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75화 (75/260)

# 75

#75. 이렇게 부른다(2)

이제까지 점잖게 구경만 하던 어르신들의 표정이 단박에 변해버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 국민이 아는 가요.

노래방에서 숱하게 틀어지고, 불리는 노래.

트로트의 대명사로 해도 과언이 아닌 ‘돌아와 줘 부산항에’를 따라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솔직히 많이 놀랐다.

이렇게까지 좋아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래서 그랬을 거다.

진짜 신나서 불렀다.

적절히 바이브레이션을 집어넣고 감정을 실어서 불렀다.

그렇다고 해서 음을 꺾거나 하진 않았다.

원곡이 가진 맛도 그렇거니와 그건 내 스타일도 아니었으니까.

대신 담백한 목소리로 부르되 입에 착착 감기도록 노래했다.

그래서인지 어느덧 어르신들은 손뼉까지 치며 따라부르고 있었다.

아니, 나이 든 사람들만이 아니다.

애고 어른이고 없었다.

성별도 구분하지 않았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들까지 신나서 따라부르는 장면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이 손뼉까지 쳐대며 박자를 맞추면서 열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게 공연장에선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 놀라운 점은······.

그렇게 노래를 끝내고 난 뒤였다.

앵콜!

앵콜!

앵콜!

허리를 한차례 숙이고 단상을 내려가려던 나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하니 여기서 커튼콜이 나올 줄이야.

조금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외할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돌리······.

흠칫.

“앵콜! 앵콜! 앵콜!”

아이고야, 우리 할아버지 엄청 기분 좋으신가 보다.

체통이고 뭐고 없으신 모습.

그런 점에선 그룹의 회장들도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였다.

그들도 앵콜을 외치고 있기는 마찬가지.

뭐, 그렇다고 해서 테이블 위로 올라간다거나 일어나서 방방 뛰는 등의 추태는 부리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외쳐댈 뿐이지만 그것만 해도 내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차례 머리를 긁적이다가 세션들에게 곡명을 말해주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는 동안에도 다들 술잔을 돌리며 신나서 앵콜을 외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때 뒤로 빼면 내가 아니지.

뒤를 돌아보곤 드러머에게 눈짓했다.

탁! 탁! 탁! 탁!

스틱을 부딪쳐 박자를 맞추는가 싶더니, 이내 드럼 소리가 신명 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리드미컬한 드럼 소리를 시작으로 연주가 이어지고, 그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긴 세월 흘러서 가고······.”

환호성이 터졌다.

동시에 어르신들이 신나서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뿐.

이내 젊은 사람들도 금세 분위기에 녹아들어 신 나게 부르고 있었다.

그만큼 가사도 리듬도 단순했기 때문이다.

- 긴 세월 흘러서 가고.

그 시간 기억이 나면.

못 잊어 그리워지면.

내 마음 서글퍼지네.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대뿐이라오.”

나도 모르게 마이크를 쥔 채 눈까지 감으며 노래를 부르는 사이, 공연 아니 공연이 끝났다.

***

도준이 노래하는 걸 보면서, 아니 자신도 모르게 따라부르면서 정 회장은 눈을 빛냈다.

어째서 그렇게들 도준의 노래에 열광하는지 몰랐더랬다.

한데 이젠 알겠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밀고 들어온다.

아무리 점잔을 빼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만드는 힘. 그 힘이 도준의 노래엔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떨어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자신은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그나마 손뼉까진 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짜 체통이고 나발이고······.

정 회장은 저만치 단상 한편의 상석에서 기분 좋게 자신의 손자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부르는 최 회장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느낀 걸 못 느꼈을 리 없다.

도준의 가치를 이미 알고도 남았으리라.

핸드폰 몇백만대?

믹스커피 몇만 상자?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란 사실을.

그 증거로 자신의 손녀딸이, 아니 아들 부부까지 바로 옆자리에 앉아 눈을 반짝이다 못해 빛이라도 뿜어낼 듯 도준을 바라보며 노래를 따라 하고 있었다.

- 헉헉헉! 감···감사합니다.

이윽고 노래를 마치고 숨을 몰아쉬며 인사하고 있는 도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손녀딸의 모습에 정 회장은 속으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 참······. 물건은 물건이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정 회장이 조용히 일어났다.

그러곤 최 회장에게 다가갔다.

때마침 손님들을 보내놓고 큰아들 내외와 얘기 중이던 최 회장. 뒤늦게 자신에게 다가온 정 회장을 발견하곤 말했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다.”

정 회장은 최 회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혹시 파주 쇼핑타운 사업에 관심이 있소?”

최 회장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싶더니 이내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지어졌다.

옆에 서 있던 최 회장의 큰아들, 최주호의 눈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중이었고.

***

김도준의 외할아버지인 최 회장이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그동안 왕래가 없었던 정·재계의 인사들과 새로운 친분을 만들어가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정말 안 온대요?”

콜린이 빈정이 잔뜩 상한 표정으로 브라이언에게 따지듯 묻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베릴을 비롯한 레이크헬의 멤버들도 우르르 몰려와 시위하듯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브라이언은 답답한 심정이 되어 소리쳤다.

“아,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데! 여길 오고 말고는 그 자식 마음이지! 나한테들 이러면 걔가 오기라도 해?”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콜린! 너도 전화해봤을 거 아냐? 응? 아냐? 근데, 그 자식이 뭐래? 온다고 하지? 근데, 봐라. 여기 어디에 그놈이 있냐고! 코빼기라도 볼 수 있어? 근데 날 더러 어쩌라고? 응?”

이렇게 목이 쉬도록 빽빽 고함치곤 있었지만, 브라이언이라고 해서 왜 모를까.

이미 앨범에 들어갈 곡들은 모두 작곡이 끝난 상태.

그런데도 아직 녹음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크헬 멤버들 중 누구 하나 찬성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별거 없다.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거다.

콜린의 말에 따르면 2% 정도 뭔가 부족한 느낌인데, 그걸 모르겠다는 거였다.

차라리 한국에서 도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또 모를까.

그때부터 레이크헬은 뭔가 변해 있었다.

그게 뭔지를 모른다는 게 문제일 뿐.

‘젠장! 이렇게 생각하니까 엄청 심각한 거잖아!’

브라이언은 콧잔등을 일그러뜨리는가 싶더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전화를 걸었다.

액정 화면엔 ‘KIM’이란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콜린을 비롯한 레이크헬의 멤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브라이언을 둘러싸고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받질 않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고 말았다.

“망할 자식! 이젠 받지도 않네!”

몇 번이고 거듭해서 걸어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 도준이었던 것이다.

그때, 베릴의 눈빛이 살짝 변하는 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다들 한껏 기대했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만을 터뜨릴 뿐이었다.

***

팔순 잔치는 성공적이었다······라고 말하는 것도 조금 우습긴 하지만, 그렇게밖에는 말하기 어려울 거다.

후우! 다시 생각해도 내가 미쳤지.

무슨 콘서트도 아니고······.

대체 몇 곡을 부른 거야?

무려 6곡을 쉬지 않고 불렀다.

그중 트로트만 네 곡이다.

뭐, 다들 좋아해 주었으니 그걸로 된 거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는 거 처음 본 거 같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형이 했던 말이 마음속에 박힌 채 빠질 줄을 모른다.

“우리 아들······. 고맙다.”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할 때 살짝 흔들리던 눈동자도 잊을 수 없었고.

이미 만취 상태가 되어 곯아떨어진 아버지야 말할 것도 없었다.

연수원 동기들뿐만 아니라 검사 재직 시절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저렇게 돼버리신 거였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7병은 너끈히 까시는 아버지라는 걸 감안하면 진짜 많이 마시긴 한 모양이다.

“에이, 제가 뭐 한 거 있나요? 노래 몇 곡 부른 게 다인데요.”

“호호호. 효도가 별거니? 엄마도 너희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는 거 처음 본 거 같다. 어찌나 즐거워하시는지······.”

하긴 외할아버지가 오늘 좀 유난히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지.

그룹 회장들한테 둘러싸인 채 호탕하게 웃으시며 얘기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픽 하고 웃고 말았다.

가끔 한 번씩 날 바라보는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역시 자주 할 일은 아니다 싶었다.

다른 건 둘째치고 자꾸만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반짝이던 여자들의 눈빛들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런 와중에도 시크릿걸즈 멤버들과 어울려 별것도 아닌 얘기들을 하면서 즐거워하던 형이 대단하다면 대단한 거겠지.

아무튼, 진짜 피곤하긴 하다.

어지간한 콘서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온몸의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까부터 자꾸만 졸음이 쏟아진다.

“그래서······내가······소연 씨가······말했······. 야! 자냐? 도준······얀ㅁ······.”

옆에서 형의 목소리가 끊겼다가 이어지길 반복하며 서서히 멀어지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

잠에서 깨어나 보니 어둠 속이었다.

잠시 여기가 어딘가 생각하다가 내 방이란 걸 기억해내곤 웃고 말았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얼마나 졸렸으면 차에서 내린 뒤 좀비처럼 기어 올라와 그대로 잠이 들었던 걸까.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네.”

나갈 때 입었던 옷 그대로였으니까.

아니, 그전에 좀 씻을까?

그나저나 몇 시기에 이렇게 눈이 말똥말똥해진 거야?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6시다.

나 참.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거다.

평소 이 시간에 일어나 조깅하러 나가곤 한 탓인지, 저절로 눈이 떠지고 말았다는 건데······.

헛숨을 내쉬곤 침대에서 벗어났다.

원래는 운동부터 하고 씻곤 했지만, 오늘은 샤워부터 좀 해야겠다.

어젯밤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지면서 침대에 구겨진 채 잠을 자서인지 머리도 엉망이고, 무엇보다 온몸이 쑤시는 게 이대론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잠시 후 나는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곤 밖으로 나가기 전에 메일이나 확인해볼 겸 컴퓨터를 켰다.

그게 패착이었다.

“음, 베릴이 웬일이지?”

한 통의 메일.

그 한 통의 메일이 날 붙박이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뭔데 이렇게 많이 보낸 거야?”

음원 파일 9곡. 거기에 코드까지 다 적혀 있는 원곡 파일들.

잠시만 살펴보고 조깅하러 나가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 왜 여기서 이렇게 가? 하아! 진짜 생각들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데모곡으로 보이는 9곡을 듣고, 악보들까지 전부 한차례 살펴본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어, 베릴. 지금 통화돼? 어? 나야 잘 지내지. 아, 지금 그런 얘길 할 때가 아니고. 이거 뭐야? 응? 신곡? 근데 왜 나한테 보낸 건데? 뭐? 편곡?”

베릴의 얘기를 듣는 내내 전해져왔다.

지금 레이크헬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쯧. 간단하다면 간단한 건데······.

나는 고개를 내젓곤 말했다.

“일단 만져는 볼게. 근데, 나도 장담 못 한다. 그건 감안들 하고. 오케이?”

- 그래 준다면야 우린 고맙지.

“뭘 또. 가기로 해놓고 가지도 않는 내가 나쁜 놈인 거지.”

- ······알긴 아나 보네.

“끊는다.”

베릴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뚝뚝 떨어져서 더 얘기했다간 나만 곤란해질 거 같아서 얼른 끊어버렸다.

그러곤 컴퓨터를 붙잡고 다시 한 번 곡들을 살펴보았다.

“흠, 단순히 어레인지로 끝낼 일이 아닌 거 같은데?”

몇 번이나 음원을 들어보곤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곡은 나쁘지 않은데······.”

이건 옷으로 치면 피팅이 잘못되어 있는 거랄까.

멤버들 특유의 개성이 싹 다 무시된 곡이라고 느껴진다.

아니, 나름 살린다고 살린 거겠지만······.

아무래도 자신들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지금 자신들이 낼 수 있는 한계치를 정확히 몰라서 이러는 거라고 봐야 하겠지.

그 괴리감을 깨닫지 못하는 한, 갈증이 날 수밖에 없을 거고.

하기야 음악처럼 섬세한 분야에선 그 작은 차이를 알아챈다는 것 자체가 몹시 어려운 일이니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대충 알 것 같아서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곤 곧바로 곡을 손보기 시작했다.

십여 분 뒤,

딸각.

한 곡을 먼저 끝내곤 메일을 보냈다.

나머진 조깅을 하고 와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러곤 베릴에게 문자 한 통을 남겨놓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밖으로 나갔다.

***

띠링.

메시지가 날아드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베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시지를 확인하면서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도준과 통화한 지 20분도 채 안 되었기 때문.

그 짧은 시간 만에 편곡을 마쳤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쉽게 될 거였으면, 이미 곡 작업을 끝내고 녹음에 들어가 있겠지.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 메일 확인해 봐.

도준에게서 온 메시지가 맞다.

베릴은 황급히 메일을 확인했다.

첨부 파일이 하나 떠있다.

그걸 얼른 내려받은 그는 마른 침을 삼키며 클릭했다.

두근.

자신도 모르게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것이 설렘으로 말미암은 신체반응이라는 걸 그로서는 깨달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럴 틈조차 없었다.

화면에 악보가 뜨기 무섭게 기타를 찾아 품에 안은 베릴은 그때 이미 코드를 잡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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