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18. 재밌겠는데? (5)
에단의 얼굴에 ‘이건 또 무슨 똥 같은 소리야?’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가 이내 와락 일그러진다.
그러곤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바로 돌아서는 에단.
자식, 까칠하긴.
어깨를 한차례 으쓱할 때였다.
“노트북도 되냐?”
***
근처 상점에서 사온 소형 마이크를 노트북에 부착시킨 후 히죽 웃었다.
“이럼 된 건가?”
어디 보자.
인터넷을 통해 알아봐서 프로그램도 깔았고, 장비…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것들, 이를테면 노트북에 달린 카메라의 작동 여부 따위를 점검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방도 만들었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시간을 보니 벌써 저녁 7시다.
사이트엔 온갖 콘텐츠를 컨셉으로 내세운 라이브 방송 채널이 존재하고 있었다.
몇몇은 접속자 수가 많아서 상위에 노출되어 있었고, 대부분은 시시각각 만들어진 후 곧바로 아래로 내려가 사라지고 있었다.
여기도 레드오션이란 건가?
음, 이래선 그냥 묻힐 것 같은데?
어쩔까? 광고라도 해야 하나?
그건 또 어떻게 하는 거지?
아니, 애당초 할 수는 있는 건가?
차라리 샤오린이나 마루 누나한테 전화라도 할까?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됐다.
그냥 시험 삼아 한번 해보지 뭐.
보자,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방을 클릭해 들어가니, 화면에 내가 떠있다.
좌측 아래쪽엔 채팅 창이 떠있고.
그냥 그뿐이다.
아, 접속자 수도 표시되고 있었다.
여기까진 존하고 했을 때랑 똑같아서 그리 낯설지 않았다.
문제는…….
10분 정도 기다렸음에도 아무도 안 온다는 거다.
접속자 수 0
그 상태로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큭큭큭큭…….”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돌아보니 에단이 침대 위에서 등을 돌린 채 누워 있다.
근데, 어깨가 파들파들 떨리는 게 보인다.
저 새끼가!
울컥했지만, 꾹 참고 기타를 집어들었다.
그러곤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Cavatina’를 연주했다.
제임스 윌리엄의 명곡인 카바티나.
1979년 디어헌터즈라는 영화의 OST로 삽입되었던 이 곡은 듣는 순간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선율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곡이었다.
당연히 수도 없이 연주해본 곡이기도 했고.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연주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진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에단이 이쪽을 보고 돌아누웠다는 걸.
아니나다를까.
연주가 끝나자, 에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캐논.”
뭐야?
신청곡이야?
헐. 황당해서 녀석을 올려다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까짓 못 들려줄 것도 없지.
어차피 아무도 안들……. 응?
1.
접속자 수가 0이 아니네?
어느 틈에 한 명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채팅 창에 글이 떠있었다.
[GOLOLL534이 입장했습니다.]
GOLOLL534: 하이.
GOLOLL534: 연주하나 봐?
GOLOLL534: 음, 연주 중이라 정신없네.
GOLOLL534: 근데, 연주 잘하네.
GOLOLL534: 오케이. 난 그냥 닥치고 듣고 있을게.
GOLOLL534: 와! 진짜 기타 잘 치네.
마지막에는 원더풀이라고 외고 있었다.
신기하다.
한 명이긴 해도 누군가 들어와서 내가 하는 방송을 보고 있다는 게.
“반가워. GOLOLL534. 연주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온 줄도 몰랐네.”
- 괜찮아. 근데, 이번엔 무슨 곡 들려줄 거야?
나는 뒤를 한차례 돌아보곤 대답했다.
“캐논.”
정확히는 파헬벨의 ‘카논’으로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다가 20세기 들어 변주곡으로 자주 사용되면서 유명해진 곡이었다.
- 기대할게!
나는 곧장 캐논 변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 와아아아! 진짜……. 무슨 기타를 그렇게 잘 쳐?
“하하! 감사 감사.”
그때였다.
접속자 수가 2가 되는 순간이었다.
[TYNYTOOOM29가 입장했습니다.]
TYNYTOOOM29: 하이! 여기야?
GOLOLL534: 응. 맞아.
TYNYTOOOM29: 근데, 연주 끝난 거?
GOLOLL534: 방금.
TYNYTOOOM29: 에이, 늦었네. 아, 근데 여기 방제가 싱잉룸이라고 되어 있던데, 노래도 하나 봐?
TYNYTOOOM29: 왠지 노래도 잘할 듯.
대화 내용으로 봐선 둘이 친구인듯하다.
GOLOLL534이 부른 걸로 보인다.
아무튼, 한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누군지는 모르는 게 틀림없다.
씨익 웃으며 물었다.
“뭐 불러줄까?”
TYNYTOOOM29: 어? 뭐든 되는 거?
GOLOLL534: ㅋㅋㅋ 이러니까 진짜 싱잉룸 같다.
“아마도? 요즘 나온 것만 빼곤?”
TYNYTOOOM29: 오오오! 패기 장난 아님.
GOLOLL534: Count on me 됨?
“브루투노? 오케이, 가능해.”
목을 가다듬곤, 바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If you ever find yourself stuck in the middle of the ocean,”
- If you ever find yourself stuck in the middle of the ocean,
I'll sail the world to find you.
If you ever find yourself lost in the dark and you can't see,
I'll be the light to guide you.
네가 바다 한가운데에 묶여 있다면,
내가 등대가 되어 널 찾아줄게.
네가 어두운 곳에서 널 볼 수 없고 널 찾을 수 없을 때,
내가 빛이 되어 지켜줄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노래다.
게다가 가사마저 위트가 있어서 한때 매우 인기가 많았던 곡이 바로 ‘Count on me’.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라 기분 좋게 불렀던 것 같다.
- You can count on me like 1 2 3 I'll be here.
And I know when I need it I can count on you like 4 3 2 And you'll be here.
네가 1,2,3 카운트를 세면 내가 여기 있을게.
그리고 내가 4,3,2 카운트를 세면 너도 여기 있을 거야.
“Wooooh, Wooooh…….”
기타 음이 방안을 울리고, 그 음에 실린 노랫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퍼져 나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난 눈까지 감고서 필 가는 대로 노래를 불러제끼는 중.
“You can count on me 'cause I can count on you.(넌 나한테 의지할 수 있어 나도 너한테 의지할 수 있으니까.)”
띠링…….
마침내 노래가 끝나고 난 뒤.
천천히 눈을 뜬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KWH45523: 와아!
SWAN76: 크레이지! 뭐야? 왜 이렇게 잘 불러!
TYNYTOOOM29: 내가 그랬잖아. 장난 아니라니까.
GOLOLL534: 그러게. 나 지금 소름 돋았음.
YOULV1212: 브루투노보다 더 잘 부르는 거 같아!
GOODJOB765: ㅋㅋㅋ 잘 부를 거 같더니만, 이렇게까지 잘 부를 줄은 진짜 몰랐네.
TYNYTOOOM29: 그러니까! 완전 깜놀!
채팅 창이 와글와글.
접속자 수 27.
어느새 늘어난 접속자들. 그들이 채팅 창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할 말을 잃은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씨익 웃고 말았다.
라방…….
재밌는데, 이거?
***
결론부터 말하자면, 방송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접속자 수는 96명에 이르렀다.
참네, 이게 뭐라고…….
딱 네 명만 더 들어왔으면 100명을 채울 수 있었는데…라고 아쉬워하는 날 발견하곤 놀라고 말았다.
그만큼 흠뻑 빠져 있었다는 증거겠지.
희한한 건, 라이브 방송을 하는 그 한 시간 동안 의외로 에단이 별다른 태클을 걸어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녀석은 어느샌가 일어나 침대에 앉아 간혹 눈을 감기도 하고, 또 때론 고개로 끄덕거리며 내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녀석은 이 층 침대의 위쪽에 있었던 덕분에 카메라에 잡히진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방송을 끝마치고 난 후, 찰리스에 도착해서도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오, 킴! 뭐 좋은 일 있냐?”
찰리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 보여요?”
“호오! 이거라도 생긴 거냐?”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찰리에게 그저 웃어줄 뿐이었다.
참네. 그 정도는 이미…….
그나저나 티가 많이 나나?
피아노 앞에 가서 앉으며 중얼거렸다.
“내일, 또 해야지.”
***
다음날 피아노 레슨에 들어가기 무섭게 달라붙는 두 명의 여자들.
“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크리스티나가 볼을 부풀리며 따지고 들었다.
“너무하네. 우리도 좀 불러주지.”
조안나도 마찬가지.
이 자식이!
내가 홱 돌아보자, 에단이 딴청을 부린다.
아니,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겨서…….
입 한번 가볍기도 하지.
“미안. 그냥 재미삼아 한번 해본 거라서.”
“그래도 좀 실망이야.”
“맞아! 우리도 듣고 싶은데…….”
나는 오전 내내 두 여자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
점심을 사주고야 간신히 삐친 녀석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샤오린과 전화로 건물 리모델링에 대한 얘기를 나눈 뒤, 첼로 수업을 들었다.
수업 후에는 레이크헬과도 통화했는데, 대부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잡담.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OST가 거의 끝나간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시간을 한차례 확인했다.
6시 40분.
라이브 방송을 하기로 한 시간은 7시.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곧바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아버지께서 반가운 목소리로 받으신다.
잠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난 뒤, 말했다.
“예. 아버지. 모레 저녁에 출발해요.”
- 그래, 조심해서 와라.
“걱정 마세요. 제가 앤가요?”
아버지와 통화 후엔 아저씨께도 전화를 걸었다.
- 어, 도준아.
언제나처럼 내 전화를 받는 아저씨다.
“모레 들어가요.”
- 도착?
“아뇨. 아마 글피 아침에 도착하지 싶은데요?”
- 왜 비행기 표가 없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 쯧. 돈도 많은 놈이 뭔 궁상을 그렇게 떠냐. 아무튼 조심해서 오고.
“예. 그럼, 예식장에서 봬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뒤,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니 전원이 들어와 있지 않은 화면엔 내 얼굴이 비쳐 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
미소 한줄기가 떠올라 있었다.
오랜만에 다들 볼 수 있겠네.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외할아버지. 거기에 아저씨랑 마루 누나, 고 팀장님까지. 석준이는 잘 있나 모르겠다. 준영이 형은 여전하겠지?
피식.
결국, 웃음이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얼마나 떨어져 있었다고.
그래 봐야 한 달 정도인데.
진짜 오래 떠나 있었던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가.
여전히 얼굴에서 미소를 떨쳐내지 못한 채,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라이브 방송을 하기 위해서.
그때, 문이 열리며 에단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아주 재미 들렸구만?”
“응. 재밌는데?”
침대 위쪽으로 몸을 피해 주는 에단을 보는 사이, 노트북이 켜지고.
사이트로 들어가 내가 만든 방을 찾아 클릭하려는 순간이었다.
JUN’S SINGING ROOM
접속자 174.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접속자 수에 멈칫했다가 중얼거렸다.
“제법 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