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74화 (174/260)

# 174

#174. 상승세(3)

어라?

오프라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

뭐지?

뭔데 갑자기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호기심에 시선을 돌렸다.

스텝이 들고 있는 사인 판이 눈에 들어온다.

- 밥 데일런한테서 연락 옴. 김도준과 영상통화 하고 싶다고 함.

미친!

지금 밥 데일런이 나랑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는 거야?

그것도 영상통화를?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생방송 도중에 갑자기 요청해서 출연자와 통화를 하겠다니.

이게 지금 말이 되는 거야?

원래 미국에선 방송을 이런 식으로 하나?

설마 이런 경우가 흔한 건……. 쯧, 말할 것도 없이 특이한 경우겠지.

그래도 그렇지.

이런 요구를 들어주다니.

하기야 밥 데일런이 누군가.

통기타 하나 달랑 매고 목에 하모니카를 걸고선 포크송 운동에 뛰어든 이 시대의 음유시인.

1962년 발표한 ‘Blowin’in the Wind’가 인기를 얻고 그의 본의와는 달리 미국 내의 정치적 평등을 위한 이른바 공민권 운동에서 널리 불리면서 밥 데일런은 이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밥 데일런은 이렇게 되는 걸 싫어했는지, 1965년 로큰롤의 요소를 도입하고 갑작스레 음악적인 방향 전환을 해버렸다.

항간에는 제이미 핸드릭스의 영향이 컸다고 하는데, 그야 지금에 와서 확인하긴 어려울 테고 특이한 점은 싱어송라이터인 그가 문학가들을 제치고 가수로서는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

뭐, 정작 본인은 노벨상을 직접 받으러 가지도 않았고, 6개월이나 지난 후에야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소감을 밝혔을 뿐이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음악밖에 모르는 외골수라는 거다.

주위에선 그를 두고 평화와 자유, 반전의 투사처럼 얘기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그런 그가 갑자기 자신의 음악 세계에서 빠져나와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하니 방송국으로선 옳다구나 했겠지.

참네. 어쨌든 나로선 황당하다.

아니, 어떻게 갈수록 내 주위엔…….

하아! 레이크헬 만으로도 벅찬데.

놀람은 잠시였을 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까닭 모를 불안감이 뭉클뭉클 솟구쳐서.

그리고 그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봐라, 날 바라보고 있는 오프라의 눈을.

‘지금 이 상황 다 알고 있지?’ 하는 눈빛이다.

아, 그래서 저더러 어쩌라고요?

젠장! 발뺌해버릴까?

전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얼굴로 한번 웃어주면 끝일…리가 없지.

밥 데일런 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게 오프라인데.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차!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그리고 에단의 의향도 물어봤어야 하는데.

설사 밥 데일런이 대놓고 나와 통화하고 싶다고 했다지만, 아무래도 오늘 방송은 두고두고 회자될 게 뻔한 일.

당연히 세 사람도 영향을 받지 않을 리가 없다.

아마도 그들 주변에서 난리가 나겠지.

후우! 이제라도 세 사람에게 말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

눈치를 보느라 시선을 돌리다가 마주친 에단. 그가 눈짓을 보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 크리스티나와 조안나도 마찬가지.

아, 쟤들도 다 봤구나.

하기야 저렇게 사인 판에 크게 써서 떡하니 보여주는데 그걸 못 보는 게 더 어렵겠지.

뭐 잘 됐다면 잘된 일인데…….

그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을 정리하느라 애쓰는 동안, 오프라는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가라앉혔는지 어느새 편안한 안색을 되찾고는 말했다.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아니,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라는 듯이.

“지금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도 이분들의 공연을 본 분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많은 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죠. 그 증거로 공연 실황 앨범에 실린 곡들 중 한 곡이 현재 빌보드 차트 3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걸 먼저 말씀드리고 싶군요.”

숨을 멈추듯 잠시 말을 그친 오프라가 카메라에서 눈을 떼곤 나를 다시금 한차례 바라본다.

그러곤 곧바로 눈길을 돌려 에단 등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다시 카메라로 시선을 되돌렸다.

그런 뒤,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마도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녀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에 의아해하고 있지 않을까?

스튜디오에 눈을 떼지 못한 채 소곤거리고 있는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반면 그런 그들의 반응을 오프라는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뜸을 들일 순 없지.

또 한차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베테랑은 베테랑이네.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있을 때, 오프라가 마침내 말했다.

“원래는 직접 여기로 와서 이분들을 만나고 싶어하셨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외국에서 투어 중인지라 그 간절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분이 계십니다.”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할 때, 오프라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 영상으로나마 모셨습니다.”

그러곤 외쳤다.

“밥 데일런입니다!”

관객들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순간 정적에 빠져버린 스튜디오.

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엄청난 갈채가 터져 나왔다.

***

“어머! 세상에!”

미국 한복판에서 오마이 갓 대신 들려온 한국어였다.

조마루가 모니터를 하다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친 소리에 잠시 핸드폰에 한눈을 팔고 있던 고 팀장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툭!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입을 떡 벌린 채.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곤 더듬었다.

“바, 밥? 지…진짜로?”

얼마나 놀랐는지 평소답지 않게 경악한 표정이었고, 목소리 톤도 한껏 높아져 있었다.

그에 비해 강혁수는 과연 대표다웠다.

팔짱을 낀 채 TV 화면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터져 나온 조마루의 외침들은 그의 평온함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보세요! 진짜 밥이에요! 말도 안 돼! 지금 밥이 도준과 영상통화를 하려고 한다니까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TV 속 스튜디오에선 중앙에 걸린 화면에 밥 데일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세 사람이 있던 대기실 안은 순식간에 정숙을 되찾았다.

다들 숨을 죽인 채 오로지 TV만 바라보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전미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

“오 마이 갓!”

캘리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거듭해서 외치는 중이었다.

벌써 저 말만 몇 번째인지 몰랐다.

옆에서 보다 못한 에일 리가 한마디 했을 정도였다.

“캘리, 진정 좀 해. 네가 킴의 광팬이란 건 알겠는데, 그러다간 정작 중요한 장면들을 놓칠 수가 있다니까.”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저건 영화가 아니라고! 밥이라니까, 밥!”

설명이라곤 한마디도 없었지만, 에일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밥 데일런은 그런 사람이었다.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치 않은 당대의 총아.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바로 밥이었다.

그럼에도, 평상시에는 TV는커녕 신문에조차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다. 공연장에나 가야 먼발치에서나마 간신히 볼 수 있을 정도. 심지어 그의 공연장엔 스크린조차 없을 정도이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만큼 음악 외적으론 철저하게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밥 데일런이 무려 TV에 출연했다.

그것도 도준과 영상 통화를 하기 위해서.

캘리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프라는 도준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사람의 이름을 함께 언급하고 있었지만, 도준 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그녀는 밥 데일런이 진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건 도준이라고 굳게 믿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란 건 곧바로 증명되었다.

- 하이, 도준. 나 밥이네.

대놓고 도준의 이름을 부르는 밥의 얼굴이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쇼이기에 이 정도에 그친 것이지, 아마도 이번 주 내내 미국 전역에 방송되며 인터넷과 신문을 뜨겁게 달굴 것이 분명하다.

그럴 수밖에.

오프라 왼다 쇼의 주간 시청률만 따져도 2,000만 명이 훌쩍 넘어가는데, 거기에 밥 데일런이 비록 화상이라지만 게스트로 나왔으니.

“예. 반가워요. 아시겠지만, 저흰 줄리아드에서 왔어요. 이쪽이 크리스티나, 그리고 조안나. 저쪽에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친구는 에단이에요. 전 김도준이고요.”

도준의 소개에 밥은 연신 눈을 빛내며 그 특유의 진지하면서도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 자넨 운이 좋군. 세상은 넓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를 구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지. 그런 의미에서 이미 자네의 음악인생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어. 아, 그러고 보니 레이크헬과도 친하다면서?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 하하하. 표정을 보니 알만하군. 나도 그 친구들을 본 적이 있는데, 무척 유쾌하더군.

밥 데일런과 도준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격의 없이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오프라는 한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밥 데일런의 손에 들린 기타가 눈에 띄었고, 그 기타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에선 어딘지 모르게 조바심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서 잠시 방송계를 떠나 있기는 했지만, 17세 때 방송에 몸을 담은 후 수십 년간 토크쇼를 이어온 그녀였다.

작은 몸짓, 별거 아닌 듯 던져진 한마디에서도 상대방의 감정상태를 파악하고 그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그녀가 지금의 상황을 놓칠 리 없었다.

그녀가 미소 띤 얼굴로 끼어들었다.

“밥.”

- 오! 오프라. 내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오늘 밤 내게 이런 기회를 준 당신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한다는 걸 깜빡 잊고 말았군. 진심으로 고맙네. 오프라!

“호호호.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언제 한번 쇼에 나와주세요.”

- 응? 오우, 노! 그건 좀 곤란해. 알아봐야 하겠지만, 내후년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을 걸?

“그렇군요. 그럼 이건 어때요?”

오프라가 눈을 빛내며 바라보자, 밥 데일런이 눈을 가늘게 한 채 그녀를 본다.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오프라가 말한 것도 그때였다.

“밥은 언제나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있잖아요?”

당사자가 인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밥 데일런이 포크로 시작해 록을 거쳐 다시금 포크로 회귀하는 동안 거쳐온 길을 미국인들 치고, 아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으니까.

“그리고 여기 이 친구들……. 아직 젊고 아름다우며 생기발랄한 신성들은 당신처럼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고 있죠. 이쯤 되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요? 실험적인 정신만큼은 신구로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의 합주. 후아! 저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짜릿짜릿한데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모르긴 몰라도 시청자들 역시 같은 반응일 터였다.

그럼에도, 다들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과연 밥이 오프라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워낙에 자기중심적인 사람인데다가 돌발적인 행동을 일삼는 아티스트인지라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론 쉽사리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지. 아까 방송을 보는 동안 한눈에 알아봤거든. 저 친구는 나랑 동류라는 걸.

씨익하고 웃으며 기타를 들어 올리는 밥 데일런.

그와 동시에 또다시 터진 환호성.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그리고 에단이 동경해 마지않던 스타 앞에서 흥분상태에 들어가 있다가 ‘합주’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얼어붙어 버린 시점에서 도준은 빙그레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흠칫!

밥 데일런이 들어 올린 기타.

그 기타의 한쪽 면에 새겨진 문양 때문이었다.

꿈에서조차 잊을 수 없는 무늬…….

하프 무늬가 음각으로 새겨진 채 도준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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