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15화 (115/260)

# 115

#115. 재밌겠는데? (2)

연예인, 즉 대중 앞에서 공연 내지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지닌 이들을 두고 외국에서는 셀럽이라고 하는 반면 국내에선 흔히들 공인이라는 말을 쓴다.

공인……. 어감만으로도 확 부담스럽다.

그냥 세상에 흔하디흔한 직업 중의 하나일 뿐인데 뭘 또 공인씩이나.

설사 많은 사람들이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취급한다는 건 확실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전적으로 봐도 그렇고, 공적인 일을 하기는커녕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 말 자체엔 분명 어폐가 있는 건 맞는데, 한편으로는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맞기 때문에 섣불리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

스캔들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상외로 크게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얘기해서 대중의 공분을 살만한 언행 자체가 스캔들이라는 거다.

즉, 공인은 스캔들을 일으키면 절대 안 된다는 거지.

때문에 소속사들은 자사 소속 연예인들에 대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까다로울 정도로 엄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당연히 계약서에도 명시하고, 그 외에 세부적인 계약들 이를테면 광고계약 따위를 할 때를 대비한 경우에도 연예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근거를 마련해놓는다.

그렇기에 때문에 연예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소속사에 허락을 받는 게 원칙이다.

적어도 계약기간 동안에는.

가수건 배우건 개그맨이건, 혹은 아나운서건 말이다.

그건 단지 수익 발생 여부를 따지지 않더라도 마찬가지.

설혹 자선공연을 하더라도 소속사에 물어보고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 이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친구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하는 건?

당연히 물어봐야 한다.

- 뭐, 문제 될 거 있을까? 어차피 규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인 방송이잖아.

우리 아저씨 시크하신데?

“법적으로도 문제는 없겠죠?”

- 불법체류자냐? 그럴 거 같으면 비자는 왜 내줘? 무슨 공산국가도 아니고.

“어쨌든 해도 된다는 거죠?”

- 해. 대신…….

“……?”

- 존인지 뭔지 하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네가 나오는 방송분 우리가 좀 써도 되는지 물어보고.

“홍보 자료?”

- 마루가 요즘 말만 열면 한탄을 한다, 한탄을 해. 할 일이 없다고. 네가 방송자료 던져주면 얼씨구나 하고 신나서 달려들 거다.

왠지 마루 누나의 모습이 그려져서 웃음이 나왔다.

“알겠어요. 기대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아저씨와 전화를 끊었다.

자, 그럼 허락도 받았겠다. 존한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일만 남았나?

아, 그전에…….

애들부터 만나야지.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텐데.

***

찰리스에 출근하기까지 2시간을 남겨놓고 애들을 만났다.

늘 가는 카페 한구석. 이젠 우리 지정석이나 마찬가지가 된 자리에 다닥다닥 모여 앉았다.

커피 석 잔과 주스 한잔을 시켜놓곤, 물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그냥 말해. 아무거나!”

에단의 버럭질 뒤에, 조안나가 킥킥거리며 손을 번쩍 치켜든다.

“나쁜 소식부터.”

모델 포스를 팍팍 풍기는 그녀에게 픽하고 웃어 보이곤 말해주었다.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니콜 교수께서 지도교수가 돼주시겠다네?”

순간 침묵이 내려앉는가 싶더니, 에단이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누구?”

“니콜…….”

“지도교수라는 게, 설마 우리 모임의 지도교수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

드륵.

의자 밀치는 소리와 함께 에단이 서슴없이 몸을 일으켰다.

“건투를 빈다.”

망설임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그를 향해 슬쩍 말했다.

“너도 한다고 이미 말씀드렸는데.”

멈칫.

어깨를 떨고 있는 에단의 뒷모습이 조금 안쓰럽긴 하지만, 어쩌겠냐? 이미 벌어진 일인데.

“크리스티나랑 조안나도 말씀드렸고.”

“우, 우리도?”

“망했다!”

아니, 얘들은 니콜 교수 얘기만 나오면 왜 이렇게 예민해지는지 모르겠다.

조금 속을 알 수 없고, 어딘지 모르게 살짝 음흉스러운 부분도 있으며, 레슨을 할 때면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긴 하지만……. 그러네. 이번 건은 내가 실수했을지도.

아니나 다를까.

에단이 돌아서며 버럭 소리 질렀다.

“모르겠냐?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수업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라고! 그것도 특별수업!”

그의 말이 크리스티나와 조안나의 심금을 울렸는지, 그녀들의 얼굴이 죽상이 되었다.

그런 그들을 한차례 둘러보곤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그냥 받아들여. 이미 우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니.”

별거 아니란 듯이 얘기하곤, 곧바로 말했다.

“좋은 소식은…….”

“얘기 안 해도 돼.”

에단이 자리에 도로 주저앉으며 대꾸했다.

“어련하려고? 마녀가 나섰는데, 그깟 연습실이 대수겠어? 필요하다면 오케스트라 홀이라도 빌려 오겠지. 그 여자한테 파이프오르간인들 문제겠냐고?”

흠, 그럼 연습실 얘기는 할 필요 없겠네.

그래도 좀 거시기 하긴 하네.

시작하는 마당에 다들 어깨가 축 처져 있는 모습은.

“걱정하지 마. 연말 공연 때문에 니콜 교수도 바쁘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자주 오시진 않을 거야.”

피식.

에단이 조소를 흘린 것도 그때였다.

“넌 정말 마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응? 뭐가?”

그는 날 비웃는 게 분명한 눈빛으로 말했다.

“니콜 교수님……. 6년 전에 동계올림픽에 나가신 적도 있단다. 스키 점프부분이었지 아마? 것도 무려 금메달리스트.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

“…….”

“신체 나이는 우리보다, 아니 넌 빼야겠다. 아무튼, 체력 만땅이란 거지. 게임으로 치면 끝판왕쯤 되려나. 그런 여자가 잘도 빠지겠다. 장담하지. 마녀는 절대로 모임에 빠지지 않아. 오히려 우릴 하드캐리하면 모를까.”

에단이 말하면 말할수록 크리스티나와 조안나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한숨과 함께 흘러나온 읊조림.

“하아, 망했네, 망했어.”

“즐거운 소모임이 될 거로 생각했는데…….”

반응이 참…….

오지게 헤이트인데?

***

세 사람의 반응이 재밌어서 좀 더 보고 싶긴 했지만, 할 일이 있어서 그들과 헤어졌다.

그러곤 찰리스로 향했다.

정확히는 찰리스가 있는 건물.

“잘 되고 있어요?”

2층부터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5층에 이르러 샤오린을 만날 수 있었다.

한데, 그녀 옆에 빨랑머리 앤……. 실비아가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날 발견하자 꽃이 피어나듯 활짝 웃으며 대포처럼 큰 렌즈가 달린 카메라부터 들이댔다.

어색하게 웃어주고는 그들에게 다가섰을 때, 샤오린이 얘기했다.

“일주일 정도면 끝날 거 같아요.”

“꽤 빠르네요? 그럼, 기자재는 그 뒤에 들어오는 건가요?”

“아뇨. 세팅까지 포함해서 그렇다는 거에요.”

살짝 놀랐다.

2층부터 5층, 그리고 5층과 이어져 있는 테라스를 완전히 갈아엎고 거의 새로 만드는데 이렇게나 빠르다고?

놀라운 표정을 애써 숨기고 있을 때였다.

찰칵! 찰칵!

실비아가 여기저길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뭐하는 거냐고 묻자, 샤오린이 웃어 보인다.

“사진 실력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시나리오 쓰기 전엔 사진작가로도 일했었다더라고요. 뭐, 프리랜서로 몇 달 일한 게 다긴 하지만.”

프리랜서고 뭐고 간에 겉으로 봐선 이제 겨우 스무 살이나 됐을까 말까 한 외모인데, 시나리오 작가에 사진작가?

의아해져서 바라보고 있자, 내 눈빛을 통해 속내를 읽은 건지 샤오린이 말해주었다.

“서른두 살. 저보다 언니던 데요?”

“……!”

저 얼굴이?

애니메이션 ‘빨랑머리 앤’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 엉뚱발랄 수다만땅으로 보이는 저 캐릭터가 나보다 열네 살이나 많다?

이제까지 샤오린에게서 들은 얘기 중 제일 황당하다.

“하아, 최강 동안은 따로 있었네.”

“호호호. 아무튼, 실비아가 여기 공사 전부터 공사 후, 그리고 세팅된 후까지 전부 사진으로 찍어서 자료로 남길 예정이에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 물음에 샤오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모르죠. 나중에 그 가치가 얼마가 될지는…….”

***

존의 방송에 출연키로 한 것도 허락받았고.

소모임 문제도 오케이.

공사도 순조롭다.

걱정거리가 없어서 그런가,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래서 그런가 가족들 생각이 절로 났다.

“잘들 있나?”

어머니완 자주 연락하는 편인데…….

음, 그러고 보니 형이랑 형수의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지, 아마?

9월 27일이라고 했던가?

딱 일주일 남았네.

어디 전화 한번 해볼까?

찰리스에 출근할 때까진 30분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느긋한 표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 아들! 어쩐 일이야?

아이고, 우리 최 여사님 기분 업되셨네.

지난번, 그러니까 내가 미국으로 오기 전 형수님 댁 가족들이랑 상견례 할 때만 해도 세상 창피해서 못살겠다는 얼굴이시더니만.

“어쩐 일은요. 어머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드렸죠. 아버지랑 형은 출근했죠?”

저쪽은 오전이라는 걸 상기하며 묻자, 어머니께서 당연하다는 듯 얘기하셨다.

- 그럼. 몇 신데.

그러곤 한참 동안 말씀하셨다.

그중에 절반이 형수님 얘기였는데, 애가 어쩜 그렇게 똑부러지냐는 둥, 우리 집에 보배가 들어왔다는 둥, 말도 잘 통해서 꼭 딸 하나 더 생긴 거 같다는 둥……. 끝도 없이 이어지는 칭찬. 어머니 얘기를 들어보니, 아버지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시는 모양이다.

뭐, 내가 봐도 형수는……. 그래, 우리 형한텐 아까울 정도로 좋은 여자지.

- 네 형도 요즘 얼마나 열심인지 몰라. 아주 다른 사람이 됐다니까.

성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면 그게 성인 아니겠냐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 형은 전생에 나라를, 아니 세계를 구한 게 틀림없다.

- 그래서, 네 형수랑 금은방에 갔는데, 네 형수가 그러는 거야. 반지는 굳이 비싼 걸 할 필요가 없…….

끝도 없이 이어지는 얘기.

어머닌 진짜 신바람이 나셨는지, 쉴 새 없이 말씀하셨다.

- 사돈댁도 얼마나 좋은지. 지난번에 찜질방에 함께 갔는데…….

고부 갈등이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모른다.

거기까진 신이 아닌 이상 예측하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다들 노력하고 있구나.

우리 집 식구들도, 형수님 댁 식구들도. 그리고 형과 형수님 두 사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한참을 듣다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형은요? 아직도 그 회사 나가요?”

- 어? 어……. 그, 그렇지, 뭐.

뭔가 머뭇거리는 느낌이신데.

- 아들, 요즘 밥은 잘 먹고 다니지? 엄마가 한번 갈까? 너 주려고 김치랑 볶음고추장이랑 해놨는데.

“에이, 뭘요. 일주일 뒤면 뵐 텐데요.”

어째 말을 돌리는 느낌인데…….

- 다른 건 몰라도, 끼니는 거르면 안 된다? 알았지?

끝까지 걱정스레 말씀하시는 어머니.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망설였다.

형한테 전화를 할까 말까.

그러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리 못 미더워도, 형은 형이다.

형이 먼저 말하면 모를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은 모른 척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동생이 괜히 파고들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겠다 싶어서.

***

존이 전화를 받은 것은 늦은 저녁. 막 라이브 방송을 하려던 차였다.

“킴!”

안 그래도 기다리던 전화라서,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밝기만 했다.

그 목소리는 통화가 끝날 때쯤엔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뒤, 그는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이 기쁜 소식을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혹시 킴이라고 아나 몰라?”

채팅 창에 댓글들이 빗발친다.

안다는 녀석들도 있었고, 모른다는 녀석들도 부지기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말했다.

“내일은 다들 꼭 와줬으면 좋겠어. 왜냐고? 하하하하. 그 킴이 오기로 되어 있거든.”

그렇게 시작한 방송.

평소보다 한 단계, 아니 두세 단계는 업이 된 존이 방송을 이어가는 동안, SNS 상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LONGING TIMES’의 허밍을 기억하는 이들은 환호했다.

N9 광고 영상으로도 유명한 노래 ‘In The Center Of The World’의 싱어송라이터.

김도준이 존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밤사이 그 소식은 전 미대륙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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