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84화 (84/260)

# 84

#84. 크리스마스에는(4)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만은 없듯이, 모두가 도준의 노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이었다.

도준이 노래할 때마다 열광하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연은 아니다.

단짝이라 할 수 있는 희주가 왜 이처럼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도준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어찌할 줄 모르는지 공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로서는 십만이 넘는 관객들이 도준이 웃을 때 함께 따라 웃고, 도준이 노래를 부를 때 함께 따라 부르며, 도준이 숨을 헐떡이며 감사하다고 말할 때 박수를 치는지 그 이유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공연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지금.

마지막 곡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희주가 함께 가자고 하기에 따라왔을 뿐,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 사람도 많은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게 시간 낭비라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도준이 노래를 잘한다는 것도 알고, 그녀에게 있어서 도준은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솔직히 말해서, 희주가 왜 도준을 그처럼 좋아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데, 지금 이 상황을 즐기기엔 그녀로선 무리였다.

김도준!

김도준!

김도준!

‘이게 뭐하는 짓이람.’

그렇게 서연이 팬들이 연호하는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팟! 팟! 팟! 팟!

스타디움 안의 모든 불이 꺼졌다.

관객석은 말할 것도 없고, 무대 위까지 불빛이 사라졌다.

저녁 8시.

한겨울인지라 불 꺼진 돔구장은 금세 어둠 속에 잠기고 말았다.

불빛이라곤 한점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나둘 목소리를 내지 않는가 싶더니, 금세 스타디움 안은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완벽한 침묵.

다들 긴장했는지, 아니면 기대감 때문인지 몰라도 하나같이 숨죽인 채 무대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 새벽녘 텅 빈 거리에.

스피커에서 도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주 없이.

어딘지 모르게 버석 버석 갈라진 듯한 음성이었다.

관객들이 눈을 크게 뜨고 무대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서연 역시 마찬가지.

자신도 모르게 도준의 모습을 찾았다. 묘하게 끌어당기는 목소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컴컴한 어둠 속에서 도준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시금 도준의 노래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 화려한 불빛마저 사라져.

여전히 반주는 없었다.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노래는 리듬을 가지고 서서히 스타디움을 잠식하고 있었다.

- 차창 밖으로 바라본 도로엔

희미한 가로등만 비추고 있어.

나직하게 울려 나오는 노랫소리.

악기 연주도 없이, 도준 특유의 낮고 묵직한 음성.

한데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평소의 그답지 않게 부드러운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뭔가가 빠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연은 이상할 만치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왜지?

어째서 가슴이 콱 막힌 느낌이 드는 거지?

그녀가 알 수 없는 기분에 의아해 하고 있을 때였다.

- 볼 수 있었던 거야.

도준이 근처에 있는 듯 느껴졌다.

후욱하고 내뿜은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 순간이었다.

팟!

조명이 들어왔다.

단 하나의 불빛이 강하게 쏟아져 내린 곳.

그곳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서연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녀 역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무대 위가 아니었다.

무대는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대신 빛이 생겨난 곳은······.

무대와 마주한 관중석, 맨 위쪽.

그곳에 도준이 서 있었다.

십만의 관중이 일제히 그곳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도준의 노래가 들려왔다.

- 보도블록 틈바귀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

마른 침이 넘어갔다.

나직한 도준의 노랫소리가 서연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도준이 천천히 손을 치켜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이 터졌다.

그리고 그 속으로 도준이 뛰어들었다.

관객석 사이로 난 통로를 도준이 걸어 내려오는 사이, 그를 비추는 핀 조명이 따라붙었다.

그러는 동안 도준이 목에 걸고 있던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자 함성이 서서히 잦아들고, 이내 모두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서연 또한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소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귓가로 흘러든 하모니카 소리는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치 소리의 물결이 몸을 휘감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사이 도준은 이미 관객석의 끝자락에 다다라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탄성을 터뜨렸다.

화들짝 놀라 눈을 뜬 서연은 볼 수 있었다.

도준이 관객석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준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스타디움 안에 있는 모두가 놀란 눈빛이 되어 소리를 내질렀을 때였다.

강렬한 기타 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이이이잉.

거친 연주였다.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연주음 속에 모두의 시선이 도준이 사라진 자리를 응시하고 있을 때, 다시금 빛이 들어왔다.

관객석 바로 아래까지 뻗어 있는 서브 스테이지 위.

그곳에 도준이 어느새 기타를 맨 채 연주하는 중이었다.

마치 절규라도 하는 듯한 거친 기타 음이 스타디움을 꽉 채웠다.

저기에도 스테이지가 있었는지 궁금해할 틈도 없었다.

도준의 기타 연주가 사람들의 의식을 사로잡은 채 놓아주질 않고 있었으니까.

그때, 스테이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통제 요원들에 의해 비워둔 공간.

그 공간으로 스테이지가 움직이자, 그제야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지금 도준이 서 있는 스테이지는 오늘 공연을 위해 특수 제작된 차량이란 사실을.

팬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그렇게 현란하면서도 거친, 그렇기에 오히려 호소력 짙은 기타연주를 하면서 필드 중앙에까지 이른 도준.

탑차에 설치된 스테이지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서브 스테이지에 맞닿는 순간, 도준이가 걸음을 내디뎌 자리를 옮겼다.

그 순간 안개가 깔리며 불빛이 비추자 무대는 그 자체로 몽환적인 광경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 도준의 기타소리가 달라졌다.

이제까지 억눌린 감정을 꽉꽉 누른 채 그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 절규했던 거라면, 순간적으로 바뀐 기타 음은 폭발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포효하는 듯이 기타를 연주하는 도준이었다.

폭주였다.

그렇게 도준이 피크를 쉬지 않고 기타를 긁어대며 메인 스테이지를 향하고 있을 때였다.

한 줄기 빛이 무대 위로 떨어지며 드러머가 모습을 드러냈다.

투타다다다다, 탕! 탕!

드럼 소리가 더해지고, 곧이어 또 한차례 빛이 떨어지며 베이시스트를 비추었을 때 베이스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둥! 둥둥둥! 두둥! 둥! 둥!

곧이어 키보드가 가세하고, 현란하게 놀려진 손가락이 건반을 두들기기 시작했을 때, 이미 도준은 메인 스테이지 위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모든 악기가 한데 어우러지며 폭발했다.

동시에 도준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니 터져 나왔다.

- 꺾일지도 몰라.

말라버릴지도 몰라.

짓밟힐지도 몰라.

어쩌면 시들어버릴지도 모르지.

미친 듯이 기타를 켜며 노래를 부르는 도준.

거기에 맞춰 따라붙으며 질주하는 세션들의 연주.

빠른 템포로 연주되던 반주가 한순간 그친 것도 그때였다.

동시에 기타 솔로가 시작되었다.

띵 띠리링 띠잉······띵, 띵, 띵, 띠딩······.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현을 하나하나 뜯으며 도준이 속삭이고 있었다.

이내 감미로운 목소리가 뜨겁게 달궈졌던 스타디움을 떠돌았다.

거친 포효로 분노를 표출하던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 누군가는 말하겠지.

지지 않는 꽃은 없다고.

한없이 부드러운 도준의 노랫소리가 십만 관객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 이름 모를 꽃은 스러져가고,

내 기억 속에만 남겠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사라지지만,

마음속에 다시 피어날 거야.

조용히 잦아드는 기타 음.

점점 줄어들던 기타 소리마저 사라지고, 이제 무대 위에선 더 이상의 연주는 들려오지 않았다.

오로지 도준의 노랫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처음처럼 무반주 상태에서.

- 꽃은 피어 있어.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선.”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다가 어느덧 무대는 다시금 어둠에 잠겨 들었다.

그리고 다시 또 침묵이 찾아왔다.

정적에 휩싸인 스타디움이 깨어난 것은 불과 몇 초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서연은 그 시간이 마치 영겁처럼 느껴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돔구장을 뒤흔드는 함성에 꿈에서 깬 듯 정신을 차린 서연은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

맥클라렌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이제까지와 달리 아무런 감상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국말로 된 저 노래를 온전히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황폐한 도심 한복판에 버려져 있다가 한순간 빛나는 존재가 되는 기분을.

그 점은 레이먼드 역시 마찬가지.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레이크헬이 김도준과 친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일찌감치 도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더랬다.

그렇기에 김도준의 기량이 높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래, 다르다.

이제까지의 김도준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꼭 밥 딜런을 보는 듯한, 아니 거기에 김도준만의 무언가가 담겨 있다.

“후우!”

참았던 숨을 뒤늦게 내뱉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레이먼드가 혀를 내두르고 말았을 때, 맥클라렌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서 레이먼드가 어딜 가는 거냐는 눈빛으로 맥클라렌을 바라보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그 역시 눈빛으로 대답했다.

여기 더 있을 필요가 있느냐고.

그렇게 묻는 듯했다.

레이먼드는 알아차렸다.

맥클라렌의 눈빛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를.

여기서 김도준을 만나서 백 마디 말을 해도 소용없는 일.

그보단 오히려 본사로 돌아가 임원진들을 설득하는 게 최우선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레이먼드 역시 일어섰다.

아쉬운 듯 시선을 돌려 다시금 밝아진 무대 위. 그곳에 서 있는 김도준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 서둘러 관객석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엘리야 역시 스타디움을 벗어나 인천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올라타고 있었다.

***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다.

팬들이 앵콜을 외쳐대는 바람에 ‘눈이 내리면’과 영어 버전으로 만들어 출시한 노래들을 몇 곡 더 부르긴 했지만, 그걸로도 아쉬웠든지 좀처럼 집으로 돌아갈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날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날의 공연에서도 꽤 많은 이들이 관객석에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내 노래를 사랑해준다는 건 정말이지 말 몇 마디로 인사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콘서트에서 발표하다시피 한 ‘시간이 지나도 지지 않는 꽃’은 음원으로 출시되자마자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며 올킬을 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동시에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내 이름이 올라간 뒤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날 콘서트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김도준!

김도준!

김도준!

마지막 곡인 ‘시간이 지나도 지지 않는 꽃’을 부르고 난 뒤, 다시금 스타디움이 밝아졌을 때, 일제히 기립한 관객들의 연호가 돔구장을 뒤흔들었다.

아마 곧 저들은 앵콜을 외치게 될 터였다.

그럼 또 당연히 난 그에 호응해 앵콜송을 부르게 되겠지만.

그전에 할 말이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 다들 즐거우셨어요?

여기저기서 대답이 들려왔다.

아직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숨을 고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아, 앵콜이요? 저도 성미가 급한 편인데, 제 팬들도 똑같네요. 가수랑 팬은 닮아가는 건가 보네요.

관객석이 한바탕 웃음으로 뒤덮이고 난 뒤, 본격적으로 얘기를 꺼냈다.

- 앵콜송은 부를 거에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요.

또다시 와악 하고 웃는 관중들.

그들에게 말했다.

- 근데, 그전에 한 가지 소식부터 전해야 할 것 같네요.

그제야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스타디움 안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분위기가 잡힌 것 같아 망설이지 않고 얘기했다.

- 어쩌죠? 오늘 공연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들이 되었다가 이내 고함치기 시작하는 팬들이었다.

“안돼요!”

“오빠아아아아! 가지 마세요!”

소요가 커지기 전에 얼른 뒷말을 이어갔다.

- 은퇴한다는 얘기는 아닌데······. 혹시 그걸 바라는 분들이 계신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또다시 웃음.

나 역시 픽 하고 웃고는 다시 말했다.

- 아시죠? 제가 가방 끈 엄청 짧다는 거. 모르신다고요? 그럼 고백할게요. 저 중졸이에요.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 그래서 고민이 좀 되더라고요. 나중에 결혼해서 애를 낳았더니, 아이가 ‘중졸인 아빤 싫어!’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예. 맞아요. 내년 4월에 검정고시 보려고요. 근데, 그동안 노래한다고 공부라곤 한자도 안 했거든요.

여기저기서 웃음과 함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듣다가 씨익 웃어 보였다.

- 걱정되죠? 저도 그래요. 3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똑 떨어지면 진짜 창피할 거에요.

킥킥대는 소리가 무대 바로 앞에서조차 들려왔다.

“괜찮아요!”

“오빠, 힘내세요!”

“도준이 형! 중졸이라도 멋있어요!”

몇몇은 농담처럼 외치고 있었지만, 또 몇몇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그런 그들이 고맙기만 하다.

- 괜찮아요. 원래 시험은 벼락치기가 최고잖아요.

다시 한 번 스타디움 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올 때,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 꼭 붙어서 다음엔 고졸이 되어 찾아뵐게요!

그러곤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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