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71화 (71/260)

# 71

#71. 가긴 어딜 가?(1)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

11월 초순이라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달궈진 몸은 식을 줄을 모른다.

위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조명 때문이 아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호응하는 저 엄청난 환호성.

전주가 들려오기 무섭게 무슨 곡인지 알아채곤 곧바로 따라부르는 수많은 관중.

그 와중에도 촛불을 쳐들고 내 이름을 외쳐대는 팬들.

광장이 새까맣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람의 파도.

중국 정부에서도 작정한 듯 주위의 시가지에서 도로를 통제해주고 있었고, 광장을 밝히기 위해 동원된 라이트 차량만 몇 대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밤이라서 그런지 어둡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백만, 아니 얼마인지 추산조차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들고 있는 촛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런 건 누구도 개의치 않고 있었다.

말달리듯 미친 듯이 쳐대는 드럼 소리에 사람들은 광분해서 날뛰고 있었고.

흘러나오는 키보드 소리에 그들은 몸을 맡기고 쉴 새 없이 흔들어대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베이스 소리엔 나조차도 심장이 따라 뛰며 터질 것만 같은데,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기타?

말할 필요도 없다.

세션에게서 건네받는 순간, 관객들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듯했다.

원곡에도 없는, 편곡했다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그야말로 삘받아 달리는 기타 소리에 모두는 광분해서 날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열기는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그대로 에너지로 화했다.

미쳤다.

말 그대로 미쳐서 연주했고, 미쳐서 노래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광장을 가득 채운 저 많은 이들과 하나가 되었다고 말해도 될 터였다.

그렇게 뜨겁다 못해서 천안문을 녹여버릴 듯 한껏 달궈진 콘서트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샤오린이 등장했다.

엄청난 환호성에 그녀는 놀란 듯, 안 그래도 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더없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곤 손을 흔들며 무대 정중앙으로 와선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샤오린이에요!”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객들.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어 그들에게 화답한 그녀는 이내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 중국어로 번역한 가사를 외우고 있던 그녀가 광고에서 나온 소연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쑥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을 노래해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나?

그냥 나무토막같이 선 채 노래를 받아주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다음부턴 절대로 레퍼토리에 이 곡을 넣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노래의 전반부가 끝나고 간주가 이어지는 찰나였다.

그녀가 언제 준비했는지, 품에서 캔 커피 하나를 꺼내 수줍게 건네왔다.

순간, 광장이 웃음바다로 변해버렸다.

이미 다들 나와 소연이 나온 광고를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장난이었다.

덕분에 천안문 광장에 한바탕 웃음꽃이 핀 후, 콘서트는 계속되었다.

***

중국 관영 방송국으로부터 김도준의 천안문 광장 콘서트에 대한 방영권을 따낸 곳은 지상파가 아니었다.

JTBS.

어떤 경로로 알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JTBS의 사장인 김종수가 중국 정부가 이 소식을 발표하기 전부터 직접 지시를 내려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이었다.

아무튼, 그 때문에 수요일 저녁 6시.

7시로 예정되어 있는 콘서트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JTBS에서는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해 김도준의 중국 5대 투어에 대한 자료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콘서트 시작 30분 전부터는 줄기차게 현장에 나가 있는 통신원을 연결해 광장 상황을 보도하면서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천안문 광장에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 있는 상황입니다. 믿기 어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광장을 벗어난 사람들이 시가지 쪽까지 엄청나게 몰려 있는 모습입니다.

중국 정부에 허락을 받아 헬기를 탄 채 소식을 전하고 있는 통신원의 말처럼, 카메라가 비춘 광경은 시청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비스킷 한 조각을 두고 바글바글 몰려든 개미떼를 연상시키는 광경.

여의도 공원의 두 배에 달하는 광장임에도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 아! 정말 엄청나지 않습니까? 지금 말씀드리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 저들이 손에 붉은 초를 들고 김도준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진짜 감동스럽습니다. 대체 그의 노래엔 어떤 힘이 있기에 저토록 많은 이들을 움직이는 걸까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지금 눈에 보이는 저 광경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신원은 진심으로 감격했는지,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목청을 한껏 높인 채 외쳐대고 있었다.

그 감정이 TV를 통해 안방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중이었다.

시청률?

이미 33%를 넘어 40%대를 향해 진격 중이었다.

지상파도 아니고 기껏해야 케이블 방송국, 그것도 뒤늦게 방송사업에 뛰어든 종편임을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오늘을 기점으로 이만한 시청률은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될 정도였다.

그렇게 콘서트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JTBS는 콘서트 시작과 동시에 중국 관영방송이 촬영한 방송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아 내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 10분도 넘는 광고를 내보냄으로써 어마어마한 광고수익을 올렸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

콘서트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인터넷 언론들이 일제히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 천안문 광장에 모여든 엄청난 인파.]

[중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

[김도준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중만 15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

도준의 팬은 물론이고, 네티즌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하면서 각종 커뮤니티가 와글와글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사들이 전하는 소식은 계속해서 갱신 중이었다.

[천안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수가 200만 명은 가볍게 넘길 것으로······.]

[······인근의 시가지,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

[중국 팬클럽 회장의 주도하에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김도준의 팬들.]

콘서트가 아직 한창인 시각.

잠정적으로 추정되는 관객들의 숫자는 무려 200만 명. 아니 그 이상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면적당 인원수를 계산해 추산한 것이기에 정확할 수는 없겠지만, 광장을 가득 메우고도 시가지까지 뻗어 나간 인파를 보고 있으면 거의 틀리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했다.

그런데도 모여든 사람들은 질서를 지키고 있었다.

김도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울고 웃으며, 그가 연주를 할 때면 흥분하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절대로 거칠게 날뛰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김도준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뿐, 사람은 물론이고 인근 가게나 시설물에 피해를 주는 행위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만끽할 따름이었다.

그 모습은 서방 언론들의 시각에서도 놀라웠는지, 콘서트가 진행 중인 천안문 광장의 모습을 찍은 특파원들의 사진이 속속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장의 사진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듯 보이는 사진.

이른바 항공사진이라고 하는 그 사진에는 천안문 광장을 중심으로 넓게 퍼진 채 점점이 밝히고 있는 무수한 붉은 빛의 향연이 찍혀 있었다.

한데 그 범위가 무려 광장의 다섯 배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 말은 곧 그만큼의 인파가 모여들었다는 얘기.

한마디로 이번 콘서트에 모여든 이들의 숫자가 300만 명을 넘어섰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두고 각국의 네티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 미쳤네! 무슨 콘서트장에 모인 사람들이······.

- 진정 갓준이십니다. ㅇㅈ

- 슬슬 신계로 오르실 준비를 하심이.

- 뭔 개소리임? 이미 갓도준이심.

- ㅋㅋㅋ 주니빠 납셨네.

- 그래도 300만 명은 너무 했다.

- 단일 콘서트로는 역대 최고 아님?

- 거의 우드스톡 수준.

- 아! 저 기저귀 갈아입고 올게요.

농담처럼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김도준의 이번 공연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그건 그동안 그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들까지도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뉴스와 언론들은 칭찬 일색이었다.

***

대한민국은 현재 김도준으로 인해 떠들썩한 상황. 공연 시작도 전에 JTBS로 채널을 고정하고 있는 수많은 시청자들만 보아도 충분히 알만한 일이었다.

최 회장 역시 마찬가지.

회장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중이었다.

옆에는 큰아들인 최주호 전략기획실장이 앉아 있었다.

한 시간가량 동안 중국 5대 도시 투어에 관한 방송을 보다가 마침내 7시가 다 되어 콘서트가 시작되자, 최 회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 모습을 본 최주호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원래도 김도준을 못마땅해 하던 그였지만, 근래 들어 커피 광고 건과 관련되어 그가 물을 먹은 탓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아니 상황을 파악하는 판단력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는 꼴이 될 터였다.

또한 동생이자 강력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최주식이 한 수 위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랄 수 있었다.

지금 최주식은 중국에 있는 중. 김도준이 중국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걸 놓치지 않고, 그걸 기회 삼아 발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최주호로선 지금의 이 상황이 전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도준이 탓이란 생각이 들 정도.

그래서 그런가.

콘서트가 시작되고 얼마 후, 그의 입에서 곱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쯧쯧. 멍청하긴. 저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다니······.”

무대 위도 그렇고, 광장 어디에도 D그룹의 광고 하나 보이지 않는 걸 두고 하는 얘기였다.

이를 들은 최 회장이 툭 하고 내뱉었다.

“멍청하다?”

아들은 보지도 않은 채로 최 회장이 묻고 있었다.

“아, 그렇지 않습니까? 저라면 저기다가 아예 광고로 도배를 해버렸을 겁니다.”

최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흠칫.

눈치가 빠른 최주호가 자신이 뭘 또 잘못 말했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S 그룹은 멍청이들만 있어서 사진 한 장 안 걸었겠느냐?”

그러고 보니 어디에도 S 그룹의 로고는커녕 N9 사진 하나 보이질 않는다.

최주호는 그제야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중국 정부에서 제약을 걸은 걸 테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기획된 이벤트에 어떠한 이권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일 터였다.

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괜스레 나서서 아버지로부터 점수만 깎인 셈.

그렇게 그가 인상을 쓰고 있을 때였다.

최 회장의 눈이 반짝였다.

자사의 커피 광고에 쓰인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점. 1절이 끝나고 간주가 흐를 때, 샤오린이 도준에게 캔 커피를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작게 비친다고 하더라도 저게 뭔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D그룹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신제품.

아니나 다를까.

화면이 확대되는 순간, 도준이 캔 커피를 따고는 보는 이가 다 시원하게 마시고 있었다.

‘마이카페’라는 상품명이 고스란히 화면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최 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싶더니 얼굴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웃음소리가 회장실 안에 가득 찼다.

그러다가 TV에서 다시금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웃음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최 회장이 중얼거렸다.

“으흐흐. 기특한 녀석. 그렇지. 그래야 내 손자지.”

화면 한가득 잡힌 도준의 얼굴. 자신의 손자가 그렇게나 예뻐 보일 수가 없는 최 회장이었다.

반면 최주호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이었다.

***

콘서트가 모두 끝나고 난 뒤, 거의 그로기상태가 되어 퍼져 있을 때였다.

앵콜! 앵콜! 앵콜!

계속해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외침에 나는 그만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말았다.

레퍼토리를 모두 소진한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세션들과 상의해 U3의 곡 중 하나인 ‘ONLY ONE’과 건스앤릴리스의 ‘리멤버투데이’를 비롯해 몇 곡이나 불렀는지 모른다.

그랬는데도 아직까지 해산하지 않고 있는 팬들이었다.

“어쩌죠?”

샤오린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묻고 있었다.

마루 누나도 심히 걱정스럽다는 듯 날 쳐다보고 있다.

그녀들을 한차례 쳐다보곤 기운 빠진 음성으로 말했다.

“아, 몰라요. 이젠 진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아요.”

사실이었다.

하얗게 불태웠달까.

재가 되어 흩날리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열정적인 공연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현재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김도준!

김도준!

김도준!

끊임없이 내 이름을 외치며 떠날 줄 모르는 사람들.

짜증이 나는 건 아니지만, 대책 없는 이들에 대한 황당함에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요.”

나는 샤오린을 향해 전부터 궁금해하던 걸 물었다.

“중국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예? 그게 무슨 얘기이신지?”

“그러니까요. 뭐 하나에 꽂히면 저러냐고요. 지난번에도 얼마나 식겁했는지······.”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절로 진저리가 쳐진다.

그때 어찌나 가슴을 졸였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부정맥이 올 것만 같을 정도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던 샤오린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싱긋이 웃어 보였다.

“당연히······. 아니죠.”

그녀는 뭘 또 그렇게 뻔한 걸 묻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열정적이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음, 저렇게 얘기하니까 할 말이 없다.

대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곤 비칠거리며 문 쪽으로 걸어가자, 뒤에서 마루 누나가 물어왔다.

“어디가?”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아니, 말해두었다.

“119나 불러둬요.”

***

내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오자, 어마어마한 함성이 무대를 뒤덮었다.

그중에는 비명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도 간간이 섞여 있었고.

무대 바로 앞에서 울다가 쓰러지는 여자들을 보면서 식겁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미리 대기시켜놓은 행사요원들과 의료진들에 의해 빠르게 조치 되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한바탕 소란이 일고, 함성이 서서히 가라앉자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투덜거렸다.

“저, 집에 좀 가자고요.”

중국어로 반쯤 진담을 담아 하소연하자, 광장이 웃음으로 물들었다.

미치겠네.

나도 팬들과 이러고 있는 게 즐겁지 않은 건 아니지만, 뭐든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미 체내에 있는 에너지란 에너지를 모두 긁어 소모해버린 나로서는 정말 한계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그래서 말했다.

“저 이러다가 진짜 목 나가요.

또다시 웃음소리.

“그러니까 앞으로도 제 노래 계속 듣고 싶으면, 약속해 주세요.”

제각각 대답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말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알겠다는 얘기였다.

고개를 한차례 끄덕여 보인 뒤 말했다.

“딱 한 곡만 더 부를게요. 그러니, 이걸로 쯔모합시다! 오케이?”

또다시 웃음바다로 변해버리는 광장.

쯔모란 마작에서 완성패를 만들기 직전 딱 1장 모자란 상태, 즉 텐파이일 때 대기패를 가져오는 걸 말한다.

한마디로 모자란 한 장을 채워넣으면 쯔모! 라고 외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마작을 빼놓곤 설명이 안 되는 중국인인지라 내가 한 농담을 알아듣고 저렇게들 좋아하는 것이다.

“자, 그럼 갑니다.”

나는 올라오면서 세션들에게 말한 노래를 시작했다.

“I have often told you things About the way.”

딥바이올렛의 ‘솔져 오브 포춘’.

노래방 안에서 100점을 받았던 노래.

그곳에서 날 꺼내주어 지금의 날 여기 있게끔 만들어준 노래였다.

그래서 그런가.

그때보다도 더 감정이 이입되었다.

솔직히 지금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쳐 있음에도, 음정 하나 박자 한 군데 틀리지 않고 흘러나왔다.

뿐만 아니라 이상할 만치 듣기 좋았다.

- I have often told you things About the way.

I lived the life of a drifter Waiting for the day.

When I'd take your arm And sing you songs.

maybe you would say.

Come lay by me love me.

And I would surely stay.

너에게 자주 이야기 해 줬었지

어떤 날을 기다리며 방랑자의 삶을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

그날이 오면 난 너의 손을 잡고서 너에게 노래 불러줄 거야.

그러면 넌 아마 이렇게 이야기하겠지.

여기 와서 내 곁에 누워 사랑을 나눠요.

그럼 난 확실히 당신 곁에 머물 거예요.

마음이 전해진 걸까?

방금까지 흥분해서 날뛰던 관객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제 광장 안은 고요하기까지 하다.

다들 내가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

누구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안타깝다는 심정으로 날 보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애잔한 미소를 짓는 중이었다.

그런 채로 다들 몸을 흔들며 촛불을 높이 쳐들었다.

수백만 개의 촛불이 일렁이며 어둠 속에서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과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노래했다.

당시의 내 심정을, 아니 그곳을 벗어난 지금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I guess I'll always be A soldier of fortune.”

마침내 마지막 소절을 반복하는 사이,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

나도, 그들도 말없이 가만히 선 채 짙은 여운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광장이 환호로 뒤덮이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모든 걸 불태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걸 깡그리 불살랐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나도 알았다.

더 이상의 앵콜은 없었다.

그렇게 무대를 내려가기 전 한차례 관객들, 아니 팬들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

무대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인파에 파묻힌 채 보란 듯이 날 바라보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어!”

거대한 망치가 뒷머리를 강타하는 듯한 느낌.

그 노인이다.

천 년 노래방.

만원을 더 바꾸지 그러냐고 넌지시 권하며 코인을 바꿔주던······.

그 순간, 노인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즐거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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