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130. 결혼식(6)
암전 속에서 바라본 풍경.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신부를 향해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형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났다.
“크크큭. 네 형 왜 이렇게 웃기냐?”
돌아보지 않아도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다.
명진이 형.
PS 그룹 회장의 손자. 현재는 대학을 다니면서 PS 엔터테인먼트에서 업무를 익히는 중이다. 동종 업계 출신의 전문 경영인을 대표이사로 앉혀놓긴 했지만, 사실상 오너다.
어릴 때부터 워낙 날 예뻐했던 형이었던지라 근래에도 곧잘 연락하고 지내는 중이었다.
“허이구야! 신랑이 저렇게 힘이 없어서 어쩐다냐? 풍선 몇 개 달았다고 휘청이는 거 봐라.”
풍선 몇 개가 아닌데?
헬륨을 불어넣은 풍선 백 개면 무게는 어떨지 몰라도 자전거가 아마 들썩거리지 않을까? 그 정도면 달리면서 중심 잡기가 쉽진 않을 터.
하지만, 형의 친구들은 가차없었다.
“야, 저거 꼭 찍어놔! 나중에 조카 태어나면 보여주게.”
“크큭. 안습이다, 진짜. 하아, 진짜 보는 내가 다 토가 나올 지경이다.”
명진이 형 옆에서 고개를 내젓고 있는 건 수한이 형. 재계 쪽 집안은 아니지만, 대신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고모, 삼촌에 형과 누나까지 식구 중 많은 이들이 법조계에 몸담고 있다. 우리 아버지께서 검사 생활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을 걸로 안다.
한마디로 말해서 둘 다 진정한 금수저다.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랄까.
그런 이들이라서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한 건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또한 가차없이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다. 즉 타고나길 애당초 남을 부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거다.
그런데도 희한한 건 우리 형에 대해선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는 건데…….
그 점이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달까.
약간은 게으르고 또 약간은 덕후 기질까지 갖춘, 태생 자체가 백수인 우리 형. 게다가 멀끔하게 생긴 거에 비해 어딘지 모르게 허당인데다가 가끔 대형 사고를 쳐대는 형인데 말이다.
형한테 사람을 당기는 매력이 있나?
굉장히 눈이 높을 것만 같았던 형수님이 넘어간 것도 그렇고…….
아무튼, 그 둘이 형과 절친이라는 점만은 틀림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건 변하지 않을 테고.
그렇게 보면, 우리 형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
미쳤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길을 돌려 형 쪽으로 시선을 던졌을 때는 두 개의 스포트라이트, 즉 자전거로 100여 미터를 죽을 둥 살 둥 달려온 형과 여전히 오픈카에서 내리지 않고 있는 형수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한곳에서 만났다.
형이 마침내 버진로드 주행을 마치고, 형수 앞에 선 것이다.
숨넘어갈 듯 헉헉대는 소리가 핀 마이크를 거쳐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창피해져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때, 형이 시뻘게진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러곤 장인어른이 될 형수 아버님께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 모습에 형수 아버님은 웃으실 만도 한데 여전히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공무원이라고 하시던데, 직장에선 꽤 무서운 상사일 것만 같았다.
여하간, 미래의 장인께 허락을 받은 형이 형수와 눈을 맞추곤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곤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밀어 진 손.
새하얀 장갑은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하지만, 형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박수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갈채가 쏟아졌다.
스타디움이 떠나가라 터진 박수소리에 형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 그때, 어디선가 들려왔다.
떼창에 버금가는 우렁찬 함성이.
- 잘 살아요! 꼭 행복해야 해요!
씨크릿걸즈의 팬들이 내지른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형수의 눈가에 또다시 눈물이 글썽거린다.
하긴, 나라도 그럴 테다.
가수에게 있어서 팬들이란 그런 존재니까.
솔직히 놀랐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파도를 타는 건 원래는 없던 계획. 그런데 갑자기 씨크릿걸즈의 팬들이 시작하면서 스타디움 전체로 번져나간 것이다.
덕분에 형수는 그야말로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행진할 수 있었으니, 정말로 고마운 일이다.
잠시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형은 형수를 데리고 주례 앞에 섰다.
- 에, 여기 이 자리에 함께 선 두 사람은…….
아버지의 고등학교 때 은사시라던 분께서 두 사람에게 주례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물었다.
- 신랑은 신부를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
씨익하고 웃는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서, 설마?
불길함에 몸이 으스스 떨려온다.
그래, 아닐 거야.
아무리 형이라지만, 그렇게까지 철딱서니가 없지는…….
- 아니요!
아이고, 저 망할 자ㅅ……형님이!
제발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저 자식이 미쳤나?”
“헐! 장난하나?”
명진이 형과 수한이 형이 거의 동시에 어이없다는 듯 소리치고, 만 칠천 명이 넘는 하객들도 술렁술렁.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형님 꿋꿋하게 고함치신다.
- 죽어서도 사랑할 겁니다!
아우, 씨!
어쩔 거냐고 이 분위기!
온몸이 오그라드는……. 응? 형수가 좋아한다?
헐!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
- 큼큼. 신부는 신랑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
- ……예.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부끄럽게 대답하는 형수.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스타디움 안이 박수소리로 가득 차는 순간, 나 역시도 손뼉을 쳤다. 물론 창피해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
두 사람이 버진로드를 걸어간다.
스타디움은 여전히 암전인 상태.
하나가 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 신랑 신부. 그들은 이제 공식적인 부부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이 터졌을 때였다.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파앙!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스타디움의 천장부, 즉 돔이 열린 상태였던지라 폭죽은 하늘 위로 높게 치솟아 터지고 있었다.
팡! 파앙! 팡! 팡! 팡!
화려한 불꽃이 하늘을 수놓으며 두 사람의 새로운 삶을 축복하자, 하객들도 덩달아 즐거운 목소리로 그들을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결혼식은 끝나……는 듯했지만.
100미터나 되는 버진로드를 어둠 속에서 퇴장한 두 사람.
그들이 문을 나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팟!
스포트라이트까지 완전히 꺼지고 난 뒤였다.
웅성웅성.
관객들……. 아니 하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화아아아악!
무대 아래가 밝아졌다.
덕분에 무대 위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래서 더 확실히 보였다.
무대에 서 있는 세 개의 실루엣.
각각의 포즈를 취한 채 서 있는 세 사람.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반주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함성이 터졌다.
댄스곡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나 잘 아는 노래.
도준과 내기하면서 유명해진 곡.
발라드의 황제라는 노준영이 걸그룹인 씨크릿걸즈와 함께 댄스를 추면서 화제가 된 곡.
바로 ‘섹시해서 미안해’였다.
함성이 가라앉기 전에 무대 위에 조명 빛이 떨어지며 색색으로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춤추기 시작하는 세 여자.
유나, 현아, 지연.
소연이 빠져 이젠 더 이상 완전체가 아니게 된 씨크릿걸즈였다.
그녀들이 평소와 달리 검은색 가죽 코트를 걸친 채 섹시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전주가 끝났을 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졌다.
- 섹시해서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노준영의 등장이었다.
검은색 일색의 가죽 바지에 망사로 된 나시티를 입고 무대를 누비며 씨크릿걸즈 멤버들과 하나가 되어 댄스를 추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에 모두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마지못해 부르는 게 아니라 몰입해서, 그야말로 즐거워하며 격렬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섹시한 여자들과 섹시라곤 쥐어짜도 나올 것 같지 않지만 묘하게 지금의 상황이 어울리는 남자의 앙상블.
- 오해하지 마! 내가 그러려고 그러는게 아냐!
원래부터 섹시한 걸 어떡해?
그래도 미안해!
내가 너무너무 섹시해서!
떼창이 들려오며 스타디움은 뜨겁게 끓어올랐다.
그렇게 1절이 끝나고 간주가 시작되었음에도 무대 위나 관객석이나 열기는 쉬이 식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함성이 터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대 위로 누군가 난입한 것이다.
다름 아닌 소연.
여전히 웨딩드레스차림이었지만, 치렁치렁한 치맛단은 그새 잘라내기라도 한 듯 짧아져 있었다.
그런 차림으로 소연이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간주가 끝나고 2절이 시작되기 무섭게 세 명의 나머지 멤버들이 가죽 코트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드러난 모습은 푸른색 일색의 드레스.
그런 채로 네 명의 완전체가 똑같은 동작, 똑같은 리듬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앞에선 노준영이 살짝 코믹 코드가 가미된 댄스를 추는 중이었고.
그제야 모두는 깨달았다.
예식에선 서지 않았던 신부 들러리들.
그녀들이 진정한 자리에서 들러리를 서주고 있다는 걸.
소연이 마지막으로 서는 무대.
적어도 씨크릿걸즈의 완전체로는 마지막 무대가 될 곳.
자신의 결혼식 축하공연에서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이마에 솟은 땀방울조차 개의치 않고 춤을 추고 있었다.
***
“와우! 도준! 저 여자들 누구야?”
“미친놈아! 여태 뭘 본 거야? 도준이 형 와이프잖아?”
“누가 그걸 물어본 거야? 쟤들! 쟤들 말이야! 와아! 에너지가 장난 아니네. 여기까지 뜨거워지는 것 같아!”
“그러게. 한국 싱어들 장난 아닌데?”
“근데, 이 곡……. 도준이 네가 만든 곡?”
“어? 그러고 보니, 왠지 느낌이 딱 네 곡인데?”
하여간 감들은 좋아서.
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있자, 디알로가 팔꿈치로 툭 친다.
“어이, 도준.”
“왜?”
“너 이런 곡도 만들어?”
“그럼 안돼?”
“호오! 저 자신감!”
“응응. 도준은 그래도 돼!”
“그럼 그럼. 난 쟤가 교향악을 만든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거야.”
“응? 그럼, 도준이 막 지휘 같은 것도 하고 그러는 건가?”
“크크큭. 그건 그것대로 볼만하겠는데?”
얘기가 또 이상한 데로 번진다.
아무튼, 이 자식들은 대화를 확장시키는데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근데, 도준.”
그때 콜린이 빙긋이 웃으며 날 부른다.
무서우니까, 그런 표정 좀 짓지 말아 줄래?
또 뭔 얘기를 하려고.
살짝 긴장해서 그를 보고 있자니, 콜린이 기어이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
“우리도 쟤들이랑 공연 한 번 하게 해주라.”
“그게 뭔…….”
“아, 물론 댄스곡으로.”
미친놈아!…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애써 삼켰다.
여기엔 레이크헬과 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씨크릿걸즈와 준영이 형의 공연이 끝나면 바로 다음이 나와 레이크헬의 공연이었고, 그 뒤로도 줄줄이 공연이 있어서 다들 기다리는 중이었으니까.
반짝거리며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수아를 비롯해 가수들이 전부 와 있다.
뿐만 아니다. 고 팀장이나 마루 누나까지 이곳에 있었다.
특히 마루 누나는 전화를 하는지 무대 아래 저편에서 계속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여기서 이러고들 있냐고.
대기실 놔두고.
쯧. 하긴……. 거기선 TV 화면으로 봐야 하니,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도준아!”
어느새 전화를 끊었는지, 마루 누나가 다가와 날 부르고 있었다.
“예?”
뭔가 싶어서 누나를 보며 대답하자, 마루 누나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네 노래가……. 빌보드 차트 30위 안에 들어갔대.”
어? 이건 또 뭔 소리야?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황당한 얼굴이 되어 누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