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171. 조짐 (3)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걸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니콜 교수님도 진담으로 물은 건 아닐 테니까.
그럼에도 농담으로 응수했다.
“MK-23? 지구만큼이나 푸른 별이죠.”
설마하니 내가 이런 식의 대답을 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던지 니콜 교수님은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한참을 웃던 니콜 교수님이 한순간 웃음을 지워냈다.
그러곤 날 가만히 쳐다본다.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흔히들 사람들이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목구멍에 걸려 차마 뱉어내지 못할 때의 표정이랄까.
뭐 때문에 그러는지는 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따로 묻지 않았다.
그때, 니콜 교수님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킴.”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음성에는 많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난 이미 김도준이 아닐 터다.
“예. 교수님.”
“짐작하겠지만, 실제로 이곡이 무대 위에 올려질 가능성은…….”
“…….”
“제로에 수렴해요.”
난 어떠한 기대감도 섞여 있지 않을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킴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죠. 그걸 알면서도 꼭 이렇게 해야 했나요?”
그녀는 묻고 있었지만,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떠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시금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필이면……. 후우. 지금 킴은 마에스트로들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시도를 한 셈이에요. 그래요.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한마디로 악의적인 장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알고 있죠?”
물론.
그럼에도 나는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새로운 음악을 들려드리겠다고.”
날 빤히 응시하던 니콜 교수님은 일순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솔직히 말할게요.”
“…….”
“난 마음에 들어요. 이곡이. 그것도 몹시.”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다시 말했다.
“그런 나로서도 이걸 초연할 용기는 쉽사리 내기 어려울 정도에요. 킴도 그 이유는 알고 있겠죠?”
어차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이곡을 당장 무대에 올릴 생각은 없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많은 부분에 대해서 새로운 시도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악기의 반 이상이 일레트릭 악기가 동원됐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곡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선 적잖은 준비가 필요할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형식 또한 기존의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뭐랄까.
교향곡이지만, 교향곡이 아니랄까.
아니, 교향곡이 아니지만 교향곡이라고 우기고 있달까.
어느 쪽이 되었던 연주는커녕, 악단을 구성하는 일부터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앞서 니콜 교수님이 말했듯이 이걸 지휘해줄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여길 찾은 이유는 단순히 평가를 받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물론 당장에 이걸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안달이 난 것도 아니다.
가능성.
새로움을 위한 새로운 시도가 아닌,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하나로 녹여낼 때 펼쳐질 세계에 대한 기대감.
그게 가능할지에 대한 욕구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이지 모든 걸 갈아 넣었다.
마치 믹서기에 모든 재료를 넣고 돌려버리듯이.
내안이 있는 전부를 넣고서.
심지어는 근래에 들어 깨달은 소리에 대한 느낌까지도.
그걸 니콜 교수님이 봐주길 바랐다.
그래서 함께 고민하고 상의해서 언제가가 될지는 몰라도 꼭 이곡을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한데…….
놀라웠다.
니콜 교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얘기는.
이제껏 난감한 표정은 짓고 있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킴.”
“예. 교수님.”
그녀는 이제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눈빛보다 강렬하고, 또한 진지한 눈빛이 되어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이곡을 무대 위에 올려야겠어요.”
“그렇죠. 당장에 이곡을 무대에 올리기엔……. 예?”
뜻밖의 얘기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고함쳤다.
“진심이세요?”
씨익.
그녀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눈을 빛내며 강렬한 의지를 드러냈다.
“전부터 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인간이란 동물은 다들 그런 반응을 보인답니다. 낯선 것과 마주했을 때는. 하지만, 킴은 익숙해져야 해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왜냐면, 킴은…….”
“……?”
“그 자체로 인류에게 있어서 낯선 존재니까요.”
헐. 그러니까 뭐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이곡을 무대 위에 올리겠다는 얘기잖아.
나도 모르게 벌어졌던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동시에 떠올랐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클래식계만 아닐 터다.
세상이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질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몸이 떨리고 있었다.
***
도준이 못 믿겠다는 얼굴이 되어 돌아간 뒤 니콜 교수는 곧바로 허먼 교수를 찾았다.
현재로선 그녀를 도와줄 유일한 아군이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다.
“놀랍군요.”
시작은 그녀와 흡사했다.
그만큼 도준이 만들어낸 곡은 수준이 절대로 낮지 않았다.
아니, 곡만 놓고 본다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이게 과연 클래식을 접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이 만들 낸 곡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문제는 이다음에 있었다.
“짐작하겠지만 이 곡은 무대에 올릴 수 없어요. 아니, 누구도 초연할 생각을 하지 않을 못할 겁니다. 적어도 클래식 홀에선 힘들 거예요. 콘서트장이면 모를까.”
“알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상의 드리기 위해서…….”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차이콥스키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단 말입니다. 후우!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곡은……. 교향곡의 틀을 벗어났어요. 아니 클래식이라고 불러도 될지조차 의심스러워요.”
“파격적이란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나름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아시지 않습니까? 단지 악기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란 걸. 새로운 시도? 좋죠. 하지만, 이건 너무 앞서 갔어요. 설사 누군가 나서서 이곡을 지휘한다고 해도 청중들이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자칫하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허먼 교수의 표정을 보면서도 니콜 교수는 실망하지 않았다.
쓰레기 운운하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오히려 차가워져 있었다.
아니, 점차 뜨거워져간다.
그것은 단지 도준이 그녀의 제자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걸까?’
이곡이 얼마나 대단한 곡인지?
단지 새로운 시도라서가 아니다.
이건 일종의 집대성이다.
인류가 추구해온 음악들을 하나로 모아, 청중들에게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 모른다.
사실상 전성기가 지나버린 클래식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물론 안다.
그러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하지만…….
파격은 오랜 시간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틀을 깨뜨리기에 파격인 것이다.
또한 언제나 그 과정에서 혼란과 다툼은 뒤따르기 마련.
그럼에도 피해선 안 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알을 깨고 태어나는 과정은 그 어떤 백조에게도 필요한 일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니, 유감이군요.”
허먼 교수의 방을 빠져나오기 전 니콜 교수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
찜찜함을 지우긴 어려웠다.
나 참, 설마하니 그 곡을 곧바로 무대에 올리자는 얘기를 듣게 될 줄이야.
물론 장난삼아 만든 곡은 아니다.
나름 최선을 다했고,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 그게 문제인지도 모른다.
모든 걸 쏟아 부었다는 게.
교향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차치하더라도, 작곡의 마지막 단계에서 희주가 다가오는 바람에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곡을 다듬긴 했지만, 그 전에는 정말이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으니까.
그래서인지 한창 몰입해서 곡을 써내려간 뒤, 나중에 정신을 차린 후에 보고는 나조차도 놀랐을 정도였다.
이걸 연주한다고?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단순히 어렵다는 말로는 부족할 난해함.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지휘자까지도 곡을 이해하는 일조차 쉽지 않을 터였다.
그만큼 곡은 이제까지 나왔던 그 어떤 교향곡보다 새로웠지만, 한편으로는 낯설 터다.
현재와 과거를 대표하는 악기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소리를 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속에서 하나의 규칙을 찾아, 아니 이제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형식 아닌 형식을 만들어내며 청중들에게 전달하게 될 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연주해도 쉽지 않을 거 같았다.
뭐, 서른 명도 넘는 연주자의 연주를 나 혼자 연주해서 녹음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래선 의미가 없겠지.
이곡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건 기교 따위가 아니니까.
단순히 소리의 집합체도 아니었고.
감정.
내가 전하고 싶어 하는 감정을 관현악기와 전자악기의 절묘한 앙상블 속에서 최대한 표현하고 싶은 거였다.
그 점이 연주하는 이들에게는 난해하게 다가갈 만큼 파격적으로 느껴지긴 하겠지만.
“쯧, 이젠 나도 모르겠다.”
니콜 교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스승이 제자를 믿듯, 제자는 스승을 믿을 뿐이다.
그렇기에 니콜 교수에게 망설임 없이 곡을 넘겼고, 이후의 일에 대해 모든 걸 일임한 것이고.
“킴은 신경 쓸 것 없어요. 난 이 곡을 반드시 무대 위에 올릴 생각이니까요.”
단호하게 얘기하던 니콜 교수의 얼굴을 떠올리곤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막 집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응?
낯익은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누구의 차인지는 알고 있다.
뭔가 자랑하고 싶을 땐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은 성격만큼이나 그 존재만으로도 허세가 쩌는 차 한 대. 대형 세단이라고 부르기에도 덩치가 큰 리무진 한 대가 찰리스 건물 앞에 떡하니 서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층으로 올라가자, 문 앞에는 짐작했던 인물이 서있었다.
“이제 오는 거야?”
브라이언이었다.
***
“어쩐 일이에요?”
전화도 없이…란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낯빛도 살짝 붉어져 있는 게, 어딘지 모르게 상기되어 있는 저 얼굴에 대고 물었다간 엄청난 속사포가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
뭐, 이미 입이 근질거려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보아 그게 아니라도 그냥 넘어갈 것 같진 않았지만.
그리고…….
역시나였다.
“도준!”
브라이언은 내가 내온 커피는 쳐다보지도 않은 듯 내손을 잡아왔다.
그걸 냉큼 빼내며 버럭 소리쳤다.
왜?
브라이언의 결혼 생활이 파경을 맞이한 이유를 얼마 전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설마하니 성적 취향이 그쪽이라곤 정말이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돈 터치! 나 지금 소름 돋을 뻔했으니까, 다시는 그러지 마요.”
“크크큭. 쏘리! 그치만 안심해. 난 도준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아,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남자로서 그렇다는 거고. 사실 관심은 많지. 비즈니스 파트너로선.”
그랬던 건 어쨌건 슬그머니 거리를 벌리며 물었다.
“그래서 왜 온 건데요?”
“알려줄 게 있어서 왔어. 상의할 것도 있고. 설마 이대로 날 쫒아내는 건 아니겠지?”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자, 브라이언이 픽하고 웃었다.
나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그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장난은 이쯤이면 됐다는 생각에.
“더듬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얼마든지 있어도 좋아요.”
“클클클. 그렇게까지 한가하진 않고.”
“브란, 그래서 내게 어떤 선물을 가져왔나요? 설마 빌보드 차트 1위라도 한 건 가요?”
내 질문에 브라이언이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일단 ‘더 시트’ 얘기부터 하지.”
“…….”
“영화가 북미지역을 포함해 26개국에서 동시 개봉한 건 알고 있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현재 관객 수 7,000만 명. 수익분기점을 한참 넘겼어.”
“축하할 일이네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자, 브라이언은 날 빤히 쳐다보다가 씩 웃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야?”
“……예?”
“도준. 내가 말 안한 게 있는데…….”
“……?”
“‘더 시트’의 영화 개봉에 맞춰서 OST 앨범도 발매한 상태야.”
어?
그 얘긴 처음 듣는데?
내가 눈을 껌뻑거리자, 그가 재밌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곤 놀리듯, 아니 장난을 거는 듯한 개구쟁이의 얼굴로 얘기했다.
“놀랄 거 없어. 얼마 팔진 못했으니까. 300만장하고도 조금 더 나갔을 뿐인 걸.”
3…300만장?
헐!
할 말이 없다.
이제 개봉 1주차.
그 얘긴 곧 앨범 출시 또한 1주일 됐다는 얘기다.
한데 그 짧은 시간 만에 300만장이 나갔다고?
아무리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게 지금 말이 돼는 거야?
음원 판매량도 아니고, 음반 판매량이 300만?
하, 진짜 황당해서 말도 안 나온다.
그때였다.
벙쪄 있는 내게 브라이언이 물어왔다.
“도준, 혹시 완다 알아?”
“완다요?”
“그래, 오프라 완다 말이야.”
나 참, 사람을 어떻게 보고.
흑인 여성으로서, 그녀보다 유명한 사람이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기도 하고, 특히 미국에선 엄청난 팬덤을 지닌, 아니 팬덤이라고 하기보단 멘토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지. 아무튼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린 쇼 진행자. 벌써 20년 가까이 오프라 완다 쇼를 진행하고 있는 입지전적인 인물 아닌가.
그런 사람을 모를 리가 없잖아?
“지금 장난 쳐요? 제가 그녀를 모를…….응? 설마?”
씨익.
브라이언이 날 보며 의미심한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브란! 제가 거기에 나가게 되는 건가요?”
브라이언은 대답대신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오프라 완다 쇼에 나간다고?
황당함을 넘어 놀랍다.
지난번에 나갔던 라디오 쇼와는 차원이 다른 방송. 전미 대륙에 걸쳐 방송되며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자랑하는 쇼에 출연한다니.
근데 왜 자꾸 입 꼬리가 올라가는 거지?
놀라움이 가라앉자 내입에서 흘러나왔다.
나조차도 생각지 못했던 말이.
“재밌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