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58화 (158/260)

# 158

#158. 아직 멀었어요(2)

얼척 없네, 진짜!

뭘 버려, 버리긴!

누가 들으면 딱 오해하기 좋은…….

흠칫!

뒤통수에서부터 느껴지는 싸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가 몸이 굳어버렸다.

언제들 온 거야?

잔뜩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변명처럼 한마디 하려는데…….

“흠, 그랬구나. 우리 도준이가…….”

“그만! 거기까지! 더 얘기하면 진짜 가만 안 있을 거야.”

내 엄포에 막 뭔가 해선 안 될 말을 지껄이려던 디알로가 재빨리 입을 닫는다.

아, 진짜 욕 나오려고 하네.

나도 모르게 얼굴을 팍 일그러뜨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마루 누나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이 시뻘게져 있는 게 보인다.

웃음을 참느라 무던히도 애쓰는지 어깨까지 들썩이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풉!”

도저히 못 참겠는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그랬구나. 우리 도준이가……큭큭…그랬구나. 쿡!”

아저씨도 빙그레 웃고 계셨고, 심지어는 고 팀장님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이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다들 낄낄거리고 있다.

특히 레이크헬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지들끼리 만담을 주고받으며 지금의 이 상황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뭐야?

날 놀리고 있는 거였어?

“아, 진짜! 너무들 한 거 아…….”

“어어어!”

“꺄악!”

뒤통수에서 날아드는 비명을 굳이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한가롭게 굴 시간조차 없었으니까.

젠장!

나는 뒤로 넘어가며 금방이라도 바닥을 향해 머리통을 처박아버릴 듯한 아즈마엘에게로 달려들었다.

아이 씨! 조금만 마시긴 개뿔이!

***

기절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소파에 잠들어 있는 아즈마엘을 바라보았다.

고른 숨을 내쉬며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다행히 어디 아픈 거 같지는 않다.

잠깐이긴 했지만, 날 놀리며 장난스럽게 굴던 사람들도 어느새 진지해져 있었다.

“근데, 아즈마엘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

중얼거리다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에단.”

“으, 응?”

“너냐?”

“뭐, 뭐가?”

저건 진짜 입이 싸도 너무 싸다.

앞으로 절대로 저 자식하곤 비밀스러운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거기에 비해 순진하긴 또 얼마나 순진한지, 거짓말이라곤 손톱만큼도 못한다. 말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표정이며 말투에서도 온전히 드러난다.

지금처럼.

말을 더듬으며 차마 내 눈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녀석을 다그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까 관객석에서 보이더니, 충격이 컸던 모양이군요.”

니콜 교수의 얘기 때문이었다.

아니, 대체 뭐가 그렇게 충격적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다들 아는데 나만 몰라! 하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안다.

지금의 내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작곡도 잘하고 어떤 악기도 어지간해선 몇 번 만져보는 것만으로 곧잘 연주해낸다. 거기서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수준급 실력으로 끌어올리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노래를 하면……. 그래, 이제는 오감의 기운까지 내포한 덕분인지 내가 전하고 싶은 감정을 전달하기도 쉬워졌다.

근데, 그게 뭐?

솔직히 여기 모인 사람들치고 천재 아닌 사람이 있기나 하나?

따지고 보면 혁수 아저씨조차 범상치 않은 사람이다.

고 팀장님도 만만치 않고.

심지어는 마루 누나까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회사 식구들이 이 정도인데, 다들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인 저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

니콜 교수님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보아온 바에 따르면 그쪽도 천재과인 거 같고.

마가렛을 필두로 레이크헬 등이야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거물들이니 논외로 친다 쳐도, 오늘 나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에단들도 만만찮을 정도의 음악 천채들 아닌가.

애당초 줄리아드에 발을 들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터다.

희주나 샤오린, 실비아 같은 이들만이 나와 비슷하다고 할 정도의……. 음,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닌가?

샤오린은 중국에서 난다긴다하는 배우들을 제치고 아직도 두터운 팬층을 지니고 있는 스타였으며, 한편으로는 젊은 나이에 투자 쪽에도 관심을 가져 몇 년 안 되는 사이 거대한 부를 일궈낸 천재.

우리 빨강머리 실비아는 한번 꽂혔다 하면 오직 한길만 파는 스타일인데, 그래서 그런가 그녀가 찍는 사진들은 누가 봐도 아마추어급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여자도 천재라면 천재겠지.

희주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근데, 왜들 이러냐고.

아즈마엘.

허먼 교수님조차 인정한 천재 아냐?

그런데 충격?

무슨 충격?

그동안 자기만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보다 조금 잘나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니까 한순간 멘탈이 나가버린 거야?

장난하나!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제정신으로 살아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현재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발표한 예측에 따르면 세계인구수는 무려 76억 명이다. 예상하는 게 이렇다는 거지, 실제론 더 될 테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천재는 또 얼마나 많겠냐?

니콜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천재를 가볍게 씹어먹어 버릴 재능의 소유자들, 즉 괴물들은 또 얼마나 많을 거고.

나?

절대로 천재는 아니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이러고 있지만, 실상은 내가 지닌 재능의 대부분은 노래방에서 예측조차 안 되는 세월 동안 반미치광이 상태로 익혀온 것들을 기반으로 한다.

덕분에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죽도록 노력하는 중이고.

봐라.

지금도…….

그릇인지 뭔지를 깨지 않기 위해서,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그 크기를 키워보려고 아등바등 발버둥치고 있는 거.

안 그랬다간 음악이고 나발이고 죽을 판이니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 삶의 전부나 다름없게 돼버린 음악을 관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데 뭐?

질투?

충격?

지랄하고 자빠졌네.

기가 막혀서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있을 때였다.

“킴. 그런 얼굴 하지 말아요.”

니콜 교수의 말을 들으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다들 날 바라보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 아주 조금 화가 났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않고선…….

“아즈마엘은 길을 잃은 거에요.”

“…….”

“아마, 어제오늘 일은 아닐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꽤 오래전부터 저런 상태였겠죠.”

니콜 교수는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잠들어 있는 아즈마엘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그녀가 말했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어요. 아니, 어릴 때부터 주위로부터 온갖 찬사와 기대를 받아온 이들이기에 무너질 땐 더욱 쉽게 무너지는 거에요. 킴은 그걸 이해해야 해요.”

내가 왜?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들 때문이었다.

노래방에 갇혀서 지냈던 그 시간들.

100점을 맞으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누구도 그게 맞다고 말해주진 않았기에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믿는 수밖에 없었고, 그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길을 꾸역꾸역 걸어나갔다.

천만다행으로 내 예상이 들어맞아, 결국 노래방에서 나올 순 있었지만…….

그때의 심정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가?

아즈마엘도…….

난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아즈마엘의 얼굴을 바라보곤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말았다.

***

흥이 식으면서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던 파티였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밤늦도록 이어지는 중이다.

노는 거라면 일가견이 있는 다섯 명, 아니 베릴은 빼자. 아무튼, 네 명의 록스타들 덕분에.

하여간 진짜 잘 논다니까.

테라스에서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창안 쪽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한차례 바라보곤 멈칫했다.

희주가 가만히 선 채 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시계를 보며 뭔가 안달 난 표정인데…….

현재 시각 11시 50분.

이제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도 끝나는구나.

그래서 그런가?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왜 저러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릴 때, 희주는 뭔가 결심을 굳혔는지 다부진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그러곤 입술을 잘근거리며 내가 있는 테라스 쪽으로 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테라스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아저씨께서 모습을 드러내셨다.

양손에 맥주병을 들고서.

“마셔라.”

“저 아직 미성…….”

“마셔라.”

군말 없이 맥주병을 받아들었다.

그러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쭈욱 들이켰다.

안 그래도 목이 탔기에.

“어? 이거 알콜이 없네요?”

요즘 자주 못 봐서 그런가?

아저씨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는 걸 보니, 왠지 얄미워졌다.

저런 표정 지을 땐 꼭 속을 긁어대던데.

아니나 다를까.

“너 술 약하잖아.”

까닭 모를 억울함과 함께 뭔가 속에서 울컥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거에요!”

“어려? 누가?”

“그야…….”

말끝을 흐렸다.

그러보니, 내년이면 벌써 열아홉 살이다.

한국에서야 아직 미성년자로 분류되지만, 어지간한 나라에선 성년 취급을 받고도 남을 나이다.

심지어는 이 정도 나이에 결혼하는 이들도 수두룩 빽빽하고.

“도준아.”

“…….”

“난 네가 기특하다.”

앞뒤 다 자르고 들어오는 아저씨의 화법. 거기에 말려들기엔 우린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다. 2년도 안 되는 그 짧은 기간임에도.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있자, 아저씬 픽하고 웃고는 말씀하셨다.

“음악이야 원래부터 잘했으니, 더 할 말이 없고……. 내 눈엔, 네 주위에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어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아실까?

지금 내 상태를?

이번엔 운 좋게, 사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됐는지 아직 감도 못 잡았지만, 아무튼 그릇이 깨지지 않고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계속이 될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한마디로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다.

그 망할 놈의 그릇은.

그걸 알기는 하는 걸까?

나는 가만히 아저씨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말해야 하나?

이제라도 지금의 내 상태에 대해 털어놓고, 상의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고.

쯧, 그러려면 노래방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믿기나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상념에 휩싸여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데는 필경 이유가 있는 걸 테다. 그건 아마도 어둠 속에서 빛을 보고 모여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지 모르지.”

아저씨는 계속해서 얘기하셨다.

“저들을 받아들이란 얘기는 아니지만, 내치지도 마라. 그저 흘러가는 대로 따르는 것도 순리. 뭔가를 억지로 하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아저씬 돌아서고 계셨다.

어?

이게 끝?

뭔가 나한테 좀 더 그럴싸한 조언을 해주시지 않고.

아쉬웠지만, 아저씨가 해주신 말씀을 허투루 넘기진 않았다.

그래서 아저씨께서 테라스를 떠난 후에도 도심 쪽으로 시선을 던진 채 생각에 잠겼다.

흘러가는 대로 놔둔다……라.

뭔가 잡힐 듯 말 듯한데…….

그때였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지 뒤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가 사라졌다.

돌아보니, 희주다.

근데, 얼굴이 빨간 게…….

“너 혹시 술 마셨어?”

“조, 조금……. 오늘 처음 마셔본 거야. 지…진짜야!”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끄럽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던 희주였지만, 그 와중에도 조용히 걸음을 옮겨 내 앞자리로 와서 앉는다.

그러곤 뭔가 말할 듯 말할 듯하면서 아무런 말도 못한다.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고는 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이내 입술을 잘끈 씹고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곤 아까보다 두 배는 빨개진 얼굴로 더듬거렸다.

“나, 나……. 1월 2일까지는…여기 있어도 되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렇게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부끄러워 죽으려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랬더니…….

“도…준아.”

“응?”

“저, 저기…….”

“뭔데 그래?”

숨을 크게 들이 마신 희주가 떨려는 음성으로 얘기했다.

“우리……여행 가지 않을래? 다, 다, 단둘이서…….”

자, 잠깐.

앞에 말은 이해가 가는데, 뒤에 붙은 말은 뭐지?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방금 둘이서만이라고 하지 않았나?

멍해졌다.

얘는 무슨!

갑자기 훅 들어오고 그래!

후우! 그건 그렇다 치고.

정말 그래도 되나?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뒷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러면서 바라보니, 희주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

아마 여기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쪼르르 달려가 숨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쯧, 여행 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래, 가자!”

“정말?”

더없이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자, 여태까지 고민했던 게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다.

내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아, 근데 어딜 가지? 나 아직 면허도 없어서…….”

그때였다.

테라스 한구석, 그늘져 어두운 곳에서 시커먼 뭔가가 스르륵 일어났다.

“뭘 그런 걸 걱정해?”

“아씨! 깜짝이야!”

“크크큭. 도준. 그런 일이 있으면 이 브라더한테 얘기했어야지.”

어둠 속에서 벗어난 한 마리 곰…. 아니 디알로가 손가락인지 몽둥이인지 모를 걸 흔들어댄다.

그러면서 별걸 다 고민한다는 어투로 말했다.

“남태평양으로 가.”

“나, 남태평양?”

왜 하필 남태평양이지? 거기가 따뜻해서 그러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녀석이 얘기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 몰랐어? 우리 이번에 거기에 섬 하나 사뒀거든.”

황당해하는데, 그가 덧붙였다.

씨익 웃으면서.

“둘이서 지내기엔 더없이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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