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56화 (156/260)

# 156

#156. 매혹 (4)

레이크헬의 대표곡인 ‘SOMETHING OR NOTHING’은 전형적인 록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만큼 밴드들이 각광받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대세라고 하기엔 어려운 록 음악인데도 당시에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리듬이나 멜로디가 좋고 멤버 전원의 연주가 뛰어난 까닭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곡이 지닌 진정성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가사는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뭐, 그럴 수밖에.

놀랍게도 이 곡의 가사는 유진이 썼다.

정확히는 사흘 밤낮으로 술을 마신 상태에서 썼다는데, 정작 본인은 기억하지 못한단다.

크크큭. 취중에 진담이 나온 셈.

근데 그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만 거다.

그것도 실연당해 다 죽어가면서 쓴 가사로.

거기에 콜린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가 바로 ‘SOMETHING OR NOTHING’이었다.

재밌는 건 이 노래가 사랑 노래가 아니란 거였다.

뭐랄까.

인생에 대한 고찰?

사랑이 삶의 절반 이상, 아니 전체를 차지한다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유진이었기에, 진짜로 사랑했던 여자와 헤어진 뒤에 오는 상실감과 슬픔이 그에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준 건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설마하니 그게 히트를 칠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이 자리에서 그 곡을 클래식으로 바꿔서 연주하게 될 거라곤 정말이지 상상치도 못한 일이고.

에단의 바이올린을 통해 흘러나온 가녀린 선율이 무대를 벗어나 연주홀을 울리는 동안, 조안나의 첼로 소리가 낮게 깔리며 퍼져 나갔다.

그러는 사이 크리스티나가 피아노를 치며 나와 호흡을 맞췄다.

나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녀석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였다.

때론 진지하면서도 또 때론 유쾌한 콜린. 그러면서 때로는 어른스럽게 적절한 조언도 해주곤 하는 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말수는 적지만 항상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베릴.

늘 툴툴거리지만 속정이 깊어서 가끔은 한국사람을 대하는 기분까지 들게 만드는 유진.

예전엔 날렵한 몸매를 가졌었다는데, 지금은 잘 먹고 잘 놀아서 그런가 덩치 큰 몸만큼이나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여주는 디알로.

팀의 막내로서 천진난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날카롭고 스마트한 면모를 보여주곤 하는 제롬.

나는 이들 다섯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존경한다.

이들 앞에선 돈도, 물질도, 명예도 한 줌 먼지보다 못하다.

오직 음악만이 전부인 남자들.

뭐, 그 때문에 가끔은 하루살이처럼 눈앞의 즐거움만 쫓는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내게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스승이었다.

겨우 1년 남짓한 시간을 알고 지냈을 뿐인데도.

그들은 내가 아직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을 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그런 그들의 노래를 부른다.

당연히 설레지 않을 리 없다.

가슴이 무언가로 가득 차며 살짝 떨릴 정도.

그래서 그런 걸까?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더 이상 순백이 아니었다.

록과는 다른, 그러면서도 어딘지 닮은 소나타 풍의 곡조가 만들어내는 음들이 다섯 남자를 표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갖가지 색깔과 함께 향기마저 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음들이 뛰노는 모습조차 다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니 느끼면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란 소통이기도 하구나.

갑자기 가슴이 묵직해졌다.

그러면서 뭔가 콱 막힌듯한 느낌.

노래에 담긴 다섯 사람의 열정이 느껴졌고, 그 인생이 보이는 듯하고, 그들의 생각이 읽혔다.

거기엔 기쁨도 있었지만, 슬픔도 있었으며, 때론 안타까운 감정들도 들어 있었다.

왜 그런지, 그 까닭도 모르고 거기까진 알고 싶지 않았지만, 이 느낌을 이대로 묻어두기엔 지금의 내 감정은 이미 한껏 치달아 있는 상태였다.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입술 사이로 소리가 튀어나왔을 때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한, 감정이라는 걸 형상화할 수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그런 무언가였다.

그것이 천천히 무대를 잠식하고, 이내 관객석으로 퍼져 나갔다.

***

콜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내 들려오기 시작한 세 사람,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 바이올니스트의 연주도 대단한 실력이었지만, 무엇보다 전형적인 록이라 할 수 있는 ‘SOMETHING OR NOTHING’를 클래식으로 완전히 뒤바꿔버린 도준의 재능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놀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연주가 이어지다가 도준이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가는 순간이었다.

노랫소리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

너희는 잘못되지 않았어.

인생을 음악에 걸고, 마치 목마른 자들이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듯 자신들의 음악을 추구해온 너희. 그 도전은 조금도 틀리지 않아.

그렇기에 너희가 만들어내고, 연주하고, 들려주고, 불러주는 노래들은 사람들에게 닿아 그때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 무언가 특별한 걸로 바꾸게 만들어주는 거야.

마치 바로 옆에서, 아니 가슴에 대고 직접 들려주는 듯한 그 음성에 콜린은 눈을 치뜨고 말았다.

“어? 이거……!”

“뭐야, 지금 뭐지?”

“저, 저 새끼……. 나한테…. 큭! 뭔 짓을 한 거야!”

유진이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눈가가 그렁그렁하다.

그러면서도 입매는 웃음으로 비틀어져 있다.

비단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디알로도, 베릴도, 제롬도……. 콜린도 마찬가지.

그들은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었다.

이제껏 자신들이 해온 것들에 대한 보상을 받은 듯한 기분에 가슴이 먹먹해진 것이다.

다섯 남자가 마음으로 울고 있었다.

꼭 자신들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노래를 통해 말하고 있는 도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클래식을 애호한다고 해서 대중음악을 듣지 않는 건 아니다.

특히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곡들은 듣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을 수밖에 없다.

라디오를 틀면 나오니까.

그게 아니라도 길거리에 나서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니까.

귀를 막고 사는 게 아니라면 듣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개의 사람들은 딱히 대중음악이라고 해서 듣기 싫어하진 않는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감성이 풍부하다는 얘기기에 한때의 유행일망정 클래식에 비해 짧은 시간 동안 떴다가 사라지는 노래들도 즐기곤 한다.

다만, 때와 장소를 가리고, 대중음악보단 클래식 쪽을 좀 더 선호한다는 정도의 차만 있을 뿐.

그건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커튼콜 대신 외친 앵콜에 호응해 도준과 에단 3인방이 ‘SOMETHING OR NOTHING’을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것이 몇 년 전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강타했었던 레이크헬의 대표곡임을.

하지만, 그다지 기대하진 않았다.

그들이 비록 도준의 음악이 전해준 기이한 열기에 취해서 잠시간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곤 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긴 콘서트장도 아니었고, 지금 들려주는 곡 또한 클래식으로 편곡된 곡이란 걸.

그렇기에 그들은 자리를 지킨 채 가만히 앉아 도준이 들려주는 노래를 얌전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

관객들의 표정이 급격히 달라져 간다.

어떤 이는 얼굴이 일그러졌고, 또 어떤 이는 눈가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숨을 멎은 채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심지어는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도 보였다.

그 이유를 마가렛은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나, 나를 인정해주고 있어?’

노래가?

저들이 연주하는 곡이?

그녀는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올라오는 느낌에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러곤 그 손을 들어 잠시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열여섯 살에 베를린 필하모니와 함께 무대에 섰었다.

그때부터 이 손으로 수없이 건반을 치고, 사람들의 환호 속에 화려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세상은 자신을 피아노의 여제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성공한 인생이 틀림없다.

피아니스트를 꿈꿨고, 동시대엔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실력을 뽐내며 여제라고까지 불리고 있으니까.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성공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녀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름의 고충이 있었고, 번민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이 옳은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과연 바른가?

줄곧 고민해왔고, 무엇하나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마가렛은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엔 이미 너무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 말한다고 해도 아무도 이해 못 할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가끔씩, 허해지는 마음을 달래고자 유니세프 대사로 활동하기도 했고 때때로 후배들의 음악을 들으려 직접 연주홀을 찾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무대에 설 때와 달리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과 그 위에 쓴 뿔테 안경, 그리고 스카프와 함께 차려입은 수수한 옷차림 때문인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무튼, 그런 그녀였기에 지금 받고 있는 충격은 크기만 했다.

‘어, 어떻게?’

무대 위의 도준은 음악으로 얘기를 해오고 있었다.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걸어온 길은 무조건 옳다고.

힘들었을 테지만, 잘 버텨냈다고.

그 길이 불안할 테지만,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고.

대체 이건 뭐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마가렛은 누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확연히 깨닫는 중이었다.

지금 도준은 자신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일종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연주로.

음악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연주홀을 가득 채운 노래로.

파르르르.

‘나……. 그동안…….’

입술을 잘끈 씹는 그녀.

“……애써왔구나.’

눈썹을 떨던 마가렛의 눈가가 떨린다 싶은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에 빛이 어리고 있었다.

시선은 도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고.

***

노래가 끝났다.

그럼에도, 장내는 묵직한 정적만이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누구 하나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 한 명 무대에서 시선을 거두지도 못했다.

그런 채로 얼마나 지났을까.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착각 속에서 갑자기 박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일제히.

모두가 기립한 채로.

그저 예의상 치는 그런 박수가 아니었다.

손이 부서져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갈채였다.

아까와는 달리 어떠한 환호성도 없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관객들의 마음을 확실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레이크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난 그들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미친 듯이 박수를 쳐대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니콜 교수는 미소를 머금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 역시 촉촉해져 있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녀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도준이 앞으로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어하는지 희미하게나마 본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결심하게 만들었다.

도준의 앞날에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그렇게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이 막을 내렸다.

매혹.

이곳을 찾아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 뒤흔들어버린 채로.

***

바깥은 인산인해였다.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과 오늘 새롭게 팬이 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나갈 수가 없다는 얘기다.

덕분에 조금 난감해져서 대기실에 앉아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들어오셨다.

그 뒤를 이어 마루 누나와 고 팀장님, 그리고 니콜 교수님까지.

레이크헬은 여기까지 오지 못하고 중간에 간신히 몸을 피해 도망치듯 떠났다고 들었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얼굴들을 확인하다가 옅게 미소 지었다.

희주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눈이 살짝 부은 느낌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물으면 안 될 거 같아서.

그저 시선을 교환하며 웃어주었을 따름이다.

그러곤 샤오린과 실비아와도 인사를 나누었을 때였다.

어?

모르는 여자가 일행들을 뒤따라 문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탁!

문이 닫히는 순간, 니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여긴, 마가렛 헤라시오네 씨.”

생각지도 못했던 이의 방문에 말문이 막혀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 때, 진한 갈색 머리칼을 지닌 중년 여성이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냈다.

뒤이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당신, 피아니스트가 아니었군요.”

피아노 소리만큼이나 맑은 음성이었다.

마치 영혼을 울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 목소리로 그녀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떨리는 음성으로.

“아티스트였어.”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뻗어온 손이 내 뺨을 쓰다듬었다.

마치 찾아 헤매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런데…….

그 손길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때, 마가렛 헤라시오네가 옅게 미소 지었다.

“당신과 연주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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