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107. 일도 아니죠(1)
“제대로 터졌네요.”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과 게시글들을 보며 조마루가 얘기하자, 강혁수가 습관처럼 턱을 매만졌다.
그러다가 이내 고 팀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눈이 마주친 고 팀장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 모습에 조마루의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감히 누굴 건드려!’
도준이가 가만히 있으니까 우습게 보였던 모양인데, 할 줄 몰라서 그냥 있었던 게 아니다.
단지 귀찮아서였을 뿐.
그런데도 계속된 도발.
이쯤 되면 도준이 성격에 두고만 볼 리 없다.
겉으론 유순해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물렁물렁한 애가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도준은 도준의 방식으로 받아쳤다.
알렉스 박의 노래, ‘흐느낌’의 커버곡이 지금 유투븐은 물론이고 인터넷 곳곳으로 퍼져 나가며 대한민국이 다 들썩거리는 중.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알렉스 박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가창력, 거기에 차원이 다른 감각으로 편곡된 곡은 아예 다른 곡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으니까.
한마디로 급이 다르다.
알렉스……. 아니 네티즌들이 스스럼없이 발렉스라고 부르고 있는 놈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거라면 도준의 수준은 이미 하늘을 날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다 보니 굳이 노래를 비교해볼 필요조차 없을 정도. 그럼에도, 강혁수는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가차없이 벤다.
도준이가 상대방을 철저히 밟아버리는 타입이라면, 강혁수는 아예 숨통을 끊어버리는 타입.
물론 아무 때나 그러는 건 아니다.
지금처럼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즉 도준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건드린 대가일 뿐.
“올렸습니다.”
“수고했어. 마루도, 애썼고.”
“예. 대표님.”
별일 아니라는 듯 돌아서서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강혁수. 그의 등을 보다가 조마루는 눈을 번뜩였다.
딸각.
그녀의 손이 움직이며 마우스가 클릭한 영상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유투븐에 막 올라온 영상이었다.
‘흐느낌’의 반주가 흐르고 곧이어 반으로 나뉜 화면 속에 알렉스 박과 김도준이 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곤 마치 듀엣으로 부르기라도 하는 듯, 한 소절씩 노래하기 시작했다.
고 팀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편집본이었다.
***
핸드폰을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쯧, 내가 올린 커버곡 동영상이 차단당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런 건 짐작도 못 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진짜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
마치 두 사람이 한무대에서 함께 부른듯한 모습.
한 소절씩 번갈아가며 연주되는 반주, 재즈풍의 R&B와 세 명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클래식 연주가 교차하는 가운데 알렉스인지 뭔지 하는 놈과 내가 차례로 노래하고 있다.
그렇기에 실력 차가 확연히 드러나 버린다.
제대로 안티네.
기다렸다는 듯 이런 동영상을 올린 걸 보면.
그것도 아니라면…….
솔직히 의심스럽긴 하다.
혹시 아저씨가 손을 쓴 게 아닐지.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나한테 맡긴다고 했으니,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그나저나 준비해둔 건 어쩐다?”
후속타로 만들어둔 게 하나 더 있는데…….
“됐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겠지 뭐.”
내가 보기엔 지금 인터넷에 올라온 반응만 봐도 알렉스 박은 한동안 얼굴을 들고 다니긴 어려울 터다.
적어도 앞으로 세계가 어떻고 하는 개소리는 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팬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복날 개 처맞듯 발리는 중이었지만.
게다가 샤오린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알렉스 박의 팬 카페와 그의 소속사 홈페이지는 몰려든 중국팬들로 인해 서버가 다운될 지경이다.
그걸 또 어떻게 알았는지, 네티즌들과 기자들이 그 사실을 인터넷과 SNS로 퍼 나르면서 소문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고.
이 정도면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그러니 혹시나 모를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 두었던 건 폐기……. 아니, 일단 봉인해두기로 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고 얘기했다.
이미 누가 오는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킴! 많이 기다렸어?”
문이 열리자 뛰어온 건지 크리스티나가 숨을 헐떡이며 묻고 있었고, 뒤따라 들어온 조안나 역시 호흡 곤란이 왔다는 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무릎을 잡는다.
“뭐하러 뛰어와? 천천히 오지.”
봄학기부터 줄리아드를 다녔던 그녀들. 원래부터 친했던 두 사람은 같은 시간대로 강의를 맞춰놓았기에 뒤늦게 들어온 나와는 시간표가 달랐다.
때문에 지금처럼 내가 쉴 때 그녀들이 수업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내 경우엔 피아노만 전공하는 그녀들과 달리 몇 가지 악기 수업도 더 듣고 있었기에 애당초 시간표를 맞출 수가 없을 테지만.
“궁금해서 그러지.”
볼을 부풀리며 얘기하는 크리스티나의 말에 조안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덤벼들었다.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엿 됐지.
대답 대신 핸드폰을 들고 기사들과 게시글들을 하나하나 읽어주기 시작했다.
다 읽어줄 필요도 없었다.
눈에 띄는 글들의 제목만으로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충분히 전해질 테니까.
[알렉스 박, 자폭? 그가 김도준을 건드린 대가는 너무 썼다.]
[되로 주고 말로 받고만 알렉스 박. 그가 언급한 세계적 수준을 김도준이 보여주다.]
[한 소절씩 번갈아가며 부르는 비교 영상까지 등장. 확연히 차이 나는 실력 차?]
[알렉스 박 팬 클럽 해산 선언.]
[알렉스 박의 소속사, 유감 표명하며 은연중에 소송도 검토 중이라고…….]
[김도준의 영상에 나오는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는 누구?]
[김도준이 직접 편집한 걸로 짐작되는 ‘흐느낌’, 원곡과는 차원이 다른 연주에 시간이 갈수록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주자가 누군지 궁금해들 하는데?”
“그, 그래?”
“설마 욕은 아니겠지?”
두 사람이 두 볼에 홍조까지 띄우고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꼭 강아지 같다.
씨익.
“얼굴까지 나왔으면 지금쯤 팬 클럽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데?”
조안나는 말도 안 된다며 내 팔뚝을 가볍게 때렸고, 크리스티나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몽롱한 눈빛을 해 보였다.
그러다가 조안나가 물어왔다.
“근데, 킴. 너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응? 왜라니? 그야 공부하려고 왔지.”
조안나는 물론이고 크리스티나까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결국 고개를 내젓는 크리스티나.
“편곡하는 거 보면 작곡 실력도 만만치 않을 거 같고, 악기도 수준급으로 다루는데다가……. 무엇보다도 노래를……. 아!”
뭔 생각을 하는지 또다시 몽롱한 눈빛을 해 보이는 그녀였다.
조안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가 날 바라보는 눈동자는 보석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로 반짝거렸다.
얘, 얘들이 왜 이래?
더럽게 부담스럽네.
그때였다.
“지니하운드는 언제 갈 건데?”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 자식은 소리도 없이.
혹시 발꿈치 들고 다니는 거 아냐?
에단에게 대답했다.
“말만 해. 언제든 오케이야.”
“오늘 저녁.”
그의 당당한 요구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이었다.
“에단! 정말 이럴 거야?”
크리스티나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내가 뭘?”
“정말 뭔지 몰라서 물어? 우린 친구잖아? 그런데 기어이 대가를 받아야 속이 시원하겠어?”
“맞아. 에단. 너도 즐거워했잖아?”
“내, 내가?”
“흐음, 후반부에 들어가서 미친 듯이 연주하던 건 어디의 누구였더라? 내가 여태껏 봐온 네 모습 중에 가장 신 난 표정이던데? 아니야?”
“그, 그, 그럴 리가! 잘못 본 거겠지!”
딱 잡아떼는 에단이었지만, 조안나는 한번 문 건 놓지 않는 성격인듯했다.
개띠인가?
“글쎄. 연주가 끝나고도 바이올린을 차마 내려놓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로 몸을 떨던 게 네가 아니라면, 내가 잘못 본 거겠지.”
“큭!”
쯧, 이 자식도 딱 보니까 여자한테 약한 타입이군.
앞날이 훤히 보인다.
“에단, 친구끼리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 그냥 우리 찰리스에나 가서 다 함께 축하면서 식사나 한 끼 하자니까.”
“지금, 얘 주머니 사정 생각해주는 거야? 나 참 기가 막혀서. 얘, 싱어야 싱어!”
“그게 뭐 어떻다고? 싱어가 얼마나 번다고 그래?”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가 돌아가면서 압박하자, 에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가 이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말했다.
“진실을 보여주지.”
에단이 불길한 단어를 내뱉으며 핸드폰을 꺼내 그녀들에게 보여준다.
뭔가 싶어서 슬그머니 눈길을 던졌던 나는…….
저건 또 어떻게 찾아낸 거야?
광장을 가득 메우다 못해서 시가지까지 점령한 사람들.
붉은 촛불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따라부르는 여자들.
위험을 무릅쓰고 근처에 있는 시설물 위로 올라가 고함을 치는 남자들까지.
더불어 인공위성으로 찍은 건지, 천안문 광장을 중심으로 점점이 번져 있는 화려한 불빛들이 찍힌 사진을 보면서도 그녀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그런 그녀들에게 에단이 얘기했다.
그전에 날 한차례 힐금거리고는.
“작년 이맘때였을걸? 아니 아직 한 달쯤 남았나? 아무튼, 킴이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연 콘서트를 찍은 거야. 알아보니까 그때 모인 사람들이 못해도 삼백만 명이 넘었을 거라더라.”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여주면서 말하는 에단.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된 여자들이 눈앞에 있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에단은 정말 친절했다.
“물론 특파원들이 촬영한 거지.”
어딘지 잘났다는 듯 말하고 있다.
“이것도 한번 봐라. 그러면 알게 될 거다. 이 자식이 어떤 놈인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그녀들에게 그가 이번엔 다른 사진과 영상 따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니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많이도 찾아놨네.
우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지켜만 보고 있는 동안, 두 여자는 에단이 내민 핸드폰을 보며 갈수록 눈이 커다래졌다.
그럴 수밖에.
그가 보여준 것은…….
S 전자의 스마트폰인 N9 광고 영상.
거기엔 내가 명동 한복판에서 버스킹 아닌 버스킹을 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아무리 그녀들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아스트로 시리즈인 N9를 모르진 않았다.
그만큼 S 전자의 위상은 대단하다.
생각도 못했는지, 눈이 동그래진 그녀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D그룹의 커피광고를 비롯해 중국 5대 도시 투어 때의 콘서트 사진 그리고 작년 연말 고척 스카이돔에서 연 콘서트 영상까지.
많이 놀랐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영상과 사진을 보고 있던 크리스티나와 조안나에게 에단이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봤지? 이 자식은 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자라고!”
충격이 컸던 걸까?
산타클로스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잔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 아이들의 표정이 되어 날 바라보고 있는 두 여자. 크리스티나와 조안나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중이다.
그러다 마침내 조안나가 더듬더듬 물어왔다.
“저, 정말이야?”
거짓말할 까닭이 없다.
애당초 속이려고 한 적도 없었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기선 얼마나 돈이 많아야 부자라고 하는진 모르겠지만, 부자라고 할 수…있겠지. 아마도.”
그 순간이었다.
그녀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 마이 갓!”
와, 이거 영화에서나 듣던 대사인데.
“지져스!”
이것도!
뿐만 아니라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들갑스럽게 방안을 서성거리는 두 사람.
그러면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속도로 계속해서 탄성인지 말인지를 내뱉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말도 안 돼! 뭐 이런 뜻인 거 같은데…….
그렇게 한참 요란 법석을 떨던 그녀들이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곤 날 동시에 바라보았다.
“킴! 너 엄청난 스타였구나!”
“와! 그 모든 걸 버리고 여길 왔다고?”
“그런데도 이렇게 소탈한 생활을 한다고? 게다가 그건 뭐야? 찰리스에서 파트타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킴, 진짜 존경스러워!”
아씨 깜짝이야!
무섭게 왜들 이래?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만 같은 두 사람 때문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
앞서 가는 세 사람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워 보였다.
조안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에단이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하고.
크리스티나만 가끔 한 번씩 날 돌아보며 살짝 미안하다는 얼굴을 해 보였지만, 내가 괜찮다고 말해주자 그때부턴 조안나와 까르르 웃어대며 기대감을 온몸으로 표출 중이다.
하긴, 돈이 문제지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걸 먹는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부아아아아아아앙.
그때 들려오는 엔진음.
끼이익!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한 대의 봉고차…. 아니 밴이 급정거를 하고 있었다.
아니 도심 한복판에서 뭐 저렇게 거칠게 운전을 하는 거야!
바로 옆, 도롯가에 바짝 붙여 세운 밴.
드르륵!
차 문이 열린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꺄아악!”
“헉!”
“뭐, 뭐야!”
남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어라! 이 자식들!
왜 여기 있는 거야?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분명 오지 말라고 했는데.
“니들 여기서 뭐…….”
두툼한 손이 내 입을 막는가 싶더니, 씨익 웃고는 나를 차 안에 밀어 넣었다.
뿐만 아니라 동행하고 있던 일행들까지도.
그러곤 그대로 출발해버리는 차.
기가 막혔다.
뉴욕 한복판에서 납치? 아니 이걸 납치라고 할 수 있나?
아무튼, 상황파악이 먼저란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리는 순간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웃어?
이 자식이 진짜!
“거칠게 대해서 미안.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해해주길.”
익숙한 음성에 이어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다, 당신들은…….”
“서, 설마?”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가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있을 때, 이미 내 얼굴은 팍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내게 그가 말했다.
“미안. 좀 급해서 말이지.”
눈앞에선 콜린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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