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43화 (143/260)

# 143

#143. 경계에서 (1)

잠시의 대화만으론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으니까.

게다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시선도 무시할 순 없었다.

자신과 니콜 교수와의 대화를 그들이 들어서 좋을 건 없을 테니까.

허먼 교수는 하는 수 없이 다시금 지휘봉을 잡았다.

탁! 탁! 탁!

지휘봉으로 악보대를 한차례 두들기자, 뒤늦게 단원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도준은 피아노 앞에서 숨을 고르며 다음 연주를 생각하는 듯 보였고.

그렇게 2악장이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오늘 이곳에서 유일한 관객인 니콜 교수가 바라보는 중이었다.

특히 도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녀.

2악장, 안단티노 셈플리체가 시작되자 1악장과는 다른 분위기가 연주홀에 흘러넘쳤다.

마치 사랑하는 아이를 쓰다듬듯이, 그래서 어머니의 손길에 잠이 든 아기처럼 평온한 음이 이어졌다. 그것은 마치 자장가를 듣는 것처럼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변화는 도준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피아노 소리가 어느 순간 달라지는 듯하더니 천천히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말을 달리는 것처럼.

빠르게.

그래도 여기까진 악보대로다.

다소 느린 걸음을 걷는 것 정도의 속도(느린 안단테)와 튀는 듯한 특유의 탄력으로 빠른 템포와 격렬한 리듬 그리고 해학적이며 급격한 변화 등이 특징인 스케르초 사이를 오가는 연주가 알레그로나 비바체보다 빠른 속도 즉 프레스티시모(가능한 한 빠르게)로 바뀌는 대목이었으니까.

그런데…….

‘달라.’

뭔가 다르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강렬해!’

도준이 치는 피아노에는 힘이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따라오려면 따라와 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를테면 도발.

그뿐만 아니라…….

‘눈빛이 변했다?’

도준이 평상시의 모습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꿈을 꾸는 듯 보인달까.

그만큼 몰입했다는 것일까?

어쩌면 자신의 세계에 들어선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콜 교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나쁘지 않다.

첫 협주에서 저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음악인생에서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그렇긴 한데,

피식.

니콜 교수는 뒤늦게 깨달았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표정이 바뀐 것을.

다들 대놓고 표현은 안 하지만, 기분이 상한 듯 혹은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렇기도 할 테다.

지금 연주하고 있는 곡은 교향곡이 아니다.

말이 협주곡이지, 피아노 협주곡이란 결국 피아노가 주가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악기를 총동원해서 편성하고, 음의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아름다운 소리의 향연을 펼치는 것이 교향곡, 즉 심포니라면 피아노 협주곡은 사실상 피아노를 위해 나머지 단원들이 들러리를 서주는 느낌이랄까.

물론 관현악(오케스트라)과도 다르다.

교향곡이나 협주곡과 같은 합주의 형태긴 해도 편성 자체가 목관악기로 하게 되니까. 편성 규모를 따질 때 목관악기의 숫자를 기준으로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그에 비해 피아노 협주곡은 온전히 메인이 되는 피아노를 띄워 주기 위해 편성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단원들은 지금 오히려 자신들이 연주하는 음들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는 셈인데.

여기에 대고 도준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치는데, 그처럼 허약해서야 뒤를 받쳐줄 수나 있겠어?’ 하며 거칠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저런 반응들을 보일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단원들 중 몇몇이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얽매고 있던 족쇄를 걷어낸 것이다.

도준의 의도대로 어울려주기 위해서.

‘재밌게 돼가네. 좋아, 킴. 도발을 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지?’

니콜 교수의 얼굴 위로 ‘어디 한번 볼까?’ 하는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

니콜 교수와 눈이 마주쳤던 순간 느꼈던 당혹스러움은 이제 더 이상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폭풍처럼 몰아쳐 오는 소리들.

그 속에서 조금만 방심해도 밀려날 것만 같았으니까.

내가 도발하긴 했지만,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몰입한 상태에서 그렇게 된 거지만, 아무튼 강렬하게 치고 들어오는 소리들에 밀리고 싶지는 않았다.

젠장!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안다, 알아.

이게 전부 내가 만들어낸 상황이라는 건.

하지만, 나더러 어쩌라고?

소리가 갑자기 살아나서 제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걸.

농담이 아니라고.

내가 치고는 있지만, 내가 치는 게 아닌 듯한 느낌.

아, 미치겠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하아, 그래 시작은 분명 눈앞이 뿌예지면서 다른 건 하나도 안보이고 건반밖에 보이지 않으면서였다.

그때부터 손이 춤을 추듯 움직이며 빠르게 건반을 누비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상태다.

빠암……빠밤! 빠바밤!

트렘펫을 비롯해 트럼본 등 금관악기들이 먼저 도발에 응수해 오고 있었다.

클라리넷과 호른 등도 합세했다.

플롯조차 화를 참기 어렵다는 듯 아까완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러날 수도 없는 일.

쯧, 여기까지 와서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라고 할 수도 없잖아?

사실 실수도 아니었고.

그래, 친다 쳐.

나는 건반을 부서져라 쳐댔다.

이러다간 진짜로 피아노가 부서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그딴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거칠고 강한 곡이 바로 이 곡인데.

내 도발로 시작된 연주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험악해지고 있었으니까.

금관악기들 뿐이면 말을 안 한다.

꺾이지 않고 다시 한 번 내가 강하게 나가자, 이번엔 현악기들이 들이친다.

수많은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 등이 섬뜩할 정도로 치고 들어온다.

거기에 타악기까지 북을 두들겨대니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정말이지 딴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아이, 씨! 원래 이런 곡이 아닌데.

그렇다고 음이 변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조금 강하게 불던 바람이 폭풍이 돼버렸다고나 할까.

아무튼, 애초에 시작한 사람이 나이다 보니, 누구에게 불평할 수도 없다.

그렇게 무섭게 덤벼들며 날 압살하려는 소리들에 맞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을 때였다.

어? 뭐지?

이 감각은?

눈앞에서 소리가 춤을 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소리…….

단지 소리가 아니다는 느낌?

마치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느껴졌다.

소리 하나하나가 생명이라도 가진 것처럼.

뿐만 아니라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갈수록 강렬해지는 가운데, 다른 단원들의 연주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역동적이면서 유기적으로 연계해 나를 향해 덤벼들고 있었다.

마치 소리 자체가 생각이라도 하는 듯이.

그런 면에선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놈…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째 통제가 좀처럼……. 큭!

이, 이거 정상인 건가?

원래 이런 거냐고.

연주가 이렇게 힘든 거였나?

그리고 왜 눈앞이 보이질 않는 거야?

돌겠네, 진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연주를 하고 있는 나는 또 뭐고.

갑자기 두려운, 아니 생소한 감각에 사로잡힌 채 나는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겨우 악기를 연주하는 일인데…라고 말하고 싶지만.

손끝에서 시작해 팔뚝으로 이어지는 이 소름 돋는 감각.

온몸의 솜털이 곤두선 채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에 뭔가 희열 같은 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소리가 귀로만 들리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소리가 가슴을 울리고,

트럼펫 소리가 머리를 때리고,

북소리가 온몸을 두들기는…….

윽……!

미, 밀린다.

의아해져서 잡념에 휩싸이는 순간, 기세에서 밀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손이 먼저 움직인다.

아니 온몸이 표출하고 있었다.

그렇게 건반을 두들겨 흘러나온 소리들이 부르짖는 것만 같았다.

여기선 내가 메인이라고.

날 받쳐주는 소리들은 그저 옆에서 도우며 들러리나 서라고.

내가 생각해도 좀 재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강력한 어필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열 받을 수밖에 없겠지.

봐라.

당장에 반발하잖냐?

음, 이 소린…….

트럼펫.

순간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곱슬머리에 반개한 눈.

아즈마엘이라고 했던가?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때부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또 어떻게 연주한 걸까.

때론 초조해져서 입안이 마르다 못해서 버석거리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고, 또 때론 휴식처럼 주어지는 여유로움에 그나마 숨을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사방에서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하면 나는 다시금 건반을 두들겨야 했다.

그러는 동안, 그 소리들과 대립하기도 했고, 때로는 하나가 된 듯 어우러지기도 했다.

진짜 웃긴 건.

연주하는 동안 조금이긴 해도 그 ‘소리’, 즉 살아 있는 듯 움직이는 ‘소리’에 익숙해진 나는…….

희열이 가슴속에서 피어난다.

머리가 하얗게 불타며 쾌락에 물들어간다.

사방에서 수많은 소리들이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힘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과 밀고 밀리며 때로 나뉘고, 또 때론 섞이면서 대립과 화합을 반복하는 것 자체가 이 곡의 본질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연주가 끝나고, 나 역시 건반에서 손을 떼어내는 순간이었다.

꿈결같이 느껴지던 시간이 끝났다.

그리고 정신이 들며,

여긴…….

적막한 가운데 나는 홀로 앉아 있었다.

아, 피아노.

이제야 눈앞이 보인다.

뭐, 뭐지?

나 설마 연주하다 말고 꿈이라도 꾼 건가?

헛참. 소리가 살아 있다니.

잠시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기만 하다.

혹시 미치기라도 한 걸까?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숨이 차는…….

조금 당황스러워서 고개를 쳐드는 순간이었다.

“……!”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상태가…….

무슨 백 미터 달리기라도 한 건가?

파리한 안색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이는 숨을 몰아쉬며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기색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즈마엘은 꼭 죽다 살아난 얼굴이었다.

그런 채로 날 바라보는 눈동자. 그 눈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단 한 명의 관객. 니콜 교수가 갈채를 보내는 게 보였다.

반짝거리다 못해 보석이 아닐까 착각이 될 정도로 빛나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면서.

***

도준을 비롯한 단원들이 빠져나간 뒤, 홀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허어! 대체 저 친구는…….”

허먼 교수는 니콜 교수를 향해 묻다가 말고,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고의 흐름조차 막을 순 없었다.

연주 내내 보여준, 아니 들려준 도준의 피아노 소리가 잊히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 역시 평소 보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렸다.

무슨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만일 저들이 악기가 아닌 무기를 들고 있었다면, 그래서 그것이 진짜 싸움이었다면 그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광경이 아닐 수 없을 터였다.

그만큼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허먼 교수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엄청났다.

‘후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안다.

지금의 이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피아노.

정확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들기던 도준의 손끝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처음엔 마치 공간을 울리듯 동심원을 그리던 소리들은 이내 이빨을 드러내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자극했고, 당연하지만 그들 또한 도발에 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그는 머릿속에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단원들이 사생결단하듯 연주하는 모습을.

무엇보다도 설마하니,

‘아즈마엘이 실수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이들도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조금의 긴장도 풀지 못한 채, 손에 땀을 쥐며 지휘해야 했던 하면 교수였다.

그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번 공연…….”

그러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심상치 않을 것만 같군요.”

니콜 교수가 당연한 말을 뭐하러 하냐는 듯 얘기했다.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

“오늘……. 킴이 들려준, 아니 보여준 모습을.”

그녀는 돌아서기 전 덧붙였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허먼 교수에게.

“시간이 흐른 뒤, 방금 지나간 시간을 우리는 자랑스러워할지도 모를 일이죠.”

또각 또각 또각.

눈을 치뜨고 생각 속에 잠겨 든 허먼 교수의 귓가로 하이힐 굽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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