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116. 재밌겠는데? (3)
저녁 7시.
원래는 좀 더 늦은 시간에 방송을 하지만, 오늘만은 그보다 두 시간 앞당기기로 한 데엔 이유가 있다.
도준이 밤에 일이 있다고 했기 때문.
존으로선 도준이 찰리스에서 일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지만, 그렇다 해서 따지고 들진 않았다.
사실 그의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준이 나와주는 것만 해도 어딘데…하고 생각할 뿐.
어제 이미 방송시간을 공지했기에 문제 될 것도 없다.
그렇게 수업을 마친 뒤, 도준은 존을 따라서 그의 집에 도착.
도준은 살짝 놀라 눈을 치떴다.
존이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는 방송장비라는 게…….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아 보여서였다.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그리고 라이브 방송용 카메라, 마이크, 조명 장비 등.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전부 책상 위에 올라갈 정도로 소형. 공간이 그다지 많이 필요한 것도, 그렇다고 엄청나게 고가의 장비도 아닌 듯했다.
“이걸로 방송이 가능해?”
도준의 물음에 존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웹캠이랑 조명 한두대, 그리고 USB 마이크만 있으면 일단 시작은 할 수 있어. 물론 기기 성능이나 브랜드에 따라서 가격도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그래 봐야 마음먹고 사려고 하면 못살 것도 없고.”
방송국에서 보았던 커다란 카메라들과 지미집 같은 것만 생각하고 있었던 도준으로선 신세계라면 신세계.
솔직히 한국 집에 있는 녹음실 장비와 비교해도 수준이 확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한 건 아니다.
오히려 흥미진진하달까.
겨우 이 정도 장비로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도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시간 좀 있는데, 뭐 좀 먹고 할까?”
“배고파?”
“아니. 그래도 손님인데, 뭐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그러지.”
“그래? 그럼, 차나 한잔 줘. 주스도 괜찮고.”
“오케이.”
방을 나가는 존을 보다가 도준은 새삼스러운 눈빛이 되어 다시 한차례 방안을 둘러보았다.
딱히 이렇다 할 치장도 안 되어 있다.
심지어는 방음시설조차.
어디서나 볼법한 방일 뿐.
기타나 베이스 같은 악기들이 보이는 것 외엔 깔끔한 모습.
존의 말에 따르면 그가 방송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은 한 달에 500달러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1,000달러라고 해도 우리 돈으로 따지면 백만 원 조금 넘는 돈. 다시 말해 돈이 안 된다.
그런데도 방송을 하기 위해서 기숙사를 나와 따로 방을 구한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
물론 이점에 대해선 도준 역시 신경 쓰지 않았다.
존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취미 차원에서 하는 거라고.
그렇다곤 해도…….
별나긴 별나네.
이게 그렇게 재밌나?
점점 더 기대감이 부푼다.
이처럼 도준이 살짝 두근거리기 시작한 마음을 즐기고 있을 때, 존이 주스를 들고 나타났다.
잠시 후, 예고했던 대로 시침이 7시를 가리키기 바로 전 세팅을 모두 끝낸 존이 물었다.
“준비됐어?”
이게 뭐라고 살짝 긴장까지 되는 도준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시작해도 좋아.”
“오케이. 그럼…….”
***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접속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니터 한쪽에 떠있는 채팅 창에 무수한 글이 올라온다.
이미 도준이 나온다는 걸 예고 해서 그런가, 아니면 애당초 도준을 알고 있던 이들만 모인 건지, 다들 신 나게 떠들어댔다.
- 와! 진짜 킴이잖아!
- 하이, 킴!
- 나, 당신 팬이야!
- LONGING TIMES 너무 좋아.
- 반가워요.
- In The Center Of The World 잘 듣고 있어.
- 존하곤 무슨 관계? 설마 그렇고 그런 관계?
- 미친놈아! 드립 좀 치지 마라.
- 워어어어어. 킴이다, 킴!
난리법석이다.
도준은 정신이 없다.
설마 이걸 다 읽는 건가? 아니, 읽을 수나 있고?
무지하게 빠르게 올라가며 사라지는 채팅을 보면서 도준은 멍해지고 말았다.
라디오 방송 때와는 또 다르달까.
게다가 필터 자체가 없다 보니, 욕설도 난무한다.
섹드립은 기본이고.
근데…….
도준은 재밌다고 생각해버렸다.
“다들 격하게 반가워해 주니, 진짜 뿌듯하네. 내가 방송을 해온 건 다 오늘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인데?”
존은 꽤 매끄럽게 방송을 끌어가기 시작했다.
“그치만 적당히들 해줘. 나 살짝 질투 나려고 하니까.”
- 왓더?
- 미친! 뭐라는 거야?
- 네가 뭔데 킴한테 질투를 해!
- 워어! 정신 차려, 존. 너 따윈 밖에 나가면 발에 채는 돌멩이 같은 거라고. 어디서 킴하고 비교를.
채팅 창이 와글와글.
기분 나쁠 만도 한데, 존은 오히려 키득거렸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조크, 조크. 웃자고 한 얘긴데, 반응 한번 뜨겁네.”
깔깔거리던 존이 정식으로 도준을 소개했다.
“다들 알지? 내가 몇 차례나 곡을 틀어줬는데, 모르면 곤란하지. 그치? 게다가 요즘 SNS에 올라온 사진들도 심심치 않게 봤을 테니 여기 모인 사람 중에선 설마 킴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존의 눈짓에 도준이 어색하게 인사했다.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흔들었다.
“하이, 다들 반가워.”
그러면서 멋쩍게 웃는 모습은 그가 쑥스러워하고 있다는 티가 팍팍 난다.
- 꺄아아악! 귀여워!
-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린 거 같아!
- 여자친구 있어?
- 남자친구는?
- 우우우우우우.
- 몇 명랑 자봤냐?
- 미친! 1MORE_SEC0928 좀 꺼져라!
[1MORE_SEC0928이 강제 퇴장됩니다.]
- 뻑! 킴은 남자 아냐? 뭐가 문젠데? 당연히 여자랑…….
[2MORE_SEC0928이 강제 퇴장됩니다.]
섹드립을 날려대다가 존에 의해 퇴장당하는 모습에 도준은 피식 웃고 말았다.
“자, 그럼 뭐부터 할까? 우선, 도준의 노래부터 들어볼까?”
존이 컴퓨터를 조작해 MR을 켤 준비를 하자, 도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눈짓으로 방안 구석에 놓인 통기타를 가리켰다.
눈을 반짝이던 존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이런 거 진짜 좋아! 역시 라이브란 이런 거지. 다들 놀랄 준비들 하라고!”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통기타를 가져오자, 존이 뭐라 멘트를 날리기도 전에 채팅 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도준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캘리는 몽롱한 눈빛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진짜 녹아버릴 거 같아.”
“하아!”
그녀의 옆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에일리 역시 마찬가지. 한숨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면서 생각했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다 떨리는지.
- 이거 댄싱 위드 미?
노래를 끝내고도 잠시간 연주를 이어가던 도준이 손가락을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 존이 묻고 있었다.
도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 멜로디는 익숙한데, 좀 다른 거 같네? 설마 즉석 해서 편곡?
- 편곡까진 아니고, 조금 바꿔본 거뿐이야.
- 와아! 진짜 너……. 대단하구나!
- 그 정도는 아니고. 나도 모르게 조금 기분이 업 돼서 한번 해본 것뿐인데, 뭘.
“느낌 너무 좋은 거 같아.”
캘리가 꿈꾸는 듯 말하다가 눈을 빛내더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자기, 너무 섹시해!
그녀가 쓴 댓글은 밑에서 올라오는 글들에 순식간에 묻혀서 사라졌지만, 이를 지켜보던 에일리는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저 모습 어디에서 헐리우드 대스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건지.
지금 보이는 캘리의 모습은 싱어에게 푹 빠져 있는 소녀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
뭐지?
실시간으로 불어나고 있는 접속자 수.
존이 만든 방으로 속속 들어오는 아이디를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존의 말에 따르면 통상 두 시간 방송에 1,000명도 들어오지 않는다던 방송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만 명이 훌쩍 넘어갔다.
뿐만 아니다.
- 주니 오빠! 여진이 왔어요!
- 갓준 님, 메이에요!
- 이럴 수가! 진짜잖아! 도준님이다아아아아!
- 형님!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과 중국 팬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접속자 수는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안 거야?
아저씨한테도 그냥 라이브 방송을 한다고만 했지, 따로 시간을 말해준 것도 아닌데.
아, 물론 마루 누나한텐 살짝 언질을 주긴 했었다.
오늘쯤 하게 될 거 같다고.
하지만, 정확한 시간을 말해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무섭게 늘어나고 있는 접속자 수.
어느새 2만을 넘어 3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 킴! 근데, 지금 뉴욕?
- 줄리아드에 다니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야?
- 오! 그럼, 뉴욕으로 가면 킴을 만날 수 있는 건가?
잠시 넋 놓고 있는 사이, 채팅 창에 올라오기 시작한 글들. 갑자기 이상한 쪽으로 흐르자, 미리 나와 말을 맞춰놓은 존이 간단하게 커팅을 시켰다.
벌써 2년째 라이브 방송을 해온 베테랑답다.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마시고요. 킴의 노래나 한 곡 더 들어볼까요?”
- 크크크. 아이피 추적해보니까, 뉴욕 맞는데 뭘.
[SUNCREEM1446이 강제 퇴장됩니다.]
가차없이 강퇴를 시켜버린 존이 내게 눈짓을 보낸다.
기타를 들자, 존이 말했다.
“시간상 이게 마지막 곡이 될 거 같네. 다들 들어봤을 텐데. N9 광고 테마곡이기도 하지. 킴이 부르는 ‘In The Center Of The World’. 부탁해, 킴.”
***
“진짜 멋진 밤이었어!”
존의 말에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로서도 새로운 체험이었고, 뭣보다 즐거웠으니까.
“와! 그래도 그렇지. 20만 명이나 몰릴 줄은 몰랐네.”
기분이 좋다는 듯 말하는 존을 보다 보니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흠, 접속자 수 20만 명이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중파 방송과 비교하자면.
그게 TV든, 라디오이든 간에.
게다가 그중 절반 이상이 한국과 중국팬들인 걸 감안하면 그렇게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20만 명이나 되는 이들과 실시간으로 호흡한다는 것과 누구의 제재로 받지 않고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무엇보다도 존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네.”
“고마워. 아마 오늘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뭘 또 그렇게까지.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존이 손을 내저었다.
응? 이제 다시는 오지 말란 얘긴가?
“아니, 아니. 농담이 아니라니까. 오늘 하루 동안 번 돈이 얼만 줄 알아?”
그야 모르지.
계산을 어떻게 놓는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전에 이게 돈이 된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뭐, 알았다고 해서 욕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640불! 한 달에 벌 돈을 오늘 하루 만에 번 거라니까.”
“그래?”
“그렇다니까!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한참 동안 열변을 토하고 있는 존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또 출연해달란 얘기인가?
한데, 그건 내 착각이었나 보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나도 이걸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야. 다만, 오늘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하고 싶었을 뿐.”
존은 해맑게 웃으며 덧붙였다.
“이런 말 좀 웃기지만, 우리 집도 좀 살거든. 방송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거고. 느꼈을지 모르지만…….”
“…….”
“재밌잖아.”
“그렇긴 하더라.”
“그치? 이거 은근 중독성 있다니까!”
존은 또다시 열변을 토해낼 태세더니 느닷없이 얘기했다.
“아! 그러지 말고, 킴도 한번 해보지그래?”
“뭘?”
“방송말이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