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162. 파티는 이럴 때 하는 거지! (3)
정규앨범도 아니고, 반쯤은 서비스 차원에서 내놓은 앨범이다. 아니, 내놓을 앨범.
그것도 나 혼자서만 공연했던 것도 아니고,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그리고 에단과 함께 합주한 공연이었다.
게다가 콘서트도 아니고, 엄연히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연을 녹음해서 내놓는 건데 그게 대박이 났다고?
아, 진짜 이해할 수가 없네.
아니 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아서, 이미 끊긴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희주가 걱정스럽게 물어온다.
“도준아, 무슨 일인데 그래? 혹시 누가 다치기라도 한 거야?”
아, 내 표정이 그렇게 보였나?
“미안. 걱정하게 해서.”
크게 숨을 들이 마신 뒤, 말했다.
“대박이라네?”
“응? 그게 무슨…….”
“선주문 받은 게……. 다 합쳐서 거진 삼백만 장 정도 된대.”
내가 말을 어렵게 하나?
이해를 못 하겠다는 얼굴이 된 희주.
희주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였다.
제롬이 와락 달려들더니 외쳐 물었다.
“도준! 방금 뭐라고 했어? 삼백만 장? 선주문한 게?”
“으, 으응. 저, 저기 근데 이건 좀 놓고 말할…. 컥!”
이 자식이 하필 잡아도 멱살을 잡고 있어.
제롬의 손등을 탁탁 때려대자, 그제야 제롬이 흠칫하더니 얼른 손을 놓는다.
하지만,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는 얼굴로 외쳐댔다.
“세상에! 삼백만 장이라니!”
놀랍지?
놀라운 일이긴 한데, 그게 니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놀랄 일이냐?
지들은 앨범을 내놨다 하면……. 음, 그렇구나. 쟤들도 백만 단위로 팔아치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게다가…….
“선주문?”
“초가 그러지 않았나? 우리 떠날 때 선주문 걸 거라고.”
“와! 그럼 겨우 하루 만에 그 정도를 팔아치운 거야?”
“미쳤네! 과연 아시아의 ‘별’은 뭐가 달라도 다른…….”
디알로가 손발 오그라드는 말을 내뱉길래 얼른 정정해 주었다.
“미국에서도 육십만 장 나갔다는데?”
순간 장내가 침묵에 잠겼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콜린이 날 와락 끌어안는다.
그러더니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해냈구나!”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래, 다 좋은데…….
좀 살살 치면 안되겠냐?
속으로 신음을 삼키며 녀석들에게 웃어 보였다.
그제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축제다! 축제를 벌이는 거야!”
무슨 인디언도 아니고, 디알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방 뛰어다니며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다.
그런데도 누가 하나 녀석을 탓하지 않았다.
그만큼 놀랍고, 또 기뻤기 때문이다.
“축하해.”
뒤늦게 말하는 희주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아마 다른 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닐 터였다.
미국에서의 선전이 그만큼 기뻤던 거겠지.
회사식구들을 포함해서 나까지. 말들은 안 했지만, 지난번에 빌보드 차트에서 10위안에 들자마자 미끄러지자 분해했던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고마워.”
짧게 대답하는 내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은 크리스티나였다.
“저, 놀라지 말고 들어.”
여행 재밌냐고 안부차 물어오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하자, 한순간 가라앉는 분위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 기회에 장난이나 한번 쳐볼까 하다가 말았다.
그러기엔 사안이 너무 컸다.
“이번에 우리 공연했던 거 앨범으로 만들어서 출시하는 건 알고 있지?”
- 으, 응……. 그, 그게 왜? 호, 혹시 안된대?
흠, 내심 기대하고 있었나 보네.
“그런 건 아니고. 선주문부터 받았는데…….”
- …….
“벌써 삼백만 장이 나갔대.”
- 삼백 장?
“아니, 삼백만 장.”
- 그러니까, 삼백…만? 지금 만이라고 했어, 킴?
뒤늦게 화들짝 놀라는 크리스티나.
그러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가 싶더니…….
갑자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 자, 장난 아니지? 응? 그렇다고 말해! 얼른!
피식.
“장난 아니고요. 앞으로 얼마나 더 나갈지 모른대. 그러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있어. 그리고 그만 울고.”
- 으응…….
대답 뒤에는 대성통곡이 이어졌다.
그냥 기대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많이 기대했던 모양이네.
하긴, 그녀도 사람이니까.
이게 데뷔라면 데뷔인데, 기대를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거지.
그렇게 크리스티나와 눈물 젖은 통화를 끝내고 난 뒤, 곧바로 이어진 조안나와의 통
내 보고 아닌 보고를 들은 조안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가 끊긴 건가 확인해보았을 정도.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비명.
-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이, 씨! 깜짝이야!
누가 들으면 집에…. 아, 쟤 기숙사에 있지. 아무튼, 강도라도 든 줄 알겠다.
- 키이이임! 이거 꿈 아니지? 그치? 아! 아닐 거야! 이게 꿈이면 난 진짜 죽어버릴 거야! 꺄아아아아아아악!
그 뒤로도 몇 마디 오갔는데,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은 대화가 안 되겠다고 생각하곤,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전화를 건 에단. 녀석의 반응은…….
앞서 두 사람과는 사뭇 달랐다.
우리 사이에 얼마나 두터운 불신의 벽이 가로놓여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달까.
- 킴, 아무리 너라도 그런 장난은 좀 그렇지. 지금이 만우절도 아니고. 후훗, 그런 건 나한테 안 통한다고. 하려면 애들한테나 해라. 아마 크리스티나가 좋아할 거다.
“말했어. 걔들한텐 이미.”
- 그랬구나. 걔들한텐……. 음. 킴, 이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아, 그렇다고 내가 네 장난에 넘어갔다고 오해하면 곤란하고…….
“이봐요, 에단 군. 저 그렇게 한가로운 사람 아니고요. 지금 말씀드린 숫자는 팩트입니다. 정 못 믿겠으면 마루 누나랑 통화해보시던가요.”
- ……그, 그럼?
“그래.”
- 자, 잠시만……. 아니, 일단 끊어봐. 누나한테 전화부터 하게.
“누구? 마루 누나?”
- 아니, 우리 누나.
헐. 이 자식 이거 알고 보니, 시스콤이었네.
고개를 내젓곤 전화를 끊어주었다.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며, 금방이라도 통화를 끊어버릴 태세길래.
“귀엽네.”
생긴 거랑 하는 짓이랑 저렇게 딴판이니.
지금쯤 자기 누나한테 전화해서 울고불고하려나?
웃으면서 철철 울어대는 에단의 얼굴을 떠올리곤 픽하고 웃고 말았다.
“이제, 교수님께만 보고하면 되나?”
니콜 교수님의 반응?
시크하셨다.
- 축하해요.
차분하면서도 담담한 어조.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아함이 깃들어 있는 음성이었다.
“다 교수님 덕분이죠.”
- 그래요. 그렇게 하면 돼요. 한발씩 나아가는 것이에요.
“예. 명심할게요. 그럼…….”
그리고 전화를 끊는데…….
- 꺄아아아악! 아자! 아자!
쿡!
교수님도 사람이었구나.
아, 좋네.
다른 게 좋은 게 아니라, 이렇게들 좋다고 해주니까 진짜 좋다.
혼자서 음원 출시하는 거랑은 느낌이 좀 다르네.
그래서 쟤들이 저렇게 만날 뭉쳐 다니는 건가?
저만치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관심이라곤 1도 없다는 듯 서성이고 있는 레이크헬 멤버들을 보면서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렇게 관심 없는 척하려면 안 보이는 데 가서 하던가.
아까부터 줄곧 내 주위만 맴돌고 있는 녀석들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였다.
“자, 이제 전할 사람은 다 전했고.”
난 녀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파티해야겠지?”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대답들.
“해야지!”
“그럼, 파티는 이럴 때 하는 거지!”
“이옙! 파티다!”
“도준, 이번에 돈 벌면 너도 섬 하나 사라!”
“미친! 섬은 하나만 있으면 되지 뭐 하러 또 사? 그러지 말고, 그 돈으로 우리 여행 가자! 이번에 나사에서 달나라 여행 패키지로 나왔…….”
“바베큐로 할까? 아니면 깔끔하게 여자들 불러다가…….”
대체 어디가 어떻게 깔끔하다는 건지.
말을 하다말고 희주 눈치를 보며 딴청을 부리는 유진을 보며 웃고 말았다.
진짜 유쾌한 녀석들이다.
***
사흘간 많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근데 참 많은 게 변했다.
일단 카네기홀 공연 앨범의 선주문은 결국 오백만 장을 돌파했다.
뭣보다도 미국에서의 선주문이 팔십만 장을 넘겼다는 게 놀라웠다.
물론 가장 많이 팔린 곳은 중국이었다.
중국에선 샤오린이 적극적으로 나서준 덕분인지, 무려 삼백만 장이나 나갔으니까.
그리고 밤마다, 아니 시도 때도 없이 애들 그러니까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에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마다 흥분한 목소리는 갈수록 격앙되었다.
선주문하는 앨범의 숫자가 늘어감에 따라.
물론 전화가 걸려온 건 그들에게서만이 아니었다.
니콜 교수도 마찬가지로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가족들이랑 외할아버지한테서도 전화가 걸려왔었다.
뿐만 아니라 마가렛도 축하 전화를 걸어왔었더랬다.
황당한 건 전혀 그럴 거 같지 않은 사람에게조차 축하 인사를 받았다는 거였는데, 아즈마엘이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딱 한 통화긴 했지만.
그렇게 이번에 낸 앨범을 두고 많은 이들에게 축하인사를 받고 있는 동안에도, 레이크헬은 약속을 지켰다.
리노에게.
지난 삼 일간, 리노는 매일 아침 배를 타고 와서 빨래와 청소를 도맡아 했고, 요리까지 책임졌다.
아, 물론 희주가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리노는 ‘이건 약속이에요.’ 하며 정중히 거절하는 모습이었다.
뉘 집 아들내미인지, 애 하난 진짜 잘 키웠네.
싹수가 보인달까.
분명 크면 나하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물이 될 거다.
레이크헬과의 거래 아닌 거래였기에 비록 난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래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놀라는 중이기도 했고.
뭐야, 스폰지야?
무슨 애가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데도 쭉쭉 빨아당겨.
겨우 삼 일 만에 이글 혹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능수능란하게 연주할 정도였다.
그것도 전방위적으로.
기타면 기타, 드럼이면 드럼, 키보드면 키보드…….
저러다간 진짜 원맨 밴드라도 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지.
“진짜 도준 아들 아냐?”
레이크헬이 혀를 내두르며 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이제 내일이면 떠난다.
요 며칠간 일이 많았던 덕분에 휴가치곤 좀 요란하게 보낸 셈인데,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도 좋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희주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내 옆으로 와서 앉는다.
“뭐해?”
“작곡.”
“진짜 이럴래?”
킥하고 웃자, 희주가 내 옆에 찰싹 붙으며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뭐 쓰냐고.”
“음…….”
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교향곡.”
“그렇구나. 교향……곡?”
놀랐는지, 안 그래도 큰 눈이 더없이 커졌다.
저러다가 눈알 빠지면 어쩌려고.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그, 그건 아니지만…….”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중얼거렸다.
“하긴, 너라면…….”
그러곤 내가 작곡하는 모습을 조용히 옆에서 지켜만 본다.
좋다.
이러고 있는 지금이.
원래는 누가 옆에 있으면 집중을 잘 못 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희주는 다르다.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가.
아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던 부분이 술술 풀려나갔다.
슥슥슥.
연필심이 종이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소리만 방안을 울리고 있었다.
그러길 한참.
탁.
마침내 끝났다.
나중에 좀 더 다듬어야겠지만, 일단은 작곡 완료다.
연필을 내려놓고는,
씨익.
웃고 있을 때였다.
“도준아.”
“응?”
희주가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놀라고 말았다.
입술에 맞닿은 촉촉한 느낌에.
어?
이거…….
어느새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