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14화 (114/260)

# 114

#114. 재밌겠는데? (1)

좀 놀랐다.

빌보드 차트 재진입?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음원 사이트 차트에서의 역주행같은 거랑은 차원이 다른 일인 것도 맞다.

수없이 많은 곡들이 주 단위로 발표되고 빌보드에 이름 한번 올려보지 못하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사라지는 걸 감안하면 사실 엄청난 일이다.

그만큼 이슈가 될만한 일이 없고선 거의 불가능한 일.

이를테면 해당 곡의 가수가 신곡을 낸다거나 뭔가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끌어낼 만한 엄청난 사건·사고가 있지 않고선.

한마디로 말하면 레이크헬처럼 인지도가 높은 밴드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대체 뭔 일이야?

그냥 운이 좋았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물론 운이란 걸 무시할 생각은 없다.

다만…….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

그것이 설사 우연처럼 보일지라도.

그게 뭘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

핸드폰이 진동을 한다.

확인해보니 콜린이다.

느낌이 온다.

확인하자마자 득달같이 걸어오는구나.

“어, 그래.”

- 크크큭. 축하해!

전교 1등이 반에서 10등 안에 들었다고 칭찬해주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고마워.”

하지만, 어쩌겠어.

여기선 내가 우등생이 아닌 걸.

나 참 인기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 근데, 곡은 다 됐냐?

그럼 그렇지. 용건은 따로 있었구만.

“가이드는 잡았어.”

솔직히 말하면 거의 다 됐지.

그런데도 이렇게 얘기한 건, 단지 심술이 나서만은 아니다.

“조금 더 만져야 할 거 같은데?”

뭐라고 딱 짚어 얘기하긴 어려운데, 이대로라면 조금 아쉬울 거 같아서였다.

내 얘기를 단박에 알아차렸는지, 콜린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 오케이! 다들 기대하고 있으니까, 하는 김에 고생 좀 해라. 부탁할게.

전화를 끊고 나자,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이 몰려들었다.

크리스티나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레이크헬이야?”

통화 중에 소리가 좀 새어나간 모양인데…….

귀도 밝기도 하지.

“응. 콜린.”

조안나가 궁금해하는 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근데, 뭘 더 만져? 혹시…….”

음, 꽤 눈치가 빠른…….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 왜 전개가 그쪽으로 가?

기가 막혀서 소리쳤다.

“아니거든!”

뭐야? 저 아쉬워하는 눈초리는?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였다.

“도준, SNS에 사진 올라오던데…….”

에단이 말끝을 흐리며 눈을 빛낸다.

알고 있다.

자주 확인하진 않았지만.

근데 그게 왜?

의아한 눈초리를 해 보이자, 에단이 물었다.

“혹시 이것 때문이 아닐까?”

“뭐가……. 아! 그럴 수도…….”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더라도 뭔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

똥패인지 알고 뽑았는데, 그게 신의 한 수일 줄 누가 알았겠어.

진짜 우리 빨강머리 앤 대단하다.

어떻게 1시간마다 한 장씩 풀로 달리냐?

그것도 24시간.

그만큼 찍어놓은 사진이 많다는 건데…….

덕분에 내 생활이 아주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중.

신 난 건 팬들.

더 웃긴 건 팬 카페에 올라온 게시물 중 ‘갓준의 하루’라는 글이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는 사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사진들로 구성, 마치 내 일상을 디테일하게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줄리아드와 관련된 부분만 쏙 빠져 있는 건 마루 누나의 검열이 들어갔다는 얘기겠지.

그래 봐야 얼마나 가겠느냐마는.

요즘 들어 솔솔 흘러나오는 중이었으니까.

내가 현재 미국 유학 중인 거 아니냐는 소문이.

덕분에 원성이 자자하다.

- 갓준 너무한 거 아님? 요즘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건 팬들 무시하는 거라 봄.

- 주니 오빠, 신곡 듣고 싶당.

- 저도 오라버니의 그윽한 저음과 짜릿한 고음이 그립네요.

- 그 정도까지는. 그래도 아쉽긴 하네요. 보고 싶다, 주니 오빠. ㅠㅠ

- 그래도 사진은 원 없이 보잖아요. ㅎㅎㅎ 개인적으로 요즘 올라온 사진들 진짜 굳! 포토북으로 만들어서 소장 중.

- 호오! 그거 좋네. 아예 팬 카페 차원에서 포토북 제작하면 어떰?

- 굳잡! 난 찬성일세.

- 22

- 333

- 그냥 운영진들에게 제안하면 안 되나?

- 근데, 그거 사실임? 도준 오빠, 버클리 갔다는 거?

- 난 예일대라고 들었는데?

- 님들요, 사진 잘 봐요. 거기 뉴욕이에요. 그리고 지난번에 올라왔던 동영상…….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그림 나오지 않음? 백퍼 줄리아드임.

코난인데?

이거 뭐 더 이상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겠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아무튼, 빨강머리 앤…. 아니, 실비아가 한몫 거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거기에 은근슬쩍 숟가락을 얹고 있는 건 존.

처음엔 호기심으로 접근하는가 싶더니, 요샌 아예 사생팬 다됐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친한 척하는 건 기본. 사진도 찍고 사인만 몇 장을 받아갔는지. 그거 다 받아서 뭐하나 몰라.

크리스티나들과 헤어진 뒤 마루 누나와 통화하면서 몇 번이나 혀를 찼는지 모른다.

- 장난 아니던데? 며칠 사이에 너한테 푹 빠진 거 같더라.

이를테면 금사빠 스타일가 본데…….

“그래서 누나 얘긴 그 두 사람 때문에 미국 내에서 내 인기가 올랐다? 이런 얘긴가요?”

- 나 역시도 정확히는 모르지. 미국이 어지간히 넓어야지.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 두 사람의 SNS 방문자 수와 팔로워가 늘고 있다는 거.

“흠, 그거론 좀 근거가 희박하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그 정도로 빌보드 차트 재진입이라니.

-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엊그제 미국 사이트에 네 팬 카페까지 등장했으니까. 거기 올라오는 사진이랑 동영상. 그거 다 실비아가 찍은 것들이더라고. 간간이 존인가? 그 친구가 올린 것도 보이고.

“실명을 썼을 리 없는데 잘도 아시네요.”

- 에이, 그 정도로 못하면 장사 집어치워야지.

“근데, 누난 이렇게 될 거 알고 계셨어요?”

- 나? 아니이이이. 내가 무슨 점쟁이니? 나 그렇게 큰 그림 못 그려. 알잖니?

전략이 아니다?

글쎄.

내가 보기엔…….

마루 누나가 설계하고 샤오린이 현장 지휘, 실비아가 시공한……. 맞네, 공사.

이게 빅비쳐가 아니면 뭔데?

물론 존까지 나서서 설쳐준 것은 좀 의외였지만.

아무튼, 겨우 그 정도로 빌보드 재진입까지 해낼 줄은 정말 몰랐다.

“아, 누나. 지금 수업 들어가야 해서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 오케이. 고생해.

전화를 끊고 나서 중얼거렸다.

“흠, SNS가 무섭긴 무섭네.”

***

피아노 레슨이 끝나고 나서, 나는 니콜 교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연습실이 필요하다? 그때 그 일은 끝난 거 아닌가? 아니면, 아직도 알렉스인지 발렉스가….”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애들이 재밌었나 보더라고요.”

눈을 살짝 반짝이는 니콜 교수.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애들이랑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그때처럼 연주하기로 했어요.”

“소모임인 거네?”

“비슷해요.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만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컨셉은 뭔데? 설마 기타치고 드럼 때려댈 건 아니겠고.”

“융합이랄까요.”

“일단 흔한 시도네.”

맞는 말이긴 하다.

평이하다면 평이한 컨셉. 단어만 들어도 뻔할 정도로.

다만…….

“그래도 킴이 한다니까, 기대가 되는 걸 왜일까?”

또또, 치켜 올라가기 시작한 입꼬리.

게다가 화려하게 만개하는 웃음꽃.

흥미롭다에서 무지 많이 흥미롭다로 변해가는 눈빛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냥 우리끼리 아무 데서나 할 걸 그랬나 하는.

아니나다를까.

니콜 교수가 풍성하고 탐스러운 머리칼을 한차례 쓸어올리며 얘기했다.

안 들어주면 다 엎어버릴 듯한 음성으로.

“그럼 지도 교수가 하나쯤은 있어야겠네.”

이미 제 지도교수이신데요.

……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그래 주시면 저희야 좋죠.”

씨익.

마음에 든다는 듯 웃으시더니, 물어오신다.

“크리스티나, 조안나, 에단이라고 했던가? 멤버가?”

“예.”

“흐음……. 피아노가 둘인데?”

“조안나는 첼로를 맡기로 했어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싶더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어요. 내가 알아서 준비하죠. 세팅되면…….”

“아, 그러실 거까진 없는데요. 연습실 사용만 허용해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호호호. 세팅되면! 얘기할 테니까!”

“……예.”

“그렇게 알고. 가봐요.”

말투가 변하고, 눈빛도 변했다.

사무적으로.

하지만, 번들거리는 입술은 여전히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

니콜 교수의 방을 나오며 어깨를 한차례 으쓱거렸다.

이 소식을 들으면 애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훤하다.

아마 기겁하지 않을까?

마녀 운운하면서…….

픽하고 웃으며 막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킴!”

아이, 씨! 깜짝이야!

내가 어지간하면 놀라지 않을 텐데, 몸을 돌리자마자 눈앞에 시커먼 얼굴을 들이밀고 들어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있나.

존이었다.

“무, 무슨 일이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묻자, 존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킴! 부탁이 있는데…….”

야이, 씨! 무슨 부탁을 그렇게 웃으면서 해!

부탁이란 건 굽실거리면서 해야 하는 거지.

이게 갑과 을의 개념조차 없네.

아, 이건 한국적인 사고방식인가?

그래, 로마에 오면 로마법, 미국에 오면 미국법을 따라야지.

“부탁?”

“응.”

해맑게도 웃는다.

저런 얼굴로 사방에 떠벌리고 다녔겠지.

내가 싱어라고.

중국 공연이 어쩌고……. 콘서트가 어쩌고……. 내가 부른 노래들이 어쩌고……. 하면서.

그걸 생각하니까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지만, 속내를 감추며 되물었다.

“무슨 부탁인데?”

“별건 아니고, 내가 방송을 하나 하는데…….”

응? 방송?

“너 방송국 다녔냐?”

“풉!”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존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다가 전혀 웃지 않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곤 농담이 아니란 걸 깨달은 모양이다.

“트와치 몰라?”

“그게 뭔데? 방송국 이름이야?”

이놈의 미국엔 방송국도 엄청 많아서 몇몇 방송사들을 제외하곤 다 처음 들어보는 곳들 뿐이다.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서 물었던 건데.

“아니, 게임 전문 스트리밍 방송 중 하나인데……. 자, 봐봐.”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는 존.

촌티 팍팍 내면서 그가 보여주는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 이거 본 적 있는 거 같다.

한국에 있을 때 케이블 TV에서 하던 게임 방송이랑 유사하다.

양측 게임 화면 보여주면서 누군가 해설해주고, 한쪽 채팅 창에선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고…….

그걸 또 읽어주며 낄낄거리는 걸 본 적이 있다.

물론 게임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고.

형이 보는 걸 옆에 앉아서 잠시 본적이 있다는……. 흠, 그나저나 형은 어떻게 지내나? 전화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었다.

“그래서 이게 뭐? 설마 나보고 게임 하라고?”

“아니, 그건 아니고. 내가 유투븐에서 방송을 하는데, 거기에 게스트로 나와줬으면 해서.”

응? 유투븐?

거기서도 이런 방송 하나?

그냥 동영상 만들어서 올리는 게 아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그가 자신이 지난주에 했던 방송 녹화 영상을 찾아 보여준다.

역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냥 한번 보니까 대번에 감이 온다.

라방같은 거랄까.

카메라 앞에 앉아 존이 음악도 틀어주고, 연주도 가끔 하고, 또 종종 춤도 추면서 시청자들이랑 소통하고 있었다.

“어때? 재밌겠지?”

“그러네.”

기대감에 부푼 존이 눈을 반짝거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일단 한발 물러섰다.

“이거 꼭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거냐?”

“그런 건 아닌데…. 왜? 곤란한 점이라도 있어?”

“회사에 물어봐야 하거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아! 소속사?”

고개를 끄덕여주자, 존이 알겠다는 얼굴을 해 보인다.

아쉽다는 눈빛이 역력하다.

반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라이브 방송이라……. 꽤 재밌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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