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33화 (133/260)

# 133

#133. 신호탄(3)

잭 애드먼 쇼.

라디오 방송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놀라느냐고?

아무리 미국 내 사정을 잘 모르는 나라도 알건 안다.

그만큼 잭 애드먼 쇼는 유명했다.

미 서부 쪽에서는 꽤 많은 애청자를 보유하고 있는 방송인데, 그 이유가…….

아, 진짜 지랄인데?

라디오 쇼의 진행자인 잭 애드먼의 성격이 문제다.

아니, 쇼 자체가 문제다.

인종차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깐다.

이유도 없다.

무조건 깎아내리고, 할퀴고, 물어뜯는다.

여기 나온 이들치고, 웃으면서 떠난 사람이 없을 정도.

울거나 혹은 화내거나.

그만큼 게스트를 막대하기로 유명한 쇼가 바로 잭 애드먼 쇼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독설을 내뱉는 건 물론이고, 전문가들까지 대동해 실력을 폄하하면서 사생활을 샅샅이 뒤져 파고들어 치부란 치부는 다 드러내며 게스트의 하나에서 열까지 모조리 밝혀버리는 악명높은 쇼. 그런 쇼에서 날 초대했다?

하, 이것 참…….

마음 같아선 싫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또 그럴 수만도 없는 게 여기에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민되네.

그때였다.

“싫으면 안 해도 돼. 브라이언도 그다지 반기는 눈치는 아니고.”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고 팀장님도 그렇고 마루 누나마저 날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웃음 나왔다.

참나, 내가 뭐 무서울 게 있다고.

아니, 그전에 다들 그렇게 내가 못 미더운가?

걱정하는 눈빛들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오기가 치민다.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가죠.”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세 사람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걸 보면서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옛날처럼 놀다 오면 되는 거 아니에요?”

***

결혼식……. 정확히는 축하공연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피로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뭐, 거기야 외할아버지와 우리 부모님께서 알아서 하실 테니 걱정할 건 없고.

형 내외는 일단 서울 시내에 있는 호텔 한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 오전에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아마 지금쯤 명진이 형이랑 수한이 형을 비롯해 친구들이랑 신 나게 놀고 있겠지. 물론 거기엔 씨크릿걸즈 멤버들과 형수 친구들도 포함될 테고.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나보고도 오라고 전화가 와서 조금 귀찮아지려는 참이었다.

“진짜 재밌었다.”

“나도. 이렇게 자유로운 공연은 처음인 거 같아.”

“크크큭. 결혼식을 이렇게 유난스럽게 하다니. 역시 도준이야!”

“너희 형 행복해 보이더라.”

“그러니까요! 저도 얼른 결혼하고 싶더라니까요.”

한마디씩 던지며 낄낄거리는 레이크헬과 함께 차로 움직이던 중 내가 물었다.

“콜린, 잭 애드먼 쇼 알지?”

“노래하면서 봤는데, 이 자식 눈물이 글썽거리는 게……. 응? 지금 뭐라고 했어?”

이게 또 어디서 뻥을 치고 있어?

내가 언제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말했다.

“그래, 잭 애드먼 쇼. 너희도 거기 나간 적 있어?”

순간, 정적이 내려앉는다 싶더니…….

“쉣!”

“미쳤어? 그런 쓰레기 쇼에 나가다니!”

“거긴 진짜 나가고 싶지 않아!”

“크크크크. 유진은 집중포격으로 걸레가 되지 않을까?”

“근데 그건 왜 물어?”

그래도 제의가 오긴 왔었나 보네.

그렇긴 한데,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이라니.

나도 소문으로만 들은 터라, 잘은 모르는데 어지간한가 보다.

거길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가는 장난 아니게 시달릴 거 같아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냥…….”

그러면서 말을 돌리려는데, 눈치 빠른 제롬이 외쳤다.

“어! 설마!”

뒤이은 외침들.

“오 마이 갓!”

“미쳤네! 너 거기 나가려는 건 아니지?”

“그러지 마라.”

“와! 너 지금 제정신이야? 도준! 이성을 찾아! 진흙탕엔 발을 들여놓는 게 아냐!”

이젠 격렬함을 넘어서 금방이라도 내 멱살을 잡을 듯하다.

그만큼 흥분해 있는 레이헬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나, 진흙탕 좋아해.”

***

한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중국?

난리가 났다.

동남아시아 쪽도 비슷했고.

의외였던 건 일본인데…….

- 어제 결혼식……. 진짜 낭만적이었어.

- 역시 남자는 한국 남자인가?

- 신부는 웨딩카를 타고, 신랑은 자전거라니……. 부러워.

- 근데, 기무상은 왜 노래를 한 곡밖에 안 한 거지? 난 더 들을 수 있을 줄 알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 하아! 갓준 사마가 일본에서도 콘서트 열었으면 좋겠다.

- 역시 한류인가? 정말 한국은 사람도 적은데, 어쩜 그렇게 멋진 아티스트들이 많은 거지?

- 그러게. 우리랑 너무 수준 차이 나는 거 같아.

- 그건 아니지. 일본에도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얼마나 많은데!

- 미친! 조센징이 그렇게 좋아? 그럼, 일본에서 꺼져버려!

- 뭐래?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야?

- 후우! 이래서 기무상이 일본은 쳐다도 안보는 거겠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어제 방송을 본 모양이다.

게다가 팬들도 꽤 많은 듯하고.

아닌게아니라, 아저씨께서 그러시긴 하더라.

조만간 일본에서도 음원 출시할 예정이라고.

그래서 일본어로 다시 녹음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만.

물론 한국에서의 반응이 더 대단하긴 했다.

나와 형 내외, 거기에 레이크헬을 비롯해 결혼식에 참여한 가수들까지. 하루 종일 실검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었고, 결혼식 공연 자체가 이슈였다.

짤도 엄청 돌아다니는 중이었고, 케이블 방송에선 결혼식 공연을 쉴 새 없이 틀어대는 중이었다.

덕분에 형까지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다.

형이 호텔로 가기 전 잠시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형, 얘기 들었는데 계속해서 씨크릿걸즈의 로드 매니저 하겠다고 했다면서?”

“어? 그거 어디서 들었냐?”

“참네. 다들 걱정하던데 뭘. 명진이 형이 그냥 회사 내부에서 일하라고 했다며? 실장 타이틀 준다고.”

“······.”

“설마, 씨크릿걸즈 멤버들한테 미안해서 그런 거야?”

형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더니 형답지 않게 눈을 빛냈다.

“도준아.”

“응?”

“난 걸그룹이 좋아.”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 내게 형이 진지하게 말했다.

“안에서 일하는 거……. 나 답답해서 못해. 소연이 때문에 팬들이 난리를 치겠지만, 그것도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겠지. 더더욱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닐까? 후우! 그러니까, 좀 더 지켜봐 줘.”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마음엔 안 들지만, 응원할게.’라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올 멤버가 예뻐.”

······이걸 녹음해서 형수한테 들려줘야 하나 말 하야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형과 헤어지기 전에 나눴던 얘기를 되씹고 있을 때였다.

“어머나! 이거 뭐죠? 뭔데 이렇게 맛있어요?”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우리 집 거실에서 펼쳐진 풍경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베이컨하곤 완전 달라요! 바삭바삭하면서 쫀득쫀득! 그런데 고소해! 아아!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평소 우아하던 모습은 어디다 두고 오신 걸까?

니콜 교수가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는 삼겹살을 날름날름 집어먹으며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그녀들도 마찬가지다.

에단 조차 고기를 주워 먹느라 정신이 없다.

“쌈에 싸서 먹으면 더 맛있어요.”

우리 어머니께선 직접 상추에 고기를 싸는 시범을 시연 중이었고.

아버지?

음……. 요즘 나름 잘나가신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꼼짝 말고 고기 굽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계신다.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이면 집에서 이러는 거냐고?

평소엔 기름 튄다고 절대로 집에선 삼겹살 같은 거 굽지도 않으시더니만.

자이즐인지, 자이굴인지……. 홈쇼핑으로 구매한 전기식 불판만 있으면 문제없다나?

“한우도 너무 맛있어요!”

“소고기는 한우죠! 봐요, 이 마블링 좀. 투 플러스라니까요. 호호호!”

“너무 아름다워요!”

그렇게 말하면서 침은 왜 삼키시는 건지.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니콜 교수를 보다가 결국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어쩌겠냐고.

이러나저러나 스승님이신데.

그것도 제자를 위해서 먼 길 마다치 않고 여기까지 와주신.

“많이 드세요, 많이.”

니콜 교수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려 하자, 그녀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응? 와인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

“쏘매크!”

……지금 소맥이라고 한 건가?

“킴, 한번 멋지게 말아봐요.”

황당해진 눈으로 아버지를 한번 힐끔거렸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집안에 양주도 많고 와인도 많은데…….

왜 하필 소맥을 말아주셔가지고.

잠시 후 내 손엔 소주병과 맥주병이 들려 있었다.

***

“킴! 머리가 너무 아파.”

예, 예. 그러시겠죠.

우리 아버지가 밤새 술 마시고 오신 다음 날 아침마다 보여주시는 모습을 네 사람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뭐야? 도준?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어제 호텔에서 잔 콜린이 물어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자식들한테 소맥에 대해 얘기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되고도 남았으니까.

“뭔데 그래? 설마 어제 우리 빼고 술 마신 거야?”

나는 디알로에게 말했다.

“나 아직 미성년자인데?”

“아, 진짜 고지식하긴! 내가 너만 할 땐 잭 다니엘을 입에 물고 살았다!”

“그래, 도준! 아티스트는 가끔 일탈도 하고 망가지고 그래야……. 그러지 않아도 도준은 잘하는구나.”

말하다 말고 갑자기 풀죽은 표정을 해 보이는 제롬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후우, 이제 진짜 끝인가?

현재 우리가 와 있는 곳은 인천 공항.

형 내외가 신혼여행을 떠난 직후였다.

“근데 저 사람은 뭐에요?”

브라이언과 얘기를 나누는 중인 남자를 보며 물었다.

마루 누가 픽하고 웃는다.

“S그룹에서 나온 사람이래.”

“……?”

“광고 섭외 때문에 저러는 거겠지, 뭐.”

아, 그러고 보니…….

외할아버지께서도 은근히 바라시는 거 같던데.

쯧,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말이라도 해볼까?

근데 할까 모르겠다.

저 자식들 돈으로 움직이는 놈들이 아닌데.

전세기 타고 다니는 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흠, 전세기라…….

잭 애드먼 쇼에 출연하기 위해선 서부로 가야 하는데, 브라이언이랑 레이크헬이 부득불 따라오겠다고 해서 그냥 다 함께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전세기를 타볼 수 있게 돼서 좋긴 한데…….

“왜 그래? 걱정돼?”

마루 누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뒤를 돌아보았다.

찰칵! 찰칵!

끝도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빨강머리 실비아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저거……. 곧 SNS에서 올라가겠죠?”

“그렇겠지.”

“후우.”

그러니까, 이게 문제다.

이제 내게 사생활은 없다는 거.

하다 하다 이젠 전용 사진사까지 생겼다.

샤오린이 내 속내를 읽은 건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에 살짝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잠시뿐.

그래, 뭐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잘됐다.

신비주의?

엿 바꿔 먹으라 그래라.

이젠 나도 내 마음대로 살란다.

연예인이 무슨 죄인도 아니고.

공인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난 그냥 하고 싶은 노래나 실컷 할 테니까, 욕하려면 욕하고 손가락질하려면 손가락질해라.

그럼 지금처럼 또 한바탕 난리를 쳐줄 테니까.

한번 빌린 스타디움. 두 번은 못 빌릴까 보냐.

씨익.

웃음을 지으며 출국장으로 향했다.

물론 그전에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서.

“MK 방송국이 뉴욕에 있다고 했죠?”

머릿속에 잭 앤더슨을 떠올리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대답은 고 팀장님에게서 들려왔다.

“그래. 맞다. 줄리아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

“출연하기로 한 날짜는 내일모레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고 팀장님.

난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왜 그러냐는 듯 고 팀장님을 비롯해 모두가 눈이 가늘어졌지만, 나는 말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방송을 들으면 다 알게 될 테니까.

“가죠.”

탑승하라는 방송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걸 들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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