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25화 (125/260)

# 125

#125. 결혼식(1)

콜린이 황당하다는 듯 묻고 있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하긴.

급한 마음에 너무 두서없이 던지긴 했다.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한참 내 얘기를 듣던 콜린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니까, 결론은 네 형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달라는 얘기네?

누군가 들었으면 거품 물고 쓰러질만한 소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이크헬를 불러 축가를 부르게 한다고?

하지만, 이 놀라운 일을 나는 지금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응.”

-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거 아냐? 우리 몸값 비싼데?

알지.

그러니까, 부르는 거고.

그리고 그 정도는 치러줄 역량이 내게 있다는 거 아니겠어?

간단하게 말했다.

“니들 결혼할 때마다 내가 무조건 축가 선다. 됐어?”

- 음, 유진은 두 번 아니 세 번쯤은 결혼할지도 모르는데?

피식.

글쎄다.

유진은 억울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사실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다.

설마 내가 그 정도도 생각하지 않고 얘기할까 봐?

“말했잖아? 너희 결혼식엔 무조건 내가 축가 부른다고.”

- 콘서트 중이면?

“대체 몇 번을 말하게 할 셈이야? 말했지? 니들 결혼식이 먼저라고.”

- 콜!

- 콜!

- 나도 콜!

- 큭큭큭! 미친놈!

- 좋아.

얼씨구?

이것들이 알고 보니까, 다 모여 있었네?

그럼 이제껏 스피커 폰으로 듣고 있으면서도 기척 하나 안 냈다는 소리잖아? 숨소리 하나 없이 들으면서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애썼을지 눈에 그려진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다시 물었다.

“근데, 예식이 저녁 7시인데 가능하겠어?”

지금부터 18시간쯤 남은 상황.

미국 동부에 있는 그들이 여길 올 만한 시간이 될는지 심히 걱정된다.

하지만…….

- 뭘 그런 걸 걱정해.

콜린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 전세기 계약해놓은 거 있으니까, 그거 타고 가면 돼. 제롬! 짐 챙겨! 놀러 가자! 아, 디알로는 브라이언에게 얘기하고.

- 브라이언이 화내면?

- 미친! 브라이언이 화를 왜 내? 그 자식, 요즘 이혼 소송 들어간 거 몰라? 그러고 나면 세린하고 바로 결혼할 텐데, 도준이 축가 불러준다고 하면 얼씨구나 할걸?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꽃이 만발한다.

하여간 유쾌한 녀석들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머금었을 때였다.

-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

“아직 결정 안됐는데,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 고척 스카이돔이나 잠실 스타디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콜린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러곤 이어지는 한마디.

- 아주 작정을 했구나. 오케이! 일을 벌이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금방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레이크헬과 전화를 끊고 나서, 돌아보자 가족들이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피식.

다들 영어쯤은 알아들을 수 있는 실력들. 덕분에 설명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보였다.

대신 나는 형수를 향해 말했다.

“아, 형수님 집에도 얘기해야 하지 않나요?”

화들짝 놀란 형수가 어찌할 줄 모른다.

형도 마찬가지.

하기야 형의 입장에선 처가가 되는데,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나는 형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형.”

“……응?”

“난 될 수 있으면 천천히 가려고.”

와락.

형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에 속으로 웃고 말았다.

***

부모님과 형수 그리고 형은 지금 정신없이 연락 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다들 결혼식에 초대한 손님들이 있었으니까.

특히 형수의 경우엔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부모님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보자면 사돈댁인 두 분께 이 소식을 알리면서 꽤나 식은땀을 흘린 걸로 알고 있다.

다행히 현재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계시는지, 이해해주시곤 결혼식에 초대한 손님들께 연락을 취하시는 중이라고.

이처럼 다를 내 억지에 어울려주고는 있었지만, 미심쩍어하는 눈치긴 하다.

당연한 일이다.

겨우 하루다.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이라곤.

아니 정확히는 18시간이나 남았나?

예식 시간이 저녁 7시라는 걸 감안하면, 빠듯한 게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엄청난 능력자들이 내게 있다는 거.

더욱이 모자란 시간은 돈으로 메우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 특히 한국이란 나라는 그런 점에선 가히 환상적인 곳이기도 하니까.

“아, 그럼 스카이돔으로 결정 난 건가요?”

- 이미 계약했어.

“시간도 말씀 안 드렸는데…….”

- 자식이. 장사 한두 번 하냐?

아저씨가 황당하다는 듯 말씀하시는데, 오히려 내 쪽이 더 황당하다.

이런 일이 생애 또 있을까?

그런데 꼭 몇 번이나 해보신 거처럼……. 음, 왠지 아저씨라면 그럴 거 같기도 한데?

- 저녁 7시잖아? 세팅은 이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사람만 챙겨.

“사람이요?”

- 판을 벌였으면 제대로 해야지. 준영이랑 PS에도 연락해야 할 거 아냐? 아! 이성원 씨한테도 전화해 보고.

역시 아저씨다 싶었다.

알겠다고 말하자, 아저씬 마루 누나와 전화를 바꿔주었다.

- 팬 카페엔 내가 공지 올릴 테니까, 그렇게 알고. 음, 씨크릿걸즈 팬들은 어쩔까?

“잠시만요.”

나는 형수를 불러 돌아가는 사정을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형수가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가 알아서 한단다.

- 오케이. 그럼 그쪽은 알아서 하고. 후우! 18시간이라……. 간만에 또 불타오르네. 도준아! 나중에 누나 시집갈 때…….

“콜!”

무조건 콜이다.

이 정도 신세를 입었으면, 갚는 게 인지상정.

이럴 땐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거지.

마루 누나가 흐흐 거리는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곧바로 준영이 형과 이성원 형님, 그리고 PS엔터테인먼트 즉 명진이 형에게 전화를 넣었다.

반응은 다 달랐지만, 다들 호쾌하게 받아주었다는 점에선 같았다.

- 짜샤! 당연히 가야지! 흐흐흐. 근데, 어째 재밌어진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준영이 형의 반응이었다.

- 뭘 그런 걸 물어? 우리 사이에. 그나저나 네가 저번에 준 곡, 이번에 우리 애 메인타이틀로 올렸다. 곧 앨범 나오는데 언제 와서 한번 짚어줘.

이성원 형님 되시겠다.

마지막으로 현재로선 가장 민감한 곳. 사고를 쳐도 제대로 쳐주신 우리 형님 덕분에 상당히 껄끄러울 수도 있는 씨크릿걸즈의 소속사, PS 엔터테인먼트.

- 하하하하.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나 그 얘기 듣고 진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민준이가 소연 누나랑? 크크큭. 내가 장담하는데, 민준이 아마 꽉 잡혀 살 거다.

어릴 때부터 나나 형하고는 워낙 친하게 지내서인지, 명진이 형은 스캔들이고 나발이고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형이 애처가, 아니 공처가가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낄낄거릴 뿐이었다.

“형수님, 그렇게 안 보이시던데…….”

- 하이고. 우리 도준이, 순진하기도 하지. 얀마. 여자가 얼굴에 쓰고 있는 가면만 몇 갠 지 몰라. 남자랑 있을 때, 여자랑 있을 때, 어른들이랑 있을 때, 일할 때, 놀 때……. 다 달라. 뭐, 그래도 민준이처럼 헐렁한 자식한테는 소연 누나 같은 여자가 딱이긴 하지만. 아무튼, 씨크릿걸즈 애들은 걱정 말고. 안 그래도 이번 일로 애들이 코가 석 자는 죽었는데, 덕분에 이슈 몰이 한 번 해보자. 아, 이왕이면 다른 애들도 끼워 팔면 안 될까?

“누구요?”

- 한창 뜨기 시작한 애들인데, 워나스라고. 7인조 힙합 그룹인데 걔들 퍼포먼스가 좋거든.

“저희야 좋죠.”

- 오케이!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할게.

“저……. 그럼 출연료는 얼마나…….”

- 지랄도 풍년이다. 넌 내가 와달라고 하면, 출연료 받을래? 시끄럽고. 내일 보자. 끊는다.

명진이 형과 전화를 끊고 나서 형을 한차례 보았다.

아닌게아니라 형 옆에는 형수가 꼭 달라붙어서 조곤조곤 뭔가를 얘기하고 있는데, 연방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음, 공처가 기질이 다분하네.

왠지 명진이 형의 얘기가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

혹시 들어봤나?

결혼식에 스폰서가 붙는다는 얘기?

발단은 희주의 전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어, 희주야.”

- 결혼식장 바뀌었다며?

“응.”

- 맘고생 심했겠다. 괜찮아?

“에이, 내가 이 정도로 끄덕할 남자는 아니지.”

허세 좀 부려봤는데, 희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얘기한다.

- 응. 믿어. 근데…….

“왜? 무슨 일 있어?”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뭔데 그래?”

- 할아버지께서…….

이어진 얘기에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니까…….

“S그룹에서 이번 결혼식 비용을 전부 대겠다고?”

장소 섭외부터 시작해서 장난 아닐 텐데?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저쪽으로서도 그리 손해는 아닐 듯하다.

결혼식장으로 내정된 고척 스카이돔에 광고를 처바를 텐데.

게다가 방송으로는 나가지 않더라도, 유투븐을 비롯해 인방이 뜨면 그건 그거대로 파급력이 적지 않을 터. 그렇게 보면 오히려 남는 장사……. 어? 이래도 되나?

갑자기 떠오른 건 다름 아닌 외할아버지였다.

만약 나중에라도 이 소식을 외할아버지께서 들으시는 날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서둘러 말했다.

“희주야, 일단 회장님껜 잠깐 시간 좀 달라고 해줄래?”

그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곧바로 외할아버지께 전화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상황을 얘기하자, 놀랍게도 외할아버지께선 껄껄 웃으셨다.

- 흐흐흐. 역시 넌 날 닮았어.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드시는지, 말투에서 웃음기를 거두지 않으시며 외할아버진 자신이 알아서 하시겠단다.

S그룹 정 회장님과 조정해서 준비할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하는데…….

“나 참, 이거 진짜 결혼식 맞아?”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

판이 커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KSM의 김성만 대표한테서 전화가 왔단다.

아저씨 말에 따르면 지난번 SIDE B 표절 사건 때문에 박성훈이 몰락 아닌 몰락을 하면서 살짝 소원해진 상태였는데, 이번에 형의 결혼식을 대대적으로 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는 연락했다고.

그래서 결정된 게, KSM 소속의 블루스톰 출연 확정. 거기에 KSM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수아까지 출연키로 결정됐다는 얘기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수아가 누군가.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오리콘 차트에서만 세 번이나 정상에 올랐던 가수. 어린 나이에 데뷔해 현재 24살이 된 그녀는 현재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솔로 가수. 파워풀한 댄스와 엄청난 가창력으로 확고부동한 팬덤을 가지고 있는 스타였다.

그런 그녀가 직접 자기도 출연하고 싶다고 얘기했다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아니, 그쪽은 왜요?”

MJ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연락이 왔다는 얘기에 내가 묻자, 아저씨 역시 기가 막힌다는 듯 말씀하셨다.

- 나도 모르겠다. 이명준, 그 양반이 워낙 음흉해야 말이지. 그저 짐작하기론, 이번에 판이 커지니까 슬쩍 껴서 애들 몸값 좀 높이려는 거 같은데……. 어쩔래?

뭘 어째?

올인원이면 요즘 한창 잘나간다는 보이 그룹.

그러고 보니 내가 걔들한테 준 곡이 뭐더라……. 아! ‘4.5’.

아무튼, 나랑 아주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니고.

출연료 한 푼 받지 않고 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건 그런데…….

“이러다가 결혼식, 한 세 시간 하는 거 아니에요?”

농담이랍시고 말한 건데, 아저씬 심각하게 받아치셨다.

- 프로그램 짜봐야 하는데, 그걸로도 모자랄 거 같은데?

헐! 진짜?

황당해서 눈을 깜박이다가 정신을 차렸다.

“뭔 하룻밤의 꿈도 아니고……. 진짜 장난 아니네요.”

- 네가 가요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이 정도라는 거지.

“…….”

- 바쁘니까, 일단 끊자. 무대 설비문제로 계속 전화 들어온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서 머리를 긁적였다.

“판이 너무 커졌는데?”

물론 대차게 나가려는 생각은 있었다.

형이랑 날 한데 묶어서 욕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심산으로.

하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무슨 연말 시상식도 아니고…….

그때였다.

부르르르르.

응?

“니콜 교수님?”

- 킴. 얘기 들었어요.

그렇구나! 들으셨……. 응? 어떻게? 어디서? 누구한테?

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투가 어째 날 선 느낌인데?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저, 교수님…. 지금 어디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사이로 공기를 가르는 커다란 소음도.

그렇게 한참을 웃는 니콜 교수. 그녀가 대답했다.

- 어디긴. 공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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