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73화 (73/260)

# 73

#73. 가긴 어딜 가?(3)

외할아버지와의 통화로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확실히 생신이 이맘때였던 거 같다.

음, 그러고 보니······.

올해가 외할아버지 팔순 아니었나?

그건 나중에 어머니께 확인해보면 될 일이고.

우선은 아까 하던 얘기부터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었다.

“할아버지 통화라······. 죄송해요.”

아저씬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내저으셨다.

“괜찮아. 그보다 어쩔래?”

미국행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겠지?

“그러니까, 그쪽에서 와줬으면 한다는 얘기잖아요?”

고개를 끄덕이시는 아저씨.

브라이언과 콜린의 얼굴을 떠올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하다.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미국 한번 다녀오는 건데 나쁠 건 없지.

근데 그쪽도 앨범 발매가 코앞일 텐데, 바쁘지 않나?

아니면 그래서 더 오라고 성화인 건가?

혹시 일이 잘 안 풀리나?

가든지 안 가든지 간에 이따가 통화는 한번 해봐야겠다.

내가 되물었다.

“좀 더 생각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아저씬 당연하다는 듯 얘기하시더니 덧붙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야. 의욕도 좋지만 재충전하지 않곤 나아갈 수 없는 게 사람이란 얘기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뒤,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도준아.”

아저씨께서 날 부르시더니, 망설이는 눈치시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저씨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저씨께선 매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고민이 있으면······.”

“······.”

“혼자서만 떠안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천 년 노래방과 관련된 얘기를 털어놓을 뻔했다.

하지만, 곧바로 삼켜버렸다.

아저씰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문제는 누군가와 상의하기 이전에 나 스스로가 먼저 답을 내야 할 문제란 걸 인식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후에도 방법을 찾지 못하면 그때 얘기해도 늦진 않을 거란 판단이었다.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럴게요.”

그렇게 막 대표실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부르르르.

다시금 울리는 핸드폰.

외할아버지신가?

아까 좀 급하게 끊으시더니, 더하실 말씀이 남으셨던가 싶어서 확인해보곤 미소를 짓고 말았다.

핸드폰 화면에 반가운 이름이 떠 있었던 것이다.

마루 누나가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전화를 받았다.

“준영이 형!”

- 여어, 갓준! 이 형이 지금 무지 감개가 무량한 거 아나 모르겠다. 중국을 들었다 놓고 온 우리 슈퍼스타랑 이렇게 통화를 다 할 수 있고.

웃음기가 가득한 준영이 형의 농담에 입가에선 미소가 사라지질 않는다.

“아, 진짜! 형까지 왜 그래요?”

- 흐흐흐. 왜 그러긴 좋아서 그러지. 그건 그렇고. 몸은 좀 어때? 혁수 형한테 얘기를 듣긴 했는데, 안심이 돼야 말이지. 설마 막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지?

“괜찮아요. 그냥 피로?”

- 흠, 과로란 얘기네? 하긴, 그런 강행군을 했으니······. 가만, 그거 아동 학대 아냐? 아놔, 혁수 형 안 되겠네. 미성년자를 데려다가 뭔 짓을 하는 거야? 안 되겠다. 너 거기서 당장 나와라. 내가 다른 소속사 소개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빨라지고, 갈수록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얘기들이 쏟아진다.

아마 괜찮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걱정하고 있던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저러는 걸 테지.

그렇다곤 해도 진짜 말 잘하네.

저렇게 말을 쉬지 않고 쏟아내는데도 불구하고 논리정연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인데······.

그나저나 그냥 안부 전화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형이 농담을 어느새 그치곤 묻고 있었다.

- 아직 밥 안 먹었지?

아까완 톤이 완전히 달라진 음성에 한 템포 늦게 대응하고 말았다.

“아침이요? 점심이요?”

- 우리같이 게으른 족속들이 아침이 웬 말이냐? 당연히 아점이지.

“그 우리에서 저는 좀 빼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준영이 형은 한차례 킥킥거리더니 이내 얘기했다.

- 너, 바쁜 일 없지?

대답할 새도 없이, 형의 얘기가 이어졌다.

- 다 와 가니까 만나서 얘기하자.

음, 오는 길에 전화한 모양이네.

알겠다고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

다시 전화 한 통이 걸려와, 회사 식구들한테 얘기하곤 밖으로 나가자 형의 검은색 포르셰가 떡하니 보인다.

이미 몇 번이나 타본 터라 별 거부감 없이 문을 열고 보조석에 올라탔다.

경호원들에겐 이미 말해두어서 그들은 동행하지 않았다.

“아이고, 애 얼굴이 그냥 반쪽이 됐네.”

준영이 형은 선글라스를 쓴 채 혀를 차면서 한마디 하고는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대로를 달리면서 다시 물어왔다.

“뭐 먹을래?”

“아시잖아요? 저 뭐든 잘 먹는 거.”

“그럼 형이 정한다?”

씨익 웃어 보이자, 준영이 형이 콧노래를 부르며 유유히 차를 몰았다.

그렇게 한 30분쯤 지나 도착한 곳은 경기도 외곽에 있는 초가집이었다.

뒤쪽의 자갈밭에 차를 대충 세우곤 안으로 들어가며 형이 자랑스러워한다.

“너도 알지? 나한테 엄청난 가치를 지닌 맛집 리스트가 있다는 거? 흐흐흐. 여긴 그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야. 너도 한번 먹어보면 매일 오고 싶을걸?”

뭔데 그러나 싶어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우릴 반갑게 맞아주셨다.

진짜 단골인지 준영이 형은 할머니와 잠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더니 주문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할머니께서 쟁반에 받혀서 가지고 나온 건 김치말이국수였다.

형이 장담한 것만큼이나 맛있었다.

깔끔한 백김치 국물에 적당히 삶아 쫄깃한 면발은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덕분에 그릇에서 넘칠 듯 찰랑거리던 면들이 순식간에 내 위장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거봐, 형이 뭐랬어?”

“진짜 맛있네요.”

“크크큭. 형의 말은 뭐?”

“진리죠.”

“그래, 그래. 아직 잊지 않았구나.”

준영이 형은 녹슬지 않은 입담을 자랑하며 한참 떠들다가 근방의 한 카페로 자리를 옮기고서야 본격적인 얘기를 꺼내 들었다.

“진짜 몸은 괜찮은 거지?”

“저 운동 시작했어요. 봐요. 이대로 한 달만 더 지나면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도 될 거 같죠?”

“컨셉 괜찮네. 나중에 그 주제로 한번 내 방송에 나와라. 그럼 팬들 다 자지러지겠다.”

한참 킬킬거리다가 형이 물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도 된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맞아?”

“아저씨랑 통화하셨다면서요? 그럼 아실 거 아니에요? 회사에서 어찌나 매섭게 감시하는지 저 지금 좀이 쑤셔서 미칠 지경이라니까요.”

“흐흐흐. 그래서 형이 온 거잖냐?”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 채 준영이 형이 불쑥 말했다.

“너 나랑 방송 하나 하자.”

“방송이요?”

뜻밖의 제안에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있자, 준영이 형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채로 한동안 이어진 설명.

한참을 듣던 나는 대충 알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얘기했다.

“근데, 저 어쩌면 미국 가게 될지도 모르고······.”

“미국?”

“콜린이 하도 오라고 성화라서요.”

“아, 너 레이크헬이랑 친하지.”

“예. 그동안 바빠서 간다 간다 하고 아직 못 갔는데······.”

말이 채 끝나도 전에 치고 들어온다.

“자식이. 그 몸으로 가긴 어딜 가?”

“뭐, 간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저씨 말씀대로라면 얼마간 쉬고 오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 진짜! 혁수 형 안 되겠네. 얀마! 넌 아직도 너 자신을 모르냐? 행여나 네가 거기 가서 놀고만 오겠다. 아마 미친 듯이 곡 쓰고, 기회만 있으면 또 무대 위로 기어 올라가겠지. 됐고. 그 문제는 내가 혁수 형이랑 얘기할 테니까, 딱 결정해. 방송 할래 말래?”

평소답지 않게 제법 강경하게 나오는 준영이 형이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류.

어차피 내년 초나 돼야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게 될 거란 얘기에 일단은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송 감독님이 찍는다는 영화 OST 작업을 빼곤 전부 보류 상태인 거네.

콘서트도 보류.

미국행도 보류.

방송출연도 보류.

재충전이네 뭐네 말들이 많은 상태고, 다들 나를 걱정해주느라 노심초사하는 모습인지라 나 역시도 그냥 이참에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그렇긴 해도 세상엔 보류해선 안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집안의 경조사 같은.

“다다음 주 토요일이요?”

어머니의 얘기에 손가락을 꼽아보니,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참네. 이래서 자식 아니 손자는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있나 보다.

외할아버지 팔순잔치가 열흘 뒤란다.

그런데 난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내 탓만도 아니지.

생신을 음력으로 하시는 터라, 매년 정확한 날짜는 모르고 12월 초순이라고만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날 가서 축가를 부르긴 해야 할 듯하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처음 가수를 하겠다고 할 때는 그렇게 반대를 하시더니, 이젠 직접 전화해서 노래 좀 하라고 하신다.

그 이유를 모를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외할아버지시다.

나랑 똑 닮은.

아니 내가 외할아버지를 닮은 거겠지.

어쨌든, 그런 외할아버지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자랑하고 싶으신 거겠지.

내 자식이 이 정도라고.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어깨에 힘 빡 주고 다니실 게 뻔하다.

내가 전교 1등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 전화 걸어서 자랑하시던 분이신데 오죽하실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는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당연히 해야죠. 원래 그런 날은 손자들이 재롱떠는 날이잖아요?”

참는다고 참았는데도 웃음기가 섞여든 목소리. 내 얘기를 들은 어머닌 날 빤히 쳐다보시다가 부르신다.

“아들.”

“······?”

“아들은 안 섭섭해?”

“뭐가요?”

“외할아버지께서 너 노래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신 거?”

난 또 뭐라고.

어머니 손을 살며시 잡아 드렸다.

그러곤 말씀드렸다.

“저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사촌들 몰래 따로 불러서 용돈 챙겨주신 거 모르시죠?”

“그, 그랬니?”

“가끔 이 실장님 보내서 납치당한 적도 많아요. 그때마다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도 맛보았고요.”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을 되짚다 보니 한둘이 아니다.

외할아버지와의 추억들이.

“갖고 싶은 거 있다고 말씀드리면, 다음날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해주신 분이세요. 뭐, 입만 여시면 절 업어 키우셨다고 생색을 좀 심하게 내시긴 하지만······.”

손가락으로 코밑을 훑으며 말씀드렸다.

어째 괜스레 쑥스럽네.

“저번에 뵈니까, 많이 늙으셨더라고요.”

어머닌 모르시겠지만, 노래방에 갇혀 있을 때 부모님 다음으로 많이 생각난 게 외할아버지셨다.

그런데 겨우 그 정도로?

얼마나 기대가 컸으면 반대하셨을까?

그 정도도 이해 못 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업어 드려도 모자랄 판이네요. 그런데 서운하긴요.”

말이 채 끝나가도 전에 어머니께서 날 와락 껴안으셨다.

그러곤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신다.

“내 새끼······. 엄마가 고마워. 진짜···고맙다.”

***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며 체력을 다지고, 낮에는 회사에 들러 송 감독님이 보내온 시나리오를 보면서 작곡에 몰두했다.

그러는 동안, 미국에서는 몇 차롄가 전화가 와서 몇 번이나 날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탓에 확실한 답을 주긴 어려웠다.

방송 출연 문제 역시 마찬가지.

일부러 날 신경 써서 제안해준 준영이 형한텐 미안하지만,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2월 8일.

외할아버지의 팔순 잔칫날이 되었다.

“와! 여긴 뭔데 이렇게 화려해?”

형이 사방을 둘러보며 연방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곤 그걸 곧바로 어디론가 보내곤, 잠시 후 띠롱거리는 핸드폰을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대체 우리 형님께서 왜 저러는 걸까?

요새 들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질 날이 없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의아해 하다가 이내 잡생각을 떨치곤 가족들과 함께 식장으로 들어서려던 순간이었다.

흠칫.

뭐지? 이 분위기는?

입구에 서서 바라본 홀 안은 묘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좌측 창가 쪽엔 큰 외삼촌 내외 그리고 나와 동갑내기 사촌인 최석진을 중심으로 그룹 내에서 외삼촌을 따르는 임직원들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같이 낯빛이 어둡다. 꼭 가시방석에라도 앉아 있는 듯 불편한 얼굴들이라고나 할까.

반면 그 옆에는 작은 외삼촌 부부와 사촌들 그리고 외삼촌과 가까운 임직원들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웃고 떠들고 있다.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다.

그다음엔 정장을 쫙 빼입은 중년 남자들이 드글드글하다.

하나같이 관록이 묻어나는 그들이 누군지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몇 차롄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법조계 인사들. 즉 아버지께서 검사 시절 인연을 맺었던 판검사들과 변호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술잔을 채우고 비우길 반복하며 알싸하게 취한 모습들이었다.

그래, 여기까진 나쁘지 않다.

문제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중심으로 양측에 서 있는 여자들.

대여섯 명의 여자들이 딱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옷차림과 행동거지로 두 분께 애교 섞인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또 우측에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가족단위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

헉! 저분은 K 그룹의 김호 회장님?

그러고 보니 다른 분들도 낯이 익다.

다들 대한민국에서 한가락 하는 그룹의 총수들 아닌가.

H 해운부터 J 철강, M 건설······L 그룹까지.

대체 뭐냐고?

이 묘한 분위기는······.

특히 외할아버지 옆에서 갖은 아양을 다 떨고 있는 여자들. 그녀들이 웃는 얼굴로 서로를 의식하며 가끔 눈에서 불꽃을 튀기고 있는 모습이란······.

본능적으로 여기선 튀면 안 된다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김도준!”

움찔!

마, 망할 자식!

날 외쳐 부르는 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구석준이다.

녀석이 대놓고 외쳐준 덕분에 홀 안에 있던 시선이 일제히 날 향해 쏟아졌다.

그 눈빛들이 꼭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들의 그것과 같았다.

동시에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아! 어쩔 거냐고, 이 분위기!

눈치가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구석준은 해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아니, 그러려던 찰나였다.

“도준아.”

멈칫.

뒤에서 들려온 음성.

그 소리에 이끌려 돌아보니, 희주가 다소곳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

배시시 웃는 그녀.

근데, 얘가 여길 왜 왔지?

“너 여긴 어떻게······.”

그때였다.

저벅저벅.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그녀의 뒤쪽에서 노년의 신사가 다가왔다.

그러곤 내 앞에 서더니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다가 입매에 호선을 그렸다.

“보는 건 처음이겠군. 나, 희주 할애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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