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82화 (82/260)

# 82

#82. 크리스마스에는(2)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낸 곡들이 출시하자마자 빌보드 차트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을 거라곤.

당연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혹시 아냐? 이게 나중에 신의 한 수가 될지.”

아저씬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저런 표정을 짓고 말씀하실 땐 절대 농담이 아니란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슬그머니 올라간 입술을 보아하니,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어떻게 봐도 미국인들이 내 노랠 좋아할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비유가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시아의 유명 가수를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하기야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의 가수들도 잘 모르는 판국에.

뭐, 아는 사람들이야 알고 있겠지만.

“브라이언도 같은 생각인가요?”

“같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니까.”

고개를 끄덕인 뒤, 아저씨께서 덧붙이셨다.

아니, 되물으셨다.

“그래도······. 안 들으면 모를까, 한번 들은 사람은 좋아해 주지 않을까?”

글쎄다.

노래 실력만 놓고 보면, 누구랑 겨뤄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래에 국한된 얘기. 따지고 보면 노래라는 게 단순히 실력만 있다고 해서 먹히는 건 또 아니니까.

노래 한 곡이 어느 사회에서 히트를 하기 위해선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이를테면 감성이라든가, 시기라든가 혹은 외모라든가.

내 경우엔 외모 정확히는 피부색, 그러니까 출신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겠지.

아무래도 백인이 주축이 된 사회에 동양인이 부르는 노래가 그리 쉽게 파고들긴 어려울 테니까.

그래서 그런지 아저씨가 하는 말에도 별다른 기대감은 들지 않는다.

티를 너무 많이 냈나?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여서 그런지, 아저씨께서 희미하게 웃으셨다.

“레이크헬과 공연을 같이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제너레이션스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것도 있으니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

크게 와 닿는 얘기는 아니었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왔다.

“아, 샤오린! 지금 회사에······. 아, 그래요? 아뇨. 괜찮아요. 바로 갈게요.”

***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까똑이 날아들었다.

- 지금 학교 끝남.

- ㅠㅠ 근데 과외.

- 글고 콘서트 표 고마워. 꼭 보러 갈게.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희주의 얼굴이 보이는 거 같아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 응 꼭 와. 열공하고.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난 뒤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익숙한 얼굴이었고, 또 하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샤오린!”

반가워서 소리치자, 샤오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하게 웃는다.

“공항에서 전화하지 그랬어요. 그럼 데리러 갔을 텐데.”

“바쁘신 거 다 아는데요.”

그때였다.

어머니께서 방긋 웃으며 손에 들고 있는 종이들을 치켜 보인다.

“아들, 여기 집들 진짜 좋다.”

좋아하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니까,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샤오린이 부동산 투자에 일가견이 있다는 얘기에 부탁했던 건데.

뭐, 집이나 한 채 사려면 굳이 그녀까진 필요가 없었겠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한국에 대한 사정도 잘 아는 모양이었다.

가져온 자료들을 보니 국내의 부동산 업체보다 나아 보인다.

하긴 빈손으로 시작, 투자에 투자를 거듭해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거부가 된 그녀니까. 지금도 직접 투자회사를 이끌어가는 중이고.

그곳의 브레인들이 열과 성을 다해 조사한 자료들이니 오죽할까.

“투자 대비 예상 수익은 이쪽이 더 괜찮은데, 아무래도 편한 건 여기가 더 좋을 거에요.”

그녀는 우리 모자를 앞에 두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들을 보여주며 간단히 말한 뒤, 옆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남자가 나섰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 보인다.

그러곤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데, 발음이 거의 원어민 수준이다.

그것도 영국식.

“안녕하십니까, 샤오린 회장님의 비서인 브레드 콴입니다. 그냥 브레드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 예. 전 김도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팬입니다!”

감격했다는 표정으로 눈을 빛내는 브레드에게 엉거주춤 손을 내밀자, 그가 덥석 잡고는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다.

그래서 얼른 손을 빼곤 시선을 돌려버렸다.

부담스러워서.

“자세한 설명은 브레드가 해줄 거에요.”

그 후로 브레드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그러길 한참.

한 시간 정도가 흐르는 동안, 나와 어머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설명을 들었고, 샤오린은 어려운 얘기가 나올 때면 간간이 끼어들어 알기 쉽게 풀어주었다.

그렇게 모든 설명이 끝나고 난 뒤였다.

“제가 권해 드리는 건 이래요. 일단 서울에 집 한 채, 수도권 외곽에 건물과 땅 매입, 그리고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차명으로 건물을 한 채 매입하는 거죠.”

“위험하지 않겠어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겠죠.”

“······?”

“아시잖아요. 제가 투자회사 가지고 있는 거. 당연히 회사 명의로 사야죠. 대신 도준 씨는 그만큼의 회사주식을 양도받고. 이를테면 담보? 그렇게 생각하면 쉽겠네요.”

“그러기엔 자금이 좀 빡빡한 거 같은데요.”

“자금 살펴봤는데, 나쁘지 않던데요. 300억이 넘으니까, 반은 한국, 나머진 해외에 투자하는 거죠.”

잠시 생각해보곤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반은 한국에 집이랑 건물 매입. 나머지 중 반은 샤오린 씨 회사에 투자하고, 남은 건 놔두고 상황 봐가면서 운용하는 걸로요.”

내 얘기에 샤오린이 눈을 반짝이다 싱긋 웃어 보였다.

“도준 씨, 이쪽으로 생각보다 감각이 있네요. 맞아요. 투자에는 늘 리스크가 따르는 법인데, 얼마나 적당한 선에서 균형을 맞추느냐가 관건이거든요.”

그냥 하는 소리겠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뭐, 사실은 중국 땅에는 관심도 없거니와 그쪽 정부를 믿지 못해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었지만.

물론 샤오린이야 어느 정도는 믿는다.

투자하게 되면 당연히 계약서도 제대로 쓸 거고.

법적인 문제야 아버지가 계시니 문제가 될 게 없고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쇼핑이나 해볼까요?”

다시 한 번 웃어 보인 샤오린. 그녀와 함께 쇼핑을 시작했다.

150억이 넘어가는 쇼핑을.

한데, 웃기는 건 처음엔 조금 소극적이시던 어머니께서 이내 적극적이 되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선 샤오린과 머리를 맞대고 제법 심도 있는 토론까지 벌였다는 점이다.

거의 브로슈어 수준으로 깔끔하게 인쇄된 종이들을 몇 장을 뒤적이며 고민에 빠진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흠, 어째 백화점에서 몇 시간씩 우리 집 남자들을 끌고 다니실 때의 표정인데······.

왠지 등줄기가 서늘해져서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여기 있다가 괜히 휘말려 들면 꼼짝없이 몇 시간은 훅 날릴 것만 같아서.

다행히 어머닌 샤오린에게 추가로 설명을 들으며 매물들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어서 나까지 신경을 쓰시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 정도면 대충 아웃라인도 그려진 거 같고, 집이야 어머니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되는 거 아닐까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마침 아버지와 형이 들어오기에 눈짓을 보내곤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났다.

“뭐하는 거냐?”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고개를 갸웃하시며 아버지께서 다시 물어오셨다.

“가자니. 어딜?”

“차 사기로 했잖아요.”

“차?”

“차!”

두 사람이 다소 크게 외치는 바람에 오히려 내 쪽이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머니와 샤오린이 쳐다보기에 하던 거 마저 하라는 뜻으로 손짓을 해 보이곤 얼른 집을 나왔다.

어느새 입이 귀까지 걸린 두 남자를 데리고서.

***

12월 24일.

아침에 눈을 뜬 뒤 씻고 나와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을 먹고 있는데, 톡이 날아왔다.

- 이따 봐.

희주가 보낸 톡 아래쪽에 곰 한 마리가 귀엽게 춤을 추고 있었다.

픽 하고 웃는데, 이번엔 문자가 날아든다.

- 조금 이따가 뵐게요.

샤오린이었다.

오늘은 중국 팬클럽 회장으로서 날 만나겠다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오늘, 콘서트라고 했지?”

아버지께서 묻고 계셨다.

“예.”

“별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몸조심하고.”

“그럴게요.”

날 대견하다는 듯 쳐다보신 아버지께서 식사를 끝내셨는지 숟가락을 놓으며 일어나셨다. 그러다가 한마디 툭 던지신다.

“차는 잘 타고 다니마.”

그러곤 쑥스러우신지 뒤도 안 돌아보고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셨다.

“크흐! 동생! 진짜 감동이야! 이제 나도 소여······. 큼, 드라이브를 할 수 있······.”

나태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젓가락질을 하다가 아버지 말씀에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은근슬쩍 숟가락을 올리려는 형을 깔끔하게 무시하곤 집을 나섰다.

***

고 팀장님이 모는 차에 다 함께 타고 고척 돔구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인파.

이미 이런 경험은 중국에 있을 때 지겹도록 했는데도 당최 익숙해지질 않는다.

게다가······.

선두에 선 차를 시작으로 속속 도착하는 관광버스들.

대충 헤아려봐도 서른대가 넘는다.

주욱 늘어선 관광버스의 문이 열리며 일제히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들려오는 목소리로 보아 중국인들이다.

“다들 이쪽으로 모이세요!”

빨간 깃발을 든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고 있었다.

깃발마다 쓰인 번호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1번부터 38번까지.

차마다 번호를 붙인 모양인데······.

많이도 왔네.

탄성이 절로 나와서 눈을 못 떼고 있을 때, 마루 누나가 내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그러곤 눈짓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도 깃발이 보였다.

다만, 색이 다를 뿐.

하얀색 깃발.

매직으로 쓰인 글자들이 눈에 띈다.

광주, 대구, 청주, 부산, 창원, 원주······.

그 뒤쪽으로도 깃발들이 더 있었는데,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홈그라운드라고, 한국 팬들이 많긴 하네.”

감탄한 듯 말하는 누나 얘기를 들으며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아저씨의 눈빛이 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왜 그러세요?”

“레이먼드? 음, 그 자식이 여길 왔을 리가 없는데······.”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보셨어요?”

창밖을 한 차례 더 바라보신 후 아저씨께서 고개를 내저으셨다.

“아니다. 내가 잘못 본 모양이야.”

아저씨께서 턱을 매만지고 계셨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

“여기란 말이지?”

좌석을 확인하며 자리에 앉은 맥클라렌이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제법인데?”

벌써부터 김도준의 이름을 연호는 팬들.

그러다가 일명 떼창을 하며 도준의 노래를 부르는 관중들을 보면서 맥클라렌이 혀를 내둘렀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플래카드가 보이고 있다.

그중에는 중국어도 곧잘 눈에 띈다.

“한국인들이 원래 잘 놀아요.”

레이먼드의 얘기에 맥클라렌은 살짝 비웃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먼드는 공연 프로그램을 살펴보며 연방 무대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시각, 반대편 좌석에선 와너 뮤직에서 급파한 엘리야가 인상을 찌푸리는 중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벌써 몇 번째 한숨인지.

회사에서 가라고 하니 오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엘리야였다.

물론 그 역시도 여길 오기 전에 김도준의 노래를 들어보긴 했다.

그로서도 김도준이 잘 부른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지.

동양인이 미국에서 특히 음악계에서 성공한다는 건 거의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것보다 가능성이 낮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건 일본을 비롯해 중국 등 몇몇 나라에서 난다긴다하는 가수들이 수없이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선례들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엘리야가 기대라곤 손톱만큼도 하지 않고 있을 때, 공연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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