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80화 (80/260)

# 80

#80. 카르페 디엠(3)

아우, 내가 지금 대체 뭐하는 짓이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질 않는다.

더 심각한 건 아까부터 계속 이 상태라는 거지.

아니, 아까보다 더 심각한가?

진짜 머릿속에서 나사 한두 개가 빠진 느낌이다.

그때였다.

타다닥.

어딘지 모르게 다급하게 들리는 발소리.

“도준아!”

뒤이어 희주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볼 수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는 희주를.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두 볼이 다 빨갛다.

그러면서 배시시 웃는다.

어찌나 환하게 웃는지, 나도 모르게 멍해지고 말았다.

“오, 오래 기다렸어?”

뛰던 걸 멈추고 숨을 고른 뒤, 천천히 다가오던 희주가 묻는다.

그러더니 부끄럽다는 듯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

뭐지? 저 모습을 보는데 왜 간질간질하지?

“망할 자식들, 괜한 말은 해 가지고.”

“응?”

“아, 아냐. 갈까?”

정신을 차리곤 곧바로 돌아섰다.

그런데 뒤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질 않는다.

뭐지 싶어서 돌아보니 희주가 뭔가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면서 내 손을 힐끔거렸다.

야, 그건 좀······.

모른 척 말했다.

“안가?”

“가, 가야지.”

그제야 후다닥 따라붙는 희주를 보면서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

서울이란 도시는 진짜 희한한 곳이 아닐까?

백화점과 쇼핑몰이 지천에 깔려 있고, 그걸로도 모자라 길거리엔 온갖 물건들을 파는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극장 수는 어떻게 계산을 놔봐도 서울에 상주하는 인구수와 대비해 전혀 맞질 않는다.

그런데도 주말이면 미어터진다.

애당초 5,000만 명 정도 되는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영화 한 편 개봉한다고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든다는 게 말이 되나?

그만큼 즐길 거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글쎄다. 예전에 비하면 할 거 많지 않나?

아무튼, 그 덕분에 극장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냥 간단히 핸드폰으로 검색만 해봐도 바로 나온다.

지금처럼.

“500미터만 가면 된다는데?”

호텔 로비에 서서 멀티플렉스 영화관 한곳이 표시된 지도를 보여주자, 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 탈까?”

잠시 생각에 잠기던 희주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대신 눈짓으로 호텔 밖, 거리 쪽을 가리켰다.

무슨 뜻인가 해서 바라보곤 인상을 팍 구겼다.

거리에 사람이 넘쳐난다.

눈길이 닿는 곳 치고 사람이 없는 곳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지 눈에 훤하다.

몇 번의 방송출연과 CF 그리고 중국에서의 공연으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 테니까.

아마 문을 나서기 무섭게 사람들이 몰려들겠지.

한데, 내 옆에 희주가 있다?

순간 머릿속에 기사 제목이 스쳐 간다.

김도준, 의문의 여자와 데이트.

아까부터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가, 지금의 내 머리론 생각해낼 수 있는 게 고작 이 정도지만.

분명 기자들이라면 이거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며 자극적인 제목들로 기사를 써제낄 게 뻔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져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희주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전화를 거는 게 보였다.

“최 실장님, 저 희주예요. 도준이 아시죠? 예, 도준이랑 영화 한 편 보고 싶은데······. 그건 그렇죠. 저도 도준이한테 피해 주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S 멀티미디어 센터 좀 사용해도 될까요? 예.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전화를 끊고선 날 바라보는 희주. 칭찬해달라고 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음, 스케일이 참······.

놀랍긴 한데, 우리 둘이 영화 한 편 보자고 S 뭐시긴지 하는 곳을 빌리자고?

아니, 그 이전에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눈빛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물었다.

“최 실장님이면 비서실?”

“응. 곧 데리러 오신데.”

말없이 고민하다가 되물었다.

“지금 내 걱정하는 거야?”

희주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곤 픽 하고 웃어 보였다.

“그런 거라면 신경 쓰지 마.”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희주였지만, 그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힘드신데 오시지 말라고 해.”

“그치만······.”

“우리가 죄 졌냐? 그저 영화 한 편 보는 건데 무슨······. 아, 혹시 희주 너한테 피해가 가려나?”

따지고 보면 나보다는 오히려 희주가 문제다.

나랑 같이 다니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언론도 그렇고 여러모로 문제가 불거질 공산이 크다.

아, S그룹에서 언론 통제라도 해주려나?

누군가 협박을 한다 해도 경호원들 붙이면 되니까 상관없나?

그렇다곤 해도, 어떤 식으로든 알려지긴 할 테다.

희주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꼴은 보고 싶지 않은데······.

악플이 달리는 건 더더욱 보고 싶지 않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영화를 안 보고 말지.

어디 사람 없는 데 없나 하고 생각할 때였다.

“나, 나도 상관없어.”

희주가 고개를 숙인 채 말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가···각오······.”

부끄러운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뒷말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희주의 손을 잡았다.

희주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잠시 후 희주가 최 실장님께 다시 전화하고 난 뒤, 둘이서 거리로 나왔다.

***

와, 진짜 장난 아니네.

500미터 남짓한 거리를 걷는 동안 대체 얼마나 몰려든 건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지, 희주가 말할 정도였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을래?”

대답도 하기 전에 사라져버렸다.

희주가 오기 전까지 난 될 수 있으면 눈에 안 띄게 한쪽에 찌그러져 있었고.

얼마 후, 다시 나타난 희주는 싱긋 웃으며 몇 가지 물건들을 들어 보였다.

“이게 다 뭐야?”

“쇼핑센터에서 사왔지.”

희주는 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 가더니, 재빨리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비 끝!”

희주의 손길에 따라 달라진 내 모습이 쇼윈도에 비친다.

커다란 선글라스에 챙이 긴 야구모자를 쓰고 목도리로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있다.

“이제 문제없겠지?”

“저기 근데······.”

나도 나지만, 희주까지 같은 모습인 건 왜지?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선글라스도 그렇고, 모자까지 하나같이 모양이 같다?

색깔만 다를 뿐.

심지어는 모자에 이니셜도 같은데?

이거 설마?

갑자기 닭살이 돋으려는 순간, 희주의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희미하게 웃고 있는 모습.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야, 저 사람···. 김도준 아냐?”

“진짜? 글쎄,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희주의 센스 덕분인지 날 향해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

아이고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신발을 벗어 던지고 그대로 소파로 가서 늘어져 버렸다.

와, 진짜 장난 아니네.

영화관 한번 갔다 온 거뿐인데, 무슨 공연이라도 뛴 거 같냐?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소파에 눕힌 채 축 늘어져 있다가 번뜩 정신이 들어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곤 톡을 날렸다.

- 잘 들어갔지?

메시지 옆에 있는 1자가 사라지질 않는다.

씻고 있나?

아니면 벌써 잠들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였다.

까똑!

희주한테서 답톡이 온 건가 싶어서 확인해보니 마루 누나다.

- 오올, 우리 도준이 많이 컸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 데이트 좋았어?

흠칫.

그새 인터넷에 올라오기라도 한 건가?

- 데이트 아닌데요.

역시 짐작대로였다.

- SNS에 사진 떴던데?

- 그냥 친구랑 영화 한 편 보고 왔음.

- 여자?

뭔가 감기는 느낌인데······.

잠시 망설이다가 답톡을 날렸다.

- 예.

그러자 곧바로 톡이 날아든다.

- 데이트 맞네.

아니라니까!

이게 데이트면, 커피 한 잔 마시다가 손만 스쳐도 결혼해야겠네!

- 이상한 소리 마시고요. 만일 사진 올라오면 되도록 희주 얼굴 안 나오게 조치나 좀 해줘요.

- 희주?

- 오늘 같이 영화 본 친구 이름이에요.

- 애인?

- 친구라니까요.

- ㅋㅋㅋ 오키. 근데, 가능할진 모르겠다. 아무튼, 해보긴 할게.

어째 마루 누나가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때, 다시금 날아드는 톡.

확인해보니, 내가 희주랑 나란히 서서 걷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까 말한 SNS에 올라왔다던 사진인가 보다.

그건 그렇고.

누가 찍었는지 잘 찍었네.

희주가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만만치 않네.

저 땐 몰랐는데, 나 역시 웃는 얼굴이다.

즐겁긴 했지.

아마 SNS에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만.

뭐, 지금쯤 인터넷에서도 난리긴 하겠지.

무슨 상관이람.

그런 걸 무서워하기엔 내가 좀 오래 살았거든.

그래도 희주가 걱정되긴 한다.

만일 악플이라도 달리면, 그땐 나도 가만있진 않······.

까똑!

희주에게서 톡이 날아든 것도 그때였다.

- 미안.

- 씻느라고.

- 잘 들어갔어?

연달아 울리는 톡을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느새 난 벌떡 일어나 앉아 답톡을 날리고 있었다.

- 나도 방금 들어왔어.

순식간에 사라지는 1.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톡이 안 온다.

그 시간이 1초가 지나고, 2초가 지나고, 3초가 지나고······.

기다리다 못해서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자판으로 향하고 있을 때 다시 까똑음이 들렸다.

- 오늘 즐거웠어.

부끄러운 듯 말하고 있는 희주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색하지 않게 답톡을 해야 할 텐데.

뭐라고 보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톡을 날렸다.

- 다음에 또 가자.

곧바로 답톡이 온다.

- 응!

- 그럼, 잘 자라.

쌈빡하게 답톡을 날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뭐냐 그 얼굴?”

아이, 깜짝이야!

언제 왔는지 형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 내가 뭘?”

“아니 그냥.”

바톤 터치하듯 방금까지 내가 앉아 있던 소파에 드러눕는 우리 형님. 막 방으로 들어가고 있는 날 향해 돌직구를 던져왔다.

“희주가 그렇게 좋냐?”

“뭐, 뭐래!”

형이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곤 다 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니, 난 또 그런가 했지. 바보처럼 웃고 있길래.”

***

어떻게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질 않는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내 이름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라 있었다.

회사로 가면서 확인해보니, 인터넷이 뜨겁다 못해서 폭발하기 직전이다.

사진들이 몇 장 올라와 있는데, 하나같이 나와 희주가 정답게······. 흐음, 얘가 이렇게 잘 웃는 애였나?

뭔가 마음이 흐뭇해져서 문을 여는 순간 마루 누나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외친다.

“와, 뻔뻔하기도 하지. 사고를 쳐놓고도 웃는 클라스!”

“뭘요. 그냥 친구랑 영화 한 편 본 거 가지고.”

“글쎄,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

마루 누나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뭔가 해서 바라보곤 피식 웃고 말았다.

[김도준의 여자? 그녀는 누구인가?]

[어제저녁 김도준과 함께 한 여자는 재벌 3세?]

[A양, 김도준이 학창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던 걸로 밝혀져.]

“안 그래도 오면서 봤어요.”

“댓글 보이지? 와, 무슨······! 댓글 달리는 속도가!”

“그러게요?”

“얘 좀 봐. 지금 네 얘기 하는 거거든?”

마루 누나가 여전히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말하는 걸 들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가 문제에요? 어차피 고 팀장님이랑 마루 누나가 알아서 실드 쳐주실 거잖아요.”

“그야 그렇긴 하······. 야! 그게 지금 네가 할 말이야? 사고는 지가 치고 수습은 우리가 하······.”

“에이, 왜 그래요? 이 정도면 양반이구만. 생각 안 나요? 표절 시비 땐 진짜 장난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어라? 기사 내려갔네?”

그새 기사가 내려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덕분에 인터넷 기사에선 더 이상 희주 얼굴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S 그룹에서 손을 쓴 모양이다.

뭐, SNS상에 퍼진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신경 쓸 필요 없겠지.

나는 물론이고 희주도 개의치 않는 눈치니까.

김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마루 누나를 뒤로하고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러곤 기타를 들고 연주를 시작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누나가 모과차를 들고 들어왔다.

“처음 듣는 곡이네?”

“어젯밤에 잠도 안 오고 해서 한번 만들어봤어요.”

이렇게 말하곤 다시 기타를 치고 있는데, 누나가 어딘지 모르게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돌아섰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네.”

그렇게 연습실을 나갔던 누나가 다시 들어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대표님이 찾으신다.”

어제 일 때문에 그러나 싶어서 재빨리 대표실로 가보니, 아저씬 오히려 웃고 계셨다.

“재밌었냐?”

소파에 앉기도 전에 물어오시는 아저씨.

“예.”

미소와 함께 대답하자, 아저씬 더 이상 그 얘긴 꺼내지도 않으신다.

“브라이언이 고맙다고 전해달라더라. 앨범이 대박 난 모양이야.”

딴 얘기를 하려고 하시기에 오히려 내가 물었다.

“신경 안 쓰이세요?”

“뭐가?”

“어제 일요.”

물끄러미 날 바라보던 아저씨께서 턱을 매만지셨다.

뭐가 문제지 하는 얼굴이시다.

그러다가 불쑥 물으셨다.

“너 배우냐?”

“아뇨.”

“그럼, 아이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 것 같다.

“그러네요. 전 가수죠.”

아저씨께서 은근한 어조로 날 부르신다.

“도준아.”

“예.”

“넌 가수이기 이전에 사람이야.”

“······.”

“난 너더러 노래하라고 했지, 참으라곤 안 했다. 그러니까, 즐겨.”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아저씬 날 부른 용건을 꺼내셨다.

“콘서트 일정 잡혔다.”

“어, 그래요? 언젠데요?”

“12월 24, 25일.”

씨익.

“재밌네요. 크리스마스에 콘서트라······.”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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