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167. 제가 뭐 아나요? (2)
“음악 얘기요?”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 회장님이 왜 나랑 음악 얘기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바는 없다.
이러다간 괜히 머리통에서 스팀만 날 것 같아서, 다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혹시 음반사……. 아니 엔터테인먼트라도 차리실 계획이세요?”
정 회장님은 고개를 내젓거나 콧방귀를 끼진 않으셨다.
뵈면 뵐수록 참 점잖으신 분이다.
근데, 그건 겉모습인 거고.
“그런 계획은 아직까지 없네.”
정중하게 말하면서도 언제나 여지를 남겨두는 정 회장님. 어떻게 보면 가장 무서운 타입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럼?”
정 회장님은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진지한 어투로 물어오신다.
“일단 묻도록 하지. 허먼 사라고 아나?”
허먼?
음악을 하지 않았던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허먼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현재 음악계에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음향 회사들이 몇 군데 있다.
일테면 JBS라든가, 허먼케이든이라든가. 물론 이보다 더 전문적이고 명성이 자자한 회사들은 무척 많다. 오래도록 이어져 온 음악인만큼 그 소리를 무대에서 안방으로 옮겨오는 데 일조한 것은 음반사만이 아니니까.
심지어는 미국에서 꽤 유명한 래퍼인 닥터 잼 조차 DKJ란 헤드폰 회사를 만들었을 정도다.
물론 기술 쪽을 맡은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본을 대고, 자신의 음악적 인지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다.
어찌 되었든,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을 비롯해 오랜 시간 음악에 공을 들여온 나라치고 버젓한 음향회사 하나 없는 나라는 없다.
그만큼 헤드폰과 인이어, 그리고 스피커와 앰프를 중심으로 한 음향회사는 많았다.
그런 음향회사들 중에서도 앞서 말한 허먼 쪽은 매우 유명한데, 그 이유는 다시 말하지만 허먼이 JBS, 허먼케이든, AGK, 뱅앤앨럽 등 쟁쟁한 회사들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향 쪽으로는 하나의 제국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에도 허먼 사가 거느린 계열사들에 대한 추종자들이 꽤 많았고, 그 때문인지 L그룹에선 뱅앤앨럽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핸드폰에서 음악적으로 꽤 완성된 기술을 선보이는 중이었다.
DAC 기술, 다시 말해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현재 내가 쓰고 있는 핸드폰 역시 L그룹 제품인 까닭이다.
한데, 지금 정 회장님이 그런 허먼을 입에 담는 이유는?
“알고야 있죠.”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정 회장님이 말했다.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허먼을 인수할까 하네만.”
응?
뭘 잘못 들었나 했다.
허먼은 음향계의 공룡인데…….
그리고 S그룹은 다른 계열도 그렇지만, 특히나 전자 쪽으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공룡.
그럼……?
공룡이 공룡을 삼키는 건가?
나 참, 이건 그야말로 거대 공룡인 모사사우르스가 티라노사우르스를 삼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뭐, 그거랑은 다르게 잡아먹힌 한쪽이 뼈만 남기는 게 아니라, 다른 한쪽의 자양분이 되어 더욱 크게 몸집을 늘린다는 거겠지만.
아니, 대체 그 정도면 얼마나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거지?
모르긴 몰라도 억 단위는 아닐 테고…….
아마 조 단위로 뛰어오르지 않을까?
아무튼, 놀랍다.
이 얘기가 밖으로 나가면 증시가 요동칠 게 틀림없을 정도로.
아마도 S그룹과 허먼 사의 주식은 급등할 거고, 반면 허먼의 계열사인 뱅앤앨럽과 제휴중인 L그룹은 급락할는지도 모르지.
그만큼 엄청난 얘기다.
그런 얘기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정 회장님을 난 멍해져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기술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방금 들은 얘기가 얼마나 가치 있는 얘기인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니까.
아, 근데 이 얘길 왜 나한테 하시는 거지?
설마 자문을 구하시려는 건가?
음, 그렇다면 진짜 잘못 짚으신 건데?
내가 비록 음악을 하고 있다지만, 음향 쪽으론 그렇게까지 식견이 높지도 않거니와 사업적으론 더더욱 알지 못한다.
그걸 모르지 않으실 텐데…….
얘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알 수가 없게 되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날 별스럽지 않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시는 정 회장님이시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
아, 답답하네.
그렇게 보시지만 말고 얘기를 좀 하시라니…….
“9조.”
“예?”
“예상되는 총 인수 비용을 산출한 결과일세.”
숨이 턱하고 막힌다.
9조란다.
이거 진짜 실화인가?
하아, 안다, 알아.
S그룹이 한해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쓸어담고 있는지.
그렇다곤 하지만, 9조라니…….
음, 나 아무래도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거 같은데.
갑자기 희주가……. 정확히는 이 집안이 확 부담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정 회장님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채로 내게 물어왔다.
“자네 생각엔 우리가 허먼을 인수하는 게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저기……. 질문이 잘못된 거 같은데요?
아니, 질문할 상대를 잘못 고른 거 같다고요.
“제가 뭐 아나요?”
한낱 악쟁이가 뭘 알겠는가?
사업에 대해서.
그런 뜻을 눈빛에 담아 정 회장님을 바라보았는데, 정 회장님은 조금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날 빤히 바라만 보신다.
그러더니 불쑥 말씀하셨다.
“회사에도 전문가는 많네. 그게 아니라도 자문을 구할 데야 넘쳐나지. 내가 묻는 건…….”
“······.”
“현재 가장 핫하다는 가수에게 묻고자 하는 걸세.”
“······글쎄요. 제가 그런 쪽으론 아무것도 몰라서요.”
정 회장님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럼 달리 묻지. 지금 자네가 쓰는 핸드폰이 L사 거지, 아마?”
“······그렇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준 건 어쩌고?”
광고를 찍고 나서 협찬사로서 준 핸드폰.
“부모님……. 드렸는데요.”
날 가만히 바라보시던 정 회장님.
뜨끔해서 시선을 돌리는데,
“효자군.”
젠장. 일찌감치 S 사 거로 바꿀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때, 정 회장님이 픽하고 웃으셨다.
“그렇게 좀생이는 아니네. 그러니, 그런 표정 지을 건 없고…….”
“······예.”
“핸드폰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떻다고 보나? 아니, 다시 묻지. 음악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해줬으면 좋겠군.”
***
미치겠다.
내가 대답을 잘할 건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에이, 모르겠다.
나야 내가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걸 얘기했을 뿐이니, 판단이야 정 회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것보다는 다행이다 싶었다.
희주와의 일이 그럭저럭 잘 넘어간 거 같아서.
희주가 배웅해주는 가운데 정 회장님 댁을 나서며 한쪽 옆구리에 끼고 있는 서류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이것 참.
졸지에 땅 부자 되게 생겼네.
아, 그것도 아닌가?
이미 샤오린이 중국인지 동남아시아인지 모를 곳에 내 명의로 땅들을 사들인 걸로 알고 있으니…….
그게 아니라도 미국에 이미 건물 한 채를 가지고 있고.
오! 그러고 보니 나 부자구나!
새삼 달라진 내 처지를 자각하곤 덜컥 겁이 났다.
뭐야? 이거? 언제 이렇게 된 거야?
미쳤네. 미쳤어.
아무리 성공하면 뒤따라오는 게 돈이라지만, 이건 좀 그런데?
애당초 음악을 하려고 했던 거지, 그걸로 돈을 벌려고 한 건 아닌데…….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이라는 건 필수불가결한 법이고, 이왕이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그것도 어지간해야지.
한정 없이 많아지다가, 결국 내 통장에 얼마가 들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면 둘 중 하나라고 하신 외할아버지 말씀이 떠오른다.
먹어치우든가, 아니면 먹히든가.
돈이란 그런 마물인 것이다.
“이제 들어가 봐.”
“응. 택시 타는 것만 보고 갈게.”
“아냐. 나 그냥 지하철 타고 갈 거야.”
희주에게 말하자, 눈이 동그래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희주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곤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다행이야.”
“응?”
“……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뭐라는 거야?
내가 왜 달라져?
싱겁긴.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하네. 나, 김도준이라고. 알면서 그래.”
“응! 알아!”
“그래. 그럼 됐고. 나 간다.”
손을 흔들자, 희주 역시 그 작고 가녀린 손을 살살 흔들었다.
그렇게 성북동을 떠났다.
***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정 회장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한데, 그 눈빛이 깊다.
한참 동안 창을 통해 도준이 희주와 헤어져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정 회장은 눈을 가늘게 해 보였다.
그러곤 방금까지 도준과 나누던 대화를 떠올렸다.
“품 안의 자식인 건가?”
하긴 자식을 제대로 평가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마는.
고개를 내젓고 마는 정 회장.
“어쩌지? 갈수록 더 욕심이 나는데…….”
최 회장이 하도 싸고돌기에 재능이 있다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하던지.
회사 내의 임원진들과 수많은 연구원들, 그리고 음향 전문가들이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을 고민하고 또 계획해서 내놓은 의견이었다.
허먼 사를 인수해, 그중 가장 잘나갔던 블루투스 헤드셋 하나, 즉 베스트 모델 하나를 새로운 휴대폰 발매 시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로 끼워팔자고 한 전략은.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다.
그걸 기점으로 점차 S 전자의 핸드폰들엔 집중적으로 음향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었다.
인수한 허먼 사의 기술을 가지고서.
BNW 사가 랜드로드 사, 즉 로바 그룹을 인수한 후, 그 기술로 그때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던 SUV인 X 시리즈를 만들어낸 것처럼.
한데…….
“저…….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요. 키위를 딸기에 싼값에 끼워판다고, 사람들이 기뻐할까요? 제 생각엔 그냥 덤이라고 생각할 거 같은데요? 모르긴 몰라도 중고 장터에 엄청 쏟아질 겁니다. 무려 이십만 원이 넘어가는 물건을 단돈 오천 원에 샀으니 당연하지 않을까요? 새로 출시되는 핸드폰 구매자에게만 주어지는 혜택……. 옵션이라곤 해도 결국 싼 값에 득템, 아니 거저 얻은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분명 회의 중에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잠정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지은 건 다름이 아니다.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
즉, 이번 이벤트는 어디까지나 S그룹이 허먼 사를 집어삼켰다는 상징성과 함께 앞으로 음향 쪽으로도 비약적인 기술발전을 이룰 거라는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었다.
당장 기술을 접목 시키지 못하는 이상 그게 최선이었다.
더불어 경쟁사인 L그룹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는 것이기도 하고.
베스트라고 할 순 없어도 나쁘지 않은 전략인지라, 정 회장 본인도 여태까지는 타당한 결론이라고, 그렇게 믿어왔는데…….
뭐?
“······차라리 음악을 팔라고?”
“저라면 그렇게 끼워팔진 않을 거 같은데요? 차라리, 새로운 모델 하나를……. 아, 어디까지나 현재 허먼 사 쪽에 새롭게 개발 중이거나 발매할 예정에 있는 제품이 있다는 전제하의 얘기지만요. 아무튼, 제값을 받고 파시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대신, 그걸로 들으면 완전히 달라지는 핸드폰 음향. 그리고 그 핸드폰으로만 들을 수 있는 음악. 거기에 신기종 핸드폰 구매자만이 그 헤드셋을 살 수 있다는 특권. 이 세 가지가 결합하면…….”
“대박이겠지.”
정 회장은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전략적인 면에선 그리 새롭다고 하긴 어렵다.
일본의 대표 기업인 서니에서도 곧잘 써먹는 방법이니까.
문제는 그게 먹힐 때도 있고, 외면당할 때도 있다는 거지만.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도준이 한 말의 요점을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니는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하면서 종전의 워크맨 사업에서 빌려 온 기술, 즉 노이즈캔슬링 무선 이어폰을 번들로 끼워 넣었음에도 그다지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그러기엔 스마트폰 시장에 너머 늦게 뛰어든 탓도 있었지만, 것보다는 당시에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던 니즈가 음악 쪽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 도준의 얘기가 틀렸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게임기인 플레이스페이스를 보면 알 수 있는 일.
소프트웨어가 충분히 확보된 상태에서 당시로선 비약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기술력. 거기에 게임사들이 쉽게 찍어 낼 수 있는 원천기술, 즉 CD를 적극 활용한 전략은 단숨에 게임계를 평정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아마도 도준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얘기일터다.
“헛참! 최 회장이 속깨나 끓겠구먼.”
저런 놈이 그저 음악이나 하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고 마는 정 회장이었다.
***
갈 때처럼 오는 내내 사람들에게 시달렸지만, 그래도 기분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또 내 음악을 들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건 그렇고…….
음향 기술이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분야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하고도 아주 연관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현장에서처럼 생생한 음악을 안방에서, 길을 걸으며, 차 안에서 들을 수 있다면?
후우, 그거야말로 꿈같은 얘기 아닐까?
그렇게 망상에 사로잡혀 걷는 사이, 어느새 집에 다다랐다.
그리고 막 집으로 올라가려는 찰나였다.
부르르르르.
핸드폰이 울렸다.
응? 콜린이 왜?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그 순간, 들려오는 소음들.
어째 왁자지껄한데?
마치 멀리서 온, 반가운 손님을 맞아 잔치라도 벌이는 집처럼.
“콜린?”
- 오, 브라더! 언제 오는 거야?
“······..”
이 자식들이!
새해 꼭두 새벽부터……. 아니, 새벽은 아니지만, 아무튼간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너희 어디야?”
- 응? 우리?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와악하고 터져 나왔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그중에는 귀에 익은 음성들도 섞여 있었다. 이를테면 형이라든가.
하아,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물론 콜린은 내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답했지만.
- 어디긴, 집이지.
그러니까!
그 집이…….
“일단 올라가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