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132. 신호탄(2)
무대 위로 뛰어오른 뒤, 내 입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는 담담하기조차 하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재밌는 얘기가 아닐지 몰라.”
-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재밌는 얘기가 아닐지 몰라.
그저 한 남자의 소소한 일상.
어쩌면 지루할지도 몰라.
랩까지는 아니지만, 운율에 맞춰 리듬감 있게 읊조리는 노랫소리가 스타디움에 퍼져 나간다.
그 소리에 취한 걸까.
다들 묘한 얼굴로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쉬지 않고 얘기했다.
아니 노래했다.
- 그래도 난 해야겠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어떤 건지.
하나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아.
잔잔하게 부르는 노래와는 달리 레이크헬의 멤버들은 꽤 화려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노래도, 연주도 엉켜서 엉망이 될 수 있을 텐데, 기가 막히게 접전을 유지하며 무대를 장악해나간다.
그렇게 다들 신나서 하던 간주소리가 갑자기 뚝 끊긴 것은 한순간이었다.
무대 위에서 바라보니 관객석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바이올린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이 터지고.
그런 와중에도 무대 위로 올라온 에단이 기가 막히게 연주를 하고 있었다.
동시에 무대 양편에 드리워져 있던 커튼이 스르르 움직여 걷혔다.
그 순간이었다.
첼로 소리가 들려오고…….
피아노 건반 소리도 들려왔다.
슬쩍 바라보니 무대 양쪽 끝에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가 환하게 웃으며 연주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맞춰, 디알로가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까지처럼 미친 듯이 두들기는 게 아니었다.
퉁! 투두두두두두……탕…타당…탕! 채앵!
가볍게, 가볍게, 마치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스틱으로 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건 유진 역시 마찬가지.
키보드를 무슨 여자 만지듯 한다.
그래서 그런가 크리스티나가 치는 피아노와는 다른 느낌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건반 소리가 정갈하고 아름답다면,
유진의 키보드 소리는 말 그대로 짓궂고 장난스럽다.
그런데도 기묘하게 두 소리가 만나자, 기가 막힌 앙상블을 이뤄낸다.
그런 가운데 베릴의 기타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온다.
한껏 자유롭게, 마치 햇살 아래 뛰노는 아이처럼 그는 기타를 치고 있었다.
마치 첼로라는 엄마와 바이올린이라는 아빠 사이에서 더없이 신이 나 들판을 뛰노는 것처럼.
둥…둥…둥……둥둥…두둥.
각기 다른 소리, 고전과 현대가 만나는 자리에서 그 중심을 잡아주는 건 다름 아닌 제롬이었다.
간헐적이지만, 박자 한번 놓치지 않고 은근하게 들려오는 베이스 음이 모두의 뒤를 받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콜린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굵고 나직하지만, 한없이 감미로운 목소리.
여심이 아니라 남심마저도 한여름 아이스크림처럼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
“When he wakes up in the morning, he finds his cell phone.(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부터 찾아.)”
- When he wakes up in the morning, he finds his cell phone.
You call with eyes that is not openning.
The smile in the morning sun shines.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부터 찾아.
눈곱조차 떨어지지 않은 눈으로 전화를 걸어.
아침 햇살에 비친 그 미소는 눈이 부셔.
아, 내가 만든 노래지만 그가 부르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형이 아침에 눈을 뜬 후의 모습이.
- After washing, he put on my clothes and eat as if drink.
In the subway he looks at the window and touches his hair.
It is so cute to be like a bear.
All day long he chases her with smile.
Someday I asked.
씻고 나서 옷을 걸치고 밥을 마시듯 먹어.
지하철에서도 그는 창문을 보며 머리를 만져.
곰 같은 덩치에 그러는 모습은 너무 귀여워.
하루종일 그녀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웃어.
언젠가 물었지.
한껏 고조된 연주 속에서 콜린이 날 바라본다.
그리고 묻는다.
마치 내가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 Where is she so good?
The answering face is glowing.
그녀의 어디가 그렇게 좋냐고.
대답하는 얼굴은 빛이 나고 있어.
내가 한걸음 나섰다.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가면서.
그때였다.
전광판에 사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왼쪽에는 형의 사진들.
오른쪽에는 형수의 사진들.
그들 두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그 모습을 한차례 둘러보곤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는 얘기해.”
- 그는 얘기해.
그 작은 얼굴 안에 눈코입이 다 들어가 있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조막만한 손을 꼼지락거리며 부끄러워할 땐 심장이 멎을 거 같다고.
짬짬이 나누는 커피 한 잔은 세상 무엇보다 달콤하다고.
그 타이밍에 난데없이 앞으로 나온 콜린이 기타를 현란하게 쳐대며 소리쳤다.
“탈-콤-해!”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 또한 싱긋 웃고는 다시금 노래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지던 노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팟!
무대 반대편, 정확히는 스타디움 입구 바로 위 VIP석 테라스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진 것도 그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이 터졌다.
그곳에는 두 사람, 신랑과 신부가 손을 꼭 붙잡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모습 또한 카메라에 잡혀 전광판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그러나 끊기지 않는 부드러움으로 노래했다.
- 감사해요. 부족한 형을 만나줘서.
고마워요. 가족이 되어 줘서.
잘할게요. 누나처럼 생각할게요.
축하해요. 두 사람이 하나가 된 걸.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자 형수가 글썽거리는 눈이 되어 허리를 숙였다.
그런 형수의 손을 꼭 잡아주다가 형 또한 하객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러더니 별안간 고함쳤다.
“우리, 진짜 잘 살게요오오오오오오오!”
마지막까지 형다운 모습이었다.
***
스타디움이 떠나갈듯한 환호 속에 퇴장했다.
물론 나와 에단 3인방만.
레이크헬은 남아서 두 번째 곡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들의 최고 히트곡인 ‘SOMETHING OR NOTHING’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무대 아래로 내려와 마루 누나를 찾았다.
아까 무대 위로 오르기 전 이어가던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그리고 에단에게 감사인사를…….
음, 다들 상기된 얼굴로 잔뜩 흥분해서 떠들어대고 있는 모습.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들이라고 관중들 앞에 서보지 않았을 리 없다.
줄리아드에 입학했다는 것부터가 어릴 때부터 그런 생활을 주욱 이어왔다는 방증일 테니.
하지만, 지금처럼 대규모의 관객들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해본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물론 그들이 주가 된 공연도 아니었고, 단지 세션으로 참여한 것이긴 하지만.
“다들 고생했어.”
진심이었다.
단 하루.
아니, 하루도 채 주어지지 않은 시간 동안 곡을 외우고 그걸 무대 위에서 연주해내기 위해선 아무리 천재들이라도 어지간한 노력으론 턱도 없는 일일 테니까.
“아냐. 덕분에 즐거웠는걸.”
“진짜 재밌었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가봐. 다른 볼일 있는 거 아냐?”
“그래. 우린 신경 쓰지 말고 일봐.”
그들의 배려에 한 번 더 미소를 지어 보이곤 돌아섰다.
그러곤 저만치서 다소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아저씨와 고 팀장님, 마루 누나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어, 그래. 수고했다.”
“에이, 남의 일인가요? 하하, 대신 내 결혼식 땐 우리 형더러 노래해 달라고 해야죠.”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소용없다.
그들의 굳은 얼굴은 풀릴 길이 없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딱딱해?
‘춤을 춰’ 그러니까 영어권 제목으론 ‘댄싱 위드 미’가 빌보드 차트 30위 안에 들었다는 게 그렇게 심각한 일인가?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데에는 찬동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얼굴까지 굳어 있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
“도준아.”
그때, 마루 누나가 향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
“방금 브라이언이 본사 쪽과 통화를 했는데, 미국 내 반응이 심상치 않은가 봐.”
“그게 무슨…….”
“라디오 쪽도 그렇고, 음원 판매량도 급증하는 중이래. 게다가…….”
“…….”
“그쪽 팬 카페의 회원 수가 갑자기 폭증하고 있대.”
누나 얘기를 듣고는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아니 왜?
그동안 내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포텐이 터지는 이유가 뭐야?
그때, 누나가 내게 건네는 핸드폰.
그걸 받아서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제가 라이브 방송한 거 아니에요? 근데 왜 이렇게 많아요?”
“맞아. 우리 측에서 편집해서 올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팬들이 올린 거야. 그리고 이건…….”
핸드폰을 조작해 보여주는 영상은…….
“응?”
방금 무대 위에서 끝낸 공연이 찍혀 있었다.
사실 발표하려고 만든 노래가 아니어서, 제목조차 붙이지 않은 상태였다.
한데, 공연을 담은 영상 아래쪽에선 댓글들이…….
- 오오! 이거 좋은데?
- 근데 왜 곡명이 없어?
- 아직 안 붙인 거 아닐까?
- 헐! 그럼 오늘을 위해 만들었다는?
- 미공개 곡이니 그럴 수도.
- 형의 결혼식을 위해 만든 곡이라서 그런 걸까?
- 그럼, 이건 어때? ‘그의 하루’!
- 노노. 것보다는 ‘남자의 사랑’이 낫지 않아?
- 촌스러워.
- 큭큭. 그렇긴 하네. 그러면 ‘그 남자의 이야기’는 어때?
그렇게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결국, 곡명이 ‘그 남자의 이야기’ 즉 ‘The Man’s Story’로 정해지는……. 아니, 그걸 왜 니들 정하는 건데?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어떡할래?”
아저씨의 물음에 내가 ‘뭐가요?’ 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자 아저씬 씨익 웃어 보였다.
“이거 음원 발표할 거냐고 묻는 거다.”
음원?
오로지 형과 형수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려고, 정확히는 형수한테 형이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그래서 우리가 형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걸 기뻐하고 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만든 노래인데?
때문에 도입부부터 파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레이크헬이 함께 한다는 전제하에 만들었으니까.
콜린이 마치 이야기꾼을 소개하듯 노래로 날 부른 것도, 그와 호흡하며 형의 이야기를 이어나간 것도, 그 와중에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크리스티나들의 도움을 받은 것도 그 때문.
이를테면 뮤지컬 비스무리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형식도 뭣도 없는 노래를 출시하자고?
그것도…….
“한국을 얘기하는 게 아니겠죠?”
말할 거 있느냐는 듯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난 세 사람이 왜 심각한 얼굴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잭 애드먼 쇼에 초대되었다.”
엉? 지금 어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