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50화 (150/260)

# 150

#150. 신세계에서 (1)

아, 분위기 한번 묘하다.

캘리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 보였고, 희주 역시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반갑다는 듯이 환하게 웃어 보였지만, 뭘까 이 느낌은?

마치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품에 안고 있는 기분.

하지만, 더 이상 관객석에 신경을 쓸 여력은 없었다.

허먼 교수가 단상에 올랐고, 곧바로 지휘봉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줄리아드 크리스마스 이브 공연의 시작이었다.

***

언젠가 클래식 애호가와 대중음악 예찬론자 간의 댓글 논쟁을 본 적이 있다.

이런저런 말이 오갔지만, 논점의 핵심은 결국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 아니, 정확히는 클래식만이 진리라는 주장에 맞선 대중음악 예찬론자의 비아냥이었다.

무슨 색깔론도 아니고.

어쨌든, 논쟁의 불길은 금세 그 두 사람에서 다른 이들로 옮겨붙었고, 그때 클래식 옹호론자들이 내세운 논리는 바로 이거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음악.

나이가 들고 삶의 애환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면 이제까지 들어왔던 음악들도 새삼 다르게 들린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만큼 그 의미가 더욱더 깊어진다는 얘기였다.

음, 나로서는 사실 이해가 안 간다.

대중음악은 안 그런가?

분명 유행을 타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세에 맞춘 음악들이 우후죽순 양산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명곡은 존재해왔다.

그리고 그렇게 두드러지게 두각을 나타낸 곡들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일테면 록음악의 경우 아직도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비틀스를 듣고 자라며 가수로서의 꿈을 키울 정도다.

굳이 말하자면 클래식 역시 이제 와서 그렇게 부르고 있을 뿐, 실상은 예전에는 대중적으로 사랑받던 음악이었을 뿐이고 다만 지금의 음악과는 곡의 전개방식과 연주하는 악기 그리고 감성이 다를 따름 아닌가.

그런데 그걸 굳이 나눌 필요가 있나?

아니, 어느 쪽이 더 좋네 마네하면서 싸울 필요가 있을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하지만, 직접 무대에 서 있는 지금.

그땐 느끼지 못했던 걸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다르다.

내가 여태껏 해왔던 음악과는.

특히 관객들의 매너.

무대 위의 가수보다 더 열정적인 관객들로 가득 찼던 콘서트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

다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은 그동안 내가 콘서트 무대에서 바라보던 관객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뭐랄까.

그래, 안정. 그리고 완성된 양식. 그렇기에 어딘지 모르게 고정되어 있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아,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시종일관 변화를 거듭하며 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요즘 음악과의 차이가 이런 부분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예전의 것과 지금의 것으로 구분되는 음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그런가.

잠시 잡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 상념에 젖어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벌써 5분여가 지났음에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관객들의 반응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평소 쾌활 발랄한 걸 넘어서서 약간 주책 맞기까지 하는 디알로조차 얌전하게 앉아서 연주를 듣고 있다. 그것도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정장차림으로.

덕분에 별다른 이상 없이 연주를 이어가게 되어서 좋다고 할 수……. 젠장!

답답해 미치겠다.

원곡에 충실한 연주.

두 달 동안 손발을 맞춰온 단원들 간의 합주.

거기에 온 신경을 기울인 채 공연을 보고 있는, 아니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관객들.

공연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황이 이보다도 더 좋을 수 있을까?

여기서 투덜거린다는 것 자체가 사치일는지 모른다.

적어도 노래방에서 혼자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제낄 때에 비하면 말이다.

근데…….

그런데…….

뭐냐고 이 기분은…….

마치 성냥갑 속에 갇혀버린 이 느낌은.

지난 두 달간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자꾸만 울컥울컥 솟구친다.

지금이……. 뭐가 다르지?

노래방에 있을 때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죄다 떠오른다.

거기에 갇혔다는 걸 깨달은 순간, 느껴야 했던 것들이.

마치 지금 이 순간, 내가 노래방 속에 다시 들어와 있는 듯이.

온통 마음을 뒤흔드는 감정들에 질식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라면, 폭주할 것만 같아서.

그랬다간…….

연주를 망칠 거다.

공연은 엉망이 될 거고, 많은 이들이 실망하게 될 터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참고자 하는데….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것 같은 댐처럼, 계속해서 밀려들어 두드려대는 감정들 때문에.

동시에 회의감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연주를 하는 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정말 내가 이러려고, 공연에 참가한 것일까?

아니 그전에 줄리아드에 온 목적은?

진짜 감정을 죽이고, 기계처럼 건반이나 두드리려고 여기 앉은 것인가?

이를 악물어봤지만 소용없었다.

머릿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뭔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 순간, 마음속에 가둬놓았던 감정들이 일거에 쏟아져 나와 손끝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건반 위에서 열 개의 손가락이 춤추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

니콜 교수는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흡족함을 느꼈다.

지난 두 달간 도준이 보여준 모습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정말 그 짧은 사이에 도준은 많이 발전했으니까.

누군가에게 그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지 겨우 넉 달밖에 안 됐다고 말한다면, 미친년 취급받기 딱 좋을 만큼.

그 정도로 도준은 일취월장했다.

하루가 다르고, 일주일이 다르고, 한 달이 달랐다.

그리고 지금 저곳…….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합을 맞추고 있는 자신의 제자는 그야말로 프로다운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중이다.

그렇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실력이었다.

노력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한데…….

‘뭐지? 이 감정은?’

소리를 통해 전해져 오는 파동.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니콜 교수만은 느낄 수 있었다.

지난 학기 내내 도준에게 열과 성을 쏟으며 줄곧 관심을 뒀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피아노 소리에 실린 도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것은…….

‘……화가 나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서글퍼하고 있었다.

마치 동물원 창살 안에 갇혀 구슬프게 울부짖는 맹수처럼.

그게 아팠다.

이상할 정도로 니콜 교수의 가슴을 파고들며 심장을 꽉 쪼이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고 마는 니콜 교수였다.

***

그 시각, 콜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이었다.

공연이 시작된 지 5분여.

그동안 단 한 번도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도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그의 눈동자에 의아한 빛이 떠올라 있다.

그 눈빛은 가려지는 것이 아닌지라, 다른 멤버들 특히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인 유진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콜린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유진이 속삭였다.

“무슨 일 있어?”

콜린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때 들려온 제롬의 한마디에 결국 그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말 도준의 연주라고요?”

콜린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잘 친다.

오케스트라와의 합주도 군더더기 없이 좋다.

한마디로 듣기 좋은 연주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마치 잘 만들어진 음반을 듣는듯한 느낌.

그간 들어왔던 도준의 스타일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클래식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요?”

제롬의 음성이 너무 컸던 걸까?

“쉿!”

놀랍게도 디알로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제롬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레이크헬 멤버들은 누구 하나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이유?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준이 어째서 줄리아드에 입학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한가지만은 알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

장르를 불문하고 누구나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나선 한 걸음이었음을.

한데, 이런 음악이라니…….

이걸 과연 한걸음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연주 스타일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클래식답게 정갈한 연주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답답함.

마음을 울리기는커녕 콜라 한잔 마시지 않은 채 피자 두 판쯤을 억지로 쑤셔 넣은 듯 가슴속이 꽉 막힌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런 감상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관객석에선, 특히 도준을 알고 있는 이들의 표정들이 좋지 않았다.

다들 의아하단 눈빛을 한 채,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도준을 모르는 관객들이야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듣고 있었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편안하게 듣고들 있다.

그뿐이었다.

도저히 도준이 연주하는 곳의 모습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

도미니크는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잘 치네.”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처음 도준을 봤을 때 들었던 연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

그가 들었을 때, 지금 도준이 들려주는 연주는 누가 와도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석적인 연주였다.

그야말로 차이콥스키가 살아 있었다면 흡족한 미소를 머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가장 이상적인 피아노 소리가 카네기 홀을 울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계가 쳐도 저보다는 못할 거라는 게 내심 그가 내린 평가였다.

그만큼 도준의 실력은 이제 더 이상 그가 함부로 폄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 사이에 이 정도로 실력이 늘 수 있는 거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동시에 회의감이 들었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아무리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곤 하지만, 노력한 것은 본인이었다.

단 하루도 연습을 쉰 적이 없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풋볼 시합이 있었던 날조차도.

그렇게 피땀을 흘려가며 노력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도준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아니 요 몇 달간 도준이 보여준 행보를 보고 있으면, 그 시간들이 온통 부정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꿈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도미니크는 까닭 모를 분노가 치솟아 눈썹이 꿈틀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피아노 연주가 달라졌다.

‘……뭐지?’

소리만 달라진 게 아니다.

공기도 달라졌다.

무대 위에서부터 밀려드는 기묘한 울림이 파장을 만들어내며 홀 안을 뒤흔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뭐랄까.

마치 피아노를 중심으로 폭탄이 터진듯한 느낌.

그 폭탄의 정체가 일거에 밀려드는 감정의 폭풍이라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머리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그럴 새도 주지 않고 밀고 들어왔으니까.

도미니크는 눈을 감은 채 피아노 건반을 두들겨대고 있는 도준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금 저 무대 위에서,

피아노 앞에서,

관객들을 앞에 두고서,

지휘자조차 무시한 채,

미친 듯이 연주하고 있는 도준의 모습을 보면서…….

파르르르.

몸을 떨고 마는 도미니크였다.

‘어, 어떻게?’

이런 연주가 가능한 거지?

그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

관객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정말이지 한순간의 일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5분쯤 지났을 때까진 상상조차 못했던 일.

평온한 일상이 깨져나가는 데는 찰나 간의 시간이면 족하다는 걸 말해주기라도 하려는 걸까?

피아니스트가 눈을 감는 순간이었다.

흰색과 검은색의 건반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점차 거칠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느껴졌다.

“……!”

빛은 없었지만, 눈앞에서 뭔가가 번쩍하고 터진듯한 느낌.

그리고 그 순간, 가슴에 푹하고 꽂히는 강렬한 소리.

동시에 연주홀을 온통 뒤흔들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쾌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위화감?

그런 건 없다.

대신 관객들은 편안하게 파묻고 있던 등받이에서 등을 떼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허리를 곧추세우고, 아니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인 채, 다들 손을 꽉 쥐고 무대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피아노 소리를, 그와 함께 고조되기 시작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단 한음이라도 놓칠까 싶어서.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연주홀은 서서히 달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로부터 시작된, 차이콥스키가 생전에 ‘피아노 협주곡 1번’이란 곡을 작곡할 당시에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감정들로 인해.

거기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기묘한 열기를 품은 소리의 폭풍이 연주홀을 뒤덮은 것은 연주자의 감정이 더해지면서였다.

모두의 머릿속에 문 하나 없는 공간에 갇혀 절망하는 이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들 손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나갈 수조차 없는 곳에서 처절하게 발버둥쳐서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또다시 앞이 막혀버린 한 남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에.

그것은…….

연주홀을 뒤흔드는 것과 동시에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의 정체는…….

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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