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69화 (169/260)

# 169

#169. 조짐 (1)

불편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가족들의 시선도 그렇고.

자꾸만 히죽거리는 제롬 녀석의 얼굴도…….

그리고…….

“한국 참 살기 좋아.”

“내가 여자면 한국인이랑 결혼한다.”

“에이, 그건 아니지. 그런 말 하는 거 자체가 인종차별이잖아.”

“어? 그런가? 그럼, 바꿀게. 도준이랑 결혼하는 걸로.”

“응? 그럼 희주는?”

“헉! 그 문제를 생각 못했네.”

“차라리 일부다처는 어때?”

“폴리아모리? 흠, 나쁘지 않긴 한데……. 희주네 그랜파더가 한국의 빌 게리츠라고 하지 않았나? 절대 허락 안 해 줄 걸?”

“노노! 빌 게리츠 아니고 스티브 짐스! 아스트로 N9 몰라?”

이것들이 진짜!

나와 캘리를 번갈아 보며 속닥거리는 레이크헬. 딱 보니 진심이라곤 1도 없어 보인다.

그냥 즐기는 거다.

이미 희주와 나와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어차피 내가 흔들리지 않을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때문에 심기가 좀 불편해도 그냥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컵을 들어 물 한 모금을 마셨을 때였다.

“근데, 도준이도 지난번에 캘리 예쁘다고 하지 않았어?”

“푸웁!”

물을 뿜고 말았다.

다행히 얼마 마시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짜 대참사가 일어날뻔했다.

한데, 그때…….

스윽하고 다가온 손수건 하나가 내 입술을 비롯해 얼굴을 닦아준다.

“고마…!”

캘리?

흠칫해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힌다.

히익!

놀래서 손을 놓고는 더듬거렸다.

“아, 고…고마워요.”

“······.”

“그, 그냥……. 제가 할게요.”

그러곤 그녀의 손에서 손수건을 빼앗듯 빼내서 입가를 닦았다.

그런 내 모습을 상 건너편에서 네 사람이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아버진 그나마 좀 덜한데, 어머닌 마치 아침 드라마라도 보는 듯한 눈빛이었고, 형은 무슨 웹툰 보듯이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씰룩거렸다. 심지어는 형수마저……. 눈을 반짝이고 있다. 양손을 모아 꼭 쥔 채로.

저런 부모라니…….

아, 우리 조카 잘 자라주어야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번에 낸 앨범 잘 들었어요. 진짜 좋더라고요.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뭘 또 감동씩이나.

공연장까지 와서 직접 들어놓고서 새삼스럽긴.

난 캘리에게 예의상 고맙다고 대꾸했다.

그걸로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옆에 있던 에일리가 복병이었다.

“정말이에요.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니까요.”

“에, 에일리!”

“왜! 사실이잖아?”

“그래도 여기서 그런 얘기하는 건…….”

“뭐가 어때서? 너 이 사람 좋아하는 거 다들 아는데, 뭘! 그리고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뭐가 잘못인데? 안 그래요?”

“큼. 그야 그렇죠.”

아, 진짜!

그냥 가만히나 있지.

세상에 둘도 없는 오지라퍼 되시는 우리 형님. 어설픈 영어로 맞장구를 쳐주고 계신다.

그러면서 여전히 입술을 실룩거리는 걸 보니, 지금의 이 상황을 무척이나 만족해하며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말했다.

“이, 이러지 말고 영화나 보러 갈까요?”

당연히 ‘더 시트’를 말하는 거였다.

다들 용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근데, 한국의 영화관이 그렇게 잘 돼 있다며?”

“유니버셜 스튜디오 뺨친다던데?”

“설마, 그 정도까지일까?”

“진짜에요! 한국은 진짜 돈만 많으면 살기 좋은 동네라니까요.”

“흠, 하긴……. 아홉 시가 넘어도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지, 여긴. 백 미터마다 술집에, 편의점에, 커피숍까지. 백화점도 곳곳에 있고. 영화관도 한 층이 아니라며?”

“인터넷도 엄청 빨라요.”

“그건 그래. 여기 있다가 돌아가면 속 터져 죽을 거 같다니까.”

레이크헬의 아무 말 대잔치에 에일리…라는 여자까지 끼어드는 형국이다.

“리얼리?”

“정말이라니까요. 지하철 한 번도 안 타보셨죠? 안 타봤으면 말을 마세요. 딱 문 열고 들어가면요. 칸칸마다 전부 핸드폰으로 영화를 봐요. 아,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고요.”

“게임도 하지.”

“만화도 봐.”

“소설도 보던데?”

잘들 한다.

아주 한국사람 다 됐네.

왜? 그냥 귀화해서 여기서 살지들?

기가 막혀서 녀석들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어? 도준? 화장실 가?”

“영화 보러 간다고 했잖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르르 일어나는 사람들.

그런데…….

“나도 지하철 한번 타봤으면 좋겠다.”

캘리의 한마디가 방아쇠가 되었다.

***

가족들까지 포함해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다들 유명인사다.

그것도 한번 움직였다 하면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기사가 도배되는.

그런 사람들이 무려 여섯이 움직이고 있다.

아, 나까지 포함하면 일곱.

뿐만 아니라 그중 두 사람, 그러니까 나와 캘리는 스캔들까지 났던 사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이다.

말이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럼에도, 난 얼굴을 가리거나 하지 않았다.

왜?

이제부턴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으니까.

사람이 당당해야지, 쥐새끼처럼 숨어 살아서야 되겠냐고.

그런 의미에서 난 희주에게도 연락했다.

그녀는 처음에 내 전화를 받고는 의아해하면서 말했었다.

가족들하고 어딜 가기로 했다고…….

하지만, 캘리 얘기를 꺼내자 곧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지금 갈게. 어디로 가면 돼?”

음, 태연한 척해도 희주도 신경은 쓰고 있구나.

역시 전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골치 아플 뻔했달까.

“와! 진짜네!”

“그러게! 다들 핸드폰으로…….”

그렇긴 하지. 우스갯소리로,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한테서 핸드폰 사용 금지령이라도 내렸다가는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를 정도니까. 진짜 옛날에는 어떻게들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긴 한데…….

지금은 아까 제롬이 말한 용도로 핸드폰은 사용하는 거 같진 않은데?

여기저기서 다가오진 못한 채 쉴 새 없이 사진들을 찍어대는 사람들.

지하철에 오른 지 벌써 10분.

곧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터다.

이 얘긴 곧 우리 사진이 SNS라는 엄청나게 촘촘하고 광범위한 통신망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을 거란 말이다.

그 증거로…….

[‘더 시트’의 출연진들 서울 나들이.]

[레이크헬을 안내하고 있는 김도준.]

[김도준의 가족들까지 함께하는 지하철 투어……. 한때 스캔들이 있었던 캘리까지 함께?]

[두 사람의 관계……. 진실은?]

아이고, 소설들 쓰고 있네.

기자들도 바쁘겠다.

SNS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들과 목격담을 중심으로 기사를 지어내려고 얼마나 머리를 굴리고 있을까.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 지하철이 멈춰 섰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

멀티플렉스에 들어서기 무섭게 몰려든 인파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그도 그럴게, 여기서 지금 개봉한 영화 중 가장 핫한 게 ‘더 시트’였다.

그런데 그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 중 주연들과 조연들이 대거 몰려왔으니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게다가 나까지 있으니 말 다했다.

오히려 우리 형과 형수에 대해선 사람들이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정도였다.

쯧, 그래도 어딘가에선 분명 씹어대는 것들이 있겠지만.

그래서 내가 집에서 나오면서 말했던 거다.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말라고.

두 사람도, 우리 가족 전부도 누구 하나 죄지은 사람은 없다고.

설사 우리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봤다면, 절대로 그 책임을 피할 생각은 없으니 나만 믿으라고 했다.

그 덕택인지, 형수는 전과 다르게 한층 편한 얼굴로 간만의 나들이를 즐기는 듯 보였다.

“그나저나……. 이것 참.”

영화를 보는 내내 황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OST를 만들기 위해서 시나리오를 훑어보긴 했었지만, 설마 이런 영화였을 거라곤 짐작도 못 했다.

뭐야, 이거.

완전 뮤지컬이잖아?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음악이 중심인 영화였다.

남녀주인공인 캘리와 콜린이 연기 도중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또 어떨 땐 춤까지 추는 모습. 말할 것도 없이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컸다.

그걸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내가 만든 곡들이 영화 전반에 걸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내가 부르진 않……. 아, 한 곡은 내가 부르긴 했지만.

비록 목소리뿐이라지만, 참여하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정 출연 같은 건 아니다.

사실, 브라이언의 적극적인 주장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영화가 히트를 하게 되면, 레이크헬뿐만 아니라 나까지 재조명될 거라면서.

하여간 돈 만들어내는 재주 하나는 기가 막힌 양반이라니까.

아무튼, 촉이 그렇다.

이거 아무래도 뜰 거 같은데?

설마 여기서 부른 노래들까지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거 아냐?

***

누군가 세상에 가장 황당한 광경이 뭐냐고 물으면 난 대답할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캘리, 연기 정말 멋졌어!”

“정말? 고마워, 희주!”

“빈말이 아냐. 보는 내내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이게 다 도준의 음악 덕분이지, 뭐.”

“호호호. 그건 그래. 진짜 좋더라.”

두 사람, 캘리와 희주가 하하 호호거리며 웃고 떠들고 있다.

누가 보면 베프인 줄 알겠다.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으르렁거려도 모자랄 판에.

그것도 진심으로 서로를 칭찬하며 즐거워하는 하는 모습이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보인다.

무섭네.

나도 모르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

슬금슬금 뒷걸음쳐서 두 여자에게서 멀어지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

핸드폰이다.

아씨! 전화!

하필이면 지금.

아, 이번엔 무슨 일인데?

캘리와 희주를 비롯해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리고 있을 때였다.

“아저씨?”

아니, 우리 대표님께서 어쩐 일로 전화를 하셨을까?

의아해져서 전화를 받았다.

- 도준아.

“예. 아저씨.”

- 너, 혹시 오늘 정 회장님 만났냐?

어? 어떻게 알았지?

조금 놀랐지만, 일단 대답부터 했다.

“예. 아까 낮에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러더니 아저씨가 말했다.

- 광고 계약 얘기가 오갔다며?

“안 그래도 내일 뵙고 말씀드리려던 참이에요. 왜요? 하지 말까요?”

-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후우, 광고야 찍어야지. 다른 곳도 아니고 S 전자인데.

난 또,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 근데, 새로운 제안을 하네? 저쪽에서?

“예?”

- 올봄에 출시하는 아스트로 N10 말이야.

“······.”

- 광고뿐만 아니라, 콜라보레이션을 하자는데?

“콜라보레이션이요?”

- 그래.

무슨 뜻인지 얼른 감이 안 잡힌다.

핸드폰이랑 내가 콜라보레이션 할 게 뭐가……. 응? 설마?

“저, 아저씨.”

- 말해라.

“아무래도 제가 사고 친 거 같은데요?”

- ……사고까진 아니고. 좀 일이 커진 듯한 느낌이긴 하네.

역시 예상대로인가?

음, 이것 참.

정 회장님, 그러니까 희주 할아버지께서 내 생각을 물으시기에 가벼운……. 아니 가벼운 마음은 아니고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뿐인데…….

그나저나 진짜 빠르네.

희주 네 집에 다녀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와, 무슨 움직이는 게 기가급이야?

세계적인 대기업이라 그런가?

“그래서 뭐라고 하는데요?”

생각이 많으신지, 아저씨께선 한 템포 늦게 대답하셨다.

- 앨범 하나 내잔다.

“앨범이요?”

- 응. 제작비를 전부 저쪽에서 대고, 판매 수익도 우리 쪽이 다 갖는 걸로 하고. 대신…….

대신?

- 음원 사이트에 발표하는 게 아니라, 핸드폰으로 내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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