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161. 파티는 이럴 때 하는 거지! (2)
리노의 등장에 가만히 있을 레이크헬이 아니지.
“응? 쟨 누구야?”
“딱 보면 몰라? 도준이 애잖아.”
“어? 그래? 하나도 안 닮았는데?”
“엄마를 닮았나 보지.”
“근데 좀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글쎄. 조숙한 거 아닐까?”
“그렇다고 보기에도 너무 크지 않아? 한 열 살은 돼 보이는데?”
“그럼, 도준이가 10살도 안 됐을 때 사고를 쳤다는 얘기잖아?”
“음, 그건 말이 안 되네.”
“아, 엄마를 닮았나 보지.”
이것들이!
엄마를 닮으면, 이제 갓 태어난 애가 며칠 만에 10살짜리 애가 되냐!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꼴을 보니, 장난이란 건 알겠는데…….
어지간히들 해라.
이마에 힘줄이 돋는 느낌에 인상을 팍 구기며 놈들을 한차례 노려보곤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리노가 내밀고 있는 일 달러짜리 지폐 석 장과 오 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일단 들어와라.”
돌아서는데, 희주가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게 보인다.
희주도 설마하니 아이가 진짜로 잔돈을 돌려주려고 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마음에 든 거겠지.
지금의 이 상황이.
나 역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뒤에선 아이에게 달라붙어 이것저것 묻고 있는 레이크헬의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
놀랍다.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요리를 할 줄 안다기에 시켜봤더니…….
리노가 내놓은 요리가 꽤 먹을 만하다.
근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아니 대체 몇 인분을 먹는 거야?
아까 분명 컵라면을 세 개나 먹지 않았나?
진짜 디알로의 먹성에는 손을 들지 않을 수 없겠다.
“배 안 불러?”
“약간?”
도대체 약간이라는 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거냐?
“그런데 또 먹어?”
“두 시간이나 지났잖아. 그리고…….”
“그리고?”
“맛있잖아.”
미친!
맛있으면?
배가 터질 것 같은 상태인데도 또 먹을 수 있다는 거냐?
나는 입을 살짝 벌렸다가 심각한 어조로 디알로를 불렀다.
“웰스.”
“응?”
“너, 그러다 배 터져 죽어.”
날 빤히 쳐다보던 디알로.
“푸하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제야 먹던 고기들을 내려놓는다.
그러곤 한참을 웃다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그 두꺼운 손등으로 훔쳐내곤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럼, 안되지. 근데, 야아! 요리 잘하네, 이놈.”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디알로는 기분이 무척 좋았던 모양이다.
그는 지갑을 꺼내 십 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리노에게 내밀었다.
저 돈을 받을까 모르겠네.
흠, 잔돈을 돌려주러 여기까지 오는 애인데.
당연히 안 받을 줄 알았더니…….
리노는 당연하다는 듯 공손한 자세로 그걸 또 받고 있다.
뭐냐?
쟨 돈을 받고 안 받는 기준이 뭐야?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대충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정확히 자신이 일한,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대가에 대해서만 받는다?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다 싶었다.
겨우 열 살이나 됐을까 싶은데, 저러는 걸 보면…….
십중팔구는 환경이 불우하겠지.
대부분 빨리 철드는 아이들의 경우엔 부모가 없던가, 아니면 그 부모들이란 작자들이 무능력한 경우가 많으니까.
“리노. 너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냐?”
아까부터 궁금해하던 걸 묻자, 리노가 말갛게 웃어 보인다.
“아빠가 가르쳐 줬어요.”
“……아버지?”
일단 부모는 있는 듯하네.
그럼 착취 쪽인가?
“너희 아버진 뭐하는 분이신데, 여길 아시는 거지?”
“아, 저희 아빠요?”
“그래. 너희 아버지.”
리노는 빙글빙글 웃더니,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폈다.
그러곤 대답했다.
“판사요.”
“그렇구나. 판……. 응? 판사?”
***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리노의 아버진 하와이 지방법원의 판사시란다.
어머닌 안 계시고, 누나가 한 명 있는데 지난해에 직장을 얻게 되어 미국 본토로 떠난 상황.
즉 아버진 바쁘고 대부분의 생활을 혼자서 해나가다 보니 학교 친구들이랑 반쯤 놀이 삼아 레이 즉 꽃목걸이를 관광객들에게 걸어주곤 용돈을 벌고 있다고…….
“그래서, 그 앵벌……. 아르바이트는 왜 하는 건데? 너 정도쯤 되면 아버지께 용돈 받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냐?”
“저야 그렇죠.”
“그럼?”
“친구들은 안 그렇거든요. 대부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알겠다. 무슨 말인지.
거참. 오해가 깊었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근데, 너 여기까진 어떻게 온 거냐?”
뭘 타고 온 거냐고 묻는 게 아니다.
당연히 배 타고 왔겠지.
문제는…….
뱃삯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의아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묻자, 녀석이 말했다.
“아, 말씀 안 드렸나요?”
뭘?
눈을 치뜨자, 리노가 씨익 웃어 보인다.
“저희 삼촌이 선장이세요.”
큭, 뭐야?
이거 이제 보니까. 일종의 알선이었던 거냐?
날 항구에 데려다 주고 돈을 받는 한편 삼촌인 선장이 모는 배에 태운 거네.
와아. 이 녀석 진짜 장사 잘하네.
속으로 혀를 내두르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어서 다시 물었다.
“아까 보니까, 우쿨렐레 좀 치던데, 다른 악기는 좀 만져봤냐?”
내 귀가 또 한 귀 하는지라, 안 들으려야 알들을 수가 있어야지.
그때는 여러모로 묻기 불편한 상황이라 넘어갔지만, 궁금한 걸 참기는 힘들지.
아까 들은 녀석의 연주는 이제 겨우 열 살 됐을 법한 아이치곤 상당한 수준이었으니까.
“아뇨. 우쿨렐레도 지나가 가르쳐줘서 얼마 전에야 칠 수 있게 됐는걸요.”
“지나?”
“아, 저희 반 친구예요.”
“오오! 요 녀석, 혹시 재능있는 거 아냐?”
리노의 요리솜씨에 이미 반쯤 넘어가 있던 디알로가 기대감을 드러냈다.
“제롬! 여기 지난번에 갖다놓은 우쿨렐레 있지?”
그가 소리치자, 제롬이 눈을 빛내며 얼른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가 돌아오는데, 한 손에 우쿨렐레가 들려 있었다.
그걸 리노에게 내밀자, 빤히 쳐다만 본다.
그러다가 불쑥 물어온다.
“제가 이걸 왜 쳐야 하는데요?”
“어? 그, 그건 그렇지.”
“너, 우리 몰라?”
옆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만 보고 있던 유진이 헛숨을 흘리며 묻자, 리노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레이크헬이잖아요.”
그러더니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은 킴. 오면서 알아보니까, 꽤 유명한 싱어던데요? 빌보드 차트에도 올랐을 만큼. 게다가 요즘은 클래식까지 한다면서요?”
똘똘하다.
그것도 어른 뺨칠 만큼 대차기까지 하다.
저런 아이한테 무턱대고 우쿨렐레를 내밀며 한번 쳐보라고 했으니…….
쯧, 아직 녀석을 다루는 법을 모르는 모양이네.
나는 탁자 위에 오 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올려놓았다.
어떻게 보면 방금 받았던 걸 다시 토해놓는 상황이다.
그러자, 리노가 ‘이게 뭐냐?’라는 눈빛을 해 보인다.
뭐긴…….
“연주료. 이제 칠 수 있겠지?”
히죽 웃는 리노.
돈을 챙긴 녀석은 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우쿨렐레를 받아들었다.
그 모습에 모두는 눈을 빛냈다.
지금의 이 상황이 무척 재밌다고 여기는 게 분명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
적어도 한 가지만은 마음에 들었다.
이 녀석은 어딜 갖다놔도 호구될 일은 없겠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띠링…….
그때, 리노의 우쿨렐레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린 말문이 막혀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왜?
잘 친다.
그냥 잘 치는 게 아니라, 겁나 잘 친다.
“너 아까, 우쿨렐레 배운지 얼마 안 됐다고 하지 않았냐?”
“두 달 됐는데요.”
“두 달?”
“정말?”
“저게 두 달 된 실력이라고?”
레이크헬 멤버들이 놀랍다는 듯 소리치고 있을 때였다.
베릴이 갑자기 기타를 들었다.
……기타는 언제 가져온 거야?
아, 아까 디알로가 물어 왔었지.
근데 뭐하는 거람?
왜 갑자기 기타를?
의아한 눈빛이 되어 쳐다보는 동안, 베릴은 이미 연주를 시작했다.
짧은 연습곡이었지만, 그렇다고 초보가 치기엔 난해한 곡이었다.
설마? 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 베릴이 연주를 끝내곤 말했다.
“칠 수 있겠냐?”
“…….”
대답없이 베릴만 바라보던, 정확히는 기타를 치던 베릴의 손가락만을 바라보던 리노였다.
“이것도 돈을 줘야…….”
“에이, 설마요. 저한테 지금 연주법 알려주시는 거잖아요. 저 바보 아니에요.”
리노는 배실 배실 웃더니 우쿨렐레를 들어 올렸다.
그러곤 아까 베릴이 잡았던 자세를 이리저리 흉내 내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현을 뜯기 시작했다.
리노가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2분이 채 못 되는 짧은 연주였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처, 천잰데?”
“너 이거 언제 쳐본 적 있는 거 아냐?”
“도준! 네 아들 천재야!”
“누가 내 아들이란…….”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다 말고 입을 꾹 닫곤 고개를 내저었다.
아놔, 이 자식들이랑 있으면 어느새 시트콤을 찍게 되니…….
그나저나, 진짜 천재네.
딱 한 번 본 연주법을 고스란히 흉내 내 연주한다?
몇 군데 틀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프로도 가끔 하는 실수다.
이 정도면 거의 신동 수준인데…….
“리노. 너, 음악 해볼 생각 없냐?”
놀랍게도 베릴의 입에선 전혀 나올 것 같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제안을 받은 리노는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응? 설마, 거절하는 건가?
혹시 아버지께서 음악을 반대하는 거?
그러보니, 어째 나랑 비슷한 느낌도 드는데?
***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가 생각한 드라마 따윈 없었다.
“저 바보 아니라니까요.”
단 한마디로 일축한 리노는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말해주었다.
“어차피 제가 하고 싶으면 아버지가 반대해도 결국 할건데요, 뭐. 그리고 아직 확실치도 않잖아요. 제가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지는. 저도 이번에 우쿨렐레 배우면서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모르잖아요. 일단 배워보고 진짜 잘 하게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얜 뭔가 싶었다.
무슨 애가 애다운 맛이 없어.
근데, 그게 또 리노의 매력이다.
확실한 자기주장만큼이나 주제넘은 짓은 절대로 하질 않는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좋아. 정리됐지? 앞으로 사흘간 넌 매일 여기 와서 청소와 빨래, 밥을 한다. 그리고 그 대신 멤버들한테 삼십 분씩 연주를 배운다. 오케이?”
어떻게 들으면 아동 착취 아니면 불공정 거래처럼 느껴질 법한 얘기를 디알로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걸 들으며 난 웃고 말았다.
왜냐고?
꽤 흥미롭잖아?
이것 참.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재미있는 녀석을 찾아냈다고나 할까.
한껏 기대감을 담아 리노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
내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진동했다.
꺼내서 확인하니, 마루 누나다.
“예. 누나.”
- 도준아.
떨리는 음성?
또 무슨 일이기에……. 설마 누가 다치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에 서둘러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큰일이라도 났어요?”
- 크, 큰일은 아니고…. 아니, 큰일인가? 하아……!
뭐기에 저러는 거야?
슬슬 빨라지기 시작한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막 되물으려는 찰나였다.
- 유, 육십만 장!
“예?”
- 이번에 출시할 앨범 말이야.
앨범?
아, 그거!
엊그제 카네기 홀에서 에단 3인방이랑 함께 공연한 거 말이지.
“그게 왜요?”
- 선주문……. 선주문이 육십만 장을 돌파했어!
과연 누나가 흥분할 만도 하네.
출시한 것도 아니고, 출시하겠다고 하면서 선주문을 받은 것뿐인데 육십만 장을 돌파하다니.
“대단하네요.”
- 그치? 장난 아니지? 근데…….
뭐야? 놀랄 일이 또 있나?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하긴,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한국과 중국에 있는 팬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그리 놀랍다고만 하긴 어려울 테니…….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어서 되물었다.
“설마 아직 출시도 안 했는데, 음원 차트 쓸어버린 건 아니겠죠?”
농담처럼 물었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은…….
- 그건 아니고, 아까 말한 육십만 장…….
“……?”
- 미국에서만 팔린 숫자야!
“……!”
놀랐다.
이번엔 확실하게.
그러니까, 아까 말한 육십만 장이라는 게 미국에서만 선주문 받은 숫자라고?
그럼, 나머지 지역에선…….
궁금증이 가슴속에서 솟구쳤을 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마루 누나가 치고 들어왔다.
- 짐작하겠지만, 현재 한국에선 팔만 장, 중국에선 백칠십만 장이 나갔어. 그밖에 일본이랑 동남아시아 쪽에서도 다 합치면 거진 오십만 장가량 될 거 같고.
헐! 그걸 다 합치면 대체 얼마야?
- 아, 아무래도 이번에 너…….
“…….”
- 대박 난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