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121. 스캔들(1)
깜짝이야!
이 자식들 뭐야?
어떻게들 알고 온 거지?
수많은 생각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 머릿속이 정리됐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여기에 녀석들이 왔다는 점이지.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와아, 뜻밖의 손님들이 왔네요.”
채팅 창이 와글와글.
대체 누군데 내가 당황하는 거냐부터, 진짜 레이크헬이냐까지 말들이 많다.
채팅 창에서 오가는 대화들을 보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여기서 더는 찌질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드르륵.
한쪽에 놓여 있는 신디사이저를 끌고 왔다.
음을 피아노로 맞춰놓고, 말했다.
“댄싱 위드 미. 한번 불러볼게.”
건반에 손을 올리면서.
“피아노만큼은 아니지만 들어줘.”
그러곤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댄싱 위드 미’…‘춤을 춰’는 데뷔 앨범에 있는 곡이다.
빠른 템포에 흥겨운 가사가 특징인 노래인데, 이게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더 잘 먹힌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보다 팝스럽기 때문이다.
그래 말 그대로 누가 들어도 즐거운 음악이란 거지.
건반 위를 누비며 만들어내는 음들이 방송실을 가득 채우자, 어느새 채팅 창의 소요는 금세 가라앉았다.
다들 묵묵히 음악만 듣고 있는 모습.
그러는 사이 내 입술이 벌어지며 경쾌한 멜로디의 노래가 쏟아져나왔다.
***
“크크크. 봤어?”
유진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거렸다.
콜린 역시 마찬가지.
대놓고 웃진 않지만, 입술을 씰룩거리는 게 꽤 즐거운 모양.
베릴이야 성격상 말없이 지켜보곤 있었지만, 입매가 살짝 휘어 있는 게 그 역시도 이 상황이 재미있긴 하나보다.
그에 비해 제롬은 안절부절못한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의 발단이 자신의 고자질 아닌 고자질로 시작된 셈이니까.
‘하아, 하필이면 딱 그 타이밍에 올 게 뭐람.’
그가 캘리에게 다가서고 최종적으로 딱지를 맞기 일보 직전, 지원 사격하겠다고 다가온 게 바로 디알로였다.
그리고 디알로는 캘리가 막 듣기 시작한 도준의 라이브 방송 녹화분을 보는 순간, 자신의 임무 따윈 싹 다 잊어버렸다.
그때 그가 외쳤던 말은 이거였다.
“어이! 도준이 방송을 하는데?”
그걸로 끝이었다.
“이 자식이!”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 그래도 사정이 있지 않을까요?”
“사정은 개뿔! 딱 봐도 그냥 놀고 있는 거 같은데.”
멤버들이 한마디씩 내뱉는 말들을 듣고만 있던 베릴 조차 고개를 끄덕일 정도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할까.
그런 그들을 보며 캘리가 눈을 빛내다가 물은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김도준을 알아요?”
레이크헬은 일제히 대답했었다.
“예!”
“예!”
“예!”
“예!”
“예!”
다섯 사람이 한목소리로 대답한 후, 이어지는 말들.
“친구죠.”
“베프?”
“노예지?”
“동생이에요.”
“파트너.”
중간에 이상한 말이 끼어 있긴 했지만, 그게 누가 한 말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뻔할 뻔 자니까. 비릿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진의 얼굴을 보자면.
중요한 건 그들이 도준과 상당히 친해 보인다는 것.
아무튼, 그 후로 레이크헬과 캘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물론 그 중심에는 김도준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김도준이 방송을 시작하기 전부터 칼을 갈고 있던 레이크헬이 중간에 끼어든 것이다.
하지만, 도준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모두는 그때까지 쉴 새 없이 떠벌리던 입을 닫고서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도준의 노래가 끝나고 나서였다.
“괴물 같은 자식!”
“언제는 괴물이 아니었나?”
“하아, 더 괴물이 된 거 같은데?”
“근데, 연주 스타일이 좀 바뀐 거 같다?”
다들 탄식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와중에도 캘리는 몽롱한 눈빛이 되어 촬영장 대기실 안에 놓인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레이크헬 멤버들이 혀를 내둘렀다.
“이걸 믿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설마하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할리우드에서도 가장 잘나간다는 여배우가 도준에게 빠져 있을 거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젠장! 이참에 나도 솔로로 나서볼까?”
유진이 투덜거리자, 콜린이 코웃음을 쳤다.
“아서라. 지금까지 쌓아놓은 이미지마저 무너진다.”
“큭! 하늘은 왜! 날 낳고, 도준을 낳은 것인가!”
절규하는 유진 따윈 다들 싹 무시했다.
그리고 서로 돌아가며 타이핑을 했다.
LAKEHELL_1: 한 곡 더 하지?
LAKEHELL_3: In The Center Of The World. 어때?
LAKEHELL_5: OST는 그래서 언제 되는데?
LAKEHELL_2: 일은 안 하고 여기서 쳐 놀고 있을 거라곤 진짜 상상도 못했다.
LAKEHELL_4: 캘리가 도준 팬이라는데?
그들의 난입으로 채팅 창이 난리법석이 되는 모습에 그들은 만족한 듯 웃어 보였다.
***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게 아닌데…….
젠장! 레이크헬 자식들 때문에 어쩌다 보니 벌써 세곡째 내 노래를 부르는 중이다.
근데, 이게 또 잘 먹혔는지 다들 좋다고 난리들이다.
GOLOLL534: 오, 쉣! 이 곡 나 알아!
JOANNA123: 좋은데? 이 노래 제목이 뭔데?
SWAN76: 잠깐 검색해보니까, 빌보드 차트에도 올라와 있네.
7UUUOK: KIMDOJUN?
888JFWA: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LUV_DOJUN7652: 한국이랑 중국에서는 유명한 가수임.
PT7643: 미국에서도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음.
PT7643: 노래 들어봐서 알겠지만, 진짜 장난 아님.
KKKD_J_YEW: 괜히 GODJUN이라고 하는 게 아니지. 그는 진짜 아티스트야.
KELLY12: 그는 지니어스. 진정한 싱어송라이터지.
TYNYTOOOM29: 어쩐지……. 노래 진짜 잘한다 싶더니만.
BAEGER: 연주는 또 어떻고. 나 아까부터 계속 소름 돋는 중.
YOULV1212: 근데, 노래 제목이 뭐라고?
잠깐 사이에 채팅 창이 내 얘기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젠장!
뽀록 다 났네.
이제 여기서 노는 것도 끝인가?
한숨이 나왔지만, 이미 레이크헬 멤버들이 난입했을 때부터 예견되던 상황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화려하게 마지막 방송을 하자.
“오케이. 나 싱어 맞아. 근데, 그게 뭐 어떻단 거지? 우리 여기 놀려고 모인 거잖아? 그러니까, 놀던 건 마저 놀아야겠지?”
이렇게 말하곤 그때부턴 아예 내 곡들을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짜서 불렀다.
바이올린을 치켜든 나는 ‘LONGING TIMES’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전주가 끝날 즈음, 허밍이 흘러나왔다.
***
미국의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인 <캘리포니아 리듬 95.9>를 3년째 진행 중인 제리 레이튼은 신청곡으로 올라오는 곡들을 살펴보다가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응? 킴또쭌?”
갑자기 늘어난 이름.
하나같이 생소한 곡들인데, 싱어가 김도준이었던 것.
“누군데?”
제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그러곤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올라 있었다.
끄트머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1주일간의 라디오 방송 청취율과 다지털 다운로드 그리고 CD음반 판매량,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기준으로 합산 순위가 매겨지는 만큼, 김도준의 음원이 어느 정도 팔렸다는 건 분명하니까.
하지만, 그래 봐야 금세 차트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이후론 그런 곡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사라질 거라고 예상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싱어다.
제리의 눈에 비친 김도준은.
그렇다곤 하지만…….
‘갑자기 왜 이렇게들 신청하는 거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청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저 그가 잘 알지 못하는 싱어임에도 눈길이 갈 정도로 신청하고 있다…이 정도?
“어이, 토니! 킴또쭌이란 싱어, 앨범 좀 찾아와봐!”
잠시 후, 토니가 가져온 앨범을 튼 제리.
그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망할 자식들.
방송을 끝내고 나자, 녀석들에게 득달같이 전화가 걸려왔다.
화딱지가 나서 받지 않을까 하다가 일단 받았다.
무슨 얘기들을 하나 들어보려고.
- 하하하. 도준,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우리한테도 얘기 좀 해주지 그랬어.
콜린과 대화하는 와중에도 수화기 너머에선 왁자지껄 말들이 많다.
레이크헬 멤버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장난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왠지 부아가 치밀어 말했다.
“OST 말인데…….”
- 응?
“한 달은 더 걸릴 거 같은데?”
잠깐 침묵이 흘렀다가 콜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 왜 그래, 도준. 화난 거야?
“누가? 내가? 에이, 그럴 리가. 그냥 영감이 안 떠올라서 그래, 영감이.”
- 지난번엔 거의 다 됐다며?
“그랬지. 근데, 마음에 안 드는 걸 어떻게 하라고. 그래도 그냥 줄까?”
그때였다.
목소리가 바뀌었다.
- 도준! 너 치사하게 이렇게 나올 거야?
유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거울에 비춰본 건 아니지만, 아마도 지금의 내 얼굴은 아저씨를 닮아 있겠지.
“유진, 그런 거 아냐. 혹시 내가 삐쳤다고 오해하는 거 같은데, 절대 그런 거 아니거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잖아? 그냥 곡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그러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아니면…….
- …….
“니들이 만들던가.”
나름 재미를 느끼고 있던 놀이터를 녀석들에게 빼앗긴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반쯤은 진심.
지금 만들고 있는 OST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예전이라면 ‘이 정도면 됐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요즘 들어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뭐랄까. 턱턱 걸리는 느낌이랄까?
특히나 지난번에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그리고 에단이랑 소모임을 하고 난 뒤엔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언제 한번 영화 촬영장에라도 한번 다녀와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걱정 마. 어떻게든 시간 내에는 만들 테니까. 아, 그리고 어제는 덕분에 즐거웠다. 이 자식아!”
- 크음, 뭐 그렇다면야. 오케이. 알아들었어. 아, 내일 떠난다고 했지? 우리가 뭐 도와줄 거 없냐?
“전혀. 그냥 니들은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또 어딜 와서 난장판을 만들려고.
움직였다 하면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사고뭉치들이.
“다녀와서 보자고.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서 머리를 긁적였다.
짐이나 싸야겠다.
내일 떠나려면 준비는 해둬야겠지.
젠장. 그나저나 라이브 방송은 어쩐다?
계속 못 할 것도 없지만, 예전보단 재미없을 거 같은데…….
에이, 모르겠다.
그건 한국 다녀와서 생각해보지, 뭐.
***
다음날 오후, 공항에 도착한 뒤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마루 누나한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예. 누나. 지금 막 비행기…….”
- 도준아! 너 대체 거기서 뭘 한 거야?
응?
저건 또 무슨 말이지?
혹시 라이브 방송을 한 게 문제가 됐나?
찔리는 게 있어서 슬그머니 물었다.
“뭣 때문에 그래요? 뭔 일이라도 났어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곤 이어진 한마디.
- 좌표 보내줄게.
부르르르.
날아든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인터넷 주소가 링크되어 있다.
통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링크된 주소를 클릭하자 곧바로 뜬다.
기사였다.
그것도 뉴욕타임스.
[할리우드의 대표 여배우 캘리, 자신의 이상형은 한국출신 싱어 김도준이라고 밝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