 발표 좀 하면 안 되겠느냐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