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126. 결혼식(2)
왜요?
……라는 말이 차마 나오질 않는다.
이미 대답이 예상돼서.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에서 에단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니, 내가 왜 그 자식 결혼식에서 가서 바이올린을 켜야 하는데?
조안나의 목소리도 들린다.
- 킴이 결혼하는 게 아니라, 킴의 브라더!
- 아, 그게 그거지!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에 크리스티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뭐, 어때! 재밌잖아. 아, 근데 너무 낭만적이지 않아? 스타디움을 통째로 빌려서 하는 결혼식이라니!
헐! 어떻게 알았지?
대체 어디서부터 정보가 샌 거지?
순간 머릿속에 두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단 샤오린.
마루 누나와 직통라인을 가진 그녀니까, 분명 알고 있을 거다.
아니, 이미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을 테지.
그렇다는 건 중국 팬들도 한국으로 올지 모른다는 얘기고.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또 한 명은 우리의 빨강머리 앤.
거의 프로급의 사진사이며,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그녀는 나에 관해서라면 심부름센터 급의 추적술을 가졌다.
가끔 백인의 탈을 쓴 닌자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그러니 용의선상에서 빠질 수 없다.
하아, 뭔 일이 갈수록 이렇게 커지는 건지.
점입가경도 정도가 있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설마 공연……. 하시려는 건 아니죠?”
니콜 교수님께서 당연하다는 듯 말씀하신다.
말투도 달라지셨다.
어딘지 모르게 묘하게 싸늘하면서도 날카로운 음색이었다.
- 당연히 해야지. 우린 팀이잖아?
팀…이라. 언제 교수님이 ‘우리 팀’이 되셨을까?
의아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순 없었다.
그랬다간 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길함에.
그저 말했을 뿐이다.
“그,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 호호호호. 안 그래도 돼. 넌 내 학생이고 난 네 지도교수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아, 지금 탑승한다네? 그럼 내일 점심때 보자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시는 교수님이었다.
***
새벽 1시.
밤늦게까지 결혼식에 참석할 손님들에게 쉴새 없이 전화를 돌리던 가족들이 지쳐서 잠에 곯아떨어진 시간.
형수도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전.
난 지금 회사에 와 있다.
“11팀?”
마루 누나가 건네주는 프로그램 편성표를 보곤 황당해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 공연에 참여하는 팀만 무려 11팀이란다.
거기에 니콜 교수가 이끌고 오는 이들까지 더하면 12팀이 된다.
물론 나 역시 포함된 숫자다.
미치겠네.
한 곡씩만 불러도 어지간한 콘서트는 저리가라다.
무슨 우드스탁도 아니고.
형수한테 결혼식을 기대하라고 얘기하긴 했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어떻게 할래?”
아저씨의 물음에 나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진짜 이래도 돼요?”
“안될 건 또 뭐 있어?”
묘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 아저씨.
그런 아저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마루 누나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하아, 표가 다 매진……. 아니 공짜니까 매진이란 표현은 좀 그렇고. 아무튼, 만석이라고 했었지.
미쳤다, 진짜!
동남아시아와 중국, 일본, 한국까지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공지를 올린 지 10분 뒤, 티켓 사이트를 통해 좌석표를 무료로 푼 지 3분 만에 모조리 완판……. 아, 콘서트랑 헷갈려서 그런지 자꾸 이런다. 여하튼 좌석표가 싹 나갔다고 한다.
물론 콘서트와는 달리 상설 좌석은 설치되지 않았다.
당연히 스탠드 석도 없다.
전부 관중석에서 볼 수 있을 뿐.
“고 팀장님!”
내가 팀장님을 부르자, 고 팀장님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날 바라본다.
“개 피디한테서 가장 먼저 연락 왔다고요?”
“그랬지.”
참네. 어디서 들었는지…….
아니지.
이미 소문 다 났다고 하니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건데.
그래도 그렇지.
무슨 남의 결혼식이 축제야?
“근데, 공중파에서 그래도 돼요?”
“아, 내가 얘기 안 했나? 공중파는 아니고, SBC에서 가지고 있는 케이블에서 하자고 하네?”
“JTBS에서도 연락 왔고요?”
“거기뿐인가? 어디 보자.”
고 팀장님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말씀하셨다.
“총 일곱 군데서 연락 왔네.”
황당해서 쳐다보고 있을 때, 고 팀장님이 덧붙이셨다.
“아! 중국이랑 일본, 동남아시아는 빼고 말한 거다.”
입이 절로 벌어진다.
그러고 있다가 말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래, 어차피 벌이는 판. 진짜 크게 가보자 싶었다.
“해요! 해! 생방이든 녹화든 다 팔아요.”
내가 그렇게 외치자, 아저씬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얘기했다.
“그렇게 되면 출연자들한테 공연수익 나눠줘야 하는데 어쩔래?”
나눠주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안다.
가수들마다 몸값이 천차만별인데, 여기서 조금만 삐끗해서 공정성에 문제가 생기면 자칫 분란이 있을 수 있기에 하는 말일 터다.
씨익.
하지만, 문제없다.
나는 웃어 보이곤 얘기했다.
“그건 걱정 마세요.”
다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
단 하루.
가족들과 지인 몇 명만 불러서 하기로 한 조촐한 결혼식이 세기의 결혼식 규모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
정확히는 5시간.
그동안 회사 식구들과 내가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전화기를 돌리고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닌 결과.
10월 1일 토요일 저녁 7시.
장소는 고척 스카이돔.
17,000석이나 되는 좌석은 이미 동이 났고, 그나마 VIP석만 남았다.
당연히 그쪽도 주인은 정해져 있었다.
양가 친척들과 손님들,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초대한 정·재계 인사들의 자리다.
공연팀은 12팀.
레이크헬을 비롯해 한국의 3대 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내준 가수들을 비롯해 준영이 형과 이성원 형님까지. 거기에 수아와 니콜 교수님이 데려오는 세 명의 연주자들 즉 에단과 크리스티나, 조안나를 포함한 숫자. 물론 나 역시 무대에 설 예정이다.
프로그램상으로는 세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국내 케이블 TV를 포함해서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까지 총 아홉 군데서 실시간으로 방영하기로 했다.
“긴장되네.”
차라리 나 혼자 하는 공연이면 이렇게까지 긴장되진 않을 거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일이 너무 커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됐지만 이내 잡념을 털어버렸다.
그래, 뭐 별거라고.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우리 형님 제대로 띄워 주지, 뭐.
형수님도 그렇다.
어여쁜 얼굴에 조신한 성격. 거기에 혼수로 예쁜 조카까지 마련해오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형이랑 결혼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우리 형수님. 어떤 여자든 부러워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주는 일인데 이 정도도 못할까.
거기에…….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될까 모르겠는데, 일단 종이랑 연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에 걸쳐서 내생에 최고로 몰입해서 작곡했다.
물론 가사 역시 어설프지만 내가 직접 썼고.
“마음에 들어 하시면 좋겠는데…….”
작곡된 곡을 바라보다가 컴퓨터를 켜곤 잠시 인터넷을 살폈다.
역시 예상대로다.
하여간 말들도 많지.
[김도준 집안, 재벌답게 통 큰 결혼식.]
[콘서트에 버금가는 규모, 2만 명에 가까운 하객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이 열린다.]
[국내외 스타급 가수들의 축하공연. 레이크헬까지 참여키로…….]
[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 최대의 결혼식이 될 예정.]
[결혼식인가? 아니면 콘서트인가?]
[국내판 우드스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겠냐는 전문가들의 의견.]
기사들이야 그리 나쁘지 않다.
그저 좀 놀랐다…정도의 반응이랄까.
문제는…….
기사마다 달린 댓글…. 아니, 악플들이다.
- 미친! 돈 지랄도 어지간히 해야지!
- 맙소사! 공연자들만 봐도 장난 아닌데, 저게 다 무료라고?
- 씨발라먹을! 재벌 3세면 재벌 3세지, 결혼식 한번 요란하게 하네!
- 진짜 위화감 장난 아님. 여자들이 이거 보고 헛바람이나 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 아! 나도 다음 달이면 여친이랑 결혼하는데……. 제발 우리 여친, 이거 못 봤으면 좋겠네요.
- 우리나라에서만 세 군데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한다는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 요즘 결혼식 점점 소박하게 하는 추세였는데, 김도준 제대로 똥물 튀겨주시고요.
- 더러워서 이민 가든지 해야지. 이놈의 헬 조선 돈만 있으면 뭐든 되는 세상!
- 예, 예. 이민도 돈이 있어야 가는 겁니다.
- 아니면, 킴또쭌처럼 능력이 있던가.
- 아니면, 킴또쭌처럼 재벌 3세던가.
픽하고 웃고 말았다.
그래, 욕해라.
그러라고 이러고 있는 거니까.
돈?
내가 가진 거 싹 다 들이부어도 좋다.
나중에 조카한테서 ‘삼촌 최고!’ 소리 들을 걸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
뭐, S그룹이랑 외할아버지가 나선 순간, 사실상 그리 큰돈이 들것 같지도 않지만.
아무튼, 악플이고 나발이고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왜?
저거 다 배 아파서 저런다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게 누가 건드리래?
나도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니까?
그냥 가족들하고 친지들, 지인 몇 명만 모여서 간단히 밥이나 먹으려고 했지.
물론 악플만 있는 건 아니다.
거의 콘서트에 버금가는 규모인데, 그걸 공짜로 풀었으니 팬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화려한 볼거리에 잔뜩 기대하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
내일 7시부터 시작되는 결혼식 실황중계의 본방 사수를 외치는 이들도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댓글들을 보다가 시간을 확인하곤 흠칫했다.
벌써 새벽 3시.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야 한다는 걸 기억해내곤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
아침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 새벽 6시부터 시작된 전쟁.
식구들이 난리도 아니다.
어머닌 이런 날일수록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며 아침식사준비에 한창이셨고, 아버진 어떤 양복을 입을지 고민하느라 한세월이셨다.
형은?
웬일로 손에서 핸드폰을 떼어놓고 거실에서 서성거리며 안절부절못한다.
그래도 결혼한다는 자각은 있는지, 나한테 묻고 있었다.
“도준아, 실수하면 어쩌지?”
“응, 괜찮아 형. 형 컨셉 상 그래도 전혀 문제없어.”
평소 같으면 이 자식이! 하면서 울컥했을 형인데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아이가 생길 예정이라 그런가?
어째 좀 어른스러워진 것도 같고.
“고맙다, 동생.”
아우! 닭살……. 손발이 막 오그라드는 걸 느끼며 내뱉었다.
“미용실 간다며! 얼른 밥이나 먹자고!”
시끄러운 아침이 그렇게 지나갔다.
***
식구들이 미용실로 향했다가 형수와 만나 고척 스타디움에 도착할 즈음, 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응?
입국장으로 들어서는 일곱 명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니콜 교수, 크리스티나, 조안나, 에단…까진 예상대로다.
그래, 샤오린이랑 브레드까지도 그럴 수 있다 치자.
한데…….
빨강 머리?
앤……. 아니, 실비아가 왜 여길?
머릿속이 살짝 꼬인 느낌이다.
샤오린이나 실비아, 둘 중 하나가 크리스티나들에게 말해서, 그 결과 니콜 교수가 알게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둘 다였나?
쯧,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하냐.
고개를 한차례 내젓곤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킴! 신수가 훤하네?”
장난하나?
어젯밤부터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서 몰골이 개판이구만.
다 아시면서.
농담을 던지시는 니콜 교수님께 말했다.
“보이시죠? 여기.”
눈 밑을 가리키며 앓는 소리를 내본다.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다니까요.”
깔깔거리는 조안나와 크리스티나. 에단조차 픽하고 웃는다.
그러더니 녀석답지 않게 물어온다.
“그래도 좀 편해 보이네. 고향이 좋긴 좋나 보구나.”
내가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에단은 공항을 한차례 둘러보곤 얘기했다.
“흠, 여기가 한국이란 말이지.”
뭔 의미인지는 모르겠는데, 고개까지 끄덕이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녀석을 일별하고 서둘렀다.
“일단 가시면서 얘기하시죠.”
“그럴까?”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니콜 교수가 금발을 나풀거리며 우아하게 걸음을 내딛자 공항 안의 시선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그러다가 날 발견한 누군가가 외쳤다.
“어! 김도준!”
“어디? 어디? 진짜네? 김도준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외침.
개중에는 여섯 살이나 먹었을까 싶은 남자아이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우와! 엄마! 엄마! 저기 봐! 김도준이야, 김도주우우운!”
젠장! 아주 맞먹어라, 맞먹어!
“오! 인기 많은데?”
“역시 아시아의…….”
“스탑! 거기까지만! 얼른 가시죠, 교수님.”
일행을 이끌고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고척 스카이돔에 도착해 스타디움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이거 뭐야?”
어지간히 놀랐는지, 에단이 놀라서 내뱉은 말에 조안나가 맞장구쳤다.
“와아! 나 살면서 이런 거 처음 봐!”
“어떡해! 나 막 가슴이 떨려!”
크리스티나가 내 심정을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