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63. 오지 말라면서요? (4)
고 팀장님과 함께 보안요원을 따라간 곳은 공항 내 작은 사무실.
딱히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5평이나 될까 말까 한 사무실이었고, 테이블 너머에서 중년의 중국남자가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중국 문화국에서 나왔다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지만, 그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물론 그가 위협적으로 얘기한 건 아니다. 다소 딱딱하긴 하지만, 차분하게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사항만 사무적인 태도로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얘기였다.
“김도준 씨. 안타깝게도 귀하는 중국 입국이 금지되었습니다.”
황당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말은 안타깝다고 하면서도 전혀 그런 기색이 아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순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졌다.
그렇게 내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고 팀장님이 내 어깨를 잡더니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이럴 거 같으면 비자는 왜 발급해준 겁니까?”
“그땐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잠시 남자를 응시하던 고 팀장님이 말했다.
“외교부를 통해 정식으로 항의할 거요.”
순간 남자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쳐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빠르게 사라지긴 했지만,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얼마든지.”
그 말을 끝으로 남자가 손짓하자, 보안 요원이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듯 고갯짓을 해 보였다.
기분이 더러웠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폭력이 있지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폭력은 정말이지 난생처음 당해보는 유형이었다.
정확한 이유도 얘기해주지 않고서, 그것도 비자를 무효처리시키면서까지 입국을 금지한다니.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행할 수 있는 폭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일어서기 전, 고 팀장님이 물었다.
“이유나 좀 압시다.”
가만히 우릴 바라보던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내게 시선을 고정하며 얘기했다.
“우리도 지시를 받는 입장인지라 정확히는 모르오. 다만······.”
“······.”
“동영상에 나온 몇 장면이 문제가 된 것 같소.”
역시 그거였나?
하지만······.
“그걸 만든 건 우리가 아닌······.”
내가 항변하려 하자, 고 팀장님이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다.
그러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일으켰다.
“가자.”
“하지만, 팀장님! 이건······.”
“소용없어. 중국정부에서 이미 결정을 내렸다면 끝인 거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 느껴보는 모욕감. 그리고 분노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 감정은 보안 요원들을 따라 입국장을 나온 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기하는 중에 더욱더 깊어졌다.
어디서 어떻게 얘기를 들었는지, 팬들이 몰려들어 밖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출국장에선 보이지 않았지만,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함성과 때때로 흘러드는 노랫소리들······.
그 소리를 남겨놓고 떠나는 걸음. 무겁기만 한 걸음 속에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누구도 말문을 열지 않았다.
항상 웃으며 밝은 모습을 보여주던 마루 누나마저도 싸늘한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내려섰을 때였다.
밖으로 나가기 전, 고 팀장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이미 대표님께 연락은 드렸지만, 아마 기자들이 몰려들었을 거다.”
“······.”
“어떻게 할래?”
“기자회견이라도 하란 얘긴가요?”
날 잠시 바라보던 고 팀장님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분노를 달래는 데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그럼 안 할래요.”
때론 말로 해서 풀어질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는 법이다. 지금의 내 감정은 후자에 속했다.
펑! 펑! 펑!
입국장을 나서자마자 터지는 플래시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대개는 이번 중국 방문과 관련된 얘기들이었고, 기자들은 집요할 만큼 달라붙어 입국금지 처리된 부분에 대해 파고들었다.
하지만, 난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있었고 경호원들이 길을 뚫는 동안 고 팀장님과 마루 누나가 기자들에게 차후에 회사에서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거란 얘기만 거듭해주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
회사에선 약속대로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중국의 팬들이 초청했던 일부터 시작해서 입국 금지 조치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경위와 함께 중국 정부에 유감을 표했던 것이다.
물론 그전에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LONGING TIMES’에 나온 천안문과 라마승 사진이 명분이 되었음은 확실했지만, 아저씨와 고 팀장님은 사태가 그렇게 간단하다고 보지 않았다.
“반한류 정책의 고삐를 바짝 조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일종의 희생양?”
“맞아. 문화국에서 조처를 내렸다곤 하지만, 실상은 그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겠지. 자국의 콘텐츠를 보호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그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 된 점은 현재 중국에 입국 금지된 가수들이 나 말고도 꽤 많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가수들은 거의 없었지만, 저스트 비버라든가, 오에이시스, 머룬 5 등 해외의 아티스트들 중 상당수가 중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도 내 경우와 흡사했다.
마론 5의 경우 키보드 연주자가 달라이 라마의 생일을 축하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였고, 오에이시스는 뉴욕에서 열렸던 티벳 독립 콘서트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의 제재를 받고 있었다.
“억울해?”
사실상 동영상을 만든 게 우리가 아니기에 묻는 질문.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그 동영상 덕분에 많은 이들이 내 노래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나온 장면은 나조차도 떨릴 정도로 인상 깊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가 ‘LONGING TIMES’를 만들 때 느꼈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영상에 담아냈음이 분명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뺨은 다른 놈이 때렸는데, 화풀이를 엄한 사람한테 할 정도로 모자라지 않다.
“정말 항의하실 건가요?”
“하긴 해야지. 뭐, 먹히진 않겠지만.”
씁쓸하게 얘기하시는 아저씨셨다.
***
10월 17일.
생일날이다.
여러 가지 일로 시끄러운 가운데 맞이해서인지 회사에선 어제부터 부쩍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다르다.
“아들! 축하해!”
“올해도 건강히 지내렴.”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니 아버지께서 예년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축하해주셨다. 심지어는 우리 형님께서도 내 어깨를 감싸며 웃어 준다.
“잘나가는 우리 동생. 이제 한 살 더 먹었는데, 세계 무대로 가야지? 아즈아! 김도준 파이팅!”
장난스럽게 외치는 형을 보며 웃어 보이곤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식탁에는 미역국이 놓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집을 나왔다.
그리고 회사에 이르렀을 때였다.
뭐야? 왜 이렇게 복잡해?
도로가 막히는 수준이 아니다. 일부러 러시아워를 피해 나왔는데도 차들이 꼼짝을 않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런가 해서 의아해져서 두리번거리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엄청나게 길게 늘어선 탑차들.
페덱수를 비롯한 해외특송차량들이 회사 앞부터 줄지어 서 있었던 것이다.
조금 황당해져서 가까이 다가가자, 마루 누나가 보였다.
배송 기사들이 꺼낸 물건들을 누나는 진두지휘해서 회사로 올리고 있었다.
“이게 다 뭐에요?”
“응? 왔어?”
이내 반가운 미소로 말하는 누나였다.
“생일 축하해.”
민망하게 뭘 또.
“고마워요. 근데,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뭐긴. 네 선물이지.”
“······?”
선물?
이게 다?
배송 온 차만······하나, 둘, 셋, 넷······스물일곱 대인데?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고 있자, 누나가 말한다.
“많지? 중국에서 보낸 것들이야. 진짜 대단하네, 우리 도준이.”
“중국이요?”
“응. 너 팬 미팅 왔을 때 주려고 했던 것들이래.”
“아!”
살짝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누나가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회사를 가리킨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빨리 올라가 봐. 팬들이 보낸 선물들인데 얼른 풀어봐야지.”
***
황당하다.
사무실에는 선물들 때문에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얼마나 많은지 연습실은 말할 것도 없고 대표실까지 채워버렸다.
그걸 고 팀장님께서 안쪽부터 차례차례 쌓고 계셨다.
무슨 이삿짐도 아니고······.
요 며칠 한국팬들이 보내준 것까지 해서 회사가 터져나갈 판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바라보고 있자, 아저씨께서 다가와 툭 하고 내뱉으신다.
“뭐해? 안 풀어보고.”
“아, 예······.”
풀어봐야지.
근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지?
살다 살다 이런 걸로 고민하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수량도 수량이지만,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눈앞에 있었다.
박스들을 옮기던 배송기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크기도 다 제각각이고, 무게도 다 달랐으니까.
결국, 나와 회사식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경호원들까지 달라붙어 도운 끝에 겨우 점심 전에 짐을 모두 옮길 수 있었다.
배송기사들이 떠나갈 때까지 회사 주변은 엄청난 교통난에 시달려야 했고.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박스를 뜯는 일도 장난 아니었다.
원래는 나가서 근사한 점심을 사 먹네 마네 했었지만, 전부 취소했다.
대신 짜장면을 시켜먹곤, 모두가 달라붙었다.
나와 마루 누나 그리고 고 팀장님 심지어 아저씨까지 합세해 세 시간을 매달렸는데도 채 절반도 못 끝내고 있을 때, 경호원들이 달려들었다.
어느새 연락했는지 여섯 명이나 되었다.
지켜보다 못해 경호팀장에게 연락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들이 가세한 덕분에 세 시간 정도 더 걸려서 간신히 선물 개봉을 끝낼 수 있었다.
경호팀장에게 고기라도 사 먹으라며 아저씨께서 돈 봉투를 억지로 안기고 있을 때, 사무실 안에 가득 쌓인 선물들을 보면서 나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 한 크기의 인형에서 손수 만든 걸로 보이는 팔찌까지.
그중에는 하나에 몇백만씩 하는 값비싼 시계도 있었고, 어린아이가 접은 종이꽃까지 있었다.
편지와 카드 또한 엄청 많다.
열어보니 삐뚤삐뚤한 한글로 쓰인 내 이름이 먼저 눈에 띈다.
갑자기 울컥하고 말았다.
나를 생각하며 썼을 글들이다.
아니, 내 노래를 들으며 썼을 테지.
다시 한 번 노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물건들 때문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왜 그래?”
눈시울이 붉어져 뭐라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마루 누나가 다가왔다. 한 손에는 체크리스트를 들고서.
“답장 쓸 거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
처음으로 팬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날이었다.
***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그들에게 보답을 해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조용히 일어나 연습실로 들어갔다.
한참 후, 연습실을 나온 뒤 아저씨께 말했다.
“녹음 좀 했으면 하는데요?”
“지금?”
“예.”
“흠······.”
사방에 쌓여 있는 선물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네가 하겠다면야.”
그러시더니 그때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엔지니어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녹음에 들어갔다.
일부러 연주와 노래를 따로 하지 않았다.
조금 거칠더라도 내가 지금 이 순간 말하고 싶은 게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랐으니까.
그래서였을까.
기타 연주와 함께 녹음을 끝낸 뒤 나오자, 회사 식구들과 엔지니어들이 날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이.
“미치겠네. 아깐 분명 웃으면서 우는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나만 그런 거야?”
“뭔 말이 그러냐? 어떻게 사람이 웃으면서 울어? 뭐, 나도 그렇게 느껴지긴 했었지만.”
엔지니어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마루 누나가 다가와 차가운 물 한잔을 내밀며 평소와는 달리 차분한 음성으로 얘기했다.
날 바라보는 눈동자엔 애잔한 눈빛이 스쳐 가고 있었다.
“수고했어.”
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 후, 편집까지 마친 음원을 아저씨와 상의 끝에 유투븐과 유쿠투모우에 올렸다. 당연히 무료였다. 때문에 음원 사이트엔 올리지 못했다.
대신 한국과 중국의 팬클럽에도 올리면서 감사를 표했다.
발라드풍의 노래였는데, 4분짜리 곡임에도 가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내가 느끼는 감정을 꾸밈없이 담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는, 마루 누나의 조언에 따라서.
그것이 내가 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