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172. 상승세 (1)
브라이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평상시로 돌아오고, 그의 입 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있다.
내 반응이 재밌었던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물었다.
“언젠데요?”
기대감이 깃든 물음은 아니었다.
그게 또 느껴지는지 브라이언이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물어온다.
“좋지 않아?”
“좋아해야하나요?”
날 가만히 바라는 브라이언.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솔직히 말해봐.”
“예?”
“너 사실은…….”
“…….”
“열아홉 살 아니지?”
피식.
“어떻게 알았어요? 저, 올해로 천살이에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더니, 브라이언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어대던 브라이언이 얘기했다.
“진짜 너란 놈은……. 내가 이 바닥에 30년 가까이 있으면서 산전수전 다 겪고 별의별 놈들을 다 만나봤지만, 너 같은 놈은 처음 본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다.
“아직 확정 된 건 아닌데, 2주일 정도? 어쩌면 3주일 뒤쯤이 되지 싶다.”
“그렇군요.”
놀란 건 놀란 거고.
대충 계산은 섰다.
그 시간이면 집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지난번처럼 노인이 나타나 내속을 박박 긁어대지만 않는다면. 아마도 새로운 앨범에 들어갈 곡들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느라 말도 없이 턱만 만지고 있었더니, 브라이언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도준. 오프라 완다 쇼라고!”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아, 미치겠네. 네가 미국인이 아니라서 잘 모르나본데…….”
“브란.”
“응?”
“제가 이제부터 진짜 진짜 바빠질 거 같거든요? 그러니까, 더 할 말 없으시면 좀 가주실래요?”
벙찐 얼굴이 된 브라이언.
그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폭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가.”
그러곤 돌아서며 집을 나서다말고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참.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는데.”
“……?”
“걔들……. 그러니까, 너랑 이번에 같이 공연했던 친구들이 있지?”
누굴 말하는 건지는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브라이언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으니까.
“그 왜 있잖아. 바이올린 치는, 잘생긴 친구 있잖아.”
셋 중에 딱 한 놈만 찍어서 얘기하는 브라이언을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에단이요?”
“그래, 걔.”
“걔들이 왜요?”
“네가 알려줘라.”
응? 뭐를?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브라이언이 말했다.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걔들도 함께 출연할 거거든.”
“같이? 어딜…….”
“어디긴, 오프라 완다쇼지.”
***
안 그래도 한번 만나긴 해야 했다.
지난번에 앨범 선주문 얘기를 한 것도, 그 이후에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것도 통화로만 알려주었으니까.
그렇긴 한데…….
음, 청심환이라도 챙겨가야 하나?
아무래도 놀랄 거 같은데.
그것도 많이.
농담이 아니라 집안에 굴러다니는 약상자에서 청심환 세알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만 웃고 말았다.
지금 뭐하는 짓인지.
혀를 차면서 그대로 돌아서 집을 나왔다.
그리고 세 사람을 만난 곳은 집 근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페였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이놈의 카페는 더럽게 많네.
진짜 궁금하다.
비싸기로는 세상 어느 곳에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아니 세상에서 가장 비싸지 않을까 싶은 뉴욕 한복판에서 커피 몇 잔 팔아서 집세나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뭐, 남의 걱정은 이쯤 해두고.
창가에 인접한 테이블에 앉아 달달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을 때, 저만치서 세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인다.
나올 때 서로 연락해 함께 오는 모양이다.
“킴! 잘 지냈어?”
조안나의 힘찬 인사에 난 씨익 웃으며 일어나 그녀와 가볍게 포옹했다.
예전엔 이러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더니, 이젠 별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걸 보니 어느새 미국 생활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큭!
물론 크리스티나처럼 격하게 달려들어 꽉 껴안아오면 얘기가 다르지만.
반면 에단은 시크하게, 정확히는 시크한척 손을 치켜들곤 말도 없이 반가움을 표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주문을 하고, 각자의 취향대로 커피를 비롯해 음료를 받아서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내가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오프라 완다쇼에 나가게 될 거야. 우리 모두.”
뭐야? 이건?
세 사람이 얼음이라도 된 듯 동시에 움직임을 멈춘 채 미동조차 없었다.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이.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크리스티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필살기 같은 그 단어들이.
“오 마이 갓!”
한국말로 바꿔보자면,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보고 있을 때, 조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키, 킴…….내가 잘 못 들은 거 아니지?”
안색이 파랗다.
그런 채로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묻고 있는 그녀. 여기에 대고 농담이었어! 라고 했다간 맞아죽지 않을까 싶었다.
뿐만 아니다.
탁!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은 에단이 심호흡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얀마! 어디가!”
돌아서서 비칠거리며 걸어가던 에단이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멈칫하더니 말했다.
“……누나한테 전화하려고.”
하이고, 저놈의 시스콤 자식!
음, 그러니까 브라이언이 내게서 보고 싶었던 반응이 이런 거였구나.
……오 마이 갓!
나중에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혹은 지져스! 라든가.
***
청심환을 챙겨올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쓰러지는 추태를 보이진 않았으니까.
오히려 놀란 건 나였다.
한참을 그렇게 호들갑을 떨더니,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아이들처럼 흥분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즐겁게 재잘대는 모습이란…….
감정의 기폭이 엄청나게 크달까.
정말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엔.
평생을 이곳에 살아도 저들을 이해하는 건 나로선 무리지 싶었다.
아무튼, 세 사람에게 그 외에도 여러 가지들, 현재 앨범이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빌보드 차트를 비롯해 각국에서 얼마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지를 말해주자 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로서도 그런 그들을 보는 건 즐거웠다.
에단이 자꾸만 일어나서 어디론가 가려는 걸 참다못해서 소리를 버럭 지르긴 했지만.
“그냥 여기서 전화해! 이 자식아!”
어째든, 그동안 궁금했던 게 많았던지 끊임없이 물어와 그들의 질문에 답해주느라 거의 두 시간쯤은 잡혀 있었던 거 같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그들에게 풀려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고, 삭신이 다 쑤시네.”
뭔 얘기를…….
문서로 요약하면 세줄? 많아야 네줄이면 충분한 걸 가지고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떠들어댈 줄이야.
진저리를 쳐대곤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렇게 시체처럼 널브러진 채로 가만히 생각했다.
오프라 완다쇼야 몸만 가면 될 일이니까, 딱히 준비할 건 없다.
니콜 교수님께 맡겨놓은 교향곡도 굳이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터다.
지난번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 역시 잘되고 있으니 걱정할 이유가 없었고.
와, 그러고 보니까 완전 상승세인데?
이러다가 올 연말에는 무슨 상이라도 받게 되는 거 아냐?
참네, 나도 실없다.
그깟 상 받아서 뭘 하겠다고.
속으로 혀를 차면서 다시금 생각을 이어갔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인가?
S전자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위한 앨범 작업.
학교야 현재 방학 중이니까 별달리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찰리스도 저녁에만 나가면 되니까 걱정 없다.
삼주면 충분하겠지?
그럼 이번엔 어떤 컨셉으로 가볼까?
근데, 요번 앨범은 정규앨범으로…….어? 그러고 보니까, 이번 앨범이 첫 번째 정규 앨범이잖아?
뜻밖의 결론에 눈이 다 커진다.
뿐만 아니라 의욕이 샘솟고 온몸에서 힘이 솟는다.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씻지도 않고 연습실로 뛰어 들어갔다.
***
시간은 무섭게 빨리 지나갔다.
나름 하루하루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긴 했지만,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노래방에 있을 때가 그리워질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 할까.
아무튼 이주일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아무리 나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지지난주에 빌보드 차트 4위까지 올라갔던 ‘SOMETHING OR NOTHING’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을 줄 알았더니, 미국 내 앨범 판매량이 급증하고, 더불어 라디오에 곧잘 나오는 것 같더니 결국 3위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영화 ‘더 시트’가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고 있었다.
관객 수 동원에 있어선 어쩌면 10년래 기록을 갈아치울지도 모른다고 하니 말 다한 거지.
게다가 음악적으로도 좋은 평가가 이어지는 중. 심지어는 음악 평론가들조차 입을 모아 극찬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의 주연과 조연 등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OST의 대부분을 부른 레이크헬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브라이언의 예언 아닌 예언처럼 나 역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었다.
OST를 작곡한 라이터로 알려지면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이 쏟아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영화에 삽입된 곡 중 내가 부른 유일한 노래, ‘플리즈 콜 미’가…….
“10위안에 든 걸 축하해!”
“오올! 도준! 봐봐! 네가 부른 노래가 두곡이나 빌보드 차트 10위 안에 있는 거라고!”
“대단하네! 진짜!”
이 자식들이!
장난해?
지들이 부른 노래는 싹 다 10위 안에 들어가 있는데, 뭐? 대단해?
그 걸로도 모자라 ‘더 시트’의 OST 앨범 자체가 곧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를지 모른다는 게 모두의 중론이구만.
뭐, 그렇긴 해도. 그게 배 아프거나 한 건 아니다.
당연히 축하할 일이지.
그리고 엊그제 돌아와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정신없는 레이크헬 멤버들의 축하인사가 진심이란 걸 모를 나도 아니고.
물론 끊임없이 장난할 거리를 찾으면 놀리듯 내게 말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고맙다, 이 자식들아!”
“근데, 도준.”
“응?”
“모레였지, 아마? 오프라 완다 쇼에 나가는 게?”
아닌 게 아니라 그 때문에 회사 식구들이 전부 뉴욕으로 와있는 상황이었다.
마루 누나야 그동안 쭈욱 여기 있으면서 내 뒷바라지를 도맡아 해주었지만. 덕분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좀 더 빨리 곡 작업을 끝낼 수 있었고. 이제 녹음 작업만을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도준, 완전 잘나가잖아? 이러다가 우리보다 유명해지는 거 아냐?”
디알로가 농담처럼 말하자, 그걸 또 누군가가 진심으로 받아친다.
문제는 그게 진지하기 짝이 없는 베릴이라는 건데…….
“그는 이미 우릴 넘어섰다니까. 머잖아 도준이 우리보다 유명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가 말하니까,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달까.
그래서 그런가 나머지 멤버들이 호들갑을 떨어댄다.
“와! 완전 상승세인데?”
“포텐 터진 거지!”
제롬을 필두로 레이크헬 멤버들이 한마디씩 하는 말을 들으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느끼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상승세다.
요즘이 내 인생의 절정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회의 결과 아직은 함부로 나설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정중히 거절하곤 있었지만, 미국 내 각종 쇼와 매체에서 섭외가 들어오고 있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도준은 이제 막 시작인 거예요.”
제롬의 한마디에 다들 소리를 지르고 기뻐하는 레이크헬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말았다.
진짜 저놈들은…….
미워할 수가 없다.
***
“준비 됐어?”
마루 누나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시선을 돌려 아저씨와 고 팀장님과 한차례씩 시선을 맞췄다.
‘다녀와라.’
‘별거 없어. 그러니까 긴장할 필요 없다.’
눈빛뿐이었지만, 두 사람은 내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돌아섰다.
그러곤 한껏 얼어 있는 녀석들…….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그리고 에단의 등을 밀었다.
“가자.”
“으, 응…….”
“후우우!”
“어, 어떡해! 실수하면…….”
에단이 심호흡을 하는 동안, 떨리는 음성을 내뱉으며 울상을 짓고 있는 두 여자에게 말해주었다.
“뭘 그래? 평소처럼 하면 되지. 우리 노는 거 잘하잖아? 안 그래?”
별거 아니라는 듯 웃어주자, 그제야 세 사람의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때 스텝 한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불렀다.
“킴, 크리스티나, 조안나, 에단. 스탠바이 하세요.”
계단 위, 장막 너머 무대 위에 그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팬덤을 지니고 있다는 방송인이며 세계적인 쇼 진행자인 오프라 완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