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 가긴 어딜 가?(2)
‘즐거우냐?’
입 모양뿐인데도 이상할 만치 선명하게 박혀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번뜩하며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젠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잊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까마득히 오래된 일들이.
천 년 노래방.
고등학교 진학 후 첫 시험날, 하굣길에 허름한 건물 지하로 내려갔던 것도.
내가 들어섰을 때, 졸고 있던 노인의 모습도.
내 부름에 화들짝 놀라 코인을 바꿔주던 노인도.
한 시간여 동안 노래를 부르고 나온 뒤, 나가는 문이 사라져 당혹, 아니 절망에 빠져들었던 것도.
그 후로 오랫동안 노래방에 갇힌 채 그곳을 빠져나오기 위해 발악했던 나날들도.
모든 게 떠올랐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듯 느껴졌다.
그런 상태로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어째서 나였을까?
왜 내게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거지?
저 노인···은 무슨 까닭으로 나를!
그동안 수없이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질 않아서 미뤄둘 수밖에 없었던 의문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입술을 한차례 잘근 씹었다.
그때였다.
노인이 고개를 내젓는 게 보였다.
무슨 의미지?
안 그래도 물을 것이 산더미처럼 많은 나였다.
한데, 고개를 내젓고 있는 노인을 보고 있자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홀린 듯 무대 앞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흠칫.
노인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돌아선 것도 그때였다.
아, 안돼!
기다려!
다급해진 마음에 손까지 뻗으며 내달렸다.
그리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무대 아래쪽으로 뛰어내리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날 붙잡는 게 느껴졌다.
“이거 놔!”
소리를 내질렀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젠장!
오히려 관객들은 내가 공연의 열기에 취해 그러는 줄 알고 꺅꺅거리며 난리법석이었지만, 나로선 미칠 노릇이었다.
이대로 노인을 보내고 나면, 언제 또 만날지 기약할 수가 없었으니까.
내 어깨와 허리를 붙잡고 있는 손들을 뿌리치느라 안간힘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노인이 있는 곳을 노려보······. 사, 사라졌다?
이미 그곳에서 노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질 않았다.
순간, 몸에서 힘이 빠지며 다리가 풀리는 느낌.
스르륵.
시야가 흐릿해진다.
“···도···준···아!”
어디선가 날 부르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고, 급격히 기울어지는 시야 속에서도 나는 노인을 찾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팟 하고 불이 꺼지듯 의식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들었다.
***
도준이 무대 위에 서서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보는 강혁수의 얼굴 위로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대견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그가 팔짱을 끼고 도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을 때였다.
“아직도 불안하세요?”
언제 왔는지 조마루가 옆에 서 있었다.
강혁수는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마루가 도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대단하죠?”
여전히 대답이 없자, 조마루 역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두 사람 사이에 침묵만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도준은 마지막 노래까지 모두 마치고 막 무대에서 벗어나려는 중이었다.
그때, 조마루가 불쑥 물었다.
“혁진이 생각하세요?”
“······.”
“도준이가 혁진이를 많이 닮긴 했죠.”
그녀의 얼굴에 스쳐 가던 씁쓸한 표정이 사라지고, 두 눈이 빛났다.
“그래도 걱정하진 마세요. 도준인 혁진이가 아니잖아요.”
뒤늦게 강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더 이상의 얘기는 사족일 뿐이었다.
조마루는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한데······.
“······?”
도준의 행동이 이상했다.
무대를 내려올 것처럼 걸음을 옮기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광장 쪽으로 시선을 던지던 도준.
그러곤 흠칫 몸을 떨면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막상 팬들을 떠나려니 감상적이 되어서 그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도준의 행동은······.
느닷없이 몸을 돌려 무대 끝으로 걸어가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무대 아래쪽으로 두 팔을 뻗으며 그대로 뛰어내릴 듯이 움직였다.
당연히 그걸 보고만 있을 세션들이 아니었다.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가 사태를 파악하곤 도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광장의 팬들은 도준이 팬서비스 차원에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고.
공연에 흠뻑 취한 가수들이 무대 아래로 뛰어내리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조마루가 보기에 지금 상황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니, 다른 건 둘째치고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도준의 성격상 절대로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건 강혁수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이 무대 쪽을 향해 다급히 달려가는 순간이었다.
세션들에게 붙들려 발버둥치던 도준이 비틀거린다 싶더니 그대로 축 늘어지는 게 보였다.
“도준아!”
조마루의 외침이 팬들의 함성 속에서 울려 퍼졌다.
***
깨어났을 때, 폭풍 같은 시간들은 이미 지나간 뒤였다.
남겨진 것은 각종 기사들.
내가 정신을 잃은 뒤 쏟아져 나온 기사들은 자극적이었다.
전부 다 읽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요약하자면 열정적인 공연 끝에 내가 탈진했다······정도가 될 거다.
덕분에 또 한 번 유명세를 탔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 세계 언론들이 다시 한 번 이번 천안문 광장 공연을 재조명해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혼절해버린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고, 공연 도중 팬들도 여러 명 쓰러져 실려갔던지라 신바람이 난 건 기자들이었다.
팬들도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공연을 끝낸 가수도 쓰러지고······.
뭐, 이보다 더 자극적일 순 없겠지.
당연히 호사가들이 그 가벼운 입들을 가만둘 리 없었다.
그렇게 며칠째 인터넷과 TV에서 내 얘기로 떠들썩한 가운데, 조용히 귀국했다.
아, 조용히 라고 말하긴 좀 그런가?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떠날 때도,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헤아릴 수조차 없는 팬들이 운집했으니까.
기자들도 모여들긴 했지만, 간단한 인터뷰만 해주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곤 벗어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나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내 이름이 내려오고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기사들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아들, 밥 먹어야지?”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뒤론 한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 상태가 불안하다고 느꼈는지, 아저씨께서 휴가랄까, 잠시 쉬도록 권했던 것이다.
물론 그전에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은 건 말할 것도 없었고. 뭐, 예상대로 아무런 이상도 없었지만.
“지금 나가요.”
문밖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서둘러 책상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방금까지 손에 쥔 채 만지작거리던 것들을 바라보았다.
네 개의 코인.
하프 그림이 새겨진 은색 동전들을 응시하다가 이내 방을 빠져나왔다.
***
11월도 며칠 남지 않아서인지, 기온이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3층까지 오르는 그 짧은 사이에 체온이 떨어졌는지 몸이 다 떨린다.
옷깃을 여미며 문을 열었다.
딸랑.
오랜만에 회사에 와서 그런진 몰라도 문을 열 때 들려오는 종소리가 반갑기까지 하다.
“어머, 도준아!”
반갑게 날 맞아주는 마루 누나. 고 팀장님도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때, 대표실 문이 열리며 아저씨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왔냐?”
“오늘 진짜 춥네요.”
“겨울이니까.”
“아직 가을 아닌가요?”
“강원도에선 엊그제 눈 왔다더라.”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돌아서는 아저씨를 따라 대표실로 들어갔다.
그러곤 소파에 앉아 있자, 뒤이어 마루 누나가 차를 내온다.
“추울 땐 역시 모과차지.”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말을 삼키며 웃어주었다.
“서비스 좋은데요?”
“오랜만에 보는 거잖니.”
“가끔 와야겠네요.”
누나가 못 말린다는 듯 내 어깨를 툭 치고 나간 뒤, 모과차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아저씨께서 물어오셨다.
“몸은 어때?”
“에이, 뭐에요? 저 팔팔한 십대라고요. 아직 주민등록증도 안 받은.”
농담을 던져보지만, 아저씬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웃고만 계실 뿐이다.
저 웃음 뒤에 걱정스러움을 숨긴 채로.
아마, 아니 틀림없이 그날······. 천안문 광장 공연에서 내가 쓰러진 걸 신경 쓰고 계신 거겠지.
하긴, 내가 아저씨라도 걱정되긴 하겠지.
솔직히 말하면 나로서도 이해가 안 가긴 마찬가지니까.
정말 탈진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콘서트 일정은 아직 안 잡았죠?”
“일단은.”
이 역시도 내 몸 상태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생각이시겠지.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말씀이 없으시다.
아무래도 불안하신 모양인데.
“이제 괜찮다니까요. 병원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다고 했고. 팬들한테 한 약속도 있는데, 계속 미룰 수는 없죠.”
“좀 더 쉬는 게 낫지 않겠냐?”
“그러다 회사 망해요.”
아저씨께선 픽 하고 웃어 보였다.
그러곤 말없이 조용히 일어나 책상으로 가시더니, 서류첩 하나를 들고 오셨다.
“뭐에요?”
아저씨가 내미시는 서류첩을 받으며 물었다.
눈짓으로 열어보라고 하시기에 펼쳐보곤······.
뭐, 뭐야!
대체 0이 몇 개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미쳤네!
127억?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나 번 거야?
노래 몇 곡 출시하고, 광고 두 개 찍고, 공연 몇 번 한 게 다인데?
남들이 평생, 아니 몇 번을 다시 태어나서 일해도 못 벌 돈을 겨우 몇 달 만에 벌었다고?
황당한 심정에 정산서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서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런다고 서류에 찍혀 있는 액수가 변할 리는 없었다.
내 이름 바로 옆에 떡하니 적혀 있는 숫자들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을 때,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우선 정산된 것만 그런 거고, 다음 달엔 더 들어갈 거다. 전화로 말했다시피 엊그제 중국에서 음원 출시도 했으니까, 그 돈도 만만치 않을 거야. 아, 입금은 세금 공제한 뒤에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데 다시금 아저씨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벌기만 하면 뭐 하냐? 놀러도 좀 가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좀 사고······.”
“에이, 그렇다고 계속 놀고먹을 수만도 없잖아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말했지만,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다.
“도준아.”
“······.”
“팬들이 신경 쓰이나 본데······. 그 문제는 차차 생각해보마.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아저씬 당부하셨다.
“그러니까, 우선 몸부터 추슬러.”
잠시 가만히 있다가 알겠다고 하고 대표실을 나왔다.
그런 나를 마루 누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해주었다.
“중국 공연······.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다고 생각하시는 거야.”
마루 누나까지 이렇게 나오니까, 할 말이 없다.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진짜로 내 몸 상태가 아저씨 얘기처럼 좋지 않은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했다.
그날······.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광장에서 쓰러진 건 변함없는 사실이란 거지.
체력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중국 5대 도시 투어에 이어 천안문 광장 공연까지. 비행기를 타고 움직였다곤 해도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의 일정이 강행군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공연 중에 쓰러지다니.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눈을 뜨면 곧바로 나가 2킬로미터 정도 조깅을 했고, 저녁에는 헬스클럽에서 피지컬 트레이닝을 했다.
나머지 시간?
아저씨의 권유대로 여행을 간다든가 쇼핑하러 다닌 건 아니다.
그냥 연습실에 틀어박혔다.
이유는 단순했다.
천 년 노래방의 노인이 아무런 이유 없이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특히 마지막 순간, 고개를 내젓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더 답답한 건 몇 번이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해보아도 그 의도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그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러느니, 차라리 뭔가에 열중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 손에 잡은 건 악기들.
미친 듯이 악기를 연주했고, 그러자 이내 악상이 떠올랐다.
덕분에 작곡을 끝낸 오선지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연습실 문이 열렸다.
한창 작곡에 몰두하고 있던 나였지만, 요즘 들어 예민해진 탓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시선을 돌려보니, 아저씨다.
팔짱을 끼고 문가에 기대 선 채로 날 가만히 쳐다보고 계셨다.
그 얼굴이 금방이라도 혀를 찰 듯 느껴졌다.
눈으로는 ‘지금 그게 쉬는 거냐?’라고 묻고 있는 듯 보였고.
멋쩍어져서 웃고 말았다.
아저씬 고개를 한차례 내젓더니 불쑥 말했다.
“몸이 쑤셔 죽겠냐?”
“어떨 거 같은데요?”
픽 하고 웃으시더니 툭 하고 내뱉으셨다.
“두 가지 소식.”
“어느 쪽이 나쁜 쪽인데요?”
“이럴 땐 둘 중 어느 게 더 좋은 거냐고 물어야지.”
“어느 쪽이 더 좋은데요?”
헛웃음을 한차례 흘리시던 아저씨께선 물으셨다.
“송 감독님 알지?”
“저 금붕어 아닌데요?”
내 인생 첫 번째 뮤직 비디오를 찍어준 사람을 어떻게 잊을까.
그런데 왜 송준익 감독 얘기를 하시는 거지?
관심을 보이자,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이번에 영화를 찍는다더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OST?”
예상이 맞았는지 아저씨께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시간 차를 두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할래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저씬 곧바로 다음 얘기를 꺼내셨다.
“브라이언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미국에 오라네?”
“미국이요?”
갑자기 웬 미국?
아니, 갑자기는 아닌가?
그동안 시도때도없이 전화해서 오라고 들들 볶은 두 사람. 브라이언과 콜린을 떠올리며 다시 물었다.
“설마 거기서 공연하라는 건 아니겠죠?”
한동안 무리하지 말고 쉬라던 건 아저씨셨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이 뭘까 싶어서 물었던 건데······.
아니나다를까.
아저씨께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신다.
“공연은 무슨.”
“······.”
“내 생각에는 가서 좀 쉬고 오는 것도 나쁘진 않······.”
그때였다.
부르르르르.
핸드폰이 울린 것은.
확인해보니 외할아버지다.
아저씨께서도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봤는지, 눈짓으로 얼른 받아보라고 하신다.
“예. 할아버지.”
- 몸은 좀 어떠냐?
“이젠 괜찮아요.”
원래부터도 그리 나쁜 건 아니었지만, 왠지 할아버지한테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었던 걸까?
꼭 아팠던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외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찡해졌을 때였다.
- 그럼 와서 노래나 한 곡해라.
“예?”
조금 황당해져서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곧바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 에잉. 손자라고 하나 있는 게, 지 할애비 생일도 모르고···. 그럼, 오는 걸로 알고 끊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