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 잔인한 계절(8)
유투븐에 그저 한편의 동영상이 올라왔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조마루가 팬카페에 슬쩍 글 하나를 올렸을 따름이었고.
[유투븐에 갓준, 커버곡 떴네요.]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동영상이 올라오는 곳이 유투븐이었다.
당연히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순식간에 묻혀버린다.
하지만, 그 동영상은 어지간했나 보다.
말 그대로 무서운 속도로 조회수가 치솟기 시작했다.
클릭 한번 할 때마다 세자릿수 단위로 달라지고 있었으니까.
이유?
동영상 아래 달린 첫 번째 댓글이 대변해주고 있었다.
- 기저귀 차고 보세요. 안 그럼 저처럼 지립니다.
한 시간.
좋아요! 숫자가 10,000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
알렉스 박.
한국명 박진수. 작년에 버클리대를 졸업한 그가 한국으로 오게 된 건 다른 까닭이 아니다.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아직은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성공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인정받으며 나름 승승장구해온 그였다.
원래는 클래식, 정확히는 피아노를 전공했던 그였지만 정상급으로 가기엔 실력이 조금 모자란다는 판단으로 중간에 재즈로 바꾸긴 했으나 버클리 음대에서도 꽤 촉망받던 인재였다.
그런 그로선 당연히 한국이 만만하기만 했다.
말이 한국인이지 미국에서 태어난 그가 보기엔 극동의 작은 나라에 불과한 한국은 아직은 음악적으로 한참 뒤떨어져 있었으니까.
실제로도 그의 생각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광수 대표와 반 년간의 작업 끝에 내놓은 앨범이 히트를 치면서 음원을 출시한 지 겨우 2주 만에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던 것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혹시나 했던 마음이 완전히 가신 것은.
그 자릴 대신한 것은 자신감.
그는 거칠 게 없었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이광수 대표가 김도준을 이용한 마케팅을 제안한 것을.
물론 알고 있었다.
김도준이 어떤 가수란 것쯤은.
작년 하반기 한국을 휩쓴 것은 물론이고, 중국에까지 진출해 무려 1,000만 명이 넘는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중국 국가주석의 요청으로 하게 된 천안문 광장의 공연에선 수백만 명을 동원했다는 소문쯤은 그도 들었으니까.
때문에 처음엔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커버곡으로 ‘LONGING TIMES’를 고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아무래도 가사가 없다 보니 덜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물론 가창력에서 자신이 밀릴 거라곤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터였다.
판단은 적중했다.
화제가 집중됐고, 뭔가 대응을 할 줄 알았던 김도준 측은 묵묵부답. 덕분에 그는 금세 스타의 자리로 올라설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자신감이 충만했던 알렉스 박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달까.
그런 그에게 이광수 대표가 다시 제안했다.
다시금 김도준을 이용하자고.
원래 이런 일이라는 게 그렇다.
한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특히나 상대편에서 겁을 먹고 대응하지 못하고 있단 판단이 들게 되면.
피식.
그런데 이번엔 나름 반격을 하려는 모양이다.
하긴, 자신이라도 그랬을 거다.
‘조금만 더’는 김도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그 곡을 고른 거지만.
‘가사하고는…….’
발로 써도 그것보단 잘 쓸 거라고 생각하며 작업했고, 나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김도준 측에서 아무런 대응을 안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점심이 지나고 얼마 안 지나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알렉스 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에 와서 알게 된 몇 안 되는 지인들 중 한 명.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한 동생으로 요즘 친하게 지내는 중이었다.
- 형! 유투븐에 형 커버곡 떴어요!
누구냐고 물으니 김도준이란다.
긴장할 때면 마르곤 하는 입술을 습관처럼 혀로 핥으며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유투븐에 들어가 영상을 찾았다.
“하아! 크레이지!”
진짜 미친놈이 아닌가 싶었다.
자신이 버클리 음대를 나온 걸 알면서도 이런단 말이지.
비록 재즈로 진로를 틀면서 현대 음악을 주로 가르치는 버클리 음대에 들어간 그였지만, 여전히 피아노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한 그였다.
그런데…….
“감히 클래식으로 날 건드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들려오는 반주 소리는 분명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바이올린이었다.
히죽 웃고 말았다.
명백한 비웃음.
하지만, 그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김도준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의 얼굴이 파리하게 변해버렸던 것이다.
***
KWANG 엔테인먼트의 대표, 이광수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저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
겁나는 건가?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 건가?
어느 쪽이 되었든 이쪽으로선 나쁘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라면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강혁수 강혁수하더니만.
역시 한물간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강혁수를 비웃으며 이광수가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저게 미쳤나?’
이광수는 곽 실장에게 눈을 흘기며 고민했다.
재떨이를 던져 말아.
하지만,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곽 실장이 다급히 외쳤기 때문이다.
“크, 큰일 났습니다.”
기가 막혔다.
무슨 클리셰도 아니고,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놈들은 꼭 저 말부터 하더라는…….
이광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
“알렉스 커버곡이 떴습니다.”
“응?”
습관처럼 한쪽 눈을 가늘게 뜨며 이광수가 되물었다.
“커버?”
“지금 유투븐에……. 하아, 난리도 아닙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이광수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군데?”
“예?”
“그 커버곡 부른 놈.”
저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 커버곡을 불렀다는 놈이 꽤 잘 부른다는 얘기.
잘만하면 또 한 번의 이슈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물었지만, 들려온 대답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기, 김도준입니다.”
뜻밖의 이름.
이광수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지만, 잠시였을 뿐이다.
‘이것 봐라?’
이내 재밌다는 듯 웃음 짓는 이광수. 그가 피식 거리며 컴퓨터를 켰다.
운 좋게 걸려든 물고기가 그저 송사리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대어다.
그럼 이쪽에선 제대로 대접해줘야겠지.
이광수의 머리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다시 한 번 이슈를 만들어낼지 엄청난 빠르기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
영상은 어딘지 모를 밀폐된 공간에서 촬영된 게 분명하다.
그렇다곤 하지만 창고나 방 같은 허접한 곳이 아니다.
벽을 싸고 있는 흡음재들도 그렇고, 잡음 하나 들려오지 않는 사운드만 들어 봐도 제대로 된 녹음실이 분명하다.
모르긴 몰라도 저곳에 있는 장비들도 보통은 넘을 터였다.
그 증거로 영상을 틀자마자 흘러나오기 시작한 반주 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일단 울림이 다르다.
특이한 건…….
전자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밴드 특유의 연주도 아니란 사실.
들려오는 건 분명히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바이올린 소리.
클래식?
어이가 없었다.
이건 대놓고 저격한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알렉스 박이 버클리 음대 출신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김도준이라고 그걸 모를 리 없다.
물론 알렉스 박이 진로를 결정하기 전 클래식 전공에서 재즈 쪽으로 바꿨다고는 해도, 이처럼 클래식으로 커버곡을 연주한 건 누가 봐도 뻔하다.
노린 거란 얘기.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볼까?’
이광수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편곡은 잘했네.
연주도 괜찮고.
이 정도면 들어줄 만하다…고 애써 생각했다.
‘연주는 그렇다 치고.’
이제 곧 도준의 노래가 시작될 터.
이광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을 때였다.
- 긴 하루.
흠칫.
단 한 소절이었다.
도준이 노래를 듣는 순간,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버렸다.
- 지치고 힘들었어요.
소름이 돋는다.
이광수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다르다.
그 생각밖에는 안 든다.
성량, 기교, 톤……. 그런 말들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냥 격이 다른 거다.
알렉스가 십 년, 아니 몇십 년을 불러도 흉내조차 못 낼 거란 걸 장담할 수 있다.
정말 같은 노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넋이 나간 채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점차 고조되던 노래는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
- 난, 흐느끼지 않아요.
끝도 없이 올라가는 음.
알렉스도 고음이라면 누구에게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그런 차원이 아니다.
이광수는 자신이 뭘 놓치고 있었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대어?
웃기는 소리.
저건 잡고 말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벽.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 눈앞에 산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꿀꺽.
심지어 간주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연주는 묘하게 열기를 뿜어내더니, 2절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할 정도로 뜨거웠다.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그래서 더 가슴이 울린다.
전반부에는 절제된 연주를 들려주었던 탓에.
그리고 세상을 집어삼킬 듯 덤벼드는 연주 속에서 김도준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졌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제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 힘든 하루, 수고했다고.
내 그림자가 말해주네요.
읊조리듯 나직하게 내뱉는 도준.
그 음성이 귀에 들어와 꽂혀 들고,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지다가 영상이 멈췄다.
그럼에도, 이광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그 곡이라고?’
정말인지 의심스러웠다.
지금 도준이 부른 저 노래가 진짜 알렉스가 부른 ‘흐느낌’이 맞나?
그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댓글들.
- 쩐다. 이게 진정 사람이 부른 노래인가?
- 김도준이 가수긴 가수구나.
- 윗분 맛이 감? 김도준이 그럼 가수지 배우임?
- 와아, 고음 진짜 오진다. 삼단 고음이냐?
- 사단쯤은 되지 않을까요?
- 오단.
- 육단.
- 쯧쯧. 중생들 하곤. 우리가 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니라.
- 근데, 반주 들어보니까 피아노 소리랑 바이올린 소리 같던데.
- 첼로도 있는 거 같음.
- 헐! 갓준님, 이젠 클래식까지 씹어 드실 건가 보네요.
- 알렉스 박 버클리 나왔다고 엄청 재던데, 이제 뭐 됐네.
- 알렉스 박, 어쩔? 완전 비교각인데?
- ㅋㅋㅋ 장담하는데, 하루 안에 비교 편집본 올라온다.
- 알렉스 발리겠네.
- 발렉스?
- 근데, 김도준 진짜 빡쳤나보네요. 이렇게까지 짓밟는 거 보면. 아예 작정한 듯.
- 애당초 알렉스 박이 미친 거죠. 어디 덤빌 사람이 없어서.
- 덤비진 않았죠. 깔아뭉갰지.
- 이제 알렉스 박이 뭉개질 차례?
이광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곽 실장에게 소리쳤다.
“알렉스한테 전화해! 영상 보지 말라고! 아니, 외부와 접촉 금지 시…….”
“저…….”
곽 실장이 쩔쩔매는 모습에 이광수는 눈을 치켜떴다.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걸 느낀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여,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
이광수는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아, 곽 실장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곽 실장이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얘기했다.
“전화를 받질 않아서 급히 매니저까지 보냈는데……. 숙소에도 없답니다.”
“후우.”
이광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쾅!
책상을 부숴버릴 듯 주먹으로 내려친 이광수가 소리쳤다.
“찾아! 그 새끼가 어디에 있든 찾아서 끌고 오란 말이야!”
“예? 아, 예!”
화들짝 놀란 곽 실장이 막 돌아섰을 때였다.
이광수가 버럭 고함쳤다.
“그리고 최장준 변호사한테 연락해! 김도준! 이 개새끼! 감히 날 건드려?”
예부터 아전인수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로남불이라고 했던가.
먼저 시작한 건 이광수였지만, 열이 있는 대로 받은 그는 그런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유투븐에도 연락하고!”
보통 커버곡의 경우에는 딱히 문제 삼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아주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커버곡 자체가 2차 창작물이긴 하지만, 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실제론 원곡에 대한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건 유투븐 측이었기 때문이다.
원곡자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지 않은 이상 아무리 비영리적인 목적일지라도 유투븐에서 영상이 차단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쪽에서 강경하게 대응하면 법적 책임은 물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김도준의 커버곡은 내릴 수 있다는 얘기.
“뭐해! 어서 움직이지 않고!”
이광수의 외침에 곽 실장이 꼬리에 불붙은 개처럼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난 뒤, 안쪽에서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