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70화 (70/260)

# 70

#70. 나만의 길(3)

베이징에서부터 시작한 중국 5대 도시 투어는 순조로웠다.

톈진, 상하이, 광저우까지.

매번 헤아릴 수도 없는 팬들이 모여들었다.

“외부 스피커 설치 어떻게 됐어?”

“지금 막 끝났습니다.”

“스크린은?”

“네 대 모두 일찌감치 와서 대기 중입니다!”

스텝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리허설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호호호. 그 얘기만 벌써 몇 번째 듣는지 모르겠네요.”

샤오린은 매번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몇 번이 아니라 몇십 번을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고마운 일이었다.

베이징 때의 일을 교훈 삼아 톈진에서부턴 공연장 외부에도 스피커를 다량으로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스크린 차량까지 동원하는 중이었다.

모두 샤오린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제 마지막으로 충칭에서의 콘서트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충칭 올림픽 체육관.

5만 8천여 명이 모여든 공연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지만, 그럼에도 표를 구하지 못해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보다 더 많았다.

이런 현상은 톈진을 비롯한 다른 도시에서도 똑같이 빚어졌었기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스피커와 스크린까지 준비해 공연장 외부에서도 노래를 듣고 또 공연실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해두긴 하지만, 그렇다고 좌석이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밖에서 보는 이들은 한 시간도 넘는 공연을 서서 봐야 하는 것이다.

물론 표를 구입한 사람들과 달리 공짜로 보고 듣는 거니 문제없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달리 대꾸할 말은 없다.

하지만, 몇 분 만에 매진돼버린 표를 웃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팬들을 생각하면 나로선 안쓰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돈이나 벌자고 여기서 콘서트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동안 함께 투어를 하면서 부쩍 친해진 샤오린이 내 속내를 읽고는 말했지만, 역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

충칭에서의 공연도 성황리에 끝났다.

이걸로 열흘이 조금 넘는 기간의 중국 5대 도시 투어는 끝이 났지만, 우린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상태였다.

충칭 시내의 H 호텔.

객실 안에 나를 비롯해 아저씨, 고 팀장님, 마루 누나가 모였다.

한 가지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아저씨께서 먼저 얘기를 꺼낼 거란 예상을 깨고 마루 누나가 물어왔다.

“정말 하려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누나.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아저씨께서 조용히 날 불렀다.

“도준아.”

대답 대신 가만히 아저씰 쳐다보는 날 누나가 입술을 잘근거리며 쳐다보고 있다.

그때, 아저씨께서 나직하게 얘기하셨다.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린 반대하지 않을 거다. 다만······.”

“······.”

“그 결정이 일시적인 감정으로 내린 게 아니었으면 해. 혹여라도 회사의 처지를 고려해 결정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으면 좋겠고.”

제안을 거절하게 된다면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HS엔터테이먼트는 중국 정부에게 미운털이 박히게 될 게 분명하기에 하는 말일 테다.

설사 시진타오 주석이 그렇게 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아랫선에선 그대로 넘어갈 리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의 최정점에 있는 권력자가 직접 찾아와 부탁한 걸 거절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아저씨와 눈을 맞추고서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고민해온 것들을 털어놓을 시간이란 생각과 함께.

“이제야 조금씩이나마 보이는 거 같아요.”

“······.”

“왜 아저씨께서 저더러 라이브만 하라고 했는지. 하루 이틀 노래할 것도 아니니 일시적인 인기 따위에 목매지 말라고 했는지도 알 거 같달까.”

아무 말도 없이 날 보고 있는 세 사람을 향해 얘기했다.

“다른 건 솔직히 잘 모르겠고, 내가 가수인 이상······.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요.”

말이 끝나자마자, 누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반대하는 게 분명한 목소리가.

“너 호구 취급받는 거 싫어하잖아.”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어디 나만 그런가.

자신이 이용당한다는 걸 알고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나사 한두 개쯤 빠진 사람이 아니면 싫어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누나의 말대로다.

분명 내가 중국 정부, 정확히는 시진타오 주석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건 어떤 의미론 달갑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단지 저쪽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연료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아니 어떤 의미에선 시진타오 주석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일 터였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금전적인 이득은 둘째 치더라도 여러모로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우선 중국 정부와 돈독한 관계가 되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포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중국만큼 큰 시장은 없을 테니까.

그건 음원 역시 마찬가지.

더욱이 1,200만, 아니 그사이 더 늘어서 1,500 만에 육박하는 고정 팬들이 있으니 지금 당장 중국 음원 사이트에 올리기만 해도 바로 대박이다.

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쇄도하는 광고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순식간에 재벌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다가 부차적인 일이긴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회사에도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내가 고개 한 번만 끄덕이면, 작은 외삼촌이 이번에 의욕적으로 추진한 중국 진출 시도는 성공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호구란 얘기는 얼토당토않은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좀 더 시야를 넓게 가져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국 정부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가수란 꼬리표가 계속해서 붙어 다닐 건 뻔한 일. 그렇게 되면 아시아를 벗어나 북미와 유럽 쪽으로 진출할 때 문제가 생길 여지는 충분하다.

그만큼 천안문 광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건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기에 누나가 안타깝게 외치는 걸 테지.

그럼에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누나.”

“······.”

“제가 몇 번이나 생각해봐도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는 거 같아요.”

지금 내 입에서 튀어나온 그들이 누구인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루 누나는 물론이고 고 팀장님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듣고만 있었다.

아저씨 역시도 마찬가지.

이어질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저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알아요. 저도. 그날······. 그들조차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는 걸. 하지만요. 만일 그때 중국 정부에서 강경하게 나갔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몇 명 다치는 걸로 끝나진 않았을 것임은 뻔한 얘기.

그런데도 그들은 흩어지지 않은 채 한 시간 동안이나 모여서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반면에 나는?

기껏해야 다섯 개 도시에서 꼴랑 콘서트 몇 번만 했을 뿐이다.

과연 그걸로 날 향해 외치던 그들의 부름에 응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 충칭 시내가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읊조리듯 얘기했다.

“전 아직 몰라요. 어떤 게 옳은 선택인지는······. 하지만, 한가진 확신해요. 제겐 저만이 걸을 수 있고, 또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아저씨께서 웃고 계시는 게 보였다.

고 팀장님은 여전히 표정이 없으셨지만, 이젠 안다.

미묘한 차이지만, 저 얼굴······. 웃고 계신 거다.

마루 누나는 아까완 다른 의미로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 기세가 금방이라도 날 덮칠 것만 같았다.

여차하면 피할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그리고요.”

내 얼굴에서 한쪽 입꼬리가 비틀어지는 게 느껴졌다.

씨익 웃으며 농담처럼 덧붙였다.

“어디 한번 보자고요. 진짜로 이용당하는 게 누군지.”

***

아저씨께서 중국 정부, 정확히는 문화국에 내 결정을 전달한 직후였다.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인터넷 언론에 뿌려졌다.

내가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안 그래도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을 둘러싸고 정치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때인지라 그 소식은 전 세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다시 불기 시작한 한류? 중국 정부, 한국 가수의 자국 내 콘서트를 허용한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민주화의 상징, 천안문 광장에서 김도준 공연 예정.]

[경제분야에 이어 문화적 방면에서도 좀 더 넓게 개방을 허용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결단인가?]

[천안문 광장에 서는 가수, 김도준은 누구인가?]

[김도준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인민들의 염원을 적극 수용해 이번 일을 결정했다는 중국 정부의 발표.]

[아시아의 중심, 대륙에서부터 불어오는 개혁의 바람.]

[각국의 전문가들,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음을 조심스럽게 경고.]

늦은 저녁 그 소식이 세계를 강타하자, 곳곳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시끌시끌한 곳은 한국이었다.

형한테서 걸려온 전화에 의하면 네티즌들은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내 얘기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걱정이 되셨는지, 외할아버지께서 전화를 해오셨을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희한한 건 정작 우리 부모님에게선 전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까똑 하나만 날아왔을 뿐이다.

- 우리 아들, 파이팅!

잇따라 날아든 곰 한 마리가 촐랑거리며 엉덩이를 흔드는 이모티콘을 보면서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

언론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충칭 장베이 공항을 떠나 베이징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공연준비에 돌입했다.

샤오린 역시 떠나지 않은 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었고.

그리고······.

11월 9일.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맥락의 쇼핑시즌인 광군제를 앞두고 떠들썩한 가운데, 천안문 광장 한복판에 가설무대가 설치되기 시작한 건 오후 3시 무렵이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시점.

중국 정부가 발표한 공연 시각은 오후 7시.

공연까지는 4시간이나 남아 있었음에도, 광장은 수만 명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미 전날 밤부터 모여든 사람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 즉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의 결과였다.

침낭이나 모포를 뒤집어쓴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텐트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초췌하다기보단 환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미 어젯밤부터 해외 언론에서 파견한 특파원들이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관심을 가지는 거야 당연한 일이었고,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심지어는 아랍 쪽 방송까지. 요즘 들어 나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동남아시아 나라들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중.

특파원들은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선 저마다 자국으로 소식을 나르느라 열심이다. 가끔은 이곳에 모인 중국인들을 상대로 인터뷰까지 하면서.

물론 가장 좋은 자리, 즉 정면에서 풀샷을 잡을 수 있는 건 중국의 관영방송 그리고 회사에서 준비한 카메라맨이었지만.

아무튼, 여기까지는 그리 특별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터였다.

이미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5대 도시에서 개최한 콘서트마다 이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경험했으니까.

그럼에도, 특파원들은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아마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러는 듯 보였다.

일종의 쇼맨십이 발휘된 걸지도 모른다.

- 현재 무대 설치가 한창입니다만, 벌써부터 광장에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나와 김도준의 공연을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 갈수록 인파가 모여드는 가운데, 공연이 시작될 즈음엔 수십만 명이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 중국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소정의 공연료만 받고서 무대에 오르기로 결정한 김도준입니다만, 이것으로 그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특파원들이 전하는 뉴스와 기사들이 속속 각국으로 전해지고 있는 동안 점차 시간이 흘러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는 자꾸만 불어나는 중이었다.

- 보시다시피 무대는 이미 완성된 상태입니다. 연주소리와 음향 테스트 소리가 이따금 들려오는 걸로 보아, 한창 리허설 중일 걸로 예상되는 가운데······.

- 현재 시각 4시,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이곳 천안문 광장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정확한 집계는 어렵겠습니다만, 지금까지 모인 사람들의 숫자는 어림짐작으로도 십만 명을 훌쩍 넘는 것으로······.

다섯 시가 되었을 때, 리허설이 끝났다.

이제 잠시 쉬었다가 약속된 시간인 오후 7시에 공연을 시작하면 된다.

그 사이, 대기를 위해 준비한 간이 건물에서 샤오린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올 거 같아요?”

샤오린이 기대 가득한 눈빛을 숨기지 않고 물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내 입으로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아니, 왜들 이러냐고.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총면적 44만 제곱미터. 광장으로는 세계 최대. 천안문 광장이 백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농담처럼 툭 내뱉었다.

“그래도 절반은 차지 않을까요?”

저만치서 마루 누나가 킥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러곤 도저히 참지 못하겠던지 소리쳤다.

“야! 그러면 50만 명인데, 그게 말이 돼? 전승절 때도 그렇게는 안 모인······.”

“글쎄. 가능하지 않을까?”

고 팀장님이 한마디 꺼내자, 여기저기서 스텝들이 한마디씩 보태며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말도 안 돼요. 여긴 스타디움이 아니라고요. 노상. 그것도 의자는커녕 그냥 서서 봐야 하는데, 그 많은 숫자가 모인다고요? 제 생각엔 많아 봐야 30만? 날씨가 제법 쌀쌀하니까 어쩌면 그 반도 안될지도 모르고.”

마루 누나의 예측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인다.

되는대로 지껄였던 나조차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나 그저 바람이었을 뿐, 실제로 그게 가능할 거라곤 조금도 생각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치이이이이익.

스텝 중의 한 명이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 치익···치이익······. 여기는 서쪽 지구. 급격히 늘어나는 사람들로 인해 현장 통제가 안 되고 있습니다. 펜스가 다 무너졌어요! 이대로라면 공연 중에 사고가 날 가능성이 너무 높습······치익!

화들짝 놀란 스텝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고 팀장님이 아저씨와 시선을 교환하곤 잽싸게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때, 다시금 무전이 날아들었다.

- 모여드는 사람들의 수가 예상치를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어, 얼마나 되는데?”

스텝 중 잠시 아저씨께 보고차 와 있던 현장 통제 팀장이 묻자,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황당한 보고가.

- 광장이 거의 다 찬 상태입니다!

순간 무거운 침묵이 공간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시 들려온 무전음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 건 한순간의 일이었다.

- 어떻게 합니까! 지금도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날지도 몰라요!

“지금 장난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리가 없잖······.”

- 아이씨! 진짜라니까요! 아무튼, 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팀장님! 지금 바로 통제요원들 추가로 투입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미, 미친!”

팀장이 답답하다는 듯 버럭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들 마른 침을 삼키며 서로 간에 시선을 교환하다가 서둘러 바깥으로 뛰어 나갔다.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광장. 그래서 백만 명이란 어마어마한 숫자가 거론되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치상의 얘기일 뿐.

일개 가수의 노상 콘서트에 그만한 인원 아니 그 반조차도 모여들 리가 없다···는 게 우리 측의 예상이었다.

한데, 그것이 지금 깨져나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스텝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추가 인력을 수급하느라 전화통에 불이 났고, 문화국에 요청해 공안들의 숫자도 늘리는 듯 정신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 모습이 꼭 불난 집 같아서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다시 한 시간이 흘러 공연 시작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아까 뛰쳐나간 팀장의 보고가 날아들었다.

다급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였다.

- 치이이이······치익······. 현재 광장으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제, 젠장! 이 자식들!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해! 거기 펜스! 제대로 연결해! 하아! 돌겠네, 진짜! 어떻게 합니까? 아직 광장 외부로부터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데요!

정말 끝도 없이 몰려드는 모양이었다.

마루 누나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고 있을 때, 아저씨께선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펜스 뒤로 물려.”

-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랬다가는 시가지까지 밀려날 텐데요?

“대신 공안들과 공조해서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만 통제해.”

- 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선을 마치자마자, 아저씨께선 문화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곧바로 사정을 설명하곤 협조를 구했다.

그러는 동안, 샤오린은······.

핸드폰을 들어 그 긴 손가락으로 빠르게 뭔가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순간,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마루 누나의 핸드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누나가 핸드폰을 확인해보곤 이내 샤오린을 쳐다보았다.

배시시 웃어 보이는 샤오린.

그녀가 핸드폰을 들어 액정을 보여준다.

메시지 화면이 떠 있었다.

아마도 저건 팬클럽 회원들에게 보내는 걸 테다.

내용이야 안 봐도 뻔한 거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무전이 날아들었다.

- 휴우!

한숨 소리가 먼저 들리고, 안도한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 치익······차이이익······. 현장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통제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광장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펜스도 뒤로 물린 덕분에, 이대로라면 여유공간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안심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다행이군.”

아저씨는 팀장에게 계속해서 수고하라는 말을 하면서 시선을 샤오린에게 돌려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였다.

그러자 샤오린은 부끄럽다는 듯 볼을 붉히며 날 바라볼 따름이었다.

옅은 미소와 함께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이미 내 머릿속에선 한가지 생각밖에는 떠올라 있지 않았다.

무지하게 많이 왔다.

날 보기 위해서.

내 노래를 듣기 위해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거면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스럽게 날 쳐다보는 마루 누나와 팔짱을 낀 채 날 가만히 쳐다보는 아저씨에게 웃어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씨익.

“슬슬 시작하죠.”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 쪽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김도준!

김도준!

김도준!

내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눈짓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물었다.

“미쳤네요? 그쵸?”

그러곤 문을 여는 순간, 뜨거운 함성이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웃음이 절로 나와서 입꼬리가 다 실룩거린다.

그 상태로 말했다.

“오늘 저도 한번 미쳐보죠, 뭐.”

그러곤 공기를 뒤흔드는 함성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감각을 느끼며.

몸속의 피가 끓다 못해서 증발해버리는 느낌 때문에 눈앞이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지만, 가슴 한편에서 날뛰고 있는 심장은 거칠게 두근거리며 날 몰아붙였다.

어서! 어서 올라가라고.

저 무대 위에 서서, 날 기다리는 이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라고.

성큼성큼 내딛는 걸음에 따라 거리가 좁혀지고, 어느새 다다른 계단.

그곳에서 잠시 선 채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어 거침없이 계단을 밟았다.

자박자박자박.

무대를 울리는 발소리가 이어지고, 마침내 무대 아래로 펼쳐진 광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람들이 한 손에 붉은 초를 켠 채 모여 있다.

백만 명?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장을 채운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조명이 꺼져 있어서 내가 무대 위에 올라와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지만, 이제 곧 알게 될 터였다.

나는 마이크를 한 손으로 감아쥐며 나직하게 말했다.

일찌감치 나와서 자리를 잡고 있던 세션들에게.

“갑니다.”

그 순간이었다.

텅! 텅! 텅! 텅! 텅!

무대 조명이 밝혀지고, 악기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광장을 넘어 끝도 없이 펼쳐진 관중들이 내지른 함성이 한껏 달궈진 공기를 찢어발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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