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62. 오지 말라면서요? (3)
놀랍긴 한데, 확 와 닿진 않는다.
1,200만 명이란 수도 그렇지만, 중국이라니······.
우리나라를 벗어난 곳에서 내 노래를 들어주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어때? 한류 스타가 된 기분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물어오는 마루 누나에게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와 닿지 않는다고 해서 기쁘지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
모든 게 순조롭기만 했다.
마루 누나가 얘기한 덕분에 중국 팬클럽에서 날 초청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 한국 팬클럽에서도 같은 날 함께 움직일 팬들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중국 측은 중국 측대로 팬 미팅을 할만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도 팬 미팅을 하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아무튼, 중국 쪽은 참가 신청한 인원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다는데 그 많은 인원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장소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렇긴 한데······.
하아. 무슨 100만 명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나 하나 보겠다고 그만한 숫자가 모인다는 게 영 믿기지가 않는다.
아무튼, 10월 17일이 내 열일곱 번째 생일이라서 잠정적으로 그날을 D데이로 잡고 움직인다고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대감이 높아지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새로운 이들을 만난다는 기대감과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노래를 부를 생각에 날이 갈수록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촬영을 마친 광고는 어느새 편집까지 끝낸 상황. 거기에 쓰일 곡도 이미 녹음을 끝낸 뒤였다.
문제는 가사인데······.
형이 알아서 한다고 해서 맡겨놓은 터였다.
하지만,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었다.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그래서 지금 형을 만나기 위해 양평 쪽에 있는 카페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알았어. 도착하면 전화할게.”
형이 알려준 대로 네비를 찍었기 때문에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의아할 뿐이다.
아니, 하고많은 델 놔두고 왜 하필 이렇게 먼 곳에서 작사작업을 하는 거래?
나 때문에 그러나?
하긴 따로 시간을 내 다른 장소에서 형을 만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긴 하지. 그랬다가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들어 말 한마디 나누지도 못할 게 뻔하니까.
그럼, 그냥 집이나 회사에서 만나면 될 일 아닌가?
아, 혹시 너무 회사 집밖에 모르는 날 위해 일부러?
“경치 진짜 좋다!”
운전석에선 중국 문제 때문에 바쁜 고 팀장님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고 있던 마루 누나가 탄성을 내지르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강을 끼고 낮게 이어지는 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웠다.
간만에 봐서 그런가 마음이 평온해지며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아무래도 형이 날 생각해서 일부러 이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후, 카페에 도착했다.
현대적인 건물이었는데, 특히 강가를 향해 널찍하게 펼쳐진 잔디밭이 눈길을 끈다.
거기에는 몇 갠 가의 파라솔이 펼쳐져 있었고 그중 하나에 형이 혼자······. 음, 저거 씨크릿걸즈 아닌가? 형이랑 함께 온 모양인데, 왜 두 명만 보이지?
소연은 지난번에 함께 촬영을 해서 이미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나머진 긴가민가하다. 아무튼, 씨크릿걸즈의 막내라고 했던 거 같은데···.
형은 소연과 무슨 얘기를 하는지 시종일관 신바람이 난 얼굴이었고, 그녀들도 간혹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게 재밌다는 표정들이었다.
“어? 도준아.”
내가 다가가자 형이 먼저 인사를 해온다.
“안녕하세요.”
살갑게 인사해오는 두 사람.
“소연 씨는 알지? 그리고 여긴 지연이.”
“반가워요.”
마루 누나와 함께 자리에 앉자, 형이 말을 묻는다.
“찾아오는 데 힘들진 않았어?”
“길은 네비가 찾아주고, 운전은 마루 누나···. 아, 인사해. 우리 회사 전속 작사가셔.”
“작사가 겸 HS 매니지먼트의 마케팅팀장인 조마루에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
나 참, 언제 또 그런 직책을 꿰찼대?
그나저나 홍보팀이랑 마케팅팀이랑 뭐가 어떻게 다른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나를 바라보자, 마루 누나가 싱긋 웃어 보인다.
조금 황당해져서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저만치서 형의 사수였던 매니저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
커피와 음료, 쿠키 등을 담은 쟁반을 들고서.
“지난번에 뵀었죠?”
이름이 아마······. 아, 차도식.
차도식은 안절부절못하다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다.
아, 되게 민망하네.
뭘 이렇게까지 깍듯하게 인사를 하냐고.
멋쩍어져서 형을 향해 얼른 물었다.
“그래서 가사는 좀 썼어?”
“안 그래도 거의 다 끝나가. 여자 파트는 소연 씨가 써줘서 생각보다 일찍 끝났지. 보면 알겠지만, 진짜 좋아. 소연 씨가 글을 진짜 잘 쓰더라고.”
형의 칭찬에 고개를 푹 숙이며 어찌할 줄 모르는 소연. 그녀의 목덜미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옅은 미소와 함께 그 모습을 보며 악보를 받아 마루 누나에게 건넸다.
한참 동안 가사를 살펴보던 누나가 말했다.
“소연 씨, 소질 있는데요? 조금만 더 다듬으면 아예 이 길로 나서도 될 거 같아요.”
누나의 칭찬에 소연의 얼굴이 한층 더 붉어졌지만, 눈가에 감도는 빛으로 보아 어지간히 기쁜가 보다. 그런 반응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차도식이야 아직도 얼어붙은 상태였지만, 얌전해 보이던 지연은 금방이라도 방방 뛸 듯이 기뻐하며 소연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형이 좋아라 한다.
그러면서 눈을 빛내고는 소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마루 누나가 갑자기 형을 향해 물었다.
“도준이 형이라고 했죠? 그쪽도 글 잘 쓰네요. 근데······.”
“······.”
“좀 많이 갔네. 뭐랄까, 감정 과잉이랄까? 이거 혹시 본인 얘기?”
흠칫하는 형을 보니 진짜인가 보다.
대체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악보를 슬쩍 보았다.
- 햇살이 쏟아지는 그 아침, 널 처음 본 순간······.
윽! 손발이 오그라든다.
저걸 부를 생각을 하니까,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다.
다행히 누나는 날 한차례 보더니 킥하고 웃고는 얘기했다.
“감정을 주저앉히면 괜찮을 거 같아요.”
그러면서 두 사람, 형과 소연에게 작사에 대해서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주기 시작했다.
***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누나에게 물었다.
“진짜 형한테 소질이 보여요?”
“응. 잘 썼더라.”
“그치만 감정이 너무 넘친다면서요?”
“그것도 재능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 반대로 소연 씨는 조금만 더 감정을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고.”
“장단점이 있다는 거네요.”
“급하진 않으니까, 조금 더 시간을 줘보는 게 좋겠지.”
“예. 오늘 보니까, 형한테 맡기길 잘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즐거워 보이긴 하더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누나였다.
“그나저나 장소는 빌렸대요?”
“아, 중국?”
“예. 근데, 진짜 100만이나 올까요?”
“모르지. 신청은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
“음, 그렇게 많으면 어지간히 커야 할 텐데······.”
“스타디움 같은 곳은 힘들다고 판단해서 결국 북경에 있는 광장 한 곳을 빌렸다고 하던데?”
어딘지는 몰라도 좁지 않을까?
몇만 명도 아니고 백만 명이나 되다 보니 어지간해선 힘들 거 같은데······.
내 표정을 보고 속내를 읽은 걸까.
누나가 미소와 함께 얘기했다.
“곧 연락 준다니까, 기다려 보자고.”
고개를 끄덕인 후, 누나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회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막 회사로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묘하다.
고 팀장님과 아저씨가 책상 앞에 달라붙어 앉아 심각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왜들 그러고 계세요? 뭐 문제라도 터졌어요?”
마루 누나가 쪼르르 달려가 묻자, 고 팀장님이 손가락으로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잠시 후 마루 누나가 버럭 화를 냈다.
“미쳤나 봐!”
누나의 외침이 사무실을 울렸다.
뭔가 해서 바라보니, 중국판 유투븐이라 할 수 있는 유쿠투모우 사이트다.
“왜 그래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해서 물었다.
“동영상이 사라졌어!”
사라져?
의아해져서 바라보고 있을 때, 고 팀장님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국 정부가 폐쇄한 거 같다.”
음······. 대충 감이 온다.
언젠가 고 팀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중국 정부가 차단, 아니 아예 유쿠투모우에 압력을 가해 동영상 자체를 내려버린 모양이다.
우리나라처럼 자본주의 체제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중국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터였다.
“역시 그게 문제였던 걸까요?”
내 물음에 고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천안문에 모여든 사람들을 찍은 사진.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라마승의 사진. 그게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린 듯하다.
***
다행히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날 동안 별스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 마음 놓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만.
“얼마나 걸린다고 했죠?”
“우리 도준이, 진짜 기분 좋은가 보네. 호호호. 벌써 몇 번째 묻는 거니?”
“베이징은 코앞이다.”
고 팀장님이 툭 하고 내뱉는 걸 듣곤 멋쩍어져서 시선을 돌렸다.
공항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게이트가 같은 걸로 보면 다들 베이징으로 가는 거겠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공연준비를 하기 위해 이틀 전에 미리 입국하고 있긴 하지만,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물론 생일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번엔 좀 특이한 케이스니까. 그걸 아시는지, 부모님께서도 이해해주셨고.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팬들이 마련한 자리다.
뿐만 아니라 한국 팬들 중에서도 수십 명이나 함께 가는 길이다.
물론 그들을 이끄는 건 마루 누나의 몫이었지만.
그나마도 엊그제 한국 팬들을 대상으로 팬 미팅을 하지 않았으면 어쩌면 수백 명이 따라붙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정말 기대가 된다.
과연 팬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비행기에 올랐다.
***
베이징 공항.
정확히는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내린 뒤, 곧바로 아저씨께 전화를 걸었다.
“예. 지금 막 도착했어요.”
- 그래.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항상 조심하고.
원래는 따라오려고 하셨는데, 광고 문제를 비롯해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서울에 남으신 아저씨셨다.
전화를 끊은 후, 입국 심사를 하기에 앞서서 어머니께 전화를 넣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김도준! 김도준! 김도준!
내 이름을 연호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은 보이질 않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오고 있다.
뜻밖이라 조금 놀란 표정이 되어 마루 누나를 바라보자, 누나는 엄마 미소와 함께 내 머릴 쓰다듬어주신다. 자랑스럽다는 듯이.
“다 몰려온 건 아니겠죠?”
농담처럼 묻자, 누나가 씨익 웃어 보였다.
“글쎄. 한 만 명만 왔다 쳐도 지금쯤 공안들이 혼비백산하고 있을 텐데?”
설마 하는 심정으로 검색대 바깥쪽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러자 유리창 밖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웅성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 손에 들고 있는 피켓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간혹 삐뚤삐뚤한 한글로 사랑해요 김도준 같은, 내 입으론 차마 부끄러워 말하기 민망한 문구들도 보였다.
심지어는 사진을 인쇄해 피켓에 붙여놓은 이들도 있었고.
팬들을 만난다는 것도 그렇지만, 내 노랠 좋아해 주는 사람 앞에서 같이 호흡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을 때였다.
“우리 차례다.”
보안검색대 위에 기내용 화물을 올려놓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스캐너를 통과하는 찰나였다.
보안 검색 요원이 여권과 비자를 보곤 내 얼굴을 한차례 확인하더니 아무런 말도 없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고 팀장님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셨는지 다가와 물었지만, 나라고 해서 대답할 말이 있을 리가 있나?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저만치서 제복을 입은 이들이 다가왔다.
그러곤 날 막아서는가 싶더니 그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就是金道俊??(당신이 김도준이오?)”
어지간한 중국어는 다 알아듣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방금 내게 물었던 사람이 다시 말했다.
“能否???我走一??(잠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