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22화 (122/260)

# 122

#122. 스캔들(2)

캘리?

그게 누군데?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그래, 일단 무슨 일인지나 좀 보고 그 다음에 고민하자.

판단을 내린 나는 기사를 클릭했다.

그래 봤자, 가십성 기사일 거라고 예상하면서.

까짓 낚시에 걸려주지 뭐.

- 그동안 수많은 부호들과 스타들이 캘리 제니퍼에게 구애 공세를 펼쳤음에도 그녀가 남자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는 건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그녀의 SNS에는 한 남자의 사진과 소식이 줄기차게 올라오고 있다. 다름 아닌 김도준. 그는 한국 출신 싱어로 아시아권에선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그동안 혹시 캘리 제니퍼가 그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미친!

나도 모르는 걸 지들이 어떻게 안다고.

막 주워 삼는구나.

기가 막혔지만, 일단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 한데, 이번에 캘리 제니퍼는 현재 촬영 중인 신작 홍보를 위해 마련된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다. ‘여태껏 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그를 보는 순간 느꼈죠. 운명이라는 걸. 그래요. 그는 정말이지 완벽한 제 이상형이에요.’

여기까지 읽고 나서 아직 끊기지 않은 전화에 대고 누나에게 말했다.

“이 여자 누구예요?”

누나가 어이없어한다.

- 인지도 면에서 말해줄게. 네가 반딧불이면 캘리는 태양?

헐. 한마디로 대세녀라는 건데…….

그러니까, 왜?

이 여자가 이런 발언을 했냐고.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캘리인지 뭔지 하는 여자가 누군지도 몰라요.”

-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아마 네 노래에 빠진 거 아닐까? 퐁당퐁당.

이 와중에도 거침없이 농담을 던져주시는 우리 누나.

참네. 큰일 난 것처럼 전화할 땐 언제고.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마루 누나가 웃으며 얘기한다.

- 뭐, 스캔들이라면 스캔들인데, 너한테 나쁠 것도 없으니까. 아무튼,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연락한 거야.

“예. 이 문제는 한국 가서 얘기하도록 하죠.”

그렇게 전화를 끊었을 때,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었다.

어제 라이브 방송 중에 레이크헬이 채팅으로 물었던 것들 중에 캘리라는 이름이 잠깐 나오지 않았었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물어와서 ‘뭐지?’ 했었는데…….

흠, 제롬한테 전화를 걸어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

핸드폰이 진동이 어찌나 크게 울리던지.

놀라서 바라보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젠장!

어쩌지?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 여기서 피하는 건 오히려 의심만 탈 수 있다.

일단 받자.

“어, 희주야.”

최대한 침착하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쾌활발랄, 순진무구, 반가운 마음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도준아, 지금 어디야?

맑고 차분한 목소리다.

어딜 봐도 전혀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다.

기사를 못 본 모양인데.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지.

“희주야, 지금 탑승해야 하는데……. 혹시 급한 일이야?”

- 아니이이이. 그냐아앙. 내일이면 본다고 생각하니까, 막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서 전화했지. 지금쯤 출발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 흐흐흐. 알았어. 얼른 갈게.”

- 피이. 자기가 빨리 오고 싶다고 빨리 올 수 있나? 비행기가 빨라야지.

“그럼, 기장님께 빨리 가자고 진상이라도 부려보지 뭐.”

- 칫! 그게 뭐야.

“하하하. 아, 이제 탑승하려나 보다. 이따 공항 도착하면 전화할게.”

- 응. 조심해서 와. 알았지?

전화를 끊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전화를 끊은 뒤, 희주는 입가에 띠고 있던 미소를 지우고 표정없는 얼굴로 오늘자 뉴욕타임스를 바라보았다.

거실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신문.

제목이 떡하니 보인다.

[할리우드의 대표 여배우 캘리, 자신의 이상형은 한국출신 싱어 김도준이라고 밝혀.]

“하아.”

한숨을 푹 내쉬는 희주.

도준에 대한 의심?

손톱만큼도 없다.

그동안 괜히 도준이 옆에 붙어 있었던 게 아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안다.

아니, 그전에 희주가 보는 캘리는 도준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 아니다.

자기가 도준의 성격과 취향에 맞추려고 얼마나 노력해왔는데……. 그걸 모를까.

하지만, 남녀관계는 수학공식같이 딱 떨어지는 게 아니란 것도 잘 안다.

특히나 저렇게 불여우처럼 교활하게 다가오는 여자의 경우엔 더더욱.

게다가 자신은 현재 도준에게 있어서 여자친구라고 하기엔 아직 확신하기 어려운 단계다.

아니, 설사 자신이 도준의 여자친구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에게 집착한다거나 혹은 속박한다는 느낌 따윈 주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그가 쉬고 싶을 때면 기대고 쉴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을 뿐.

그렇다곤 해도 꼬여 드는 벌레를 그냥 두 눈 뜨고 지켜만 볼 그녀도 아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희주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언니, 저 희주에요.”

- 어머 희주야. 언니 방금 집에 온 건 어떻게 알고 전화했담?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우리 만날까? 지난번에…….

어릴 때부터 친자매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온 사람. 할아버지로부터도 꽤 인정받고 있는 재원이기도 한 최수연 팀장. 대외전략기획팀의 팀장인 그녀에게 희주가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예. 언니. 지금 나갈게요. 저번에 갔던 데로 가면 되죠?”

- 힘들 텐데, 언니가 태우러 갈까?

“아뇨. 강 기사님께 태워달라고 할게요. 예, 언니. 그럼 이따가 봬요.”

전화를 끊은 희주.

그녀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

새서울 스포츠에서 연예부 기자로만 13년을 구른 강기철은 딱히 이렇다 할 일이 없을 땐 무조건 공항으로 출근한다.

그런 그에게 동료들은 너무 놀고먹는 거 아니냐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할 때도 있었지만, 이는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슈가 있을 때야 당연히 달려간다.

하지만, 아무 일 없으면?

그냥 노나?

그래서야 밥 먹고 살 수 없지.

아니, 그전에 잘려도 벌써 잘렸을 거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연예부에 잘 붙어 있는 이유는 별거 없다.

낚시에도 물고기가 잘 모이는 장소, 이른바 ‘포인트’가 중요하듯 기자도 마찬가지.

누군가 그에게 연예인을 만나기 가장 쉬운 곳을 물으면, 그는 절대 방송국이라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방송국 자체 경비원들과 소속사의 매니저 그리고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연예인을 아무 이유 없이 무슨 수로 만난단 말인가.

하지만, 공항은 다르다.

출국을 하든, 입국을 하든 하루에 연예인들 몇 명쯤은 꼬박꼬박 공항을 거쳐 해외를 드나들기 때문.

사회부 기자들이 경찰서에 죽치고 앉아 있는 거랑 같은 이치다.

다만, 한가지 문제는…….

대놓고 자길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난 연예인들이야 공항패션이네 뭐네 해서 딱히 정체를 감추지 않지만, 몇몇은 스카프나 모자, 선글라스 혹은 안경 등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고 부단히 애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 대박이 있다는 것도 경험으로 잘 알고…….

“헛! 저거……. 김도준 아냐?”

입국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강기철은 눈을 반짝였다.

평범한 남색 자켓에 청바지, 이마뿐 아니라 눈까지 가릴 정도로 내린 머리카락. 거기에 뿔테 안경까지 쓰고 있었지만, 눈썰미 좋기로 소문난 강기철의 눈을 피해 갈 순 없었다.

확신한 강기철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공항에 흩어져 있던 기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젠장! 들켰군!’

하여간 감들은 좋다니까.

강기철은 혀를 차면서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그러곤 재빨리 걸음을 옮겨, 거의 뛰듯이 김도준에게 달려갔다.

머릿속으로는 오늘 아침자 신문에 오른 뉴욕타임스의 인터뷰 기사를 떠올리면서.

***

그래, 인정하자.

내가 워낙 자의식 과잉…. 그러니까 자뻑하는 스타일을 몹시 혐오하긴 하지만, 이쯤 되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그렇다 치고, 적어도 한국에서는 내 인기가 장난 아니란 걸.

알긴 아는데, 가끔씩 까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고.

팡! 팡! 팡!

콩 볶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장난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날아드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니, 내가 귀국한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이놈의 안경.

미국에선 몰라도, 아니 거기서도 그다지 안 통했던가? 아무튼, 한국에선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마중 나온 마루 누나랑 경호원 두 명이 기자들을 막고 있지만, 그걸로 커버가 되겠냐고.

아주 죽자고 덤벼드는데.

“누나, 잠깐 나와보세요.”

“응? 괜찮겠어?”

“뭘 어쩌겠어요? 이래선 공항 나가는 데도 한참 걸리겠구만.”

누나가 비켜나자, 기자들이 무슨 하이에나들처럼 몰려든다.

그런 그들 앞에 서며 안경을 벗었다.

“김도준 씨, 캘리 양의 인터뷰 기사는 보셨는지요?”

“혹시 그녀와는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셨습니까?”

“캘리 양이 김도준 씨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항간엔 이번 미국행이 캘리 양을 만나기 위해 나갔다는 소문입니다만, 사실입니까?”

하아, 아주 소설을 쓰는구나.

일단 걸음을 멈추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곤 기자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기요. 상상하시는 건 자윤데요. 저, 캘리? 그분 잘 모르거든요. 괜히 이러시면 저도 저지만, 그분께도 실례잖아요? 안 그래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스타라고 하시던데…….”

반쯤 농담처럼 말하고 있어서 그런가, 다들 피식거린다.

그런 그들에게 확실히 못 박았다.

“암튼요. 그분이 제 팬이란 건 저도 오늘 알았으니까, 이상한 기사들은……. 아시죠? 자제 부탁드려요.”

싱긋 웃어주자, 다들 따라 웃고는 다른 질문들을 해왔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재차 캘리인지 뭔지 하는 여자 이름을 들먹이는 기자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알아들은 모양이다.

아니 알아챈 거겠지.

내가 진짜로 캘리라는 여자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라는 걸.

“요즘 팬들 사이에선 너무 오래 쉬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대체로 질문들은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오는지, 활동 재개는 언제쯤 할 건지에 맞춰져 있었다.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피할 것도 아니라서 대충 아직 확실히 결정된 건 없다는 식으로 말해주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기자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갈 때였다.

“미국엔 왜 가신 겁니까?”

예측하고 있던 질문이라 대답해주었다.

“여행이요.”

역시 기자는 기잔가보다.

날카롭게 찔러온다.

“한 달 전쯤 출국하신 걸로 아는데요?”

게다가 떠볼 줄도 안다.

“요즘 말들이 많아요. 김도준 씨가 입학한 곳이 예일대인지 버클리인지를 두고서. 줄리아드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가장 많지만요.”

호오, 이것 봐라.

천천히 돌아섰다.

나른한 눈빛에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는 기자 한 명이 보인다.

한데, 마치 그 눈빛이 ‘난 이번 가을,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피식.

이쯤 되면 피할 방도가 없지.

아니, 그럴 이유가 없다.

“예. 맞아요. 저 줄리아드 다녀요.”

굳이 드러내지 않은 건 귀찮았기 때문이지, 굳이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니까.

대신…….

이제 자유로운 캠퍼스 라이프는 날아갔군.

속내를 감추며 바라보자, 기자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달라지는 게 보인다.

가십성 기사를 따러 왔다가 제대로 한 건 올렸다는 얼굴들이었다.

***

기사들 하고는…….

누나가 모는 SUV를 타고 움직이면서 기사들을 읽고 있었다.

하아, 진짜. 쓰레기들 많구나.

[김도준, 줄리아드 입학 사실 밝혀.]

[캘리의 이상형이라던 김도준, 그녀 모른다고 대답.]

여기까진 그럭저럭 예상하던 기사들이다.

의도한 바도 없잖아 있었고.

하지만…….

[김도준, 할리우드 스타 정도로는 눈에 차지 않는다?]

[빌보드에 입성한 가수의 눈높이…. 세계적인 여배우도 연애대상으로 생각지 않아.]

자극적이네.

그러면서도 애매하다.

소송 같은 걸 걸기엔.

“미꾸라지 같은 놈들!”

마루 누나가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뿐이다.

그냥 상대 안 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요. 개가 짖는 거야, 당연한 거잖아요.”

그렇게 얘기하고 눈을 감았다.

정오가 다 되어가는 오전 시간대, 러시아워는 피했지만 그래도 회사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릴 테니, 잠이나 자야겠다.

피곤해서 그랬는지 눈을 감자마자 잠들었다.

그렇게 한숨 푹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어디쯤이에요? 으음……. 노들길인가? 조금만 더 가면 되겠…….”

응?

마루 누나의 표정이 묘하다.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도 같고.

뭔가 싶어서 누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않는 누나.

그러더니 말없이 내게 핸드폰을 내민다.

그걸 받아서 기사를 확인했는데…….

나참, 이건 또 어떻게 알았대?

[할리우드에서 촬영 중인 영화에 김도준의 곡이 OST로 쓰일 예정.]

기사 제목만 봐선 나쁘지 않다.

회사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문제는…….

- ……평소 상당한 친분을 가진 걸로 알려진 레이크헬의 요청에 따라 김도준이 OST 작곡을 맡게 되었……중략……. 한편 이 영화에 캘리 제니퍼가 여주인공으로 출연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흐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헐! 이래서 레이크헬 그놈들이 그런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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