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04화 (104/260)

# 104

#104. 잔인한 계절(6)

[알렉스 박, 김도준이 만든 곡 별거 아냐. 이 정도 재능은 버클리에 가면 차고 넘쳐.]

이거 디스 맞지?

딱 봐도 도발인데?

“참네. 별게 다…….”

황당하긴 한데, 이게 또 애매하다.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내가 만든 곡을 폄하한 건 불쾌하지만, 재능 면에서 보자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니까.

세상에 나보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오만하진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과연 천 년 노래방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얘기할 필요도 없다.

기준을 뭐로 잡아 할지 애매하긴 하지만, 재능이란 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잠재되어 있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일 뿐이고.

따라서 알렉스 박 말마따나 버클리에도 많을 거다.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만 따지면.

그 재능을 개화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그나저나 뭐지?

관종인가?

왜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지?

흠, 어제 ‘LONGING TIMES’ 커버곡 동영상을 올린 것에 딱 맞춰 이런 기사가 뜬다?

냄새가 난다.

하지만…….

귀찮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상대해줄 가치조차 못 느끼겠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대응할 이유를 못 찾겠다.

지금 난, 내 앞에 펼쳐진 길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니까.

쓸데없는데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달까.

“근데, 대체 뭐하는 놈이야?”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검색해보았다.

그 결과…….

“버클리 음대 출신이네?”

직접 작곡도 하는 모양이고…….

근데, 좀 묘하네.

작곡했다는 곡들이 어째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느낌이 든다.

아주 조금씩 교묘하게 뒤섞어나서 어지간해선 알아채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 표절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테다.

다른 사람이라면 전혀 느끼지 못하겠지만, 워낙 많은 곡들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내 귀에 다 들린다.

하기야 뼛속까지 새겨진 노래들인데.

이 정도도 들리지 않는다면 나가 죽어야지.

피식.

결국, 진짜가 아니란 얘기네.

이런 놈을 상대하느니, 차라리 어디 가서 잠이나 처자는 게 백번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도준이가 봤을까요?”

조마루가 조심스럽게 묻고 있는 모습에 강혁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직도 도준일 몰라?”

“…….”

“어제 통화도 했다며?”

“그렇긴 한데…….”

강혁수는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이상한 생각을 해버렸다.

자신이 보기에 도준은 사막 한가운데 던져놔도 살아남을 놈이었다.

한데 이상하게 녀석의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도준을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 애지중지하다 못해 불안해한다.

꼭 자기들이 무슨 엄마라도 되는 듯이.

지금도 그렇다.

도준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조마루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물론 저러다가도 도준이와 관련되어 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깔깔거리기 일쑤였지만.

“봐도 벌써 봤을 거다.”

“그렇겠죠?”

대답은 사무실 한편에서 핸드폰들을 주욱 늘어놓고 뭔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고 팀장에게서 들려왔다.

“봤다에 1억.”

“너무 쎄, 쎄잖아요!”

“쫄리면 죽던가.”

그답지 않게 농담을 하는 이유를 모를까.

그저 조마루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일 터다.

그걸 또 용케 알아챈 조마루가 한숨을 내쉬며 되물었다.

“괜찮은 거겠죠?”

“걔 멘탈이 강철이라는 거 몰라?”

다시 한 번 고 팀장이 말하자, 조마루는 그제야 미소 짓는다.

기사를 봤으면서 전화조차 없다는 건 한마디로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얘기.

“우리 도준이, 많이 컸네요.”

“키는 걔가 우리 중에 제일 커.”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예전 같으면 별거 아닌 일로 흥분하고 그랬을…….”

“걔가? 대체 어디의 누굴 말하는 거야? 도준이가 그런 놈이 아니라는 걸 잘 알 텐데?”

“…….”

“무조건 둘 중 하나야. 개무시하거나 개박살내거나. 몰라?”

조마루와 고 팀장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도준이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강혁수가 옅은 미소를 베어 물고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의 얘기가 조금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도준이야 그렇다 치고. 저희라도 나서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뭘 어떻게? 소송이라도 가?”

“그게 아니라, 알렉스인지 발렉스인지 그 자식도 소속사 있을 거 아니냐고요.”

“뭘, 작정하고 벌인 일인 거 같은데. 이빨이나 들어가겠다.”

“그래도 적당한 선은 지키라고 항의라도 해야죠.”

맞는 말이긴 하다.

그렇긴 한데, 왠지 강혁수는 자신들이 나서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두고 보자고.”

아니나 다를까, 조마루가 눈에 불을 켜고 외쳤다.

“뭘 두고 봐요! 분명 이건 소속사에서 설계…….”

하지만,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전에 강혁수가 말허리를 끊고 들어왔던 것이다.

“누가 저쪽을 보재?”

“……그럼?”

“도준이가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순간 멍한 눈빛이 됐던 조마루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이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기쁘기도 하면서 서글픈.

뭐랄까.

이제 막 홀로서기를 시작한 자식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깨달음은 찰나 간에 찾아왔다.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더니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판을 두들겨댄다.

도준이 아무것도 안 하면 전부 도로아미타불이 될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팬 카페와 블로그, SNS를 드나들며.

혹여라도 도준이 움직일 때를 대비해서.

간만에 전투모드로 들어간 조마루를 보다가 강혁수가 돌아섰다.

그의 입에서 읊조리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거참. 도준이가 호구같이 보였나 보네.”

***

KWANG 엔테인먼트 대표, 이광수는 자신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하는 중이었다.

알렉스 박의 음원이 1위를 하는 것과 동시에 곧바로 잡지사 기자에게 연락했고, 이미 입을 맞춰놓았던 기자는 역시 그의 지시에 따라 답변한 알렉스 박의 발언을 가감 없이 내보냈다.

말할 것도 없이 전략은 먹혀들었다.

알렉스 박이 단번에 주목을 받은 것이다.

김도준을 걸고넘어진 것만으로도 장안에 화제가 됐다.

역시 김도준이랄까.

겨우 음원 1위 하는 정도론 얻을 수 없는 화제성이었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그래서 이번엔 알렉스 박에게 김도준의 곡, 그중에서도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LONGING TIMES’를 편곡해서 연주하게끔 했다.

자신의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던지, 알렉스 박도 흔쾌히 동의했고.

그걸 찍은 동영상이 올라가자, 또다시 세상이 들끓었다.

반응이 괜찮은 걸 확인한 이광수는 대놓고 도발했다.

알렉스 박에게 인터뷰를 시킨 것이다.

- 김도준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재능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겨우 이 정도 수준으로 천재라는 소리까지 듣는 건 납득이 안된다. 그가 부른 노래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나로선 왜 그의 노래가 이렇게까지 각광받는지 모르겠다. 외국에 나가봐라. 그 정도 곡들은 널리고 널렸다. 언제까지 한국 안에만 갇혀서 우리만의 축제를 할 생각인 건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실상 국경이란 개념 자체가 사라진 요즘이다. 당연히 좀 더 넓게 보고, 보다 큰 세상을 꿈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은 조금 심할지 모르겠지만, 김도준 정도의 재능을 가진 이들은 내 모교인 버클리 음대에만 가도 차고 넘친다.

철저하게 김도준을 겨냥하고 준비한 원고였기 때문에 자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효과?

예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네티즌들이 알아서 여기저기 기사를 퍼 나르며 게시판마다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

- 알렉스 박, 미친 거 아님?

- 그러게요. 주니 오빠를 그런 식으로 까다니 제정신이 아닌가 봐요.

-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거 노린 거라고 밖에는.

- 마케팅 수단인가?

- 미쳤네. 김도준을 마케팅 수단으로 쓴다고?

-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요? 알렉스 박의 논리에 허점은 없는 듯한데요.

- 논리? 노오온리? 하이고! 저기요, 알렉스 팬 클럽에나 가시지 여긴 왜 오셔서 헛소릴 하세요?

- 글쎄.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닌 거 같은데? 우리나라 음악이 세계 수준에선 보잘것없다는 얘기도 맞지 않음?

- 아니, 그렇게 말하는 기준이 뭔데? 세계 수준? 저도 웬만한 음악은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인데, 솔직히 김도준이 만든 곡은 어딜 내놔도 꿀리지 않을 정도 아님? 오히려 알렉스인지 발렉스인지, 노래 들어보니까 완전 별로던데?

- 음악이 뭔지는 알고 그런 얘기 하시나요? 알렉스 오빠가 버클리 음대 출신이란 거 몰라요?

- 그렇지. 검정고시로 겨우 고졸만 면한 누구랑은 수준이 다르지.

댓글 알바를 대거 투입하느라 적잖은 돈을 쓰긴 했지만, 성과는 놀라울 정도.

이제 갓 데뷔한 신인 가수인 알렉스 박이 거의 김도준 급으로 껑충 뛰어오른 것.

그만큼 많은 이들이 사태를 주목하며 화제 만발.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알렉스 박의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 중.

물론 이처럼 그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엔 가수의 꿈을 안고 한국을 찾은 알렉스 박의 진가를 자신이 한눈에 알아본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연예계라는 곳이 단지 실력만 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란 걸 그만큼 잘 아는 이도 드물 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광수는 한때 한국의 3대 기획사 중 한 곳인 PS 엔터테인먼트에서 실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랐던 만큼 어떻게 해야 재능있는 새싹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 것.

대중에게 잊혀지는 순간, 인기는 물거품이 되고 그동안 무성하던 잎사귀들도 한순간에 시들고 만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김도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한창 잘나가던 상황에서 검정고시는 뭐고, 그런 뒤에 잠수 아닌 잠수는 또 뭔가.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건가?

자신의 실력에?

이광수의 입술이 말아 올라가며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애송이란 거지.”

그놈이나, 그놈을 키우고 있던 강혁수나.

‘쯧, 예전엔 꽤 잘나갔다고 하더니만…….’

강혁수에 대한 얘기는 숱하게 들었다.

듣고 있으면 저절로 동경하게 될 정도로.

하지만, 그게 다 소문일 뿐이라는 걸 이젠 안다.

솔직히 김도준 정도 되는 실력이면 어디서든 떴을 거다.

막말로 자신이 데리고 있었으면, 지금쯤 동남아를 평정하고 일본, 나아가 미국까지 진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애를 데리고 겨우 한다는 짓이 중국이나 들락거리고…….

언제적 전략인지.

다시 한 번 혀를 찬 이광수는 곧바로 곽 실장을 호출했다.

물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고삐를 당길 땐 바짝 당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

피아노 수업이 끝나고 나서 막 강의실을 벗어나는데, 두 사람이 따라붙는다.

“킴, 점심 안 먹었지?”

그야 당연히 안 먹었지.

10시부터 수업이었으니까.

“왜? 사주려고?”

농담으로 물은 건데…….

“뭐 먹고 싶은데?”

기다렸다는 듯 웃어 보이는 크리스티나.

조안나는 조금 애틋하다는 눈빛 아니 기특해하는 눈빛인가? 아무튼, 묘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아니, 얘들 왜 이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딱히 먹는 걸 가리진 않는데……. 근데, 진짜 사주려고?”

“에이, 뭘 자꾸 묻고 그래? 누나들이 밥 한 번 쏘겠다는 걸 가지고.”

조안나가 팔꿈치로 허리를 쿡 찔러온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얘들 참……. 낯가림이라곤 없네. 진짜 누가 보면 소꿉친구라도 되는 줄 알겠다.

뭐, 이게 나쁜 건 아닌데.

문제는 저만치서 날 아니꼽다는 듯 쳐다보는 눈길들이 문제다.

도미니크라고 했던가?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사이에서 벙쪄 있는 날 보면서 까닭 모를 적의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쯧, 이러다가 문제 일으키는 거 아닌지 몰라.

뭐 그런다고 해서 겁먹을 나도 아니지만.

이왕이면 사고 치지 않고 무사히 졸업했으면 싶은데…….

다행히 도미니크는 날 노려보다가 돌아섰다.

그러곤 패거리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그때였다.

부르르르.

핸드폰이 울렸다.

응?

얘가 왜?

아니,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의아해졌지만, 일단 받았다.

“희주야, 무슨 일 있어?”

수화기 너머에서 화를 꾹 참고 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준아! 그놈이…그놈이…….

하루 이틀 본 사이가 아니다.

이 정도면 단단히 화가 난 거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말끝에 울먹거리는 느낌까지 묻어나왔다.

분한 걸 참느라 그러는 걸 테다.

대체 어떤 새끼가!

나도 모르게 얼음이 낀 듯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구야?”

- 알렉스 박이란 놈이…….

알렉스?

뜻밖의 이름에 나는 눈을 치켜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말없이 희주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에게 잠시 끊어보라고 한 뒤, 핸드폰으로 유투븐에 접속했다.

영상 속에서 알렉스 박인가 뭔가 하는 새끼가 ‘조금만 더’를 부르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피아노를 치면서.

댄스곡으로 들릴 만큼 가볍고 빠른 템포로 바뀐 리듬으로.

순간 머릿속에 스쳐 갔다.

희주가 말해준, 그 새끼가 어제 했다던 인터뷰의 내용이.

- 솔직히 그거 팬들의 싸구려 감성을 자극한 거잖아요? 전 그런 짓 안 해요. 당연히 저라면 그렇게 안 만들죠. 못 믿겠다고요? 좋아요. 보여 드릴게요. 내일 점심 12시, 유투븐에서 확인해보시면 알 거에요.

아놔, 좇나 빡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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