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83화 (83/260)

# 83

#83. 크리스마스에는(3)

두 시간에 걸친 공연은 씨크릿걸즈의 오프닝으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너무 떨려요.”

막내인 지연의 말마따나 멤버들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게 보인다.

그런 그녀들에게 말했다.

“긴장할 거 없어요. 그냥 즐기고 와요.”

씨익 웃으며 통로 밖으로 보이는 관객들을 가리켰다.

“저들은 이미 지금 즐길 준비가 되었어요.”

“지, 진짜 괜찮을까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곤 말없이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소연이 당찬 얼굴을 해 보이더니 돌아섰다.

그제야 멤버들이 하나둘 그녀를 따라 무대로 올라갔다.

샤방샤방한 걸그룹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관객석이 잠시 어수선해졌다.

김도준을 기다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씨크릿걸즈가 나타나니 그런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무대 위에서 각자의 포지션에 따라 자리를 잡고 있던 멤버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전주가 흘러나오자 상황이 바뀌었다.

누군가 소리 질렀다.

“SIDE B!”

이 곡의 작곡가가 누구인지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그러자 관객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오늘, 씨크릿걸즈의 컨셉은 여전사.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던 네 명의 여자들이 내가 만든 노래, 정확히는 SIDE B라는 닉으로 만들었던 노래 ‘CROSS’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강렬한 비트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세션이 직접 연주하는 건 아니었다.

오늘을 위해 새로 녹음된 MR이 사용되었고, 한결 깔끔해지고 세련된 반주 속에 춤추던 씨크릿걸즈가 춤을 추는 와중에 노래까지 불렀다.

일부 팬들이 소연의 노래에 맞춰 따라부르자, 금세 사방으로 번져나가 떼창이 되고 말았다.

***

한국의 걸그룹에겐 조금의 관심도 없던 맥클라렌이 뜻밖이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느낌 나쁘지 않은데?”

레이먼드가 픽 하고 웃었다.

“곡 자체가 좋으니까요.”

“곡?”

사방에서 씨크릿걸즈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통에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맥클라렌의 음성은 자연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VIP석을 구할 것을.”

“무슨 수로요? 표가 2분도 안 돼서 싹 다 팔려나갔다고 하던데.”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낸 맥클라렌이 인상을 찌푸리다가 되물었다.

“그래서, 아까 그건 무슨 말이지?”

“뭐가요?”

“지금 이 곡이 어떻다고······.”

“이곡······. ‘CROSS’요. 김도준이 만든, 아니지 그때는 SIDE B라는 닉을 쓰고 있었죠. 아무튼, 그가 만든 노랩니다.”

벙찐 얼굴이 된 맥클라렌이었다.

이거 댄스곡 아닌가? 하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껴맞춰 봐도 김도준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

“이 곡 원래 발라드에요.”

“오, 그래?”

예상조차 못 한 얘기였던지, 맥클라렌이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

엘리야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꽤 하잖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공연 수준이 높다.

그저 섹시함이나 내세워 춤이나 현란하게 한바탕 추고 들어갈 줄 알았더니······.

노래도 곧잘 한다.

특히 센터를 맡고 있는 여자의 실력은 상당했다.

성량이라든가 안정된 발성 따위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다.

노래에 감정을 실을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가. 관객들이 점차 흥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애당초 공연용으로 만든 건지, 아니면 그렇게 어레인지 한 건지는 몰라도 꽤 세련된 노래는 스타디움을 달구기에 충분했다.

오프닝으로 제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씨크릿걸즈의 무대가 끝나고 난 뒤였다.

무대 앞쪽에서 스모그가 솟구치고, 사방에서 떨어진 빛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을 때였다.

탕! 타당 탕! 탕!

드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무대 위에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김도준이었다.

그가 전혀 멋을 부리지 않은 채 마이크를 들고 소리쳤다.

“갑니다! 춤을 춰!”

함성이 터지는 찰나, 악기들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내려가지 않고 있던 씨크릿걸즈가 한층 더 격렬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서 김도준의 노래가 스타디움을 뒤흔들었다.

“헛참!”

엘리야는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가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으니까.

이 정도라면······.

‘먹힐 수도 있겠는데?’

잘만하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유럽 쪽에서도 먹힐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공연을 지켜보고 있을 때, 김도준의 첫 곡이 끝났다.

***

‘춤을 춰’가 끝나고 난 뒤, 씨크릿걸즈가 무대를 내려갔다.

한 명만 남겨놓고.

소연이 남아서 김도준의 옆에 섰다.

그녀는 리허설 때 김도준이 해준 얘기를 떠올렸다.

“자신을 실력을 믿으란 게 아니에요. 내가 땀을 흘린 시간들을 믿는 거죠.”

그땐 너무 떨려서인지 제대로 이해하질 못했는데, 지금은 그 말이 더없이 크게 와 닿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몸으로 체득하지 못하는 한 절대로 느낄 수 없을 터다.

아직도 가쁜 숨을 내뱉으면서 그녀는 김도준을 한차례 바라보았다.

자신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데뷔한, 그렇기에 따지고 보면 후배였음에도 너무나 커 보였다.

노는 물이 달라서 그런가, 김도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흘려온 땀들.

그 시간들이 그녀들을 이곳에 서게 해주고, 또 노래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김도준을 보며 한차례 눈을 빛낸 소연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 곧이어 잔잔한 반주가 들려왔다.

곧이어 소연과 김도준이 번갈아 가며 부르기 시작했다.

광고 곡으로 쓰였던 노래, ‘망설임’을.

풋풋한 감정을 지닌 두 연인의 노래에 사람들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스타디움을 꽉 채운 사람들. 그중 절반이 훌쩍 넘어가는 여자들은 대부분 몽롱한 눈빛이 되어 김도준의 옆에 서 있는 여자가 자신이 되는 걸 꿈꾸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다들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전반부가 끝나고 나서였다.

간주를 거치며 곡이 변했던 것이다.

원곡과는 다른 리듬이 흘러나오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김도준은 그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마이크를 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무대 한편에서 샤오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알아챈 중국팬들이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지만, 샤오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새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채로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시작했다.

순간 스타디움 안이 조용해졌다.

그럴 수밖에.

영어로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스타디움의 공기가 변한 건 아니었다.

내용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분위기.

전반부가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담았다면, 후반부는 어딘지 모르게 그보다는 한 걸음 나아간 느낌을 풍겼다.

그러면서도 무대 위의 남녀, 김도준과 샤오린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느낌.

이미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기에 조금씩 다가서면서 서투르지만 하나씩 하나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는 중에도 샤오린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에게 투정 어린 말투로 노래했고, 그 때문인지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때였다.

김도준이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메인 스테이지라 할 수 있는 본무대에서 길게 연결된 서브 스테이지. 필드를 가로지르며 길게 뻗은 길. 마치 패션쇼장의 그것처럼 생긴 무대를 김도준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의 모습에 스타디움 안의 모두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서브 스테이지의 끝자락까지 이르른 김도준. 그는 이미 필드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그런 채로 그가 돌아섰다.

메인 스테이지에는 샤오린과 소연이 나란히 선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생각해봐.”

나직한 음성이 리듬을 타고, 마치 나레이션처럼 흘러나왔다.

김도준은 노래하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고.

때로는 그 때문에 힘이 들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그 덕분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걸 얻게 되기도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망설임’과는 사뭇 다른 어조였다.

한층 더 깊이 들어간 느낌이었다.

당연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아니 원곡의 느낌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리듬이 바뀌고 멜로디가 달라졌으며, 가사 자체가 바뀌었다.

‘망설임’이되 ‘망설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관중은 그런 건 조금도 개의치 않은 채 김도준의 노래에만 집중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김도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는 듯이.

이윽고 김도준의 입에서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소연이 풋풋한 모습으로 썸을 타고 있는 여자의 감정을 담아 한 소절을 노래하고, 그 뒤를 이어 샤오린이 현재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로 인해 행복해하는 감정을 담아 또 한 소절 노래했다.

그렇게 각기 다른 감정을 담아 노래를 반복하는 동안, 김도준은 그저 선 채로 그녀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모습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틀어박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맥클라렌은 지금 무척이나 즐거웠다.

공연을 수없이 보아온 그였지만, 오늘처럼 진심으로 즐거운 공연은 그리 많지 않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끼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노래가 끝나고, 김도준이 소연과 샤오린과 함께 콘서트를 찾아준 팬들에게 인사를 한 후 그녀들과 씨크릿걸즈 그리고 세션으로 공연에 참여해준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결국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그 곡을 김도준이 어레인지 했다고?”

황당하다는 듯 외치는 그를 보지도 않은 채 레이먼드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몰랐어요? 김도준이 싱어송라이터란 거?”

“그거야 알지. 하지만, 편집에도 재능이 있다니. 제법인 걸?”

더구나 방금 들은 노래는 원곡과는 사뭇 다르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노래나 마찬가지.

그런데도 원곡을 전혀 해치지 않고 있다.

이 정도 편집이면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작곡을 잘한다고 하더니, 실력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맥클라렌의 머릿속에선 김도준이 노래 잘하는 가수에서 작곡도 잘하는, 아니 편곡마저 잘하는 가수로 상향되었다.

그것도 재밌기까지 하다.

발라드를 댄스곡으로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재밌는 친구군.”

레이먼드가 툭 하고 내뱉었다.

“아직 그런 말 하기엔 좀 이른 거 같은데요.”

잠시 레이먼드를 빤히 응시하던 맥클라렌. 결국, 그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날 놀라게 할 셈이지?”

그의 말에 레이먼드가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글쎄요. 제 생각엔······.”

“······.”

“김도준은 아직 반도 안 보여준 것 같은데요?”

어이가 없다는 듯 맥클라렌이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레이먼드가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저희가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는 거죠.”

살짝 눈을 빛내던 맥클라렌이 되물었다.

“그래서, 김도준이 뭘 더 보여줄 거란 거지?”

그러자 레이먼드가 프로그램이 적힌 공연 팸플릿을 들어 흔들었다.

“계속 보다 보면 알게 되겠죠. 그렇긴 한데······.”

뭔가 뒷말이 수상쩍다.

자신이 모르는 걸 알고 있다는 건가?

맥클라렌의 눈이 가늘어졌을 때, 레이먼드가 손가락으로 팸플릿의 한 지점을 콕 찍어 보였다.

“이 곡 말이에요.”

“음?”

마지막 곡이었다.

곡명은 ‘시간이 지나도 지지 않는 꽃’.

“미발표곡이거든요.”

“그럼 신곡?”

고개를 끄덕인 레이먼드가 눈을 반짝였다.

“만일 제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아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

공연은 순조로웠다.

씨크릿걸즈가 열어준 오프닝 무대에 이어 그녀들을 백댄서 삼아 ‘춤을 춰’를 부른 뒤 소연과 샤오린, 두 여자와 함께 부른 ‘망설임’으로 본격적인 공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마음대로 해’를 불렀다.

데뷔곡이라서 그런가 팬들은 일제히 일어나 따라부르며 나와 호흡을 맞춰주었다.

즐거웠다.

기뻤다.

그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와서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말았다.

그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비가 오는 거리’와 ‘리스크’를 연달아 불렀다.

“아, 진짜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건가? 이젠 형을 오라 가라 하네?”

“고마워요, 형.”

“어쭈! 말 몇 마디로 눙치는 거 봐라? 하여간 이 자식 진짜······. 약속이나 잊지 마. 나중에 형이랑 공연 한번 하는 거다? 오케이?”

“그건 걱정 마세요.”

“좋았어! 이제 올라가자. 손님들 기다리신다!”

깜짝 게스트로 준영이 형이 모습을 드러내자, 스타디움이 또 한차례 웅성거리다가 이내 함성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반주가 시작되자 조금 전의 함성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엄청난 환호성이 터지며 공간을 뒤흔들었다.

이러다 진짜 무대고 스타디움이고 간에 전부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주부터 수준이 다른 곡이었으니까.

내가 준영이 형에게 부탁해 프로그램에 억지로 끼워 넣은 곡.

준영 형이 넥스타 시절 발표했던 곡, ‘Lazencha, Save Us’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혼병기>의 오프닝 곡이 무대를 휘젓기 시작했던 것이다.

- 결단의 칼을 높이 든 자여

복수의 이빨 증오의 발톱으로

우리의 봄을 되돌려다오.

“Lazencha Save Us Lazencha, Save Us.”

“Lazencha, Save Us Lazencha, Save Us.”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랫소리가 허공을 흔들고, 스타디움을 찾은 모든 사람의 마음까지 모조리 뒤흔들고 난 뒤, 노래는 스러지듯 끝이 났다.

“Save Us, Save Us, Save Us······.”

그렇게 준영이 형과 열정적인 무대를 마친 후, ‘세상의 중심에서’를 불렀고, 중국 팬들을 위해 ‘조금만 더’를 중국어로 불렀다.

그리고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팬들의 성화가 빗발쳤다.

그 바람에 원래 레퍼토리에는 빠져 있던 ‘LONGING TIMES’까지 불러야 했다.

물론 허밍이었다.

그러고 나자, 힘이 다 빠져버렸다.

그렇게 무대를 벗어나 잠시 쉬는 동안, 한때 홍대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세이버스가 나서주었다.

희주 생일날 랩소디의 ‘Wisdom of the kings’를 합주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던 밴드. 형들은 여전했고, 내가 부탁하자 군말 없이 허락해주었다.

“도준아, 진짜 고맙다.”

“무슨 소리세요.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아냐, 아냐. 네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이런 무대에 서 보겠냐?”

“그렇지. 도준이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런데 올 일이 있었겠어?”

“에이, 그렇게 따지면 저랑 같이 어울려준 형들이야말로 대단하죠. 그땐 저 진짜 아무것도 몰랐었는데······.”

“크크크. 도준이가 우리랑 만난 것 자체가 기적인 거지. 적어도 우리에겐 말이야. 그때, 너 때문에 죽을 둥 살 둥 노래하고 작곡하고······. 와, 지금 생각해도 토 쏠리려고 한다.”

“덕분에 실력 팍팍 늘었잖아? 도준아, 우리 요즘 잘나가. 홍대에 우리만 떴다 하면 아주 그냥! 흐흐흐!”

“그랬어요? 진짜 잘됐네. 오늘 그 실력 제대로 한번 보여주면 되겠네요.”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은 처음일 테니,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홍대에서 공연해온 관록이 있어서인지 처음에만 조금 소극적으로 움직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무대 위에선 세이버스가 자신들의 대표곡인 ‘절대 돌아보지 마’를 미친 듯이 불러제끼는 중이었다.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그들이 지금 얼마나 신이 나 있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소리가 대기실까지 들려와 나는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얼마 뒤 세이버스의 연주가 끝났는지 이내 함성이 들려왔을 때, 마루 누나가 말했다.

“이제 마지막 곡이네?”

“그러네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다가가는데, 마루 누나가 날 불렀다.

“도준아.”

말없이 돌아보니, 누나가 묻는다.

“즐거워?”

나는 대답 대신 웃어 보였다.

그러곤 말했다.

“다녀올게요.”

문을 열자, 뜨거운 공기가 훅하고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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