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36화 (136/260)

# 136

#136. 역주행(3)

충격적이긴 하다.

복도를 걸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 하나 되짚어보니, 과연 그렇게 보일만도 하달까.

어찌 되었든 내가 여길 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니까.

돌파구.

내가 생각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나만의 길을 가는 것.

줄리아드란 그저 내가 지나쳐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으면…….

음, 조금 나태해졌는지도.

혹은 너무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음악이라는 게 즐겁게 해야 하는 거라지만.

목표가 흐릿해질 정도라면 곤란하긴 하지.

니콜 교수님의 말씀대로 조금은 더 바짝 쪼여야 할 것 같다.

그럼 어쩐다?

빌보드 문제야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테고.

일단은 악기를 좀 더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그다음은 소모임. 그리고…….

“하는 수 없네.”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지만, 니콜 교수한테 저런 말까지 들은 마당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게 설사 저쪽 입장에서는 자기 밥그릇을 빼앗는 걸로 받아들여질는지 몰라도.

***

이주일 뒤,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현재 내가 가진 한계치.

빌보드 차트 6위.

‘댄싱 위드 미’가 거둔 최종 성적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나자 12위로 가라앉았다.

브라이언이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다녔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음원 판매가 급증한 것도 아니다.

물론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의미가 없다고 할 순 없겠지.

빌보드 차트에서 역주행이란 걸 다 해보고.

“괜찮아?”

마루 누나가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불안한 눈빛으로 물어오기에 툭 하고 내뱉었다.

“하아, 역시 전 안되나 봐요.”

푹하고 고개를 숙이며 덧붙였다.

마치 한숨처럼.

자괴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음악……. 차라리 관둘까 봐요.”

“도, 도준아. 왜 그래? 6위도 대단한 성적이라니까! 봐봐. 다들 그러잖아! 네가 한국을 빛냈다고.”

나 참, 한국을 빛내긴 개뿔.

1위라도 했으면 또 어떤 말들을 했을지.

그리고 다들 어떻게들 안 건지.

인터넷이 발달하고 너도나도 SNS를 하다 보니 이놈의 세상에는 이제 거리도 필요 없고, 비밀도 없나 보다. 그냥 실시간으로 다 알려져 버린다.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있는 마루 누나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였다.

“장난을 치려거든 그 입가에 미소나 지우고 하든지.”

고 팀장님이 지나가며 던져놓고 간 한마디.

눈이 동그래졌던 마루 누나.

누나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사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구박이란 구박은 다 받다.

그러는 동안에도 난 꿋꿋이 기사랑 댓글들을 확인했지만.

“지금 그게 눈에 들어와? 응? 이 누나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서!”

“보라고 한 건 누나잖아요.”

역시 이럴 땐 팩폭이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누나를 일별하곤 모니터를 훑어나갔다.

일단 기사부터.

[김도준, 최종 성적표……. 빌보드 6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역주행을 기대해 본다.]

[한국이 낳은 천재에게도 본고장의 장벽은 넘기 어려운 것인가?]

[안타까운 도전, 결국 실패로 끝나......]

댓글들이 폭주하고 있는 중이다.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몇몇 기사가 사뭇 부정적인 논조였기 때문.

한마디로 김도준이란 가수가 아무리 잘나 봐야 한국에서나 먹히지, 태생적으로 한국인인 이상은 미국에선 안된다는 식으로 쓰여 있었던 것이다.

팬들도 팬들이지만, 일반인들의 눈에도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를 쓴 쓴 기자들의 행태가 괘씸하게 느껴졌던 거겠지.

- 본고장이라서 힘들다고? 진짜 웃기네. 그렇게 따지면 영국 애들은? 비틀즈 때, 침공이네 뭐네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그건 생각 못하나 보네?

- 아니죠. 본고장은 아프리카죠. 원래 걔들 음악이 흑인들로부터 비롯된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슴까?

- ㅋㅋㅋ 이런 팩트 아주 좋아. 역사서에 떡하니 적혀 있으니 발뺌도 못하잖아?

- 주니 오빠! 힘내요.

- 맞아! 김도준, 우린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 지난번에도 그러더니만, 어떻게 김도준 얘기만 나오면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씹어대느라 난리냐?

- 그만큼 이슈가 된다는 거겠죠.

- 그래도 그렇지. 간단한 거 아닌가? 빌보드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6위면 장난 아닌데……. 그걸 또 트집을 잡네. 기레기들 같으니라고.

아닌게아니라 그렇게 쓴 기자들도 꽤 있었다.

그렇긴 한데.

기자들이고, 네티즌들이고 간에 이런 식의 말이 나오는 건…….

한국이 대단하냐, 아니면 미국이 대단하냐는 식의 논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건데.

그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고, 또 부르고 싶은 걸 부르는 것뿐. 그걸 알아주느냐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요는 내가 그만큼 실력을 갖췄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

다시 한 번 니콜 교수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응? 도준아, 왜 웃어?”

“제가요?”

되묻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는 걸.

***

라이브 방송을 그만둔 건 아니지만,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 판단에서였다.

니콜 교수와 얘기를 나눈 날로부터 지금까지 학교, 찰리스, 집을 오가는 중이다.

가끔 샤오린과 브레드도 들리곤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더라도 서로 얼굴이나 한번 볼까 말까. 집이 넓어서 그런가 회사 식구들이 머물고 있음에도 전혀 비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학교에 있을 때와 찰리스에서 일할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곡 작업을 하면서 보내는 중이었다.

마루 누나가 물은 건 찰리스에서 일하고 들어왔을 때였다.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아?”

“아직은 좋아요. 공연하는 느낌도 나고 피아노 연습도 되거든요.”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

그러더니 갑자기 눈빛이 묘해져서 날 바라보았다.

“아, 근데 너…….”

“왜요? 뭐 할 말 있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내일모레 네 생일 아니었니?”

어?

그러고 보니…….

오늘이 10월 15일이니까, 맞네. 내일모레네.

헐, 생일도 까먹고 있었다니.

“뭐, 그날 다 함께 식사나 같이 하면 되죠.”

“밥이야 맨날 먹는 거고. 가족들 보고 싶지 않아? 형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면서? 그러지 말고 미국에 한번 오라고 하지, 그래?”

돈 걱정은 눈곱만치도 없는 누나 되시겠다.

사람이 몇 명인데.

네 명이 왔다갔다하면, 교통비로만 천만 원이 날아간다.

거기다가 여기 와서 쓰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쯧, 사실 그 정도야 별것도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그만큼 돈 걱정에선 벗어났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쿡! 작년 이맘때 생각난다.”

누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만치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핸드폰들과 노트북과 한창 전투 중이신 고 팀장님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안 그래도 올해는 콘서트 안 할 거냐고 하던데?”

“누가요?”

“누군 누구야? 샤오린이지.”

응? 왜 나한테 얘길 안 하고.

뭐 말해봤자…….

끙. 그냥 아쉬워서 투정 한번 부려본 거네.

“글쎄요. 생일 때면 이상하게 일이 많아서……. 올해는 좀 무난히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설마, 작년처럼 막 택배 차들 오고 그러는 거 아니겠죠?”

“글쎄. 알 수 없지.”

어라? 마루 누나 표정이…….

어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친데?

***

10월 16일.

변함없는 하루가 시작되고, 오전에만 있었던 강의를 끝으로 연습실에 모여 연주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My Favorite Things’의 연주가 끝난 뒤, 크리스티나가 감탄사를 토해냈다.

“재즈로 바꾸니까, 꼭 다른 노래 같아.”

그녀의 말대로다.

내가 뼈대를 잡아주었다지만, 세 명이 달라붙어 이리저리 만지고 나니 상당히 그럴싸해졌던 것.

뿐만 아니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노래들, 이를테면 도레미 송 같은 경우도 재즈로 바꿔버렸다.

그런데 이게 또 괜찮다.

그래서 그런가.

“좋군요.”

딱 한마디였지만, 니콜 교수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날 보면서.

큭. 그땐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눈으로 보시더니만.

결국, 제자를 박박 굴려야 속이 시원하시단 건가.

아니나 다를까.

역시 예상대로다.

짝짝!

니콜 교수님께서 손뼉을 치시며 말씀하셨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아, 그리고 내가 얘기했는지 모르겠는데, 크리스마스 당일 공연 잡아났으니까 그리들 알아요.”

얘기 안 하셨거든요!

아놔! 무슨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스승님이시라지만, 상의 한번 안 하고 결정을…….

어라? 얘들 왜 이리 좋아해?

니콜 교수가 문을 닫고 사라지자마자,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꺅꺅거리는 건 그렇다고 치고 에단 저 자식은 왜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히죽거리는 거야?

참네, 웃으려면 웃고 참을 거면 제대로 참던가.

아무튼…….

“자, 그럼 모레 보자.”

격일로 만나고 있었기에 하는 소리였다.

한데, 방을 나가려는 순간 양옆에서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가 팔짱을 껴왔다.

아니, 얘들은 누가 보면 어쩌려고.

하아, 진짜 서양애들은 너무 개방적이라니까.

한숨을 내쉬곤 물었다.

“왜 또?”

“오늘 킴네 집에 가면 안 돼?”

“내일 생일이라며?”

“그렇긴 한데.”

“내일은 하루 종일 강의 있잖아. 레슨 끝나고 나면 회사 식구들이랑 식사할 거 아냐?”

그러기로 되어 있었다.

마루 누나 말대로 부모님께 여쭤봤었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때 여행 가실 계획이 있으시단다.

나참, 하고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아들 생일날 여행 계획을 잡으시다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살짝 서운한 감도 들었고.

“그래 그럼. 가자.”

여기서 사귄 몇 안 되는 친구들인데, 그 정도도 못해줄까.

게다가 한국까지 날아와 준 녀석들인데.

“가면서 먹을 것 좀 사갈까?”

“좋아!”

“그럼, 우리 소주 사가자, 소주!”

“야이씨! 그게 얼마나 비싼데!”

아 진짜! 무슨 애들이 주당도 아니고, 소맥에 맛 들려서는.

“에이, 킴 돈 많이 벌잖아.”

“킴이 맨날 하는 말 있잖아. 돈 벌면 뭐해? 소고기 사 먹어야지!”

“소고기는 피와 살이라도 되지. 술은 마시면, 응? 돈 버려, 몸 버려, 정신 나가, 취하면 실수해, 많이 마시면 응? 중독도 돼요. 그리고 나 아직 미성년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

가만히 뒤따르던 에단이 한마디 했다.

“딱 20살이 되어서 술 마시는 놈이 어딨냐?”

하긴, 그건 또 그러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얼마나 샀는지, 술이랑 안줏거리가 한가득.

이럴 때 차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아.

내가 진짜 내년에는 꼭 면허를 따고 만다.

그래 다 좋은데, 왜 나랑 에단만 짐을 들고 있는 거냐고!

“야, 니들도 들어!”

“에이, 남자가 왜 이러실까?”

“난 자기 팔짱 끼느라 빈손이 없거든?”

결국, 듣다 못한 에단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미쳤네. 킴! 이것들 뇌가 썩은 거 같은데, 확 다 버리고 와라.”

그럼 뭐하나?

크리스티나와 조안나는 에단의 말 따윈 귀 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양쪽에서 내 팔짱만 끼고 있을 뿐인데.

그래. 집이 코앞인데 조금만 참지 뭐.

이까짓 거 무거워 봐야 얼마나 무겁다고.

대신 나중에 보자.

소심하게 복수심을 불태우면서도 걸음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양손에 터질 것처럼 부푼 봉다리를 들고 쫄래쫄래 집 앞까지 이르렀는데.

“……?”

찰리스 건물 앞에 웬 차들이…….

한결같이 고급스러운 차들이다.

벤틀리랑 벤츠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뭐지? 이 싸한 기분은?

알 수 없는 불길함을 품고서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 이르러 초인종을 눌렀다.

안쪽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마루 누나겠지.

도도도 거리며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그려져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도준아아아아아!”

남자 목소리가 먼저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형이 날 향해 뛰어들……. 응? 형?

“어?”

나만 놀란 게 아닌가 보다.

머나먼 타국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와락 끌어안으며 뭔가 감동적인 재회라도 하려 했던 모양인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으니까.

양팔에 끼고 있는 두 명의 여자들 때문에.

“여긴 어쩐 일이야?”

조금 당황해서 그렇게 물었을 때였다.

눈이 마주쳤다.

한쪽에 비켜선 채 나를, 아니 내 양옆에 서 있는 여자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희주와.

그때였다.

저만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혀차는 소리가.

“쯧!”

외할아버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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