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42화 (142/260)

# 142

#142. 종이 한 장 차이? (3)

대부분의 천재들이 그러하듯 아즈마엘 역시 그다지 남에게 관심을 가지는 타입이 아니다.

그런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는 오만하게 비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재수 없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라고 처음부터 그랬겠는가.

애당초 그를 피한 건 다른 이들이었다.

주위에서 천재라고 추켜세우면 추켜세울수록 질투와 시기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또 멀어져갔다.

그러다 결국 가장 친했던 친구까지 떠나가자, 급기야 그는 마음을 닫고 말았다.

그래서였을까.

유소년기를 벗어나기도 전에 그의 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남게 되었다.

자신을 떠받들어주다시피하는 어른들, 그리고 자신처럼 천재 소리를 들으며 또래에게서 멀어져 버린 소년 소녀들.

시간이 흐르고 그 아이들이 소년에서 청년이, 소녀에서 처녀가 되었을 때 남은 건 그들 자신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진짜로 웃긴 건 그들끼리도 서로 섞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필이면 그때,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말 그대로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였다.

그건 아마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답게 그들이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일 터다.

그렇게 철저히 혼자가 되어 자신의 세계에 빠져 사는 동안 점점 더 주위에 무관심해진 아즈마엘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즈마엘은 늘 반쯤 눈을 감고 지내왔다.

어쩌면 그건 자신이 세상과 멀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밀어내고 있다는 일종의 방어기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시야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던 것.

‘이 곡이 원래 이런 곡이었나?’

피아니스트는 오늘 처음 보는 남자였다.

지금 연주하고 있는 곡이 원래도 힘있게 밀고 들어오는 곡은 맞지만 이 정도까진 아닌데…….

그럼에도,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폭풍같이 몰아치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하다.

묘하게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거치네.’

느낌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연주 자체가 거칠었다.

그렇다는 건, 오랫동안 쳐온 곡이 아니란 얘기.

서툴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저런 연주라니…….

한마디로 감각에 의존해 치고 있다는 건데.

안다.

저 감각이 뭔지는.

분명 아즈마엘도 알고 있는 감각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이 곡은 이렇게 쳐야 해!’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몸은 이미 그렇게 움직이곤 했으니까.

게다가 배짱도 두둑한 게 분명하다.

교향곡, 아니 교향곡에 버금가는 구성을 지닌 피아노 협주곡임에도 거침없이 피아노를 두드려가는 모습 어디에서도 주눅든 느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이 곡은 처음부터 피아노가 폭풍처럼 몰아치며 다른 악기들을 이끌어가는 곡이 아니던가.

‘엄청 어려 보이는데…….’

그런데 저런 실력이라고?

아무리 동양인이라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지만, 그렇다곤 해도 많이 쳐줘 봐야 열여섯이나 되었을까.

아즈마엘이 듣기에 저 나이에 나올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천재란 건가?’

아니 천재적인 느낌 그 이상이다.

역시 줄리아드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천재들만 모여드는 곳이 줄리아드였지만, 간혹 한 번씩 그 천재들에게 질시라는 서툴고 낯선 감정을 마주하게 만드는 이들이 나타나곤 했었다.

자주는 아니고 3, 4년에 한 명 정도씩.

아즈마엘은 오늘 처음 본 동양인 피아니스트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연주를 이어갔다.

***

아즈마엘라고 했던가?

그도 그지만, 왜 다들 저렇게 쳐다보는 건지.

아, 진짜!

더럽게 민망하네.

다들 이 정도는 치잖아?

설마 이보다 더 못 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니콜 교수가 아예 자료를 안 준 것도 아니고.

여기 오기 전에 나름대로 연습이란 걸 하고 왔다고.

물론 그전에 음원을 다운 받아서 주구장창 듣기도 했고, 그걸로도 부족해서 유투븐에서 연주자들의 동영상도 대부분 봤다.

그러면서 어떻게 쳐야 할지 수도 없이 생각했는데…….

젠장!

혹시 방향을 잘 못 잡았나?

좀 더 악보에 충실하게 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동시에 니콜 교수가 오늘 약속이 있어서 조금 늦게 오는 게 다행이란 생……. 응?

마, 망할!

피아노를 치는 걸 늦추지 않으며 은근슬쩍 바라본 문. 그 문이 열리며 니콜 교수가 우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니콜 교수는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의 제자가 들려주는 피아노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과연 어떻게 칠까?

지난 며칠간 시간이 나는 대로 지도해주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솔직히 어림도 없는 얘기일 터.

그만큼 쉬운 곡이 아니었으니까.

1900년대 초, 러시아 피아니즘의 대부이며 차이콥스키의 스승이기도 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엉뚱하며 기괴하며 거북스럽기 그지없는’ 구제불능의 곡이라고 신랄한 평을 서슴지 않았던 곡.

절망과 좌절로 점철된 삶 속에서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

Piano Concerto No. 1 in B flat minor, Op. 23.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만큼이나 연주하기 난해할뿐더러 악정들이 잘게 조각나 있어서 조금만 실수해도 서투르게 들릴 수밖에 없는 그런 곡이었다.

그런 곡을 이끄는, 아니 이 웅장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교향곡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진정 하나의 진주와 같은 작품’에서도 유난히 빛날 수밖에 없는 연주자. 피아니스트로 나선 게 도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니콜 교수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한 시간은 더 걸릴 수밖에 없는 미팅이었지만,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만큼 오늘 그녀의 정신은 이곳 연주 홀에만 닿아있을 뿐이었다.

‘설마 실수하거나 한 건 아니겠지?’

엊그제 마지막으로 레슨을 마치고 난 뒤, 좀 더 과감하게 치라는 주문을 한 건 맞다.

그렇긴 한데…….

‘그래. 악보만큼은 제대로 외우고 있으니까.’

적어도 창피는 당하지 않을 거다.

그녀는 그렇게 믿으며 걸음을 재촉했고, 그 결과 생각보다 빨리 연주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움찔!

이제 막 연주를 시작했는지, 트럼펫과 트럼본의 웅장한 울림 뒤에 이어진 바이올린을 필두로 한 현악기의 강렬한 견인 속에 피아노 음이 울리고 있었다.

아니, 때리고 있었다.

연주홀을 두들겨대는 느낌.

거대하게 들려오는 건반의 두들김은 그 자체로 폭발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무대 위에 있는 이들이 휘청이는 느낌까지 들었다.

뿐만 아니다.

도준의 손은 마치 신의 망치처럼 피아노 건반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피아노가 놓인 저 자리는 그야말로 진원지였다.

그곳을 중심으로 동심원이 생겨나는 듯 느껴졌고, 연주홀에 흐르는 공기가 그 충격으로 사방팔방 밀려나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장이 몰려와 아직 계단 하나조차 내려서지 못하고 있는 니콜 교수의 가슴을 때린다.

파르르.

그녀의 눈썹이 격정으로 떨릴 수밖에 없었다.

있다, 그런 사람이.

실전에선 연습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실력을 발휘하는 이가.

안다, 종종 있는 일이란 걸.

자신이 지닌 실력의, 아니 재능의 120%를 찰나의 순간 발휘해 모두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버리는 경우도 있음을.

그렇다곤 하지만…….

도준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지도할 필요조차 없었던 건가?’

자신이 가르친 것과는 사뭇 다른 연주였다.

그제야 그녀는 도준의 진면목을 보는 듯했다.

괴물?

며칠 전 말했던 게 떠오른다.

순간 쓴웃음이 지어졌다.

괴물 따위가 아니다.

포식자.

그것도 최상위에 군림하는 맹수.

지금 니콜 교수의 눈에 비친 도준은 그렇게 비쳤다.

연주자는 평생 경쟁의 한가운데서 살아간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니스트끼리,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리니스트끼리.

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 서는 순간,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과도 치열한 기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 속에서 밀리지 않고 자신의 음을 내야 하는 거다.

그런데도 만일 어느 날 누군가에게 겁을 먹고 스스로 물러서게 된다면?

그때가 바로 무대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따지면 여기는 밀림이나 다름없었다.

그럴 수밖에.

천재들만 모였다는 줄리아드의 학생들, 그리고 줄리아드 출신으로 협주에 참여하는 이들. 재능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랜 시간 몸에 익혀온 능숙한 기량들만으로도 최고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연주자들.

그들의 타고난 재능을, 피를 토하며 익혀온 시간들을, 그래서 자신들이 음악적으로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 입증한 자부심을 한순간에 짓밟아버리는 도준이었다.

순간적으로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니콜 교수는 깜짝 놀랐다.

저 자리에 자신이 도준과 함께 연주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하아.”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한숨을 내쉬고만 그녀.

이번에야말로 화들짝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연습이라지만, 연주 중에 한숨이라니.

평소 매너 없는 관객들을 벌레 보듯 하는 그녀로선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을 해버린 것이다.

그만큼 지금 도준이 들려주는 피아노 소리는…….

그렇다.

압도적이었다.

시종일관 강렬하게 치고 들어와 도발하고 또 도발하는 오케스트라에 맞서 거칠고 육중하면서도 폭발적인 연주로 대결을 피하지 않는, 그렇기에 오히려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뤄내고 있는 도준의 모습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연주를 하다말고 힐끔거리며 자신을 보는 도준과 눈이 마주친 니콜 교수는 그만 픽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채 당황하고 있는 청년.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저 앳된 한국인에게 다시 한 번 반하게 되는 니콜 교수였다.

***

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에 몰토 마에스토소. 웅장하고 풍부한 음으로 가득 찬 소나타. 장대하면서도 낭만적인 협주가 끝나고 나자, 허먼 교수를 비롯한 모두는 누구 하나 말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곧 2악장이 이어질 테니, 연주자들끼리 잡담 따위를 하는 게 용납될 리 없겠지만, 실제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습인 만큼 조금은 더 자유롭게 군들 누구도 뭐라 하진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다들 침묵 속에서 한 사람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한 사람……. 도준은 지금 피아노 건반에서 여전히 손도 떼지 않은 채 숨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마치 자신이 지닌 생명의 기운을 밑바닥까지 닥닥 긁어 짧았던 순간 전부 토해내고는 이제부터 긴 안식에 들어가려는 것처럼.

그 모습은…….

안단티노, 즉 느린 안단테 악장으로 시작하는 평온한 2악장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가도 분명 프레스티시모로 질주하며 또 한차례 듣는 이들의 마음을 몰아치겠지.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허먼 교수는 전율이 일었다.

‘분명 서툰데……. 그런데, 어떻게 저런 연주를 할 수가 있는 거지?’

딱히 실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투박함이 감춰지는 건 아니다.

화려한 기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감정을 끌어올리고, 순간순간 폭발시키는 감각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피아노를 친지 얼마 안 된 건 물론이고, 줄리아드에 들어온 것조차 불과 두 달밖에 안 되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허먼 교수였다.

당연한 일 아닌가.

도준을 입학하는데 한 팔 거든 게 바로 자신이었거늘.

그래서 더더욱 황당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어이가 없다는 듯 도준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 묻고 말았다.

아직 연주가 다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대체 그에게 뭘 가르친 거요?”

그의 물음에 니콜 교수는 잠시 대답없이 도준을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 피아노 건반만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는 도준.

그를 보며 니콜 교수가 말했다.

“아무것도.”

그녀의 눈이 한차례 빛나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날개를 펴지 못한다면, 그는…….”

뒷말을 흐리며 웃음 짓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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