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120. 재밌겠는데? (7)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당연히 되죠!!!”
너무 적극적이라 무서울 정도다.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하며 물었다.
“그래도 갑작스러운 요구일 텐데……. 괜히 바쁘신…….”
“전혀요! 저 하나도 안 바빠요! 아니, 바빠도 무조건 해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얘기한다면야.
“그럼, 좀 부탁할게요.”
이거 지금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아까 방송할 때 음질이 안 좋다는 지적 때문에 꺼낸 말인데…….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해도 좋은 건지.
“근데…….”
샤오린이 궁금하다는 듯 날 바라본다.
“방송이라면 어떤 방송을. 뮤직비디오나 음방을 생각하는 거라면 공간이 조금 협소한데……. 그러려면 적어도 한 층은 완전히 들어내고 다시 공사해야 할 거 같은데요.”
그녀가 동의를 구하려는 듯 브레드를 바라보자, 그가 덧붙였다.
“방송용 카메라는 둘째치고, 조명 때문에라도 전기시설을 다시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음,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거 같다.
나는 재빨리 브레드의 말을 가로챘다.
“아뇨,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을 정도면 돼요.”
두 사람 다 날 빤히 쳐다본다.
그러다가 샤오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라이브 방송이요?”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스트리밍 방송을 말씀하시는 거 맞나요?”
“예.”
가만히 생각에 잠기던 그녀가 고개를 치켜들었을 때, 그녀의 눈은 더없이 빛나고 있었다.
기대감이 차오른 눈동자로 그녀가 기쁨에 겨운 목소리를 토해냈다.
“장비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안 그래도 마침 3층에 혹시 몰라 남겨둔 방이 하나 있는데, 이미 방음처리도 되어 있으니 충분할 거에요.”
그녀의 대답에 웃어 보이자, 샤오린은 신나서 말했다.
“그럼 내일 당장 준비해놓죠. 아, 방송은 언제부터……?”
“그게…….”
이틀 전부터 하고 있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눈은 번뜩 뜨더니 이내 볼을 부풀렸다.
“너무해요. 그런 걸 숨기고 있었다니.”
아, 숨긴 건 아닌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 분명하다.
샤오린은 장담했던 대로 하루 만에 모든 준비를 끝내놓았다.
샤오린이 말했던 방의 넓이는 대략 7평 정도.
살짝 좁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장비라고 해봐야 책상이랑 의자, 컴퓨터랑 모니터를 빼곤 그다지 부피가 나가는 것도 없어서 방송용으로 쓰기엔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방음은 완벽 그 자체.
게다가 오후에 와서 보니, 그녀가 호언장담한 대로 장비도 완벽히 갖춰져 있었다.
존이 쓰던 것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제품들로 구성.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 정도 돈은 그녀나 나나 크게 개의치 않는 금액일 테니까.
샤오린이 기분 좋은 얼굴로 물었다.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충분한 대답이 됐는지, 그녀의 얼굴에 흡족한 표정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어왔다.
“근데, 컨셉은 정했어요?”
“에이,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놀려고요.”
JUN’S SINGING ROOM.
일명 도준 노래방.
말 그대로 놀자고 만든 방이었다.
일정? 그런 거 없다.
한번 해보곤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하곤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사실 크리스티나들과 소모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할 수는 없는 노릇. 지금도 솔직히 일정이 좀 빡빡한 편이니까.
뭐, 나중에 안되면 줄이면 되겠지.
그나마 시간은 정해두었다.
저녁 7시.
그래야 찰리스에서 일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
“제 노래도 부르고,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곡도 부르고……. 가끔 얘기도 좀 나누고요. 그냥 그러려고요.”
“재밌겠네요!”
샤오린이 살짝 몽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말했다.
“저, 근데…….”
“……?”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
“회사에서 알면 좀……. 간섭받지 않고 놀고 싶지 않아서요.”
내 말뜻을 알아들은 걸까?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대신 저도 들어가도 돼요? 방송할 때?”
눈을 반짝이는 샤오린.
“카메라엔 잡히지 않을게요.”
저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콜! 대신 조용히 있어주셔야 해요?”
“당연하죠!”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듯 기뻐하는 샤오린이었다.
***
회사에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결론은 아직은 좀 시기상조라고 판단.
밝히지 않기로 결정.
이래저래 일을 벌여놓은 게 많은지라 언제까지 방송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기도 어려우니까.
그래서 그냥 취미차원에서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내 상념을 떨쳐내곤, 컴퓨터를 켜 장비들을 확인했다.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도 화면에 잘 떠있다.
마이크도 정상으로 작동.
“후우!”
새로운 장소에서 제대로 장비를 갖춰놓고 하는 거라 그런가, 가벼운 긴장감이 몰려와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나를 방안 한구석에서 의자에 앉은 샤오린이 미소와 함께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부르르르.
메시지다.
- 놀러 가도 돼?
크리스티나였다.
곧바로 답장을 날렸다.
- 응, 안돼.
그녀가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온다.
- 히잉. 직접 보면 더 좋을 텐데.
- 지금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중.
- 킴! 오늘도 잘 볼게.
연속해서 날아드는 크리스티나의 메시지를 보다가 웃고 말았을 때였다.
부르르르.
다시금 날아드는 메시지는 조안나로부터 온 것이었다.
- 오늘 내가 신청한 노래 불러줘! 꼭!
어찌나 단호한지.
안 들어주면 큰일 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와서 웃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존?”
- 아직 방송 전이지?
“지금 막 시작하려던 참이야.”
- 말했으면 내가 도와줬을 텐데. 지금이라도 갈까?
“아냐. 괜찮아.”
- 하긴, 어제 보니까 잘하더라. 그래도 하다가 문제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 만사 젖혀놓고 달려갈 테니까.
안 그래도 놀자고 벌인 일에 샤오린을 비롯해 브레드까지 나서주는 것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존한테까지 민폐를 끼칠 순 없지.
“말만이라도 고마워.”
통화를 끊은 뒤 느꼈다.
어느새 긴장감이 사라졌다는 걸.
입가에 미소를 띠며 사이트에 접속.
“뭐야?”
접속자 수가…….
칠백 명?
“또 늘었네?”
***
패트릭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먹을 불끈 쥐곤 외쳤다.
“왔다!”
그는 외침과 동시에 마우스를 움직여 클릭했다.
그러곤 도준이 만든 방으로 들어갔다.
- 하이, 다들 반가워.
화면에 나타나 있는 도준의 얼굴.
도준이 그냥 한마디 했을 뿐인데, 채팅 창이 무섭게 갱신된다.
PT7643: 오, 킴! 나도 반가워!
패트릭은 빠르게 타자를 치곤, 모니터에 떠오른 도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다들 알겠지만, 아직 방송한 지 며칠 안 돼서 내가 좀 어설프거든. 부족하더라도 이해해줘.
채팅 창에 글들이 무수히 올라온다.
GOLOLL534: 걱정 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원래 없는 거잖아.
SWAN76: ㅋㅋㅋ 처음엔 그런 거지. 설렘과 고통이 함께 공존하는 거지.
1MORE_SEC0928: 응? 킴, 아직 버진?
7UUUOK: 꺄악! 변태! 뭐라는 거니!
80V_YRE: 누구야! 1MORE_SEC0928? 오빠! 강퇴 시켜버려요!
[1MORE_SEC0928이 강제 퇴장됩니다.]
패트릭은 인상을 쓰며 한마디 내뱉었다.
“쓰레기 같은 놈이 어디서!”
그때부터였다.
- 자, 그럼 오늘은 신청곡부터 받아볼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팅 창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GOLOLL534: Sultans of Swing.
JOANNA123: The End 제발! 제발!
SWAN76: Sorry
7UUUOK: La Bamba!
888JFWA: 워! 이 분위기 뭐지?
TYNYTOOOM29: 캬하! 신청곡 퍼레이드.
BAEGER: 뭡니까, 이건?
80V_YRE: 무슨 노래든 신청하면 다 불러줌.
KYUTH54: 미친! 이게 가능해?
HIPKING6432: 설마 힙합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건 아니겠지?
YOULV1212: 근데, 어째 방이 바뀐 거 같은데? 음질도 좋아진 거 같고.
GOLOLL534: 나빠진 거보단 낫잖아?
주르륵 뜨는 글들을 보다가 도준은 이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곤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 좋네. Sultans of Swing. 나도 다이안 스트레이트는 좋아해. 진짜 멋진 밴드지. 특히 이 곡은.
도준은 방 한 쪽에 놓인 일렉트릭 기타를 들어 어깨에 멨다.
그러곤 피크를 쥔 손을 휘둘러 가볍게 현을 긁었다.
- 특히 기타 연주가……. 죽이지!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게 정말 1979년, 그러니까 나온 지 20년도 넘은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세련된 곡이 도준의 손길을 타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패트릭이 감탄한 표정이 되었을 때, 도준의 입이 벌어지며 노래가 들려왔다.
- You get a shiver in the night.
It's been raining in the park but meantime.
North of the river you stop and you hold everything.
A band is blowing Dixie double four time.
You feel all right when you hear that music ring.
너는 어둠 속에서 떨고 있어.
주차장에 비가 내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강의 북쪽에서 넌 멈춰 선 채 모든 걸 잡았어.
밴드는 딕시를 여러 번 불고 있어.
음악을 들으면 넌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과연 도준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 없을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던 이들도, 이내 조용해졌다.
채팅 창은 흡사 멈춰버리듯 아무런 글들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화려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풍기는 기타 음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인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방송은 멈춰졌다.
아니,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동안, 도준만 움직이고 있었다.
기타소리와 노랫소리.
오직 세상엔 그 둘만 존재한다는 듯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순간, 도준이 읊조리듯 노래했다.
- We are the Sultans of Swing.
우리는 술탄 오브 스윙.
그 순간, 패트릭은 몽롱한 눈빛이 되고 말았다.
“하아!”
탄식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을 내뱉은 뒤, 그는 미소 지었다.
도준의 방송을 보는 것, 아니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그건 아마도 지금쯤 도준의 방송을 보고 있을 미국 내 팬 카페 회원들이라면 같은 심정일 터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준이 누군지 모르는 이들 역시 같은 반응.
다들 놀라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TEQT3333: 마, 말도 안 돼!
TYNYTOOOM29: 진짜 죽인다!
7UUUOK: 이런 연주라니……! 도대체 뭐야, 저 자식!
KWH45523: 미쳤다, 가창력이 무슨…….
SWAN76: 싱어라는데 내 손모가지를 건다.
80V_YRE: 근데, 싱어가 왜 이런 데서 이러고 있어?
패트릭은 피식 웃었다.
“킴인데 당연하지.”
그는 기분 좋다는 듯 중얼거렸다.
“킴의 노래, 한 번 들어볼까?”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그였다.
뭘 들을까?
빌보드 차트에 재진입한 ‘Dancing With Me’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In The Center Of The World’가 더 마음에 든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패트릭이 막 키보드를 치려는 찰나였다.
LAKEHELL_1: Dancing With Me.
“응?”
패트릭의 눈이 커졌다.
팬 카페 회원 중 한 명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의 눈에 도준이 당황해 하는 모습이 비친 것도 그때였다.
- 어? 뭐, 뭐야?
뿐만 아니라 도준이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때, 채팅 창에 주르륵 뜨는 글들.
LAKEHELL_1: 여기서 놀고 있으니까 좋냐?
LAKEHELL_3: 얼른 불러봐. 간만에 한번 들어보자.
LAKEHELL_2: 하이.
LAKEHELL_5: 이 자식이! 만들라는 OST는 안 만들고!
LAKEHELL_4: 캘리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