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81. 크리스마스에는(1)
이번엔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아직도 거리에선 ‘눈이 내리면’이 울려 퍼지는 중이었고, 겨우 이틀 만에 음원 차트 사이트 올킬을 달성했기 때문에 한참 시끄러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확히는 고 팀장님이 노린 바이기도 하다.
팀장님의 평소 지론이 또다시 입증된 것이기도 하고.
이슈가 하나일 땐 그저 바람에 불과하지만, 그게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면 폭풍이 된다는.
회사 홈페이지에 ‘크리스마스에는······.’이란 제목으로 공지가 뜨자마자 200만 명에 이르는 한국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던 것이다.
아니, 한국이 다 들썩거릴 정도였다.
[김도준 첫눈이 내리는 날에는 데이트, 크리스마스에는 콘서트?]
[재벌 3세라는 김도준의 그녀, 콘서트에서도 볼 수 있을까?]
[김도준 고척 스카이돔에서 천안문 광장에서의 공연을 재현한다.]
[소식을 접한 중국팬들 벌써부터 입국 준비 중?]
포털사이트에 속속 올라오는 기사들 덕분에 희주 얘기는 자연스럽게 희석되었다.
물론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 이름 석 자가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지만, 겨우 하루 만에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나의 그녀 어쩌고 저쩌고에서, 겨울의 추위를 녹여줄 콘서트 따위로 싹 다 교체된 것.
거기에 ‘눈이 내리면’이 캐롤이냐 아니냐를 두고 강하게 불붙었던 논란은 발라드 캐롤이라는 묘한 결론으로 종지부를 찍고는 그 불길이 콘서트 소식으로 옮겨갔다.
“기록을 세우려나?”
마루 누나가 살짝 흥분한 듯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기록이 얼만데요?”
내가 묻자, 마루 누나가 고개를 내젓는다.
“그건 나도 모르지.”
헛웃음이 나왔다.
기록도 모르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그래도 3분 안쪽이면 대충 기록 경신이 아닐까?”
“에이, 그래도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요?”
고척 스카이돔.
넥슨 히어로의 홈 구장이기도 한 스타디움으로 국내 최초의 돔구장, 즉 지붕이 개폐되는 구조로 되어 있는 이곳은 야구경기뿐만 아니라 콘서트와 같은 대형 이벤트가 곧잘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좌석만 놓고 보면 최대 3만 석 정도 규모여서 24, 25일 이틀간 진행될 두 차례의 콘서트로는 조금 작다 싶었지만, 미국에서 브라이언이 보내준 무대설치팀의 도움으로 필드에 마련한 스탠딩 석까지 포함해 10만 석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이틀간의 콘서트 표는 전량 예매제로 20만 석이 준비되었다는 얘기.
물론 마루 누나는 관계자였기에 표를 살 까닭이 전혀 없다.
오로지 관심은 하나.
얼마나 빨리 예매 물량이 소진되는가. 즉 최단 매진 기록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이제 곧 시작된다!”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며 주먹까지 내보이는 누나. 컴퓨터 앞에는 초 단위까지 나오는 시계를 가져다 놓고 눈을 반짝이는 중이었다.
“5···4···3···2···1···. 스타아아아아아트!”
무슨 카운트다운을 5부터 시작하는지 의아하기만 했지만, 어쨌든 예매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경이롭게도······.
“매진!”
시작하자마자 매진이었다.
정확히는 1분 27초.
당연히 예매하려는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들 거라고 생각했던 터라 트래픽을 고려해 서버를 늘려놓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래도 그렇지 너무 빠른데?
벙찐 얼굴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응. 진짜.”
“와, 대단하네요.”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자, 누나가 날 묘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봐요, 도준 씨. 이거 다른 사람 일이 아니거든요? 댁 일이라고 댁 일.”
누가 뭐랬나?
“예. 제 일이죠.”
“하아, 그럼 좀 더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주······.”
마루 누나가 뭔가 열폭한 듯 살짝 붉어진 얼굴로 빠르게 말을 쏟아내고 있을 때, 다행히 아저씨가 대표실 문을 열고 나오셨다.
“어떻게 됐지?”
“1분 27초 만에 전량 매진이요!”
마루 누나가 잘난척하는 얼굴이 되어 외쳤다.
한 손도 모자라 두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면서.
그 모습에 아저씨께선 기껍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곤 곧바로 한 가지 소식을 전했다.
“도준이가 참여한 노래가 빌보트 차트 1위에 올랐다고 하네?”
“아! 정말요?”
“방금 브라이언한테서 전화가 왔었······.”
아저씨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루 누나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예에에에스!”
의자를 밟고 올라가 주먹을 쥐고 두 팔을 번쩍 치켜드는 누나. 저거 오랜만에 보는 퍼포먼스인데······.
어느 틈에 들어가서 확인했는지, 모니터 화면엔 빌보드 차트가 띄워져 있다.
기쁘긴 나도 마찬가지여서 슬그머니 다가가 확인해본다.
1. Generations
선명하게 떠올라 있는 곡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 아래엔 푸른 글씨로 레이크헬이라고 쓰여 있었고.
비록 피처링으로 참여하긴 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밟아본 빌보드 차트 1위 자리였다.
아, 이게 문제가 아니지.
일단은 축하 인사부터······.
막 휴대폰을 꺼내 들었을 때였다.
부르르르르.
느닷없이 진동하는 휴대폰을 확인해보곤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어, 콜린.”
- 으하하하하하! 봤어? 봤지?
“뭘?”
갑자기 장난기가 들어서 모른 척 답했다.
- 앙? 못 들었어? 우리 노래가 지금 빌보드 차트에······.
“아, 그거? 난 또······.”
- 뭐야? 그 시큰둥한 반응은?
“참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위 처음 해봐?”
- 그야······.
“콜린.”
- 으, 으응?
“크크크. 축하해! 나도 지금 보고 있는데, 엄청 기쁘다고!”
잠시 수화기 너머에선 침묵이 흘렀다가 불쑥 하고 튀어나온 웃음소리.
- 하하하하하! 다시 한 번 장난 치면 죽는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도 나도 한참을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반쯤은 실성한 듯, 기묘한 외침을 터뜨리고 있었지만 그만큼 좋다는 거겠지.
신기하다.
레이크헬이 그동안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안 해본 것도 아닐 텐데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콜린뿐만 아니었다.
레이크헬 멤버들이 돌아가며 통화를 하다가 답답했는지 영상통화로 돌리자는 걸 가볍게 무시해주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장난이 아니라, 이쪽은 이쪽대로 바쁘기 때문이었다.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콘서트 준비를 하기엔 시간이 촉박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한데, 거기에 대고 아저씨께서 살짝, 아주 살짝 폭탄을 투하하셨다.
정말 별거 아니란 표정으로.
“미국 내에서 제너레이션스가 인기를 끌면서 부쩍 도준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나 보더라.”
“흐흐흐. 우리 도준이 진짜 장하다! 그래! 미국이라고 별거냐! 중국처럼 씹어먹는 거야! 가즈아!”
오늘따라 기분이 한껏 업된 마루 누나가 흥분해서 외치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 귀는 아저씨의 얘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직 얘기가 다 끝난 게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라이언이 이참에 곡을 출시하자네?”
“곡이라면······.”
아저씨의 입매가 슬금슬금 치켜 올라가더니, 결국 한쪽 입꼬리가 완전히 비틀어진 걸 보면서 나 역시 눈을 빛냈다.
***
뉴욕.
높다란 빌딩의 정문에는 Cony Music Entertainment라고 쓰인 간판이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며 걸려 있었다.
현재 세계 음반 시장을 대표하는 메이저 레이블 중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곳. 한때 카세트 플레이어 하나로 전 세계의 돈이란 돈은 다 끌어모았던 코니가 흔히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하는 암흑기 속에서 그동안 축적한 기술과 자금으로 인수와 합병을 반복해 쌓아올린 성이기도 하다.
북미, 유럽, 아시아에 걸친 배급망을 보유한 그곳에 갑작스러운 전략회의가 열린 것은 미국시각으로 저녁 7시 무렵이었다.
퇴근을 막 앞두고 있던 맥클라렌의 심기가 불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이런 식으로 약속을 어기게 된다면 하나밖에 없는 딸마저 자신에게 등을 돌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망할 고바야시!”
코니 아메리카 본사라고 할 수 있는 코니 뮤직의 부사장인 그로서는 일본 본사에서 직접 파견되어 회사의 업무를 총괄하는 사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방도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인데?”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럼에도 맥클라렌은 고바야시와의 오랜 친분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허물없이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욕설에 가까운 막말도 스스럼없이 던질 수 있는 거겠지만.
그에 비해 진중한 타입의 일본인, 고바야시는 회의실 상석에 앉아 언제나 그렇듯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앉지 그러나?”
회의실에 들어서면서 불편한 심기를 보란 듯이 표출하고 있던 맥클라렌이었지만, 끙 소리 한번 내는 걸 끝으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뒤늦게 회의실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응?’ 하는 눈빛이 되고 말았다.
레이먼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음반 관련 종사자들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프로듀서. CDM에 브라이언 오스틴이 있다면 코니에는 레이먼드 존스가 있다고 말할 정도의 거물이었다.
특히나 레이먼드는 엉덩이가 무거운 걸로도 유명했다.
어제는 파리에, 오늘은 베이징에 그리고 내일이면 쿠바에 있을 거라는 말로 유명세를 탔던 브라이언과는 정반대 타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은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웬만하면 이런 고리타분한 회의 자리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그이기도 했다.
한데, 지금 이 자리에 레이먼드가 있으니 놀랄 수밖에.
그만큼 오늘 올라온 안건이 중차대하다는 방증이기도 할 터였다.
맥클라렌의 태도가 급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순간에 진중한 면모를 되찾은 그가 자신의 자리에 놓여 있는 서류들을 발견하곤 재빨리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회의실에 있는 네 명의 남자들이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잠시 후, 맥클라렌이 서류를 덮었다.
그러고도 한참. 그는 좀처럼 말문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의 입술이 열렸다.
그런데 흘러나온 것은 말이 아니라 한숨이었다.
“헛참. 이거 진짜 애매한데?”
그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 고바야시를 비롯한 임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걸 보지도 않은 채 맥클라렌이 콧잔등을 긁으며 말했다.
“희한하네. 이 정도 실력인데, 왜 여태 알려지지 않은 거지?”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레이먼드가 툭 하고 내뱉었다.
“여긴 미국이니까.”
그 말로 모든 의문은 해소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일본자본으로 설립된 코니인 까닭에 이곳에서는 동양인 원숭이 따위의 인종차별적 언사는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음반 시장에서 동양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없이 낮다는 걸 부정할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동양인들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음악을 듣는 건 백인과 흑인으로 이루어진 미국인들이었고 당연하게도 그들은 듣기도 전부터 코웃음을 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자고?”
말을 빙빙 돌릴 줄 모르는 맥클라렌이 대놓고 묻자, 고바야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얘기했다.
“우선 노래부터 들어보는 게 좋겠군.”
그가 신호를 보내자, 회의실 안에 갑자기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안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연주가 흘러나올 때까지만 해도 맥클라렌은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수준이 높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 정도야 늘 들어왔던······.
“······!”
하지만, 싱어의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그는 눈을 치뜨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맥클라렌이었지만, 그는 간과했다.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시각, 와너 뮤직을 비롯해 다른 거대 메이저 레이블사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지금 김, 김······.”
“김도준입니다.”
“그래, 김도준. 아무튼, 김도준이 불렀다는 얘기인가?”
“오늘 음원이 출시되었습니다.”
“미치겠군. 한국인이라며? 한데,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거지?”
“레이크헬의 피처링에도 참여했습니다.”
“응? 피처링?”
“예. 이번에 1위에 오른 제너레이션스에···.”
손을 치켜들어 말을 막은 로건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불쑥 물었다.
“김도준이 콘서트를 열 예정이라고 했나?”
“예. 24, 25일 양일간 한국에서 콘서트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설마 지금 내가 들은 곡들은 아니겠지?”
방금까지 듣고 있던 노래들은 하나같이 영어로 부른 노래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로서는 한국에서 여는 콘서트에서 한국인인 김도준이 영어로 부를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미국과 한국에서 발표된 노래가 다릅니다. 말하자면 원곡은 한국어로 부른 노래입니다.”
“허!”
기가 막힌다는 듯 탄식을 내뱉은 로건이 이내 표정을 고치더니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다른 곳에선?”
“그것까진······.”
“그래?”
또다시 장고에 들어간 로건.
그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10여 분이나 흐른 뒤였다.
“엘리야, 지금 당장 한국으로 가.”
***
콘서트를 나흘 앞둔 시점에서 공항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작스럽게 밀려든 중국인들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김도준이 중국에서 개최한 콘서트를 시작으로 한중간 문화교류가 다시 시작되었다지만, 그렇다곤 해도 근래 들어 가장 많은 이들이 입국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이유야 말할 것도 없었다.
김도준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내한한 중국인들이 절반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샤오린도 포함되었다.
또각또각.
공항을 빠져나온 그녀. 그녀의 하이힐이 바닥을 울리다가 멈춰 섰을 때, 선글라스 아래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맑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도준 씨가 지금 어디에 있다고 했죠?”
“회사에 있을 겁니다.”
“그래요?”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녀가 결정했다는 듯 다시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집으로 가죠.”
“······집이라면?”
“주소 몰라요?”
“아니 그러니까······.”
샤오린은 이번에 새로 고용한 비서인 페이펑을 한차례 바라보았다.
옥스퍼드를 나오면 뭐하나?
이렇게 주변머리가 없는데······.
그녀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말했다.
“어디겠어요? 당연히······.”
“······?”
“도준 씨 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