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34화 (134/260)

# 134

#134. 역주행(1)

잭은 자신이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게 다른 사람의 심기를 상하게 한다는 거였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블랙유머도 유머.

독설이 무조건 나쁜 거라면, 쇼펜하우어가 지금까지 유명할 리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기나 할까?

독설이 되었든, 블랙유머가 되었든 간에 그 안에 철학이 담겨 있지 않으면, 그건 그냥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걸.

아니, 남의 심장을 난도질하는 칼날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그 동양인 원숭이는 언제 온다는 거지?”

“곧 도착할 때가 됐어.”

프로듀서인 앤더슨의 대답에 잭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늘 또 어떤 말로 초대손님을 넝마로 만들어주나.

이미 게스트로 김도준이 출연한다는 건, 방송을 통해 알려진 상황. 수백만 명이나 되는 청취자들이 기대하고 있으니 절대로 그들을 실망 시켜선 안 될 터다.

그는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혀를 날름거렸다.

흥분할 때 그가 취하는 버릇이었다.

“지금 도착했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스탭의 외침에 잭의 입가에 미소 한줄기가 떠올랐다.

***

생각보다 점잖아 보이는 인상이다.

잘 정리된 옅은 갈색 머리와 함께 푸른 빛이 감도는 눈동자는 신비로운 느낌과 함께 지적인 이상을 풍겼다.

거기에 더해 스웨터에 면바지 차림의 단정한 모습은 도저히 입만 열었다 하면 독설을 토해내는 사람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소문은 진짜였다.

“오! 왔군. 반가워요, 킨? 킹? 킴인가? 뭐, 이름 따위야 어때?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잊힐 텐데. 아, 근데 어디서 냄새나는 거 같지 않아?”

독설 정도가 아니네.

이 자식……. 쓰레기네.

그것도 몇십 년 묵어서 썩을 대로 썩은.

그렇다고 바로 응수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거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처음 뵙네요. 김도준입니다. 그리고 킴이라고 하시는데, 정확한 발음은 김입니다. 이름이 아닌 성이고요.”

“호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 보군요. 사과하죠, 킨.”

히죽거리는 얼굴이 참……. 한 대 때려주고 싶긴 하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방송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잭은 매끄러운 혓바닥으로 잘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다들 밤새 안녕하셨나요? 저런! 어젯밤에 강도를 만났다고요? 쯧, 그러니까 누차 말하잖아요? 밤에는 그냥 집에 처박혀 있으라고. 미국이란 나라가 그렇게 치안이 좋질 않아요. 선량한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니까. 자, 어젯밤에 있었던 안 좋은 일 따윈 전부 털어버리고, 지금부터 즐겨주세요. 재애애액! 애드먼! 쇼오오오! 시작합니다.”

능숙하다.

근데, 역시나 불쾌하다.

이런 걸 들으면서 낄낄거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왠지 몸이 으스스 떨린다.

이게 재밌나?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오늘 초대한 손님은…….”

잭은 날 힐끔 바라보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동양의 진주라고 하죠? 한국에서 온 킨입니다!”

킨?

일부러 그러는게 분명하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동양의 진주는 홍콩, 베트남, 시리아 등 수없이 많은 나라들을 일컬을 때 쓴다.

하지만, 한국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았다.

동방의 횃불이라면 몰라도.

“김도준입니다.”

잭의 눈짓에 따라 마이크에 대고 말하자, 그가 픽하고 웃는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나 보군요.”

“예?”

“미국에선 그러면 안 돼요. 자신을 적극 어필해야죠. 안 그러면 아메리카 드림은 없어요. 클클클클.”

웃음소리하고는.

“원래 성격이 좀 그래서요. 길게 얘기하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합니다.”

“아하! 과묵한 성격. 좋죠. 아무튼, 요즘 좋은 일이 있었다고요?”

“······?”

“킨이 발표한 곡이 빌보드 30위에 들어갔다면서요?”

“아, 예. 운 좋게 그렇게 됐습니다.”

“운이라……. 곤란하네요. 그런 발언은.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람들은 그럼 운이 없다는 건데……. 게다가 킨의 노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무시하는 거 아닐까 싶네요?”

초장부터 치고 들어오는 잭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바로 사과했다.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식 겸양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죄송합니다. 잘난 척하지 않으려 했을 뿐인데.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겠네요.”

“흠, 어쨌든. 빌보드 30위안에 들어가니까, 좋아요?”

“조금 얼떨떨 하지만, 좋기야 하죠. 누군가 제 노래를 들어주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함께 호흡한다라……. 흥미로운 표현이군요. 자, 그럼 이쯤에서 킨의 노래를 한번 들어볼까요? 아, 근데 곡명이 댄싱 위드 미? 춤 잘 추나 봐요?”

“아뇨. 몸치에요, 몸치.”

“하하하. 몸치가 부릅니다. 댄싱 위드 미!”

부스 밖에서 스탭 중 하나가 CD를 틀자,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음악이 흐르는 동안, 잭이 물어온다.

물론 방송으론 나가지 않는 상태다.

“이봐. 킨. 제대로 좀 하지?”

“예?”

“여기 나오면서 사람들이 얘기 안 해줘?”

“무슨…….”

“하아, 이래서 동양놈들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잭이 눈살을 잔뜩 찡그린 채 얘기했다.

“쇼라고, 쇼! 응? 사람들이 지금 방송을 듣고 재밌다고 할 거 같아?”

그야 나로선 알 수가 없지.

그는 내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애당초 내 얘긴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원래 한국 사람들은 그래?”

뭐가 이렇게 불만인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그를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답답하긴. 받아치라고! 내가 도발을 하면, 너도 적당히 받아치고 그래야 사람들이 좋아한다니까! 쇼에 나왔으면 최소한의 쇼맨십은 보여줄 줄 알아야지!”

음, 그러니까…….

우스꽝스러운 광대가 되란 얘긴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안됐네요. 그런 건 제 취향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잭의 얼굴이 팍 일그러지는 순간, 어느새 곡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는 수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린 잭. 그는 부스 밖에서 보내오는 신호에 맞춰 마이크에 얼굴을 가져갔다.

“오! 좋군요! 과연, 빌보드 차트에 오를만한 곡이었습니다.”

듣기나 들었나?

관심이라곤 1도 없어 보이는구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곧 내가 준비한 패를 꺼낼 타이밍이 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

캘리는 열불이 터져서 미칠 지경이었다.

다혈질하고는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몇만 광년은 떨어져 있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

김도준을 데려다 놓고 한다는 짓이…….

이가 갈렸다.

특히 자신과의 관계를 걸고넘어지며 거의 음담패설에 가까운 말을 지껄일 때는.

“미친놈!”

급기야 그녀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킴한테 이럴 수 있지?”

자신이 보기에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아티스트가 바로 김도준이었다.

그런 김도준인데, 저런 대접을 한다고?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고.

하도 기가 막혀서 그녀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저 머릿속에 떠도는 건 오직 잭에 대한 욕들뿐. 분노에 사로잡혀 있던 그녀가 눈을 번쩍 뜬 것도 그때였다.

- 오! 지금 산티에나라고 했나요?

- 예.

- 좋아요. 레이, 거기 기타 있지? 그래, 그거! 앰프에 연결하고.

도준이 갑자기 노래를 하겠다고 나선 것.

그것도 자기가 작곡한 게 아니라 산티에나의 곡을.

다름 아닌 ‘I Am Somebody’.

카를로스 산티에나의 명반 의 대표곡, ‘I Am Somebody’는 재기 발랄한 분위기의 곡이다.

흥겨운 아프리카 토속 비트와 펑키 리듬이 두드러지는, 포크와 라틴 록의 결합을 시도한 그의 음악 중에서도 흥겨운 라틴 리듬이 돋보이는 곡이 바로 ‘I Am Somebody’였다.

한데, 그걸 도준이 부른단다.

여태껏 그가 불러온 노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캘리는 듣는 순간 전율을 이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이, 이건……!’

정말 산티에나의 곡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여전히 흥겨웠고, 또 라틴 록의 냄새가 났지만…….

완전히 뒤바뀐 편곡.

보다 거칠어졌고, 그러면서도 훨씬 더 세련된 느낌이었다.

특히 빠르면서도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의 기타 연주는 황홀 그 자체였다.

거기에 그가 부르는 노랫소리는 껄렁껄렁한 느낌과 함께 매력적인 음색 때문인지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니, 본능적으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였을까.

노래가 끝난 뒤에도 라디오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피식.

뒤늦게 정신을 차린 캘리는 비웃었다.

지금쯤 잭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한 시간 동안 도준이 부른 노래는 다섯 곡.

그중 두 곡이 카를로스 산티에나와 지미 핸디락슨의 곡을 편곡해 부른 것이었고, 그 곡들을 듣는 동안 캘리는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

강렬하면서도 세련되고 황홀한 연주. 거기에 그동안 그가 들려준 적 없는 퇴폐적인 음색까지.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그리고 두 곡은 도준의 자작곡이었다.

그것도 미공개 곡.

한 곡은 블루스였고, 나머지 한 곡은 록이었다.

기가 막힌 건…….

“마, 말도 안 돼!”

그녀가 너무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잭도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 지, 지금 이 곡들을 만든 게 어제라고요?

- 예. 아무래도 미국에 와서 라디오에 처음 출연하는 건데, 이 정도 선물은 해야지 싶어서요.

이제 더 이상 잭은 독설 따윈 날리지 않고 있었다.

대신 한숨과 탄성을 번갈아 하며 기막혀할 뿐.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방송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도준이 ‘세상의 중심에서’ 즉 ‘인 더 센터 오브 더 월드’를 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미국의 서부 지역이 들끓기 시작했다.

***

사흘 뒤, 목요일 저녁.

뉴욕, 찰리스 건물.

도준의 집에선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집들이?

아니다.

완전히 공사를 끝내고 어제 막 이사를 한 건 맞지만, 다들 집들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으니 원래대로라면 파티를 벌여야 옳겠지만, 그들은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긴장한 얼굴로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강혁수를 비롯한 사무실 식구들.

브라이언과 레이크헬의 멤버들.

샤오린과 브레드, 실비아.

그리고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에단까지.

그들 모두 도준이 팔짱을 끼고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마른 침을 삼킨다.

그러는 동안에도 조마루는 일 초에 한 번씩 빌보드 사이트를 새로고침하는 중이었다.

“떠, 떴다!”

마침내 순위가 발표되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미친놈!”

브라이언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도준을 얼싸안는 걸로 기쁨을 표현했다.

그럴 수밖에.

1위 Feeling her - A. Jhonas

.

.

7위 Dancing with me - Dojun. K

22위 In the center of the world - Dojun. K

28위 Longing times - Dojun. K

51위 Risk - Dojun. K

89위 The rainy city - Dojun. K

무려 다섯 곡이나 빌보드 차트 100위안에 들어갔으니까.

그것도 ‘댄싱 위드 미’는 10위권 안, 7위에 안착했다.

역주행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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