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78화 (178/260)

# 178

#178. 증명(1)

의견이 분분했다.

공익 광고라는 의견에서부터 상품 광고라는 의견까지.

누가 봐도 캠페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캐치프레이즈가 문제였다.

다 함께 행복해질 권리.

처음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 이거 확실합니다. N10 광고라니까요.

- 미쳤네. 이게 어딜 봐서 N10 광곱니까?

- 딱 보면 모르나? 실루엣이 핸드폰 모양이잖아!

- 헐! 직사각형이면 무조건 핸드폰이란 사고, 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 설사 N10이라고 해도, 그럼 저 문구는 뭐죠? 행복해질 권리……. 핸드폰 광고라고 하기엔 너무 과장되지 않았나요?

- 문명의 이기?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솔직히 우린 핸드폰 없이는 이제 하루도 살지 못하잖아요.

눈치들도 빠르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벌써 N10이라는 이름까지 튀어나왔다.

그것도 딱히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당연히 그 때문에 주위에서 공격을 받곤 있었지만, 굽히지 않고 주장하는 사람들. 거참, 진짜 별거 아닌 거로 싸우고들 있네.

아마도 S 전자 측에서 마케터들을 투입한 거겠지.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나는 S 전자의 광고전략에 혀를 내두르면서 이동 중이었다.

목적지는 G 호텔.

이스트 사이드의 한복판에 위치해 뉴욕의 정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호텔의 방값은 평균 1,800달러. 우리 돈으로 따지면 하룻밤 묵는데 거의 200만 원에 육박한다.

밥 데일런은 최상층의 스위트룸을 빌렸을 게 뻔하니, 아마 그 열 배쯤은 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차가 주차장에 진입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를 통해 움직인 나는 마루 누나와 함께 객실 문을 두드렸다.

아, 물론 내가 두드린 건 아니다.

호텔 측에서 먼저 객실 쪽에 연락한 후 우릴 안내할 겸 함께 올라온 참이었기 때문이다.

“오! 킴! 안 그래도 올 시간이 됐는데, 왜 안 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네!”

문이 열리고 부스스한 갈색 머리칼과 함께 한눈에도 자유로운 영혼이 팍팍 느껴지는 아티스트가 우릴 맞이했다.

“여기 이 아름다운 레이디는 누구 신지?”

“제 누나예요. 작사가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우리 회사 미국 지부장을 맞고 있어요.”

“과연!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능력까지 뛰어난 인재셨구먼.”

“헤서런 조에요.”

입이 헤벌쭉해진 마루 누나가 미국식 이름을 말하곤 밥과 가볍게 포옹했다.

그 후, 누나는 밥의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차라도 한잔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서 둘이서만 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그렇게 객실 안에 둘만 남게 되었을 때, 밥이 깍지를 끼며 1인용 소파에 등을 묻었다.

그러곤 시가를 꺼내며 물어왔다.

“한대 피겠나?”

당연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미성년자라서요.”

“흠, 그래?”

한 손으로 입을 닦듯이 쓸어내린 밥은 이내 시가 끝을 잘라 입에 물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후우…….”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인상을 찡그렸겠지만, 허공으로 뿜어지는 담배 연기가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역시 사람마다 느껴지는 인상은 다른가 보다.

“그래서, 날 꼭 만나고 싶다고 한 이유가 뭔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밥.

내가 대답했다.

예의를 지키려면,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서로 간에 친분을 쌓기 위해선 좀 더 친밀한 언어로 속삭일 수도 있었겠지만, 반나절밖에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한 걸 기억하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말이 반나절이지, 언제라도 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내게 다음에 만나자고 할 수 있었으니까.

애당초 말을 빙빙 돌릴 생각은 추어도 없었다.

“기타 때문에 왔어요.”

“기타?”

밥의 눈동자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이 되었던 그는 이내 묘한 눈빛으로 변했다.

“자네……. 혹시, 짐을 아나?”

“짐이요?”

“제이미 말일세.”

“아! 제이미 핸드릭스 말씀이시군요.”

밥 데일런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아티스트. 아직도 기타 연주에 관해선 최고라는 찬사를 듣곤 하는 기타 연주가이기도 하다.

항간에는 밥 데일런이 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곤 충격을 받아 통기타를 버렸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두 분이 친하셨나 보네요.”

“친하다라……. 뭐, 영혼의 교감을 나눌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왕왕 연락하고 지내긴 했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밥의 모습에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하지도 않다면서 왜 얘기를 꺼낸 거지?

하지만, 곧바로 터진 밥의 웃음소리에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의아해져서 쳐다보고 있으니, 밥이 얼굴에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방금 표정 좋았네. 난 말이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만 믿는다네. 참네. 얼마나 산다고들 그렇게 속내를 감추고들 사는지.”

냉소적인 표정이 되어 사람들을 비웃는 우리의 위대한 아티스트는 이내 말했다.

“아까 한 말은 장난이고, 실은 짐과 난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를 알아볼 정도로 영혼이 통했던 친구지.”

아까부터 자꾸만 영혼, 영혼 하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나와 레이크헬과는 좀 다른 관계인 건가?

그건 그렇다 치고.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 밥이 아련한 눈빛이 되더니 말했다.

“아마도 내가 그날, 그러니까 자네와 영상 통화를 한 날 꺼내 들었던 기타 때문에 그러는 모양인데……. 그건 짐이 내게 주었던 기타네. 정확히는 그가 죽은 후에 유품으로 건네받은 거지.”

“아!”

멍해졌다.

이거 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거 같은데?

낭패한 얼굴을 하고 있자, 밥이 픽하고 웃는다.

그러더니 시가를 물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방안 한쪽으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자신의 짐 속에서 뭔가를 들고 돌아왔다.

탁!

탁자 위에 올려놓은 건, 뜻밖의 물건이었다.

헤지고 낡은 수첩 한 권.

손바닥만 한 크기의 수첩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얘기했다.

“기타랑 함께 받은 물건이지.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죽을 때 이걸 꼭 내게 전하라고 했다더군.”

그는 추억에라도 잠기는 듯 애틋한 눈이 되어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잠시 상념에 빠지는 듯하더니 얘기했다.

“진짜 한 천 번은 본 것 같군. 하지만, 당최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일기장 같기도 하고, 음악에 대한 단편적인 사고를 적어놓은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뭔가 신비주의적인 단어들도 보이고. 아무튼, 나로선 도저히 알 수 없었네. 짐이 이걸 내게 전한 이유를. 그래서 그런가 항상 가지고 다니고 있긴 하지만…….”

그는 또 한차례 연기를 내뿜고는 재떨이에 시가를 비벼끄면서 한 손으로 수첩을 밀었다.

내 쪽으로.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를 바라보자, 밥이 말했다.

“자네가 가져가게.”

“예?”

놀라서 되묻고 말았다.

영혼의 교감을 나눌 정도로 친밀한 친우에게서 받은 유품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걸 내게 준다고?

눈을 깜빡거리고 있자, 밥이 고갯짓으로 수첩을 가리켰다.

보라는 건가?

나는 주춤거리며 수첩을 집어들었다.

그러곤 첫 장을 펼치는 순간이었다.

정수리에 벼락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첫 장에 투박한 느낌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

만년필로 그린 건지, 잉크가 살짝 번져 있는 그림은 틀림없는 하프 무늬였다.

그것도 내가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는 특유의 모양.

그건…….

노래방에서 보았던 그 무늬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코인들에 새겨진 것과도 완벽하게 일치했다.

뿐만 아니라 하프 무늬 아래엔 제이미 핸드릭스가 쓴 걸로 보이는 영문이 멋들어지게 휘갈겨 쓰여 있었다.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건 2,000년의 세월만으로도 부족하다.

덜덜덜덜.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려왔다.

2,000년.

그게 뭘 뜻하는지는 아마 나만이 알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제이미는 내가 겪었던, 아니 그때는 노래방이 없었으니까 그와 비슷한 일들을 겪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다는 건…….

후우! 이 수첩 안에 대체 무슨 내용이 쓰여 있을까?

궁금함과 기대감, 그리고 까닭 모를 두려움이 뒤섞인 채 떨리는 손길로 다음 장을 넘기려는 순간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아마도 그 친구는 음악의 시작을 2,000년 전으로 규정한 듯 보이더군. 하긴 지금의 음악이 그 토대를 이룬 건 사실상 얼마 되지 않았으니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하던 밥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얘기했다.

“가져가게.”

“……저, 정말 제가 이걸 가져도 되겠습니까?”

“내가 좀 눈치가 빠른 편이지. 자네, 내가 짐으로부터 받은 기타에 새겨진 하프 무늬를 보고 온 거 아니었나?”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리고 이미 상대방이 짐작하고 있는데 거짓말을 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므로.

“그렇습니다. 그 무늬 때문에 당신을 만나자고 한 건 맞아요.”

밥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솔직한 친구군. 그래도 조언 하나 하자면, 이럴 땐 ‘겨우 그것 때문에 왔겠습니까? 제가 여기 온 건 밥 때문이에요!’라고 말해주는 걸세. 안 그러면 빈정 상한 늙은이가 자네가 눈을 빛내며 노리고 있는 그 물건을 도로 빼앗아 갈 수도 있으니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넉넉한 미소와 함께 지금의 상황 자체가 재미있다는 듯 날 바라보는 밥의 모습 때문이었다.

“다음부턴 그렇게 하죠.”

내가 대꾸하자, 그가 나를 보며 다시 얘기했다.

“그러길 빌지.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

“혹시라도 그 안에 쓰인 내용들에 대해서 뭔가 알아내는 게 있으면 부디 내게도 좀 알려주게. 딱히 뭘 원하는 건 아니지만, 궁금해서 말이지.”

그럴 수 있을까?

이 안에 든 내용이 만일에 하나라도 나와 관련된 얘기들이라면?

그게 아니라도 천 년 노래방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들이라면?

그때도 난 그걸 눈앞의 이 사람에게…….

쯧, 내가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거냐?

친구의 유품을 이제 막 얼굴만 알게 된, 까마득한 후배에게 넘겨줄 정도로 품이 넓은 사람을 앞에 두고 계산부터 놓고 있다니.

스스로에게 살짝 실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얘기하고 수첩을 품에 안았을 때였다.

“아, 잊을 뻔했군.”

“예?”

“당시 난 콘서트 중이라서 갑작스러운 짐의 죽음에 때맞춰 달려올 수 없었지. 때문에 짐이 내게 이걸 전해달라고 하면서 한 유언을 전해들어야 했네.”

“…….”

“그가 말했다더군. 이 수첩을 내게 남기면서.”

순간 소리가 사라졌다.

그저 눈앞에서 밥의 입술이 달싹거리는 모습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럼에도, 가슴 깊이 박혀 들었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이미 핸드릭스가 밥 데일런에게 남겼다는 유언을 생각하느라 딴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가 만들었든 간에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음악은 더 이상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음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두의 것이 된다.

그는 음악으로 수익을 얻는다는 행위 자체를 경멸했던 걸까?

아니면…….

생각이 깊어져 가는 사이, 차는 집에 도착했고 그 후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를 만큼 수첩에 몰두했다.

그러는 사이, S 전자에서 2차 광고를 내보냈다.

1차 때보다 좀 더 선명해진 실루엣.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월 14일.

세상은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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