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85화 (85/260)

# 85

#85. 쉴 때가 더 바쁜 법이다(1)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기자들의 말 잔치가 이어졌다.

[가방끈 짧은 탑가수의 고백.]

[김도준 활동 잠정 중단 선언.]

[고졸 되어 다시 만나자고 팬들과 약속.]

[김도준이 고등학교 중퇴한 사연.]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김도준, 그 후의 행보는?]

[전교 1등 하던 수재, 김도준이 고졸이어야 하는 이유.]

아주 그냥 물 만난 고기들 같다.

하기야 나라도 그러겠지.

게다가 연이어 내놓은 신곡이 그들을 부채질하고 있었으니까.

‘눈이 내리면’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지지 않는 꽃’을 콘서트 도중 불러버렸으니 그들로선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기 때문에 기자들이 좋아라 달려드는 감도 없잖아 있었다.

“이제 한동안 못 보겠네요?”

샤오린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부동산을 비롯해 주식 등 투자 관련해서 가끔 연락하게 될 테니 저렇게까지 서운한 얼굴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

“그럼 가볼게요.”

이왕이면 공항까지 같이 가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백퍼 스캔들이 날 테니, 서로를 위해서 좋지 않을 거다.

아쉽지만 여기서 헤어지는 게 옳다.

“예. 다음에 봬요.”

손을 흔들었을 때, 그녀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그러더니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보면서 이게 뭐냐는 눈빛을 해 보이자, 그녀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중에 보세요.”

그러곤 손을 흔들곤 브레드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갔다.

***

미쳤네.

마루 누나도 나랑 같은 생각인가 보았다.

“미쳤네.”

그럴 수밖에.

샤오린이 주고 간 상자를 풀어보자, 나온 것은 시계였다.

네모와 원의 중간 형태를 한 모양.

옅은 금빛을 띠는 시계였는데, 꽤 세련되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한데, 문제는 가격이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곤 정말 뒷목 잡는 줄 알았다.

무슨 시계 하나에 억이 넘어가냐?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결국, 샤오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질 않는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조금 이따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다시 포장해두었다.

“참네, 통이 큰 건지 아니면 돈을 주체할 수 없는 건지.”

“애정의 문제지.”

“팬심?”

누나는 날 가만히 보다가 그저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

다음날이 되어서도 샤오린과 통화는 되지 않았다.

대신 브레드로부터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차주시랍니다. 그럼 행복할 거 같다고요.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래, 까짓거 선물인데.

나중에 그만큼 뭔가를 해주면 되겠지.

따지고 보면 샤오린과는 가수와 팬의 관계만은 아니니까.

투자자로서 뭔가 해줄 수 있는 날도 올 거란 생각을 하면서 시계를 손목에 찼다.

음, 꽤 좋은데?

픽 하고 웃고 있을 때였다.

“아들! 아직 멀었어?”

“지금 나가요.”

브레드의 문자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오늘 어머니와 함께 나가기로 했다는 걸 깜빡하고 만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니 어머닌 벌써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계셨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시다.

샤오린과 함께 다니면서 고르신 집.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급매로 나온 물건이었는데, 부지 150평의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어머닌 날 가만히 바라보시다가 부르셨다.

“아들.”

“예.”

“네 아버지가 성을 샀어도 이렇게 기쁘진 않을 거야. 이 엄마가 진짜 기쁜 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란다.”

“예?”

“내 아들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는 걸.”

흐뭇한 표정으로 날 꼭 안아주시면서 등을 토닥여주셨다.

“장하다, 우리 아들.”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순간만은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집은 몹시 마음에 들었다.

1층에만 방이 다섯 개에 화장실이 두 개, 2층에도 방이 세 개나 된다.

특히 지하에 제법 큰 공간이 있는 게 무척이나 좋았다.

어머닌 벌써부터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해 디자인 의뢰를 맡기셨고, 조만간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중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다름 아닌 지하 공간.

거기에 내 개인 연습실과 녹음실을 만드신다고 하시는데, 그 때문에 아저씨랑 마루 누나가 거의 매일 들르시는 중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검정고시 준비에 들어갔다.

농담이 아니라 그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국·영·수는 전부 기억해낼 수 있었다.

문제는 사탐, 과탐을 비롯한 나머지 과목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걸리진 않을 터였다.

원래부터 공부를 싫어하진 않았기 때문에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내년 4월까지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콘서트에서 말했던 것처럼 한동안은 활동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시간이 부족하진 않을 테고 말이다.

희한한 건 그런데도 통장 잔액은 점점 불어나고 있다는 거였지만.

파주 인근의 건물과 땅을 구입했음에도 150억 정도가 남았었는데, 엊그제 확인해보니 그새 돈이 불어 있었다.

새끼를 치는 것도 아니고.

뭐, 신곡을 두 곡이나 발표한 데다가 크리스마스에 벌인 공연 수익과 레이크헬의 신곡인 제너레이션스가 팔릴 때마다 들어오는 수익까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거기다가 미국에서 발표한 내 노래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팔리는 모양인지, 그 수익도 적잖게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꾸준히 돈이 들어오고 있었고.

“이번 달에만 최소 100억이 넘겠다.”

아저씨께선 별일 아니라는 듯 얘기하고 계셨다.

이러다 외할아버지보다 더 부자 되는 거 아냐?

아니, 아직은 멀었나?

“회사 수익인가요?”

“아니, 네 몫만 그렇다는 거지.”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놀랄 생각도 들지 않았으니까.

누군가 그러던데.

자신의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 몰라야 진짜 부자라고.

이러다간 진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쩔래?”

아저씬 서류들을 보여주며 묻고 계셨다.

연말 시상식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정리된 서류들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많네요?”

예전과는 달리 시상식 대신 개최하는 페스티벌.

KBC, MBS, SBC 방송국을 비롯해 그 수가 꽤 된다.

“그야 지상파만 있는 게 아니니까.”

“설마 저더러 참석하라는 건 아니죠?”

원래대로라면 참석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시상식도 아니고 굳이 나갈 이유가 있나?

“아시잖아요? 저 활동 잠시 중단하겠다고 한 거.”

아저씬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럴 줄 알고 일단은 보류해두었다.”

그걸로 간단히 정리되었다.

참석하지 않는 걸로 결정.

“그래도 골든디스크 시상식엔 참석해야 할 거다.”

“안 가면 안 되나요?”

“안될 건 없지. 너 대신 누군가가 대리로 참석하면 되니까.”

그러면 의미가 없잖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참석해야겠네요. 언젠데요?”

“1월 10일.”

“아직 시간은 있네요.”

아저씨께선 픽 하고 웃으시더니, 중얼거리셨다.

“그나저나 또 난리가 나겠군.”

“······?”

“방송사들도 그렇고, 기자들이 가만 있겠냐?”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다.

하지만, 뭐 어떤가?

활동 중단한다고 했는데, 방송국에서 불러준다고 얼씨구나 하고 나가는 게 더 이상한 거지.

한차례 어깨를 으쓱거리곤 말했다.

“상관없잖아요. 욕을 한두 번 먹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곤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어?

날 바라보시는 아저씨의 입술 한쪽이 살짝 치켜 올라가 있는 걸 발견했다.

뭐지?

이 불길함은?

“왜 그러세요? 뭐 또 할 말이 있으신 거에요?”

내 생각을 읽으신 걸까?

아저씨께서 물어오신다.

“너, 준영이랑 약속했다며?”

“약속······. 아! 그거요?”

준영이 형이 이번에 콘서트에 참여하면서 내게 방송 출연 한번 해줄 걸 요청했던 걸 뒤늦게 기억해냈다.

대답 대신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이미시는 아저씨셨다.

그걸 받아 읽어보곤 기가 차서 되물었다.

“전 분명 한 번만 출연하겠다고 했는데요?”

“그거야 나도 알지.”

고개까지 내저으며 아저씬 말씀하셨다.

“근데, 어쩌겠냐? 약속은 약속인데.”

“그래도······. 저 지금 활동 중단하겠다고 얘기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요?”

“원래 쉴 때가 더 바쁜 법이지.”

어딘지 모르게 얄밉게 느껴져서 한차례 아저씰 흘겨보고 말았다.

***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기자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벌써부터 누가 가요대전에 출연할지를 두고 설왕설래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출연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기자들이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도준 연말 가요 대전에 출연 안 하기로 결정했다고 소속사가 밝히다.]

[SBC 방송사 측 은근히 불쾌감 표시.]

[방송 관계자들, 김도준이 빠진 K-POP 페스티벌은 앙꼬 없는 찐빵이 될 거라고 일축.]

[방송사마다 쇄도하는 항의. 김도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와글와글한 것은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네티즌들도 인터넷과 SNS에서 뜨겁게 논쟁 중이다.

- 웃기네요. 자기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그러는 거죠?

- 김도준이 잘나긴 했죠.

- 주니 오빠가 이미 말했잖아요? 활동 중단한다고.

- 방송 몇 번 출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냥 팬서비스 차원에서 나와준다고 생각하면 될걸. 이건 팬들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네요.

- 윗분, 어떤 팬들 말씀하시는 건지? 방금 팬 클럽에서 공식적으로 김도준 지지한다고 표명한 건 확인하고 얘기하시는 건가?

- 김도준 그렇게 안 봤는데, 팬들까지 움직여서······. 진짜 횡포 장난 아니다.

- 횡포라뇨! 혹시 뇌는 냉동고에 따로 보관하시나 보죠? 자발적으로 나서서 도준 오빠에게 힘을 실어주는 팬들이 무뇌아로 보이나 보네.

- 그래도 방송 출연하는 게 김도준한테도 좋지 않나? 인지도도 높이고, 이 기회를 잘 살리면 확실히 인기도 올라갈 텐데.

- 웃기네요. 올해 김도준이 발표한 노래만 10곡이에요. 그중 1위를 찍은 건 여섯 곡이고. 지금도 음원 차트 1위 자리를 굳건히 사수 중이기도 하죠. 근데,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죠? 잘 모르시나 본데, 이미 김도준은 탑급이랍니다. 그것도 한국을 벗어난.

- 진짜 불가침 영역이다.

- 갓준이 괜히 갓준이 아닌 거지.

- 난 김도준이 소신 있게 행동하는 거 같아서 보기 좋은데요.

말이 논쟁이지.

연말이 가까워지며 틈만 나면 날 씹어대는 기자들과 달리 팬들을 주축으로 대부분이 날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긴 해도 논란은 여전해서 각 방송에서 가요 대전을 할 때마다 포털 사이트 1위에 내 이름이 올랐다.

그렇게 말 많고 탈 많던 한해가 지나고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

오랜만에 외갓집엘 와서 보니, 예년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도준아, 올해 고마웠다. 내년에도 부탁하마.”

작은 외삼촌은 살갑게 날 맞이해 주셨고, 큰 외삼촌은 심드렁하다 못해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날 대하고 계셨다.

임직원들은 새벽부터 일찌감치 다녀간 모양이었고, 덕분에 한가롭게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탁.

숟가락을 내려놓으신 외할아버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전, 내게 말씀하셨다.

“도준인 나 좀 보자.”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분위기.

가족들의 시선이 내게로 몰리는 가운데, 나는 조용히 일어나 외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서재에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외할아버지께서 내게 물으셨다.

“검정고시 본다고?”

“예.”

“대학 가려고?”

“그건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려고요.”

잠시 날 가만히 바라보시던 외할아버지.

눈을 가늘게 해 보이시더니 불쑥 말씀하셨다.

“법관 되라는 말은 안 하마.”

“······.”

“쯧, 표정하곤. 당장 가수 때려치우라는 말도 안 할 테니, 그런 얼굴 하지 말고.”

여전히 내 눈을 깊게 들여다보시면서 말을 이어가셨다.

“대신 이 할애비에게 한 가지만 약속해주련.”

약속이라······.

슬슬 겁나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또 예전처럼 연을 끊네 마네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거 아닌지.

아니나 다를까.

외할아버지께선 거침없이 말씀하셨다.

“스물다섯 살까지만 해라.”

“예?”

“아, 노래만 불러대더니 귓구멍이 막혔더냐? 노래 부르는 거 스물다섯까지만 하라고.”

이건 또 무슨······.

멍해졌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니 그러려는 찰나였다.

외할아버지께서 불시에 치고 들어오셨다.

“그 후에 일 배워. 밑바닥부터 철저하게. 그리고 한 오 년 있다가 본사로 들어와.”

놀라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이놈이! 할애비가 시키면 그냥 알았다고 하면 될 일이지! 어디서 되지도 않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게냐?”

이게 그냥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일이냐고.

말 속에 담긴 뜻을 모르면 또 모를까.

“아, 그게······. 저 말고도······.”

“누구?”

외할아버지는 코웃음을 치면서 서재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말씀하셨다.

“5년도 안 돼서 싹 다 말아먹을 놈들 말이냐?”

싸늘한 표정이 되신 외할아버지께선 이내 온화한 얼굴을 해 보이시더니 날 다정하게 바라보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를 물려받을 놈은 너밖에 없더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