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54화 (154/260)

# 154

#154. 매혹 (2)

3분 16초짜리 원곡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이미 곡은 3분을 훌쩍 넘어 4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중세 이전부터 성가를 위해 반주한다는 개념으로 시작해 종교적인 색채를 조금씩 지우며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발전해온 클래식.

그 클래식을 대표하는 악기를 꼽으라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들어갈 세 개의 악기들.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바이올린이 현대적인 악기 중 대표적인 악기인 드럼과 만나 4분을 넘어 5분이 다 되도록 기가 막힌 앙상블을 이뤄내는 중이었다.

누구도 시선을 떼지 못했고, 단 한 순간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무대를 중심으로, 반으로 갈린 연주자들.

그중 왼편에서 리드미컬하게 스틱을 휘두르고 있는 동양인 청년에게선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아서 한번 보면 도저히 눈길을 거둘 수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도준이 스틱을 휘두를 때마다 튀어 오르는 땀방울들이 탐을 두드려대는 타음과 묘하게 어울려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그렇게 관객들 모두가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 그리고 드럼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취해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였다.

순간, 모든 악기가 멈추었다.

드럼만 빼곤.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끝없이 이어지는 드럼 소리.

갈수록 빨라지는 그 소리에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고, 또 누군가는 피가 날것처럼 주먹을 말아쥐었으며, 또 어떤 이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슴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드럼은 멈추지 않았다.

끝없이, 끝없이…….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치닫던 드럼 소리가,

……타당! 탕! 탕! 타앙! 챙!

하지만, 모든 것은 끝이 있는 법.

도준이 신들린 듯 휘두르던 스틱들이 미들 탐과 스몰 탐 그리고 하이햇을 연거푸 때린 후 멈췄을 때였다.

팟!

무대를 비추던 네 개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후욱!”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관객들.

그중 디알로는 충격으로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뭐, 뭐야? 7분?’

기가 막혔다.

얼마 듣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7분이나 흘렀다고?

원곡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니 그럴 틈을 느낄 수조차 없었다.

드럼 소리가 계속해서 심장을 두드렸고, 그 때문에 온몸을 휘도는 피가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시끄럽다거나 정신 사납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들지 않았다.

오늘 이곳에 온 관객들 대부분이 클래식에 정통했으며 그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음악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는 자들임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드럼만 혼자서 연주한 게 아니었으니까.

드러머의 존재가 압도적이긴 했지만, 조금 전의 연주는 분명 협주였다.

다들 잊고 있는지는 몰라도 귀는 제대로 듣고 있었던 것이다.

드럼 소리에 밀릴 듯 밀릴 듯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며 청명하게 홀을 울리던 피아노 소리.

낮게 깔리며 자칫하면 붕 떠버릴 수 있었던 곡을 주저앉히고 동시에 부드럽게 곡 전체를 어루만지던 첼로 소리.

그 사이에서 툭툭 끊기는 타음과는 달리 끊길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며 아름다운 선율로 드럼 소리가 치고 지나간 공백을 메우던 바이올린 소리.

그 세 개의 소리가 드럼 소리를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기에 연주는 오히려 풍성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들 연주가 끝났음에도 멍한 상태인지 모른다.

방금까지 심장을 울리던,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르르 전해지던 쾌감의 여운.

그 여운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관객들 모두는 그저 불이 꺼진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딴딴딴.

경쾌하기 짝이 없는 피아노 소리였다.

한데, 그 음은 이곳에 있는 누구 하나 모르는 이가 없는 소리이기도 했다.

도레미.

대여섯 먹은 아이들도 칠 수 있을 정도의 음계.

하지만,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될 연주가 무엇인지.

“도레미송?”

누군가 작게 외쳤을 때였다.

도레미.

다시 한 번 울린 건반 소리.

동시에 떨어진 핀 조명.

크리스티나가 피아노를 치면서 금발을 드리운 채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에 관객들이 홀린 듯 자신들도 모르게 따라 웃는 순간이었다.

도레미.

“어?”

다시금 들려온 소리.

한데, 크리스티나가 친 소리가 아니다?

모두가 의아해져서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팟! 하며 빛 한줄기가 떨어졌다.

무대 왼편에.

“아!”

놀랍게도 그곳에는 또 한 대의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조안나. 그녀가 건반을 치고 있다.

한데, 놀라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도레미.

마치 후렴구처럼 따라붙는 소리는…….

중앙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는 찰나였다.

한 템포 늦게 떨어진 빛.

그렇기에 다들 궁금함과 기대감으로 눈을 떼지 못하던 무대 중앙.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도준. 그가 또 한 대의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원곡에 충실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뿐만 아니라 세대의 피아노가 마치 돌림노래라도 하듯 기막히게 곡을 풀어내고 있을 때, 바이올린 소리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에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덕분에 풍부해진 음들은 이제 마음껏 무대 위에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그러곤 금세 홀 안으로 퍼져 나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냈다.

도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노랫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Let's start at the very beginning.”

- Let's start at the very beginning

A very good place to start

When you read you begin with……?

기초부터 시작하자.

배우기 쉬운 노래가 있어.

글을 읽을 땐 뭐부터 배우지?

도준이 노래를 부르며 묻자, 저만치서 크리스티나가 대답했다.

마치 꼬마 숙녀처럼 들뜬 목소리로.

“A, B, C!”

물론 피아노를 치면서.

그 모습이 어찌나 천진난만한지 관객석 여기저기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을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준은 능청스럽게 다시 노래한다.

“When you sing, you begin with, (노래를 배울 땐,)”

그러자 이번에는 조안나가 외쳤다.

피아노 소리와 함께.

“Do-Re-Mi.”

아까보다 좀 더 커진 웃음소리.

관객들은 이미 이곳이 클래식을 공연하는 곳이란 걸 잊은 듯 보였다.

그만큼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아니 보여주는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Do-Re-Mi.”

이번에도 마찬가지.

도준이 선생님이라도 된듯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와 함께 노래하자, 그 뒤를 이어…….

“Do-Re-Mi.”

크리스티나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했고,

“Do-Re-Mi.”

한 박자 차이로 조안나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때,

“Do-re-mi-fa-so-la-ti.”

무대 한편에서 바이올린을 켜면서 에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래를 부르면서.

그 모습에 도준이 픽하고 웃더니, 노래를 이어받았다.

“오케이!”

신명 나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원곡과는 조금 다른 리듬으로 쳐지는 피아노 소리.

“Let's see if I can make it easier.(좀 더 쉽게 해보자.)”

그때부터였다.

세대의 피아노가 음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원곡과는 확연히 다른,

재즈풍의 리듬으로.

그 속에서 그들이 본격적으로 노래했다.

“Doe!”

크리스티나가 외치자,

도준의 입에선…….

“Doe, A deer, a female deer.(도는 사슴 중에 암사슴.)”

뒤이어 조안나가 외쳤다.

“Ray!”

“Ray, A drop of gloden sun.(레는 금색 태양빛.)”

- “Me,” A name I call myself

“Far,” A long long way to run

“Sew,” A needle pulling thread

“La,” A note to follow so

“Tea,” A drink with jam and bread

미! 는 날 부르는 이름

파! 는 멀리 가는 것

솔! 은 꿰매는 바늘

라! 는 솔 다음에 오는 음

시! 는 빵과 마시는 차

여기까지 했을 때, 세 사람을 조금 시큰둥하게 쳐다보고 있던 에단이 끼어들었다.

“That will bring us back to Doe, oh oh oh!(그럼 다시 돌아가서, 도오오오오!”

바이올린을 켜며 목청을 돋우는 모습.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이번에도 관객석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재즈풍이던 곡이 완전히 바뀌며, 마치 스윙재즈의 대가인 글레이든 밀러가 부르기라도 하듯 도준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에 맞춰 악기들도 재즈풍으로 연주를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영화만큼이나 유명한 노래인 도레미 송이 재즈로 바뀌어 사람들의 마음을, 아니 어깨를 흔들기 시작했다.

***

공연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도레미 송에 이어서, ‘Morning Hymn’, ‘ Sixteen Going On Seventeen’, ‘My Favorite Things’가 연주홀에 울려 퍼졌다.

그것도 곡마다 완전히 달라진 풍으로.

단지 편곡만이 아니었다.

‘My Favorite Things’의 경우엔 시작만 같았을 뿐, 가사가 현대적으로 바뀌어 있었고, 리듬도 거의 팝처럼 재해석되어 불렸다.

당연히 그때마다 연주는 각 곡에 가장 어울리는 연주법으로 소리를 만들어냈고, 네 사람의 실력은 관객들을 감탄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노래는 단 한 곡.

너무 유명해서 식상할 수도 있는 곡.

바로 에델바이스였다.

크리스티나와 조안나의 피아노 이중주로 시작한 이 곡을 부른 것 역시 두 사람.

크리스티나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와 조금은 거칠지만 어딘지 모르게 섹시한 느낌이 드는 조안나의 음성이 절묘하게 매칭되어 들려오는 에델바이스는 원곡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의 노래가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 Blossom of snow may you bloom and grow.

Bloom and grow forever….

눈 꽃송이여, 부디 꽃 피우고, 자라기를,

꽃 피우고 자라기를, 영원히….

지이이이잉!

무대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여기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리였다.

그럴 수밖에.

일렉트릭 기타 소리였으니까.

너무 갑작스러웠는지, 관객석이 술렁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 몰랐다.

하지만, 소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무대 뒤쪽에서 걸어나오는 도준.

그가 기타 현을 피크로 긁으며 살짝 낮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거친 음성으로 노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Edelweiss, Edelweiss.”

- Small and white, clean and bright

You look happy to meet me

작고 하얗게, 깨끗하고 환하게,

행복해 보이는구나, 날 만나서!

록풍의 에델바이스가 카네기 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어?’

뭐지?

느낌이 이상한데?

기타소리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간만에 쳐서 그런가?

의아해졌지만, 그렇다고 연주를 멈추진 않았다.

그렇게 도준이 무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한걸음 내디디며 기타를 연주했다.

그러면서 막 노래를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뭐, 뭐야! 이거?’

도준은 얼마나 놀랐는지 자칫했으면 음이탈이 날 뻔했을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지금 도준은…….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눈부시게 새하얀…….

순백의 시공간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