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119. 재밌겠는데? (6)
어떻게 알고들 왔지?
소문이라도 났나?
뭔가 싶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곤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채팅 창이 난리다.
TEQT3333: 오, 킴이다!
TYNYTOOOM29: 하이!
7UUUOK: 기다렸어!
KWH45523: 오늘도 부탁해.
SWAN76: 반가워, 킴!
80V_YRE: 여기 분위기 좋은데?
GOLOLL534: 내가 그랬잖아. 재밌다니까.
4KIM_CRYSTAL: 킴! 나 왔어!
GOODJOB765: 노래는 더 죽이지.
YOULV1212: 킴, 얼른 노래 불러줘!
이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글들이 빠르게 채팅 창을 채웠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 참. 즐겁긴 한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오케이! 오늘도 잘 부탁해.”
이렇게 말하고 나서, 뭘 부를까 하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재밌겠는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얘기했다.
“듣고 싶은 노래 있으면 신청해. 뭐든 불러줄 테니까.”
치트키.
이른바 또라에몽에게 부탁해…다.
또 한차례 채팅 창이 달아오른다.
그 모습이 여간 재밌다.
속으로 킥킥거리며 말했다.
“여기 방 이름이 싱잉룸이잖아.”
반응 참 즉각적이다.
GOLOLL534: 지금 그게 무슨 말?
TYNYTOOOM29: 신청곡?
SWAN76: 무슨 노래든 신청하는 대로 불러주겠다는 얘기 같은데?
7UUUOK: 헐! 그게 말이 됨?
KWH45523: 설마 무슨 노래든 상관없다는 얘기?
80V_YRE: 그게 가능해?
YOULV1212: 오오! 이거야말로 진정한 싱잉룸!
여기저기서 노래 제목이 튀어나온다.
그중에서 하나 골랐다.
나도 제법 즐겨 부르던 노래.
저스트 비버의 ‘Love Yourself’였다.
기타 음이 흐르는 가운데, 내 입에서 첫 소절이 흘러나왔다.
“For any times that you rain on my parade.”
두 번째 방송이 시작되었다.
***
황당하기도 하지.
원래 이런 건가?
첫 곡을 끝내기도 전에 접속자 수가 늘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소절을 부른 후 기타를 내려놓았을 땐…….
접속자 수가 300명을 넘어버렸다.
그러더니 한 곡 부를 때마다 쭉쭉 올라간다.
GREAT7546J: 소식 듣고 왔음.
91JGL: 여기 주인장이 그렇게 노래를 잘한다며?
JGJGLOVE: 와우! 이건 뭐……. 소름 끼친다!
POPPOP000: 근데 음질이 좀……. 장비 좀 바꾸는 게 어때?
OHOOO432: 괜찮아, 괜찮아. 장비 따윈 싹 다 씹어먹는 실력이잖아?
말 없는 입이……. 아니 입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더니.
가끔 농담도 주고받으며, 내가 부르고 싶던 노래도 부르고 신청곡도 불러주면서 놀다 보니까, 어느새 접속자 수가 400명에 육박해 있었다.
그러더니 일곱 번째 노래를 부르고 나자,
접속자 수 527.
기어이 500명을 넘겼다.
나 참, 어제 시작할 땐 한 명으로 시작한 방송인데.
그것도 몇 분이나 기다리다가 나 혼자 기타를 치면서.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오늘 방송 시작 전에 접속자 수가 200도 안 되었던 걸 생각하면…….
두 배, 아니 거의 세배로 불어버렸다.
겨우 한 시간 만에.
뭐, 물론 저들이 내일 또 와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랬든 어쨌든 즐거웠던 건 사실.
“재밌었다, 그치? 하하하. 오케이! 다들 와줘서 고마워! 내일 또 보자구!”
채팅 창이 또 한 번 난리법석.
대부분이 아쉽다는 얘기들이고, 뒤늦게 들어온 이들은 한 곡이라도 불러달라고 성화다.
하지만, 그저 한차례 씩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방을 나와버렸다.
찰리스에 갈 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나와 복도를 거닐며 중얼거렸다.
“이참에 요즘 노래도 좀 익혀볼까?”
***
“어? 제스! 이것 좀 봐!”
패트릭의 외침에 제스가 뭔가 해서 시선을 돌렸다.
“뭔데 그래? 킴이 음반이라도 냈대?”
요즘 김도준에게 꽂혀 있는 두 사람.
당연히 입만 열었다 하면 도준의 얘기다.
그게 설사 농담일지라도.
한데, 패트릭의 얼굴에 황당하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마치 어떻게 알았느냐는 듯.
“어? 뭐야? 진짜? 킴이 노래 발표한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패트릭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거기엔 존의 SNS가 떠있었다.
“뭐야? 존이잖아. 근데, 이게 뭐…….”
말하다 말고 눈이 동그래지는 제스.
그의 눈동자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결국, 그의 입술이 벌어지며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킴이 라이브 방송을 한다고?”
아니 왜?
끄트머리에 있다지만, 그래도 빌드 차트에까지 곡이 오를 정도의 가수가 라이브 방송 같은 걸 왜 하지?
그냥 아무 데나 가서 노래 한 곡만 불러도 출연료가 얼만데.
철저히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스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패트릭은 바빴다.
미국 내 도준의 팬 카페에 게시글을 올리느라.
[킴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아직 몇천 명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였지만 파장은 컸다.
적어도 도준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선.
***
“OST는 어떻게 잘 돼 간 데?”
“거의 다된 거 같은데……. 좀 더 시간을 달라네?”
콜린의 얘기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도 안다.
작곡이 쉬운 작업이 아니란 걸.
그것도 한두 곡이 아니니,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준이다.
그냥 종이랑 연필만 있으면 곡 하나쯤은 뚝딱 만들어내는 그 도준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아니,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래 걸린다고 얘기하긴 어렵겠지만…….
아무튼,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바쁜가?”
“영감이 안 떠오르는 걸 수도 있지.”
“아니면 딴짓 거리를 하고 있던가.”
“에이, 설마.”
“그나저나…….”
유진의 눈동자가 한쪽으로 향하자, 레이크헬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현재 스튜디오 안에선 한창 촬영 준비 중.
오늘 밤엔 야간 촬영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후부터 이어진 터라 다들 지쳐 있는 가운데, 특유의 장난기와 활달함으로 중무장한 그들, 레이크헬은 촬영장 한가운데서 유독 빛을 뿜어내고 있는 여배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지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니, 우리도 나름 셀럽인데……. 그래도 그렇지 촬영하는 내내 한 번도 안 쳐다보냐?”
“유진, 그렇게 자존심 상해?”
다른 멤버들이 킥킥거렸다.
이미 유진이 캘리에게 다가가 식사나 한번 하자고 했다가 뻥 차이고 온 걸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그럼 니들이 한번 해보든가!”
유진이 씩씩거리자, 콜린이 웃음을 참으며 손가락을 들어 제롬을 가리켰다.
“제롬군! 꼬리말은 개처럼 패퇴한 유진에게 보여주도록! 진짜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의 마음을 얻는 모습을!”
“에? 내, 내가?”
“가라! 제롬!”
“하아!”
그렇게 팀의 막내는 멤버들의 강요 아닌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캘리에게 향했다.
의자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꽃은 채 눈을 감고 있던 캘리. 그녀의 머리 위에 강한 조명 탓에 생겨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천천히 눈을 뜬 캘리.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사파이어처럼 반짝이자, 제롬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아니, 그러려는 찰나 굳은 의지로 버텨냈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두고두고 멤버들의 놀림감이 되리라는 걸 알기에.
“큼. 저, 저기……. 난 제롬이라고 해요.”
“그런데요?”
차갑다.
아니 관심 1도 없어 보인다.
제롬은 속으로 여기로 자신을 날려버린 멤버들을 원망하며 머리를 쥐어짰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음, 지금 뭐해요? 음악 들어요?”
“예.”
“무슨 음악? 저도 음악 좋아하는데…….”
밴드 하는데 음악을 싫어할 리가 있나.
캘리는 묘한 눈빛으로 제롬을 보다가 얘기했다.
“김도준이라고 알아요? 그 사람 음악 듣고 있었어요.”
“아! 지금 누구라고요?”
제롬이 되물었지만, 캘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르르르르.
하필이면 그때, 그녀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기 때문이다.
순간 캘리의 눈이 커졌다.
미국 내 도준의 팬 카페에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올 때 울리도록 해둔 알람이었기 때문이다.
[킴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게시글을 얼른 클릭해 읽기 시작한 그녀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
“내일 봬요.”
“오늘도 수고 많았다!”
찰리가 찔러주는 돈을 받은 뒤 나온 밖은 어둡기만 하다.
몇몇 가게들이 아직도 문을 닫지 않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낮처럼 활기찬 느낌은 없다.
가을이라 그런가 바람도 차서,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풍긴다.
하긴 자정을 넘겼으니 당연한 얘기겠지.
쯧. 아무리 뉴욕이라도 밤거리는 조심해야 한다던데.
혹여 돌아가는 길에 강도라도 만나면 큰일이지 싶어서 일부러 밝은 곳으로만 다니곤 있지만, 아무튼 좀 서둘러야겠다.
오늘따라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 바람에 한 곡 두 곡 더 친다는 게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끝났기 때문.
물론 그에 합당한 페이를 받긴 했지만, 솔직히 돈 때문에 늦게까지 있었던 아니니까.
단지 사람들이 즐거워하니까,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을 뿐.
그렇게 서둘러서 막 걸음을 옮기려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응?
저 차는?
가게 앞쪽에 대어져 있는 차가 눈에 익는다.
곧바로 그 차가 누가 타고 다니는 차인지 깨달은 나는 돌아섰다.
그러곤 건물을 올려다보곤 픽하고 웃고 말았다.
“뭐야, 아직도 일하는 거야?”
찰리스가 세들어 있는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문은 잠겨 있었다.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신호음이 가다가 통화가 연결되며 샤오린의 음성이 들려온다.
어딘지 모르게 살짝 들뜬듯한 목소리였다.
- 도준 씨!
“아, 예…….”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조금 놀라서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귓가에서 떨어뜨리려야 할 정도였다.
-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집에 가려고 하다가…….”
- 아! 혹시?
문 안쪽에서 뭔가 다다다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머! 도준 씨!”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난 무슨 강아진 줄…….
“역시 아직 있었네요.”
“호호호. 안 그래도 내일 전화하려던 참인데.”
“……?”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동안 그녀가 되도록 나와 스킨십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의 행동이다.
그만큼 흥분했다는 뜻인데…….
뭐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놀랐다.
“와아!”
내가 감탄하자, 그녀가 뒷짐을 지고 가슴을 편 채 뭔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찌 보면 칭찬해달라는 얼굴 같기도 하고.
아닌게아니라 이건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끝난 거에요?”
“예.”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브레드 역시 기분 좋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샤오린은 활짝 웃으며 얘기했다.
“아직 가구랑 설비들은 들여놓지 않았지만, 일단 인테리어는 끝냈어요.”
“좀 더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도준 씨를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작업자들을 대폭 늘려서 투입했어요.”
대체 얼마나 늘렸기에…….
그럼 돈이 많……. 하긴 돈이야 차고 넘치는 사람이니까.
그게 아니라도 내가 넘겨준 돈도 적지 않고.
그러고 보니, 예전에 외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무슨 일이든 정확하고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속도가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라고 하셨었는데.
이것도 그런 건가?
“진짜 고생 많으셨네요.”
“아뇨. 제가 할 일인데요.”
음, 이게 샤오린이 해야 하는 일인가?
살짝 의문이 들긴 했지만, 저렇게 좋아하는데 딴죽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쪽으로 와보세요.”
그녀는 날 끌고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2층에서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여긴 작업실이고요. 여긴 연습실. 보시면 알겠지만, 방음도 완벽하고 공간도 넓어서 어지간한 악기들은 다 들어갈 거에요. 아, 거긴 녹음실이요. 거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설명들.
그 설명들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
정말 음악 작업에 최적화되어 있달까.
2층부터 3층까지는 작업을 위한 공간이었고, 5층과 테라스는 내 개인 공간. 그리고 4층은 혹시나 올지 모르는 손님 공간으로 꾸몄단다.
“원래는 4층도 작업공간으로 하려고 했는데, 2층이랑 3층이 잘 나와서, 중간에 변경했……. 아, 이건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
날 대할 때는 그나마 나은데, 평소엔 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랄까, 살짝 도도하달까.
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진짜 기분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 진짜 강아지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을 정도로.
“방범도 문제없어요. 이걸 누르면 일 층부터 차폐장치가 작동해서…….”
하나에서 열까지 설명하면서 계속해서 웃고 있는 샤오린. 마치 자기가 살 곳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말았다.
“가구랑 설비는 내일 들어올 예정이고요. 민준 씨 결혼식 끝난 뒤 돌아오면 바로 입주 가능할 거에요.”
그럼 기숙사 생활도 얼마 안 남았다는 거네.
음, 갑자기 에단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참네. 얼마나 같이 있었다고 이러는 건지.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마저 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요 한 달간 녀석과는 많은 일이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조용했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아까 찰리스에 오기 전에 라이브 방송을 했던 것만 봐도 더 이상 말해 무엇할…….
“……!”
문득 떠오른 생각에 샤오린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물었다.
“저, 샤오린. 혹시 여기에 방송 장비도 세팅 가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